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호

“대한민국 필승 전략은 ‘저출산 극복’과 ‘북극항로’, 시간이 얼마 없다”

[Special Interview] 문명사학자 김태유 교수의 ‘2026 대한민국 진단’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6-01-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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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문명사 연구 ‘국가 발전의 원리’ 완결판

    • 국민이 행복한 선진 강대국이 되는 원리는 무엇인가

    • 부양비에 허리 부러지는 삼포세대의 ‘안 낳기’는 생존 전략

    • 1명이 1명 부양하는 사회를 3명이 1명 부양하는 사회로

    • 정년 연장 대신 ‘영올드’가 AI와 함께 일하는 ‘이모작 사회’

    • 부·울·경 메가시티로 저출산 문제 반 이상 해결

    • 해수부 부산 이전은 신호탄, 거점 항구 확보하라

    • 북극항로 개통과 한·미·러 합종, 1000년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 명검 만들어놓고 난세 구원할 명장을 기다리며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초저출산, 부양비, 정년 연장, 유동지능, 결정지능, 이모작 사회, 북극항로, 거점 항구, 부·울·경 메가시티, 5극체계, 국토균형발전, 근공원교(近攻遠交), 1+3+5전략, 천하사각지계, 한·미·러 합종, 한중일 연횡,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원자력추진잠수함.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퍼즐 조각들이 있다. ‘국정과제’라고 해도 좋다. 이 퍼즐을 완성하면 대한민국에 마지막 기회가 온다. 다만 제한 시간이 있다. 출발 신호도 듣지 못했는데 이미 스톱워치는 켜졌다. 가장 빨리 퍼즐을 맞추는 방법은 완성된 원본 이미지를 보면서 따라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게임에선 원본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답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만 보더라도 답이 안 보인다. 정부는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래 5년마다 기본계획을 갱신하며 2025년까지 480조 원(2025년 한 해 예산만 88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2006년 1.12명이던 합계출산율이 18년 사이에 2024년 0.7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2023년 0.72명에서 바닥을 치고 반등세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할 뿐이다. 

    21세기 ‘그레이트 게임’(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끊임없이 양자택일을 요구받고 있고, 이웃 나라 일본의 시샘과 견제는 여전하며,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째 ‘종전 임박’만 외치며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북극항로 개척이나 한·미·러 합종은 공허한 말잔치처럼 들린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가 퍼즐 마스터로 나섰다. 김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한 선진 강대국이 되고, 또 어떻게 하면 국민이 불행한 후진 약소국이 되는가”라는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한 ‘국가 발전 원리’ 연구에 매달렸다. 자연과학, 공학, 경제학, 지정학, 역사학을 망라하는 문명사적 연구를 통해 그가 도출해 낸 ‘국가 발전 원리’가 바로 이 복잡한 퍼즐의 해법이다. 퍼즐은 핵심경로(critical path)부터 맞춰간다. 김 교수가 선택한 출발점은 ‘저출산’과 ‘북극항로’. 첫 번째는 지난 20년간 해도 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이고, 두 번째는 애초에 해봤자 안 될 것 같은 문제다. 그러나 김 교수의 대한민국 필승 전략은 진단도 해법도 구체적이다. 김 교수의 명검(名劍)이 난세를 구원할 명장(名將)을 기다리고 있다. 



    빼앗긴 나라는 되찾아도 소멸한 나라는 되찾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저출산으로 꼽은 이유는 뭔가. 

    “빼앗긴 나라는 되찾을 수 있어도 소멸한 나라는 되찾을 수 없다. 국가의 3요소가 국민, 영토, 주권이다. 국민이 없는데 영토나 주권이 무슨 의미가 있나.”

    전 지구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축복이라고 했는데, 왜 한국의 저출산은 유독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가. 

    “출산율이 낮다는 사실 자체가 재앙이나 극복할 대상은 아니다. 1972년 로마클럽이 발표한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가져온 충격을 생각해 보라. 당시 세계 인구는 38억 명에 불과했는데 이대로 가면 식량 부족, 자원 고갈, 환경 파괴로 인류 문명은 100년 이내에 붕괴한다고 경고했다. 이미 80억 명을 돌파했다. 선진국부터 개도국까지 점차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지구 생태계가 건강 회복을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과 같다(2024년 OECD 평균 합계출산율 1.37명). 문제는 한국이다. 0.7명대는 너무 급격한 다이어트로 영양실조에 걸려 목숨을 잃을 만큼 위태로운 상태다. 나는 이것을 ‘죽음의 계곡’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극초저출산으로 한국은 노동력 부족, 연금 고갈, 지방 소멸, 세대 갈등 같은 위기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새로운 인구구조에 적응하기까지 극심한 불안정의 시기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죽음의 계곡’이다. 

