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獨 폴크스바겐發 지진 맞은 유럽 자동차업계

[조은아의 유로프리즘] 中 전기차 침공에 속수무책 무너지는 유럽차

  •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입력2024-10-3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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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크스바겐 연간 50만 대도 못 팔아

    • 中 전기차 가격, 유럽 전기차의 48%에 불과

    •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금지’ 조치도 문제

    • 신차 개발 기간도 중국 2배 걸리는 상황

    9월 4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공장 홀에서 직원들이 업무 회의 시작 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9월 4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공장 홀에서 직원들이 업무 회의 시작 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폴크스바겐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독일 자동차기업 폴크스바겐그룹 본사가 있는 독일 북서부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에 최근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37년 창사 이후 87년 만에 처음으로 자국 공장 폐쇄를 검토 중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폴크스바겐이 지역경제를 떠받쳐 준 만큼 공장 폐쇄의 여파는 자연재해인 지진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미쳤다는 얘기다.

    독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리버 블루메 폴크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9월 2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자동차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있다”며 공장 폐쇄와 함께 구조조정 구상까지 밝혔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 잘츠기터 등에 공장 6개를 둔 폴크스바겐그룹은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을 각각 1곳씩 폐쇄하는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029년까지 모든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고용 안정 협약’을 종료하겠다”고도 발표했다. 폴크스바겐그룹 직원은 세계에 약 68만 명이 고용돼 있는데, 이 가운데 43.7%인 약 30만 명이 독일에서 일한다. 볼프스부르크를 중심으로 독일 직원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지에서는 폴크스바겐 공장 직원들조차 이런 위기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터여서 충격이 크다고 한다. 독일어로 ‘국민차’를 의미하는 폴크스바겐은 회사 이름대로 독일을 대표하는 명차이자, 유럽 최대 자동차기업이다. 유럽의 자존심인 자동차 명가(名家) 폴크스바겐이 어쩌다 갑자기 이런 위기를 맞았을까.

    ‘디젤게이트’ 9년 만에 다시 위기

    독일 볼프스부르크 폴크스바겐그룹 건물 앞에 세워진 폴크스바겐 로고. [AP뉴시스]

    독일 볼프스부르크 폴크스바겐그룹 건물 앞에 세워진 폴크스바겐 로고. [AP뉴시스]

    폴크스바겐은 ‘비틀’ ‘골프’ ‘파사트’ 등 3대 모델로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다. 1937년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나치의 무역연합인 ‘독일노동전선’이 설립했다. 당시 고소득층은 고급 승용차를 몰았지만 중산층 시민은 오토바이 외에 승용차를 보유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폴크스바겐은 새로운 시장을 키우기 위해 ‘국민 자동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모델이 실용적인 모델 비틀이다.

    1945년 폴크스바겐은 서독을 점령한 연합국 지시로 세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제조 역량을 키운 폴크스바겐은 전후 독일 경제의 중심이 됐다. 1960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성장의 동력이 됐다. 이제 폴크스바겐그룹은 폴크스바겐 외에도 아우디, 스코다 등 대중적 브랜드는 물론 포르셰, 람보르니기, 부가티 등 고급 브랜드도 아우르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폴크스바겐에도 큰 고비가 있었다. 이른바 ‘디젤게이트’ 스캔들이 터졌을 때다. 디젤게이트란 2015년 9월 폴크스바겐이 약 1070만 대의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사건이다. 차량을 환경 기준치에 맞추려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주행 시험 때만 작동하도록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것.

    이 사건으로 폴크스바겐은 약 300억 유로(44조 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배상금 지불에 따라 재정난이 이어졌다. ‘기술력과 신뢰성이 높다’는 평판도 크게 훼손됐다. 그래도 디젤게이트의 위기는 지나갔다. 디젤게이트 발생 2~3년 만에 주가는 과거 수준을 회복했다. 2017년 폴크스바겐그룹 자동차 판매 총량은 1074만1500대로 전년 대비 4.3% 늘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나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판매량을 앞섰을 정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역사상 최대 위기에도 폴크스바겐 재무제표에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제 폴크스바겐 위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디젤게이트 9년 만에 다시 맞은 이번 시련은 좀 달라 보인다. 폴크스바겐 내부 요인은 물론 팍팍해진 외부 환경까지 겹쳤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아르노 안틀리츠 폴크스바겐그룹 재무 책임자는 최근 공장 폐쇄 가능성이 나오면서 “우리 회사는 연간 약 50만 대의 차량도 못 팔고 있다”며 “이는 공장 두 곳에서 생산하는 규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우리의 제품 (품질)이나 저조한 성과와 관련이 없다”며 “시장이 더는 존재하질 않는다”고 했다. 폴크스바겐이 손을 쓸 수 없이 자동차 수요 자체가 말라버렸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직원 구조조정도 불가피한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판매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불필요한 직원 규모가 약 2만 명이라고 추산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독일 공장 폐쇄 소식이 나온 이후에도 저조한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올해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 전망치를 5.6%로 하향 조정했다. 당초 7%로 전망했지만 2분기 실적 발표 때 6.5%로 낮춘 뒤 최근 들어 5.6%로 다시 내린 것이다. 파업 가능성이 있어 실적 전망은 더 어둡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자동차 산별 노동조합인 IG메탈과 임금협상을 시작했는데 노조는 경영난 속에서도 ‘임금 인상 7%’를 요구하고 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2월 파업하겠다”고도 경고했다.

