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다 대선 과정에서 북핵에 맞서기 위해 한국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고 발언한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8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서 핵무장론자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예비역 군 장성들은 물론 남경필 원유철 정몽준 김문수 등 현실정치인 사이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올해 7월 4일과 28일 잇따라 ICBM 실험발사에 성공하면서 핵무장론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1991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이 발표된 이후 지속됐던 ‘핵의 진공상태’가 사실상 26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7월 15일자 조선일보 칼럼 ‘남북한 동시 핵무장만이 출구인가’가 대표적이다. 이 칼럼은 이렇게 끝맺는다. “한반도 비핵화에 기초한 평화가 최선이지만 북한의 핵무장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출구는 단 하나뿐이다. 이제 진정한 한반도 평화 체제는 남북의 동시 핵무장 위에서만 가능해졌다.” 제목은 의문형이지만 본문은 남한의 핵무장이 불가피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사설을 통해 핵무장론을 지지하고 나섰고 주류 언론에서도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와 함께 핵무장 잠재력 확보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는 논조가 늘고 있다. ‘신동아’는 지난해 3월호에서 ‘핵무장론 불붙다’는 특집기사로 이를 심층보도한 데 이어 이를 둘러싼 외교안보 전문가들 의견을 다시 점검해봤다.
“일본은 3일 안에 핵무장 가능”
핵무장론의 기술적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크게 둘이다. 2015년 4월 작성된 미국의 퍼거슨 보고서와 2016년 1월 한국 언론에 보도된 서균렬 서울대 교수의 분석이다. 퍼거슨 보고서는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비확산그룹에 제출한 비공개 보고서 ‘한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획득하고 배치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한국은 원자력발전소 24기를 운영하는 세계 5위권의 원자핵강국이다. 원전 가동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소량 포함된 사용 후 핵연료, 즉 폐연료봉이 나온다. 특히 중수로 방식인 월성 1~4호기에서 경수로 방식인 다른 원전에 비해 플루토늄 함량이 높은 폐연료봉이 나온다. 퍼거슨 보고서는 이렇게 비축된 폐연료봉이 2014년 말 현재 26t에 달하는데 이를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전환할 경우 4330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또 서균렬 교수는 “대통령이 결단만 내리면 18개월 안에 핵무장을 끝낼 수 있다”며 “1조 원가량의 예산을 들이면 18개월 뒤부터는 핵무기 양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시간표는 최근 더 단축됐다. 서 교수는 지난해 9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생존을 위한 핵무장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원폭 제작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면 플루토늄탄 완성에 6개월, 북한이 실험한 수소증강폭탄 완성에 추가로 6개월, 전술핵 배치와 핵실험까지 포함해 다시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실험 없이 원폭 1개를 제조하는 데 드는 시간을 6개월까지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월성 중수로에 보관 중인 플루토늄 추출과 재처리에 3개월, 테니스공 크기의 기폭장치 제조에 추가 2개월, 플루토늄탄 최종 제조에 다시 1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과거엔 플루토늄 재처리공장 건설에 6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봤지만 기술 발달로 사무실 크기의 소규모 공장에서도 재처리가 가능해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건부 핵무장론

2016년 4차 핵실험 직후 핵무장론을 가장 먼저 펼친 사람은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실장이다. 그는 4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졌음을 인정하고 북핵 위협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북핵을 무력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한국의 핵무장뿐이라고 밝혔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26년간 한국에서 금기시됐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현재의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의미하고 이는 미국과 동맹 파기 및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또 다른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 소장은 한국의 핵 개발은 북핵이란 긴박한 위협에 대한 방어적 차원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제재에 양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NPT 제10조 1항은 “각 당사국은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며 이 경우 3개월 전 통고만으로 탈퇴가 가능하게 했다. 이 조항에 의거해 탈퇴할 경우 국제사회의 양해를 얻을 수 있으며 설사 제재가 결정되더라도 수위가 높거나 기간이 길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1998년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 미국의 경제제재 기간이 3년에 불과했으며 2005년에는 인도와 핵 협력 협정을 체결하며 이를 승인해준 사례도 들었다.
그는 특히 한국의 핵무장이 ‘고비용 저효용의 국방정책’을 종식하고 ‘저비용 고효용의 국방정책’으로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무기 구입 예산이 2014년 기준으로 9조 원이나 됐는데 핵 개발은 1년 6개월간 1조 원의 예산으로 가능하다. 핵무장을 하게 되면 해외 무기 구입비용이 현저하게 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기구입뿐 아니라 60만 수준의 한국군 병력 감축도 가능해져 40조 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을 절감해 복지와 교육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 실장의 핵무장론은 ‘조건부 핵무장론’이기도 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도 핵을 포기하겠다’는 전제조건 아래 핵무장 추진이다. 이는 국제사회 특히 한반도 주변 4강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을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중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동시에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소모적인 신경전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핵 위기가 불가역적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판단하는 외교안보 전문가는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6·25전쟁 이후 한국 안보정책의 핵이었던 한미동맹이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우려하며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학자들도 있다. 통일연구원장 출신의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와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이 대표적이다.