    한국이 ‘죽음의 계곡’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있나. 

    “안타깝게도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합계출산율이 2.0명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게 1984년인데 위험신호를 보고도 10여 년 동안 계속 산아제한 정책을 유지할 만큼 우리 사회가 무지했다. 2006년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온갖 대책을 내놓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1990년대생)이 출산적령기에 접어들면 출산율이 반등할 거라는 낙관론도 존재했지만 현실적으로 출산율의 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대응책은 하나뿐이다. 부양비(扶養費)를 개선해야 한다.”

    일할 사람이 없다? 1명이 3명분 일하면 된다

    부양인구(14세 이하, 65세 이상 인구=분자)를 생산가능인구(15~64세=분모)로 나눈 것이 부양비인데 어떻게 개선한다는 건가. 

    “노인 부양 비율만 보면 2000년 이전에는 3명 이상이 일해서 1명을 부양하는 구조였다면 2030년이 지나면 1명이 일해서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노인들 부양하다 청년들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이렇게 힘든 세상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으니까 청년들이 안 낳는 쪽을 선택한다.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은 출산율을 높여서 분모를 키우겠다는 무모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0.7명대 출산율을 당장 1.5~2.0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출산율을 높이기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사이 한국은 죽음의 계곡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분자는 줄이고 분모를 늘리는 것이다. 65~74세 장년을 ‘영올드(young old)’, 75세 이상 노년을 ‘올드올드(old old)’라고 한다. 영올드가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분모는 늘고 분자가 줄어 부양비가 개선된다.”

    대기업 평균 퇴직 연령이 52세 전후라고 하는데 74세 영올드가 일할 기회가 있을까.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한 명이 한 명을 부양하는 사회가 되면 혼자서 3배로 일을 해야 한다. 단순 계산을 하면 하루 8시간 일하던 사람이 24시간 일하는 것인데 불가능하다. 대신 사람 한 명이 인공지능 로봇 2대와 함께 일하면 혼자서 세 사람 몫의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즉 생산성을 높이면 한 명이 세 명분의 일을 해서 실제로 한 명이 한 명을 부양할 수 있다.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축복이다. 문제는 속도다. 한국의 인구 감소, 특히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속도가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성 향상 속도보다 더 빠르다. 한 명이 세 명 몫의 일을 해내는 사회가 되기 전에 부양비 악화로 사회안전망이 붕괴될 수 있다.”

    인구정책을 AI 미래기획수석에 맡긴 것은 ‘신의 한 수’ 

    4차 산업혁명이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신선하다. 

    “이재명 대통령실에서 인구정책관을 AI미래기획수석실에 배치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영올드(장년)가 청년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AI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저출산 문제를 다룬 책 ‘청년이 없는 나라’를 펴내면서 마지막에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는 글을 추가했다. ‘출산율 제고’가 아니라 ‘부양비 개선’으로 정책목표를 바꾸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한 범국가적인 대혁신이기 때문이다.”

    고령자도 일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모작 사회’를 제안했다. 일모작과 이모작 어떤 차이인가.

    “고령사회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발달심리학에서 ‘유동지능과 결정지능’ 이론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이것이야말로 고령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싶더라. 심리학자들은 유동지능(fluid intelligence)을 물의 흐름, 결정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을 얼음의 결정에 비유한다. 즉 공간력·지각력·계산력·패션 감각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 유동지능이라면, 오랜 시간 쌓인 경험·지식·이해력·인내력·설득력을 바탕으로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힘이 결정지능이다. 