    국가 간판 기업이 휘청거리자 독일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독일 경제성장률은 21년 만에 2년 연속 마이너스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NG독일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수석 경제학자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독일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이자 최대 산업 고용주인 폴크스바겐이 공장 폐쇄와 강제 해고를 더는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독일 산업이 얼마나 깊은 위기에 빠져 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럽 생산량의 10%, 해외 이전될 듯”

    2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91회 제네바 국제 모터쇼(GIMS)에서 마이클 슈가 BYD 유럽 상무이사가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 ‘뉴 BYD Seal U DM-i’를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2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91회 제네바 국제 모터쇼(GIMS)에서 마이클 슈가 BYD 유럽 상무이사가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 ‘뉴 BYD Seal U DM-i’를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다른 유럽 자동차기업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9월 들어 유럽 증시에선 폴크스바겐은 물론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스텔란티스, 르노 등 유럽 6대 자동차 브랜드의 주가가 줄줄이 추락해 눈길을 끌었다. 현지에선 주가 하락세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자동차업계의 긴 침체를 예고하는 ‘서막’이란 평가가 나온다.

    공장 폐쇄 조짐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DW)는 최근 “프랑스 자동차기업 르노와 이탈리아의 스텔란티스도 판매 가능한 규모보다 훨씬 많은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며 “폴크스바겐만 잠정적 공장 폐쇄에 직면한 게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BMW, 메르세데스, 스텔란티스, 르노, 폴크스바겐 등 대형 자동차 제조사의 공장 3곳 중 1곳의 활용도가 낮았다. 일부 공장에서는 생산 여력의 절반도 생산되질 않았다. 특히 이탈리아 미라피오리에 있는 스텔란티스 공장에선 전기차 ‘피아트 500e’가 생산되는데, 올해 상반기(1~6월) 생산량이 60% 이상 감소했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유럽의 속내는 매우 심란하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유럽 자동차산업은 고통스럽게 각성해야 한다”며 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뼈저리게 반성할 것을 주문했다. 유럽의 걱정이 깊어지는 건 자동차산업의 몰락이 유럽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산업 매출은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에선 자동차 제조업에 260만 명이 고용돼 있는데 이는 EU 전체 제조업의 8.5%에 해당한다. 직·간접적 고용을 합치면 자동차산업이 유럽인 1400만 명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9월 초 EU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경쟁력 보고서’에서 “새로운 경쟁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유럽의) 자동차산업 부문은 더 빠른 속도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5년 안에 EU 현지 생산량의 10% 이상이 해외로 이전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중국 저가 공세에 완패한 유럽 전기차

    폴크스바겐의 순수 전기 SUV ID.4. [뉴스1]

    폴크스바겐의 순수 전기 SUV ID.4. [뉴스1]

    유럽 자동차산업이 급격히 위축되는 주된 요인으로는 중국산 전기차의 저가 공세가 꼽힌다. 드라기 전 총리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가장 저렴했던 중국산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8% 저렴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해 가장 저렴했던 유럽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92%나 비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산 전기차는 올 6월 기준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이 11%로, 역대 최고치였다. 반면 유럽산 전기차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중국산에 빠르게 밀리고 있다. 상하이의 컨설팅 기업 오토모빌리티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외국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올해 1~7월 37%로 역대 최저였다. 2020년 64%에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독일 자동차의 점유율 하락이 두드러졌다. 4년 전 25%에서 최근 15% 미만으로 줄었다.

    유럽산 전기차의 ‘가격 프리미엄’은 전기차 수요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다. 유로뉴스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분석을 인용해 “유럽에서 전기차 성장이 둔화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라며 “높은 구매 가격과 상당한 감가상각으로 수요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선 EU의 ‘그린 딜 정책’이 유럽 자동차의 경쟁력을 흔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린 딜 정책은 2035년부터 유럽 내 내연기관 차량 운행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기업들이 충분한 준비 없이 강제적으로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DW는 “점점 더 엄격해지는 차량 배출 기준 등 그린 딜 정책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시장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고 분석했다.

    유럽 자동차기업들이 ‘그린 딜’을 좇느라 중국산에 밀린다는 인식에 따라 이런 정책을 중국 등 다른 국가에도 확산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독일 민간 싱크탱크인 Ifo 경제연구소의 한스베르너 신 명예소장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모든 자동차기업에 동등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기후 클럽’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미국 등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들을 설득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내용이다.

    중국산의 저가 공습, 그린 딜 정책 등 외부 요인보다 더 근본적 원인은 유럽 자동차기업의 전략 실패에 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유럽 기업들은 그간 고가 프리미엄 모델에만 매달렸다는 얘기다. 그사이 중국 기업들은 전기차를 대중화했고,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대량생산에 나섰다. 르몽드는 “중국 기업들은 차량을 약 18개월 만에 개발할 수 있는 반면, 유럽은 그보다 갑절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벌어진 격차에 한탄했다.

    기업의 전략 실패는 고질적 관료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폴크스바겐의 다니엘라 카발로 노사협의회 의장은 9월 4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료주의가 치열한 경쟁에 적합한 제품 및 기술 개발을 방해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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