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국방부 정보본부(DIA)가 있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펜타곤 건물.
이 탈북 관료는 2003년 중국을 거쳐 서울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대외·대남 공작을 담당하는 ‘3호청사’ 부서 출신인 이 관료는 통상의 탈북자들과는 달리 지금도 국정원 대북파트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정보가치’를 확인한 국정원이 4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그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 국군정보사령부 등 다른 정보당국 관계자들도 이 탈북 관료와 꾸준히 접촉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DIA 측과 이 탈북 관료는 서울 시내 호텔 등에서 장시간의 인터뷰를 가졌다. 첫 만남에는 국정원 직원이 동석했지만 이후 두 차례의 만남에서는 빠졌다. 대신 두 번째 만남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서울 주한미군사령부에 배속된 DIA 서울지국 정보 분석관들이 일부 참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극렬 집에 걸린 사진 봤다”
DIA가 이 탈북 관료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가 중국에 있을 때부터 “북한과 알카에다 사이의 연계에 관한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3호청사에 근무하는 동안 대남·해외공작 조직을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었으며 평양 고위층과도 개인적인 관계가 깊다고 주장하는 이 탈북 관료는 조선노동당 작전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테러조직들과 깊은 공조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다. 출생부터 나이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신상이 공개된 바 없는 이 인물에 대해, 문제의 탈북 관료는 그가 1980년대 중반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에 있는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수학하며 게릴라 전술 등을 익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한국인 인질사태의 주역이었던 탈레반을 현재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94년 칸다하르에서 학생무장세력을 규합한 것이 지금까지 공개된 첫 번째 이력이다.
이 탈북 관료가 국정원 안전가옥에서 한 진술에 따르면, 평양은 1970년대부터 중동 등 제3세계 저항세력과 인적·물적인 교류를 맺어왔다. 이때 형성된 인맥을 바탕으로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북한에 유학했다는 것.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차지한 1990년대 후반에는 서로 군사대표단을 교환하고 북한에서 AK-47 자동소총을 러시아제로 위조 제작해 이들 국가에 대량 공급할 정도로 가까웠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1970년대 들어 소련과 중국이 미국과의 데탕트에 나서자 김일성 주석 등 북한의 지도부는 이를 비난하며 ‘제3세계·비동맹국가와의 반제반미(反帝反美) 연대’를 내걸고 외교역량을 집중한 바 있다. 북한이 중동 국가들과 본격적으로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1973년에 정식 수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