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 ‘알짜’ 그린바이오 부문 매각 착수
매각 대금으로 글로벌 식품사 초대형 M&A 전망
장남 이선호 유럽 사업 박차는 성과 만들기 작업?
오른팔 허민회 지주사 복귀… “그만한 이유 있을 것”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 사옥 전경. [CJ제일제당]
‘세계 1위’ 그린바이오 접는 이유
금융투자업계는 CJ그룹이 그린바이오 사업 매각 대금으로 ‘식품 본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CJ제일제당이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이를 진두지휘하는 이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허 대표는 승계 핵심인 CJ올리브영의 상장 혹은 합병 작업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11~12월 식품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단연 CJ그룹의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 매각 추진이다.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은 기업간거래(B2B)가 주력이기 때문에 식품 사업 대비 대중 인지도는 낮다. 그러나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 가운데 주력인 그린바이오는 세계 1위로 꼽힐 만큼 규모가 크다. 실제 2023년 CJ제일제당의 바이오·FNT(Food&Nutrition Tech) 사업 부문 매출액은 4조1343억 원으로 전체(대한통운 제외) 매출액의 23%, 영업이익은 2513억 원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CJ그룹의 철학은 ‘온리원(ONLY ONE)’으로 요약된다. 이는 모든 면에서 최초·최고·차별화를 달성한다는 의미다. 그룹의 뿌리인 CJ제일제당의 모태 사업이고, 세계 1위인 그린바이오를 매각한다는 것은 그룹 철학에 비춰봤을 때 의아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린바이오는 사료첨가제에 쓰이는 아미노산(라이신·트립토판 등)이 주 품목이기 때문에 세계 축산 업황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간 업황이 좋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지만 2023년부터 축산 시장 회복이 지연되면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세계 1위지만 업황에 따라 들쑥날쑥한 사업은 그만큼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린바이오는 이 회장이 제시한 4대 성장 엔진과도 다소 동떨어져 있다. 이 회장은 2021년 중기 비전을 발표하며 △문화(Culture) △플랫폼(Platform) △웰니스(Wellness·건강)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을 4대 성장엔진으로 정하고, 이들 사업군의 성장을 위해 적극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서 바이오 사업은 웰니스와 지속가능성에 포함되는데, 의료 분야의 ‘레드바이오’와 친환경 소재 등을 생산하는 ‘화이트바이오’가 해당한다.
따라서 이 회장은 ‘그린바이오는 CJ그룹이 성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더는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그는 2024년 11월 20일 그룹 CEO 경영회의에서 “글로벌 성장의 기회가 열려 있는 만큼 단기 실적뿐 아니라 미래 성장성에 대해서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경쟁력에 기반한 성장’을 화두로 던졌다.
이재현 적극적 M&A로 성장한 CJ
사실 CJ그룹의 역사는 인수합병(M&A)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 회장이 굵직한 M&A로 그룹 외형을 확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식품산업을 기반으로 외식, 문화, 물류, 바이오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 회장은 1993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해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세운 미국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SKG에 3억 달러를 출자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다. 같은 해 6월 CJ제일제당은 자체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설립했다. 이후 그는 삼구쇼핑·온미디어를 인수하고, 2011년 5개 콘텐츠 자회사를 합쳐 CJ E&M을 설립했다. 2018년 CJ오쇼핑은 CJ E&M을 합병하며 CJ ENM이 출범했다.
식품 사업에서 보인 행보도 비슷했다. 2005년 미국 식품유통법인 애니천을 인수했다. 이후 2006년에는 해찬들과 하선정종합식품을 인수하고, 2007년 기업분할을 통해 CJ제일제당을 출범시켰다.
2024년 11월 20일 서울 중구 CJ인재원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그룹 CEO 경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CJ그룹]
2019년 이 회장은 그룹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빅딜(big deal)’을 성사시켰다. 미국 대형 냉동식품업체 슈완스가 이 회장의 선택이었다. 인수 금액은 약 2조 원에 달했다. 슈완스 인수로 CJ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이 회장의 강한 일념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슈완스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폭발적 매출 성장을 이뤘고, CJ제일제당의 미국 내 식품 사업 매출을 5조 원대로 성장시키는 ‘효자’로 거듭났다.
