2025년 1월호

삼성전자 참전으로 ‘가전 전쟁’ 불붙다

[Focus] LG전자가 개척한 ‘가전 구독 서비스’ 시장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5-01-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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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 늦게 참전한 삼성전자, 무기는 ‘AI 가전’

    • 적은 초기 비용으로 최신 제품 경험 가능

    • 양 사가 구독에 눈 돌린 이유? 쪼그라드는 가전 시장

    • LG전자 고객 36%는 구독 이용, 매출 1조8000억 원 돌파

    •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핵심’… 글로벌 확대 추진

    LG전자 가전 구독 주요 제품 이미지. [LG전자]

    LG전자 가전 구독 주요 제품 이미지. [LG전자]

    국내 가전업계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또 한 번 맞붙는다. 이번 종목은 ‘구독 서비스’다. LG전자가 먼저 판을 깔기 시작한 가전 구독 시장에 삼성전자가 도전장을 내밀며 자존심을 건 맞대결이 성사됐다.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가전 수요 감소를 타개할 묘책으로 양 사 모두 구독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참전 선언이 가전업계 구독 시장을 주도하던 LG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사실상 독주 체제가 막을 내리게 됐기 때문이다. 2009년 정수기 렌털로 처음 구독 시장에 발을 들인 LG전자는 2022년 대형 가전으로 범위를 확장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을 점유해 ‘가전 구독 = LG’ 공식을 굳히겠다는 각오였다.

    특히 가전 구독은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사장)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2030 미래비전’ 달성을 위한 핵심 축이기도 하다. 3대 성장 동력 가운데 무형의 사업(Non-HW)에 속할 뿐 아니라 기업간거래(B2B) 확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LG전자가 단순한 가전회사에서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간판 사업’이다.

    따라서 LG전자는 구독 서비스를 ‘1호 유니콘 사업’으로 치켜세운 데 이어 2024년 11월 인사에서 구독 모델 정착에 기여한 김영락 한국영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힘을 실어줬다. 최고경영자(CEO)인 조 사장이 2025년에도 자리를 지키며 사업 확대에 더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AI 무기로 뒤집기 노리는 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들이 서울 서초구 삼성스토어 서초에서 ‘삼성 AI 구독 클럽’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들이 서울 서초구 삼성스토어 서초에서 ‘삼성 AI 구독 클럽’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2024년 12월 가전 구독 모델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가전 구독이란 소비자가 일정 기간 매달 구독료를 내고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서비스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수기 렌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빌려 쓰되 정해진 기간을 채운 뒤엔 제품 반납, 재구독, 소유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가전 구독은 초기 비용이 적게 들어 소비자가 느끼는 진입 장벽이 낮다. 누구나 값비싼 최신 제품을 부담 없는 가격에 사용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가전 특성상 한번 쓰면 자연스레 생활에 녹아들어 장기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인식과도 더 잘 맞아떨어진다. 회사로선 일회성 판매에 그치던 가전 사업에 서비스를 결합해서 꾸준히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후 관리와 소모품 교체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대형 가전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50만 원 미만의 중저가 제품부터 900만 원대 프리미엄 제품까지 240여 개 모델을 대상으로 정했다.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할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AI 기능이 탑재된 제품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서비스 이름도 ‘AI 구독클럽’으로 정했다.

    여기에 소비자가 무상 수리와 케어 서비스를 원하는 대로 각각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카드사 청구 할인과 다양한 제휴 서비스 등 추가 혜택도 마련했다. 향후 제품 범위도 모바일 등으로 넓혀갈 방침이다. 김용훈 삼성전자 한국총괄(상무)은 “앞으로 더 많은 소비자가 삼성의 ‘AI 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독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구독 시장, 2025년 100조 원 규모로 확대

    삼성전자의 구독 사업 진출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단 ‘언제,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었다. 가전 사업에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성숙 단계에 도달한 가전 사업 특성상 성장이 제한적이고, 신규보단 교체 수요 의존도가 더 높다. 거기다 중국을 포함한 외국산 가전의 추격이 점점 거세져 점유율 확대는커녕, 현상 유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실제 국내 가전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지에프케이(GfK)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가전 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매출 기준 12%, 판매 수량 기준 17%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자체가 침체하며 기업들이 출혈경쟁을 펼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제품을 많이 팔더라도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VD/가전사업 영업 실적을 살펴보면 2021년 2분기 이래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연말 세일 시즌이 포함돼 비수기로 꼽히는 4분기엔 두 번(2022년·2023년)이나 적자를 냈다.

    반면 구독 시장은 가파른 성장이 전망된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가전을 포함한 국내 구독 시장은 2020년 40조1000억 원에서 2025년 100조 원 규모로 확대가 예상된다. 2016년 26조 원 규모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장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는 2020년 804조 원 수준이던 세계 구독경제 시장이 2025년 1865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구독경제 트렌드에 발맞춰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 공략에도 구독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LG전자가 먼저 시도해 성공을 거뒀다는 점도 삼성전자의 진출 가능성을 높게 점친 근거였다. 가전 시장의 전통적 라이벌인 두 회사는 신제품, 혹은 신사업과 관련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관계다. 두 회사의 제품군이 상당 부분 겹치는 이유다.

