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함께 시 당국은 1년에 한 차례 ‘뷰티 콘테스트(Beauty Contest)’를 열어 가장 아름다운 동네(마을)를 선정함으로써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유도한다고 한다. 어느 동네가 가장 아름답게 꽃과 나무를 가꾸고 있는지, 주택의 색깔과 자연환경은 얼마나 조화돼 있는지 등을 살펴보아 시상을 하는 제도다. 여기서 1등으로 뽑힌 동네에는 시 당국이 관광코스를 만들어주는 등 적극 지원해주고, 더불어 이런 동네는 집 값도 이전보다 오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동네 환경 미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크라이스트처치가 정원도시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한적한 시골 도시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구 35만명의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자 남섬을 대표하는 곳이다. 뉴질랜드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크라이스트처치에 정착한 강영민씨는 크라이스트처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뉴질랜드의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볼 때 크라이스트처치는 크기로는 충분할 만큼 크고, 작기로는 적당히 작다는 게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인 오클랜드와 비교해보면 도시 규모는 작지만 그곳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마음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 도시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능들이 다 갖춰져 있어서 다른 중소규모 도시보다 생활이 매우 편리하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민감한 교육 분야를 살펴보자. 이곳 교민들은 초·중·고교 교육 수준이 미국의 웬만한 곳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공립학교의 교육비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대학의 경우 캔터베리주가 운영하는 제3차 교육기관(대학)이 5개 있고, 사립대학도 8개나 있다. 이중 캔터베리 주립대는 세계적인 명문으로 이름난 곳으로 상당한 실력이 있어야 입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이곳저곳에 갖춰져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아트센터. 1975년까지 100여 년 동안 캔터베리대학 건물로 쓰이던, 고딕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인 아트센터는 이곳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열린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다.
이곳에서는 각종 극장과 카페테리아, 영화관 등이 있는가 하면 도기, 목기, 판화, 피혁 등 각종 수공예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의 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전시장 공간을 돌아보면서 문화와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마음에 들면 직접 구입할 수도 있다. 또 토·일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리의 예술가들이 펼치는 즉흥극 등 각종 이벤트 공연을 볼 수 있다.
문화행사뿐만 아니다. 교민 송지복씨는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만 나가면 낚시와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바다와, 환상적인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산과, 골프와 승마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들판이 고루 갖춰져 있어서 자연속에 동화되는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한다. 고즈넉한 해변에 나가면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전복을 마음대로 따서 먹을 수 있는데, 물개가 바로 옆에 다가와 사람이 전복 따는 것을 거꾸로 구경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 지켜주는 노후의 안식처
뉴질랜드 사람들은 레포츠 활동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아침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목요일 새벽 6시, 크라이스트처치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는 레저센터를 찾아가 보았다. 시청에서 직영하는 이 레저센터는 풀장과 사우나장, 그리고 각종 헬스기구를 갖추고 있는데 50여 명의 사람들이 벌써 나와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한국 교민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서울 강남의 고급 헬스클럽 못지않은 시설과 규모를 자랑하는 이 레저센터는 멥버십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센터내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1년 회원비(성인 기준)가 뉴질랜드달러로 290달러(우리나라 15만원 정도). 물론 학생이나 어린이는 그 절반 이하의 수준이다. 시내 한복판에서도 시내를 이곳저곳 누비면서 흘러가는 에이번 강변을 따라 새벽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는 점도 인상깊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여성 한인회장 정태경씨는 이곳의 생활환경이 반듯하고 깨끗하다 보니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범죄와 살인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교통사고사가 언론의 주요 뉴스로 등장할 정도로 이곳 사람들은 법과 규칙을 스스로 잘 지켜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에서는 밤 늦게까지 여성들이 혼자 활보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또 크라이스트처치뿐만 아니라 뉴질랜드라는 나라 자체가 매우 여성적인 특징이 강해 여성들이 살기에는 더욱 좋은 곳이라고 한다. 뉴질랜드에 여성 파워가 세다는 것은 국가의 요직을 여성들이 싹쓸이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현재 뉴질랜드는 헌법상 국가수반인 실비아 카트라이트 총독을 비롯해 헬렌 클라크 총리, 제니 시플리 제1야당 당수(전 총리)가 모두 여성이고 장관급 각료 19명 중 8명도 여성이다. 이외에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과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 시장, 그리고 뉴질랜드 최대 기업인 텔레콤 뉴질랜드의 회장도 모두 여성이라는 것. 전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마조네스 국가’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크라이스트처치 역시 다른 뉴질랜드 도시와 비슷하게 여성적이고, 정적인 도시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양적 에너지가 왕성한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답답하다는 느낌도 들 정도다. 이와 관련해 정태경 한인회장의 말.
“이곳에서는 2차산업이 발달돼 있지 않다보니 생활 자체가 튀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런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것은 혈기 왕성한 젊은 사람들이 일할 만한 직업을 많이 창출해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곳 젊은층들도 일자리를 찾아서 호주나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도 이곳에 정착하러 왔다가 다시 떠나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일할 만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 ‘키위’(뉴질랜드 백인들의 별칭)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환경을 오염시키는 2차산업 육성보다는 후손에 물려줄 환경 보존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크라이스트처치는 정원도시답게 개척과 성공이라는 양적인 이미지보다는 삶의 질과 여유라는 음적인 이미지가 더 걸맞은 듯싶다. 그리고 사회에서 은퇴한 후 노후생활을 안락하게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지상에서 몇 남지 않은 낙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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