    유동지능은 30대를 기점으로 떨어지지만, 결정지능은 60대에 최고로 올라간다. 즉 유동지능이 최고조에 이르는 25~54세까지 과학기술이나 제조업과 같은 고도의 기술 적응력을 요하는 ‘일모작 직업’에 종사하고, 55~74세까지는 행정·서비스·교육 등 경험과 판단력이 중요한 ‘이모작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연령별 비교우위를 활용한 분업이야말로 50년 일해서 100세까지 잘 살아갈 수 있는 이모작 사회의 개념이다. 이모작 사회가 오면 우선 청년들이 행복해진다. 장년들도 일을 하니까 청년들의 부담이 확 줄어든다.” 

    2016년 ‘60세 정년’을 도입한 지 10년 만에 ‘65세 정년’으로 연장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년 연장은 필요한가. 

    “고령자를 기존 일자리에 더 오랜 기간 머물게 하는 정년 연장은 개악이다. 풍선효과로 청년실업은 심화하고 기업은 경쟁력을 잃는다. 고령 근로자 한 명이 더 일할 때 청년 일자리 0.4~1.5개가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 평균연령이 높아지면 평균 유동지능이 낮아지고 신기술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국가적으로 세대 갈등이 생기고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해 경제가 파탄 난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정년 연장이 아니라 세대 간 분업으로 이모작 직업에서 더 오래 일하는 것만이 대안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모작 사회의 성공 사례를 경험했다. 1960년대까지 대한민국 국민의 70%가 농민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농촌 젊은이들이 도시와 공단으로 떠나고 고령자들만 남은 농촌은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도시로 간 젊은이들이 트랙터, 비료 등 새로운 영농기술을 개발해서 보급한 덕분에 농업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농촌 청년들이 다 떠난 다음에 우리나라가 쌀을 자급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세대 간 분업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서울·경기와 떨어진 곳에 새 수도권 만들어야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부양비 외에 수도권 집중도를 지목한 이유는 뭔가. 

    “2023년 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연구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 육아휴직, 주거안정, 보육비 지원, 교육비 지원, 청년고용, 수도권 집중 완화 6가지를 꼽았는데, 우리나라의 도시인구 집중도가 현재 수준(1㎢당 431.9명)에서 OECD 평균 수준(95.3명)으로 낮아질 경우 출산율이 0.41명 증가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 해소만 해도 저출산 문제의 반 이상이 해결된다니 놀랍지 않나. 서울(0.55명), 부산(0.66명)이 전국 평균보다 출산율이 낮다. 특히 서울 강남 3구는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 이는 경쟁과 집중이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수도권 집중 해소는 지방을 살리는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 경제와 인구구조가 지속 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는 첫 번째 단추다.”

    2003년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바탕으로 혁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 이전을 감행했지만 인구 분산이나 출산율 제고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혁신도시는 ‘형평’을 앞세웠지만 결국은 ‘지방 소멸’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한정된 재정과 인프라,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서울·경기와 떨어진 곳에 새로운 수도권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칭균형’이다. 일단 대칭균형이 이뤄지면 ‘삼각균형’ ‘사각균형’을 이루는 것은 훨씬 쉽다. 제2의 수도권으로 발전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 바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이다. 북극항로 거점 항구의 후보지이기 때문이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만들어지면 수도권 1극 체제가 2극 체제가 되고 이것이 균형의 출발점이 된다. 이를 기반으로 호남권을 금융 거점으로 만들면 3극 체제가 되고, 영동권과 중부권으로 확산되면 5극 체제가 만들어져 자연스럽게 균형 발전이 이뤄진다.”

    행정수도 세종시를 중심으로 중부권을 집중 개발해 수도권과 대칭균형을 삼는 것은 어떤가. 

    “국가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목표로 한다면 수도권과 명확히 구분되는 경제성 있는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 또 세종시는 행정의 중심지이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가 아니다. 거국적인 가치 창출은 북극항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만약 부·울·경 거점 항구 유치와 행정수도 이전을 병행하면 수도권 집중 완화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부·울·경을 전략적 거점항구로

    제2수도권 최적지이자 유일한 후보지로 부·울·경을 꼽는 이유는 뭔가. 