    예컨대 의류 관리기는 LG전자가 먼저 선보였다. 2011년 출시한 ‘스타일러’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이에 삼성전자는 곧이어 ‘에어드레서’를 내놨다. 신발 관리기는 삼성이 먼저 출시했다. 삼성전자가 2021년 ‘슈드레서’를 선보이자 LG전자는 이듬해 ‘슈케어·슈케이스’를 공개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일원화해 호평받은 ‘세탁건조기’를 비롯해, AI를 결합한 ‘AI 가전’도 양사 포트폴리오의 교집합 부분에 해당한다.

    실제 LG전자의 구독 사업 성과가 가시화하기 시작하자 삼성전자가 구독 서비스를 언제 출시할지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2024년 4월 임성택 삼성전자 한국총괄(부사장)은 “AI를 접목한 구독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며 “사업 준비가 일정 부분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해 9월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말씀드릴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이 같은 상황은 가전 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LG전자의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동일한 위기 극복을 위해 똑같은 길을 선택한 양 사 사이에 2년이란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 시간 동안 시장 내 입지를 굳건히 했다.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LG전자는 최근 가전 구독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비전 선포식’과 ‘인베스터 포럼’ 등 조주완 사장이 직접 나서는 행사를 개최하고, 구체적 진행 현황과 목표를 공개하는 등 시장과의 소통도 늘리고 있다.

    LG전자 고객 36.2% 구독 이용, 매출 비중 20% 넘겨

    LG전자는 2023년 7월 ‘2030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며 사업 포트폴리오 대전환을 선언했다. 이때 △무형의 사업(Non-HW) △B2B △신사업 등 3대 신성장동력에 드라이브를 걸어 2030년 매출액 100조 원, ‘트리플 7’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트리플 7은 △연평균 성장률 7% 이상 △영업이익률 7% 이상 △기업가치(EV/EBITDA 멀티플) 7배 이상을 의미한다.

    구독은 콘텐츠·서비스, 솔루션 등과 함께 무형의 사업에 포함됐다. 판매 시점에 일회성 매출과 수익이 발생하는 제품 중심 사업에 서비스를 더해 수익성을 지속 창출하는 순환형 모델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소비자가 선호하는 TV 등 홈 엔터테인먼트 제품들도 구독 모델 라인업에 추가했다. 기존엔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생활가전 중심이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4년 6월 자체 조사에서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을 구매하는 고객 10명 가운데 3명 이상(36.2%)이 구독 방식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비자 대부분이 구독 형태로 이용하는 정수기 등을 제외하고 집계한 수치다. 매출 기준으론 국내 가전 매출 가운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이는 소비자의 가전제품 이용 패러다임이 ‘구매’에서 ‘구독’으로 옮겨가고 있단 의미로 해석된다.

    2024년 8월 21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전자 ‘인베스터 포럼(Investor Forum)’에서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가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 전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LG전자]

    2024년 8월 21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전자 ‘인베스터 포럼(Investor Forum)’에서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가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 전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LG전자]

    ‌LG전자는 구독을 ‘1호 유니콘 사업’으로 선언하며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미래비전 발표 이후 1년간 추진해 온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의 경과와 방향성을 소개하기 위해 2024년 8월 마련한 ‘CEO 주관 인베스터 포럼’에서다.

    이날 조주완 사장은 “시장에서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벤처를 유니콘 기업으로 부르는 것에 착안,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 과정에서 연매출 1조 원 이상을 내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유니콘 사업’으로 부르고 있다”며 “가전 구독의 경우 이미 지난해(2023) 매출 1조 원을 넘기며 ‘유니콘 사업’ 위상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가전 구독은 2023년 매출 1조1341억 원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가전 구독을 본격화한 지 2년 만의 성과이자 2022년 대비 33% 증가한 숫자다. LG전자는 2024년 구독 매출은 2023년 대비 60% 가까이 증가한 1조80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이 목표는 2024년 11월께 충족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영락 승진, 조주완 유임… 구독 서비스 가속 전망

    LG전자는 구독 서비스의 인기 비결로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추고 원하는 기간만큼 전문가의 관리를 받으며,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LG전자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구독경제 트렌드에 발맞춰 가전 구독을 해외시장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구독을 통한 고객 중심 경영이 LG전자의 글로벌 매출 확대뿐 아니라 시장 내 입지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영락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사장). [LG전자]

    김영락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사장). [LG전자]

    ‌이를 위한 임원 인사도 단행했다. 2024년 11월 실시한 ‘2025년 임원 인사’에서 김영락 한국영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한국 시장에서 가전 구독 사업 모델을 적극 확대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고, 성장과 수익 개선을 이뤄낸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김 본부장은 해당 인사의 유일한 사장 승진자였다. 조 사장 역시 유임돼 구독을 포함한 ‘2030 미래비전’ 실현에 더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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