이 회장은 회사를 사는 것뿐 아니라 적기에 매물을 내놓아 사업을 정리하는 것에도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가장 성공적 매각 사례로 꼽히는 것은 한국콜마에 매각한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다. 이 회장은 2018년 CJ헬스케어를 1조3000억 원에 팔았다. CJ헬스케어가 국내 10위권 제약사이지만 주요 계열사들이 업계 1위인 것과 비교하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CJ헬스케어를 매각한 대금은 슈완스 인수에 투입됐다. 2019년엔 CJ헬로비전과 투썸플레이스를 팔아 총 1조1800억 원을 확보했다.
유럽 시장 성장 = 이선호 승계 정당성 확보
CJ그룹의 바이오 사업 부문 매각 이후 시나리오는 △식품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M&A △부진한 계열사 살리기 두 가지로 갈린다. 이 가운데 전자(前者)에 투자할 것이 유력하다고 점쳐진다. 이는 앞서 슈완스 사례와 같이 ‘글로벌 K푸드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슈완스 인수 당시인 2019년 CJ제일제당의 글로벌 매출은 약 3조1540억 원이었지만 4년이 지난 2023년에는 5조3862억 원으로 2019년보다 70.6% 증가했다.
특히 최근 CJ제일제당이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유럽인데, 이 시장에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기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 2024년 5월 CJ제일제당은 식품 제조 사업 헝가리 법인과 비비고 제품을 판매·유통·홍보하는 프랑스 법인을 설립했다. 11월엔 헝가리 부다페스트 근교에 1000억 원을 들여 신공장을 세울 계획을 밝혔다. 헝가리 신공장은 2026년 하반기부터 ‘비비고 만두’를 생산해 유럽 시장에 판매할 예정으로, 추후 ‘비비고 치킨’ 생산 라인도 증설할 계획이다. 신공장 건설을 통해 신성장 전략 지역으로 낙점한 유럽의 사업을 대형화하겠단 복안이다.
CJ제일제당의 유럽·호주 매출은 △2021년 551억 원 △2022년 773억 원 △2023년 1065억 원으로 2년 새 2배가량 성장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현시점이 사업을 확장할 적기로 여겨진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CJ그룹]
이에 대해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업부 매각이 성사된다면, 전사 실적 안정성과 재무 안정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다만 매각대금이 초대형 M&A의 실탄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식품 사업에서 신규 M&A를 모색한다면, K-푸드 성장성이 높은 유럽 시장 내 유통망과 미국 시장에서 확장 가능한 제품력 확보 여부가 시너지 측면에서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돌아온 ‘해결사’ 허민회의 역할
지난해 CJ그룹에 있었던 또 하나의 변화는 그룹 내 재무통으로 꼽히는 허민회 CJ CGV 대표를 지주사로 불러들인 일이다. 허 대표는 이번 인사에서 CJ 경영지원대표로 선임돼 김홍기 대표와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 김 대표가 내부 살림을 맡고, 허 대표가 그룹 전반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허 대표는 그룹 내에서도 재무 감각과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난 인물이다. 그룹과 계열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2013년 이 회장의 부재로 CJ그룹이 위기에 빠지자 CJ경영총괄 부사장을 맡아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CJ ENM 출범 당시 첫 대표를 맡으며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CJ CGV가 위기를 맞은 2020년 12월에는 ‘소방수’로 긴급 투입돼 위기를 무마한 뒤 2023년 2분기 흑자 전환을 이끌기도 했다. 재계에서 허 대표가 CJ올리브영과 관련한 업무에 관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CJ 측은 “허 대표는 그룹 전반의 대외적인 업무만 맡을 뿐 CJ올리브영 문제나 승계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앞으로 활동을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CJ올리브영은 2021년 미래에셋증권과 모건스탠리를 상장 주관사로 선정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22년 8월 증시가 얼어붙으면서 제대로 된 몸값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CJ올리브영은 CJ그룹 승계의 마지막 퍼즐이나 다름없다. 2023년 말 기준 CJ올리브영의 최대주주는 CJ㈜로 지분 51.15%를 보유 중이며 코리아에이치앤비홀딩스가 22.56%로 2대 주주다. 이어 이선호 실장이 11.04%,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이 4.21%의 지분을 갖고 있다. CJ올리브영 주주 구성에서 오너 일가의 지분이 높은 편이라 승계 재원으로 활용하기 적당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에 CJ그룹이 CJ올리브영을 상장시키지 않고 지주사와 합병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합병을 통해 CJ올리브영 주주들이 통합 법인 주식을 배분받게 되면 이 실장의 지주사 지분율도 자연스레 올라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