핵무장 잠재력 키워야
두 사람은 모두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비판적이었다. 김태우 교수는 1990년부터 국제규범상 허용되는 범위 내의 핵무장 잠재력을 함양해야 한다는 ‘평화적 핵주권론’을 펼쳤다. 핵무장은 하지 않더라도 NPT가 금하지 않는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 기술까지 확보해 한국 원자력산업의 선진화도 기하면서 원자탄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HEU)과 플루토늄(PU239)을 생산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었다.하지만 1991년 초 노태우 정부는 농축·재처리 포기정책을 내놓았고 그해 11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발표했다. 미국의 비확산전략에 일방적으로 끌려가 스스로 핵주권을 포기하고 한반도를 ‘핵 진공 상태’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북한의 핵 개발 의지에 불을 지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전성훈 연구원은 이로써 초래된 현재의 상황을 ‘북한에 의한 핵 독점(Nuclear Monopoly)시대’라고 규정했다.
김태우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곧바로 자체 핵무장에 돌입할 경우 “한미동맹의 와해, 국제제재, 중국과 러시아의 압박 세 가지 모두를 초래할 것”이라고 봤다. 트럼프의 취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동맹국의 핵 확산에 반대하는 반확산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일본 등 다른 동맹국의 핵무장을 막기 어려워진다는 전략적 딜레마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미동맹이 소멸되고 국제제재가 가해지면 한국은 이중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없이 북한을 맞상대해야 하는 데다 한미동맹에 기초해 번영을 누리던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에 사실상 한·중·일 삼각동맹과 북·중·러 삼각동맹이 맞서고 있는 형국에서 북한보다 월등한 핵전력을 갖출 수 있는 한국의 핵무장을 중국과 러시아가 과연 용인할 것인지라는 문제 제기도 더해진다. “중국도 북핵을 못마땅하고 불편해한다는 시각은 진실의 일면만 본 것입니다. 은연중에 북핵을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중국이 자신들의 턱밑에 핵미사일을 갖다 대는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할 거란 생각이 순진한 거죠.”
김 교수는 이에 따라 먼저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반입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의 핵잠재력을 저해하는 한미원자력협력협정과 미사일 가이드라인의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핵무장의 명분도 축적하는 동시에 필요할 경우 최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한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식적 핵실험이나 가시적 핵 보유 발표 없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이스라엘식 불확실전략’을 택할 것을 권유했다. 김 교수는 “한반도의 엄중한 안보 상황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탈핵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탈핵을 말하면서 핵잠수함을 도입한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쓴소리도 내놨다.
지난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전성훈 연구원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150개가량의 예비 전술핵의 일부를 다시 들여와 재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전 연구원은 8월 7일 발표한 ‘북한의 핵독점 시대에 우리의 대응: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에서 미국의 예비 전술핵 150개 중 일부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전술핵 여유분 150개”
핵무기는 전략핵과 전술핵으로 나뉜다. 전략핵이란 ICBM, 폭격기, 잠수함을 이용해 장거리 공격이 가능하고 파괴력이 수백 kt~mt에 달하는 핵탄두를 의미한다. 전술핵은 지대지미사일과 150mm 자주포로 발사할 수 있는 지상 발사 소형 핵탄두와 핵지뢰, 핵배낭 등을 말한다. 토마호크 미사일에 탑재해 발사하는 260기의 해군용 전술핵도 있다. 이들 전술핵탄두의 파괴력은 수십 kt을 넘지 않는다.그동안 우리 학계에선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후 이들 전술핵 대부분은 폐기 또는 도태된 것으로 파악해왔다. 게다가 미국 서부에서 발사하면 1시간 만에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미니트맨Ⅲ도 있고 오키나와나 괌에서 20~40분 만에 날아올 수 있는 핵전폭기가 있는 마당에 굳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할 군사적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 연구원은 미국이 지상 발사와 해상 발사 핵탄두를 대부분 폐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군용 전술핵탄두는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유럽에 배치된 150개의 전술핵탄두가 대부분 이런 공군용이며 미국 본토에도 150개의 예비 전술핵탄두를 갖추고 있다는 것. 게다가 미국이 2015년 7월 핵탄두 실험에 성공한 세계 최초의 정밀유도 핵탄두(B61-12)는 최소형이 3kt급이어서 얼마든지 전술핵으로 활용가능하다. F16전투기와 F35전투기에 각각 두 발씩 장착할 수 있는 이 핵탄두의 파괴력은 4.5~7.5 kt이다. 미국은 3~50kt까지 조절 가능한 B61-12를 2020년까지 400~480개를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은 1991년 오히려 전쟁 위협이 큰 한반도에서 전술핵탄두를 모두 철수하면서 상대적으로 전쟁 가능성이 낮은 서유럽에는 지금도 150개의 전술핵탄두를 배치하고 있다. 지상과 해상 전술핵 폐기를 주도했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역맞춤형 억지체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지역별 위협의 특성을 고려해 군사적 대응을 펼쳐가겠다는 말이다. 전 연구원은 “이 논리에 따르면 사실상 핵 위협이 사라진 서유럽에서 아직도 전술핵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상시적 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에서는 전략자산의 일시적 전개와 같은 무력시위만 펼치고 있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한반도에서 공포와 균형을 안정되게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의 전술핵탄두를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ICBM이 미국 동부까지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레드 라인’을 넘었네, 아니네 하는데 그건 미국인이나 할 만한 한가한 소리”라며 “한반도 전역이 북핵 위협에 노출됐다는 위기의식이 있다면 지금 탈핵이니 원전 가동 중지니 하는 말을 꺼낼 때가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