    “북극항로 개통으로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는 크게 북서항로(캐나다 북부 해역)와 북동항로(러시아 북부 해역)로 나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북동항로다. 이 루트는 유럽에서 러시아 영해를 따라 베링해협을 거쳐 캄차카반도 남단을 지나 동해와 대한해협을 거치며 한반도 동남단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즉 부산, 울산, 경상도 지역은 북극항로가 개통될 경우 전략적 거점 항구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타고났다. 북동항로는 기존 남중국해와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보다 최대 40% 짧아져서 물류비 절감과 운송 시간 단축 효과가 크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조 원 규모의 물류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조 원 규모의 물류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유럽(로테르담)까지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는 약 2만㎞인데 북동항로는 1만5000㎞에 불과하다. 수에즈항로를 통해 컨테이너를 수송할 경우 약 30일이 소요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0~15일 단축할 수 있고, 운임비도 20~30% 절감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조 원 규모의 물류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단순히 거리만 단축되는 게 아니라 시간, 비용, 탄소배출 저감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이미 부산항이 있지 않나. 

    “부·울·경이 최적의 후보지인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중국과 거점항구 확보 경쟁에서 이길 순 없다. 거점항구란 단순히 정박시설이 아니다. 도시와 산업벨트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이는 종합 시스템이다. 첫 단계는 연료 공급이다. 정박한 대형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을 ‘벙커링’이라고 하는데 싱가포르항은 세계 최대 벙커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거점 항구가 되려면 LNG운반선이든 컨테이너 화물선이든 항로를 지나며 정박하고, 물류를 환적하고, 생산과 재가공에서 금융거래까지 밸류체인이 연결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앞으로는 청정연료를 써야 하기 때문에 수소와 암모니아도 필요하다. 

    나는 한반도 전체가 항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은 환적과 스마트 항만의 중심지로, 울산은 자동차 및 에너지 저장과 조선 정비 기지로, 포항은 철강과 벌크 화물 특화 항만으로, 경주는 해상 관광과 첨단 서비스산업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한려수도를 따라 한반도 남단에 말라카 해협의 금융 거점인 싱가포르 같은 금융 중심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부·울·경은 시작일 뿐이다.”

    중국·일본은 따라잡고, 베트남·태국은 따돌리는 1+3+5전략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과 2024년 북·러 밀착으로 한·러 관계가 악화됐는데 북극항로 개척이 가능한가. 

    “가까운 나라와는 싸우고 멀리 있는 나라와는 협력하는 근공원교(近攻遠交)의 원리로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은 늘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하는 ‘근공’만 있었지 ‘원교’가 없었다. 지정학적 저주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원교가 있어야 근공하는 국가를 견제 또는 협공할 수 있다. 러·우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는 유럽 중심 무역망과 금융질서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동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동진은 단순히 동방 시장 개척이 아니라 유럽 국가인 러시아가 북극항로를 축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로 거듭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자 동아시아 패권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동진하는 러시아가 한국, 일본, 중국 중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어느 나라를 선택할까. 중국과 일본 역시 러시아와 협력이 필요하지만 러시아의 선택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 될 것이다. 한국과 원교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 러시아의 선택이 한국일 수밖에 없나. 

    “러시아는 일본과 쿠릴열도 4개 섬을 놓고 영토분쟁이 진행 중이고, 중국과는 청나라가 빼앗긴 연해주와 차항출해(此港出海·외국 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하는 전략) 동해 진출을 두고 충돌이 불가피하다. 반면 한국은 러시아와 어떤 역사적 앙금도 없고 국경분쟁도 없다. 남북한 인구를 다 합쳐도 러시아 인구의 절반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안보적 위협도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러시아는 에너지를 수출한다. 한국은 기술과 산업력을 갖춘 ‘포식 경제’이고 러시아는 1차 산업 중심의 ‘피식 경제’다. 러시아와의 원교는 한국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여기에 미국은 ‘태평양시대 선언(Pivot to Aisa)’과 대중국 견제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원교 대상이 생긴다.”

    원교를 바탕으로 한·미·러 합종이 이뤄지나. 

    “1+3+5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 1군 국가는 전방위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권국이다. 현재로는 미국밖에 없다. 2군 국가는 패권에 도전하는 강대국으로 중국, 일본, EU가 있다. 한국은 3군 국가다. 높은 산업 역량을 갖췄지만 자원이나 지정학적 불리함 등으로 강대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강소국이다. 4군 국가는 베트남·태국처럼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개도국이고, 5군 국가는 러시아·남미·중동 등 자원은 풍부하나 제조업 기만이 약한 나라다. 3군 국가는 앞선 2군 국가를 추격하며 쫓아오는 4군 국가를 따돌리는 ‘근공’ 전략과 원천기술 등 산업 지배력을 가진 1군 국가와 자원 및 에너지를 보유한 5군 국가와 보완 협력을 강화하는 ‘원교’ 전략을 동시에 써야 한다.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과 중국은 근공 대상이고, 미국과 러시아는 보완 관계에 있는 원교 파트너가 된다. 대한민국은 단독으로 생존과 발전이 어렵기 때문에 1+3+5 전략은 한국에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자 필수 전략이다.”

    대한민국이 동북아 4강 패권 질서의 조정자가 되는 법

    한·미·러 합종으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한국이 처한 5대 위기부터 살펴보자. 첫째, 남중국해를 둘러싼 해양 분쟁의 심화로 수출입 물류망의 차단 위험. 둘째,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셋째, 북한 핵. 넷째, 사드 배치 이후 일방적인 중국의 보복. 다섯째, 한미일 동맹을 위협하는 일본 우익의 반한 행태. 그러나 한·미·러 합종이 이뤄지면, 수에즈항로가 막혔을 경우 북극항로라는 대체 수단을 갖게 된다. 한국이 북극항로와 거점 항구를 보유하게 되면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엄청나게 커진다. 이로써 미군 철수나 감축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도 더는 한국을 일방적으로 대할 수 없게 한다. 

    같은 이유로 북핵 협상에서 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경제적 ‘당근’을 보유한 한국을 북·미 협상 테이블에 초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미·러 합종이 이뤄지면 한중일 연횡은 따라온다. 대한민국이 명실공히 동북아 4강(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간 패권 질서의 조정자로 자리매김할 기회인 것이다. 과거 중국에서 세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라고 했다면, 이제부터는 한국이 동북아 4강의 조정자가 되는 천하사각지계(天下四脚之計)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북극항로를 국정과제로 발표했다. 사전에 교감이 있었나. 

    “10여 년 전부터 북극항로 개척을 주장해 왔다. 역대 어느 정부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북극항로 개척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만났는데, 내가 쓴 책과 동영상 강의를 봤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부산항을 북극항로 전진기지로 만드는 공약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현재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앞으로 거점 항구 구축에서 산업통상부, 한·미·러 합종을 위한 외교부·기획재정부 등 범부처적 역할 분담이 필요할 것이다. 물류는 해수부가 할 수 있지만 산업·외교·안보 등 거국적인 천하사각지계는 대통령실의 진두지휘가 필요한 일이다.”

    한·미·러 합종 절호의 기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최근 펴낸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에서 북극항로 개통과 한·미·러 합종은 한민족이 맞이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유효한가. 

    “그렇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한국과 러시아가 협력할 기회는 러·우 전쟁 종전 내지 휴전 이후 1년 이내에 결정될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전후 대불황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1년 이내에 석유를 장기 계약으로 다 풀 것이다. 잠재적 적국인 중국이나 일본한테는 팔기 싫은데 한국이 안 사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에겐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한편 미국이 지금은 일본이나 한국을 동맹으로서 대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중국의 패권 도전 의지가 꺾이고 나면 중국을 한국보다 더 중요한 국가로 대우할 것이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추진하는 등 당분간 한국은 한·미·러 합종을 추진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러시아와 합종할 시한은 앞으로 1~2년, 미국과의 합종은 트럼프 임기 종료를 전후해 5년, 길어야 10년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다시 1000년 동안 침략만 받던 저주받은 역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후손들에게 정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인들이 꼭 기억해야 할 비스마르크의 명언이 있다. ‘행운의 여신이 다가왔을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정치인의 임무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경제학 석사, 미국 콜로라도 스쿨오브마인스에서 자원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정보과학기술수석보좌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내건 ‘과학기술중심사회’는 오늘날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의미였고,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켜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국가의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나누어 담당케 하는 투 톱 체제를 추진했다.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를 통합하고 이공계박사 50명을 특채해 관련 부처에 사무관으로 전진 배치하는 파격도 시도했다. 그 후폭풍으로 대통령 수석보좌관 신분으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는 일도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1주년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통령실을 떠났지만 그후 20여 년간 입산수도하듯 ‘국가 발전 원리’를 연구 완성해 이제 하산하듯 다시 속세로 돌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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