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엔론 루프홀’은 어떻게 세계를 흔들었나

  • 가와하라 가즈오│에너지전략분석가 uy8k-kwhr@asahi-net.or.jp│ 이준규│번역│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

    입력2009-02-03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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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봄과 여름 내내 한국은 기름값 문제로 지독하게 시달렸다. 한 해 동안 전세계 시민들의 삶을 쥐락펴락했던 유가 급등락이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등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 때문이라는 분석을 정리한 글을 일본의 에너지 전문가 가와하라 가즈오씨가‘신동아’에 보내왔다. 투기세력을 견제하지 못한 미국 내의 제도적 한계와 국제 원유시장의 이면을 고발하는 가즈오씨는 일본석유연맹과 국제에너지포럼(IEF)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원유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해왔다. ‘편집자’
    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1월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트레이더들이 분주하게 석유 선물거래 주문을 내고 있다.

    세계 경제사(史)는 2008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많은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원유가격이 미증유의 이상현상을 보이며 세계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해’가 될 듯하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원유가격은 미국산 서부텍사스 원유 선물을 기준으로 연초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더니 2008년 7월3일에는 급기야 배럴당 145.29달러라는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원유는 7월 중순 돌연 하락하기 시작해 8월18일에는 112.87달러가 되었고, 12월초에 40달러가 되었다. 시장에 유가가 25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것이 이 무렵이다.

    비정상적인 파동도 여러 차례 감지됐다. 1983년 NYMEX가 개장한 이래 하루 가격하락폭이 5달러를 넘은 경우는 모두 13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1차례가 올 한 해 동안 일어난 것이다. 거꾸로 하루 가격상승폭이 5달러를 넘어선 11차례는 모두 올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수많은 국가의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난 것일까. 겉으로 보이는 것은 수요 공급 원리라는 기본공식뿐이다. 그러나 무대 뒤편에서는 국제적인 투기자본의 움직임과 대규모 투자은행의 행보, 산유국과 소비국 사이에 벌어진 각축, 사우디 왕가(王家)와 미국 부시 가문의 관계 같은 게임이 숨어 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이유를 놓치는 한 원유가격의 요동 현상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이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008년 한 해 동안 벌어진 급격한 파동의 싹은 이미 2004년부터 엿보였다. 7월까지의 가격폭등 상황을 ‘제3차 석유파동’이라고 부르는 이도 적지 않지만, 필자는 이러한 변동은 지정학적 요인과 투기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이미 2004년과 2006년에도 원유 공급량이 수요량을 상회했음에도 가격상승이 지속된 바 있다. ‘조용한 석유위기’라고 부를 만한 이 시기는 이를테면 2008년의 전조였던 셈이다.



    흔히 석유자원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혹은 공급량이 지나치게 빡빡해 유가가 상승했다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으로는 2008년의 비정상적인 고유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필자도 세계 석유수급과 원유가격 문제에 대해 주로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초원리를 근거로 설명해왔고, 또 실제로 그런 요인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선물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작은 시그널이 크게 증폭되어 수요공급의 기초원리를 넘어서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일정한 범위 내에 머무르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유가변동은 그 허용범위를 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석유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에 유가가 급등했다는 통설을 들여다보자. 이들 국가의 석유수요 증가는 이전부터 예측돼온 것으로 전혀 새로운 흐름이 아니다. 굳이 수요 부분에서 요인을 찾자면 1990년대 후반 이후 고도 성장을 거듭한 미국 경제의 석유수요에서 찾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석유매장량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유전이 확인되면서 잠재 매장량은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으로는 최근 벌어진 석유가격 급등과 급락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2001년 20달러 이하로 떨어졌던 원유 가격이 2004년부터 급등하기 시작한 첫 번째 시발점은 지정학적 요인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여기에 더해 원유 선물시장은 국제적 투기자본과 대규모 투자은행이 암약하는 장소가 되었고, 이는 급격한 석유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가 원유가격이 150달러까지 상승한 2008년의 파동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석유 선물시장에서 자행되는 과도한 투기를 아무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은 필자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부시 가문과 사우디의 인연

    2008년 6월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각료회의는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부당하고 불공정한 고유가’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급 국제회의를 6월22일 리야드에서 개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각료회의를 주재한 압둘라 국왕 본인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었다.

    압둘라 국왕은 이 각료회의에서“최근의 가격급등은 시장의 수요공급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각료회의 성명의 문안 자체는 신중했지만, 결론은 원유가격 급등의 배경에 투기세력이 있으며 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각료회의 직전인 6월3일 술탄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다. 흔히 친(親)유럽으로 분류되는 수데이리 가문의 술탄 왕세자와 아랍 지향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인 압둘라 국왕이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투기세력에 대한 사우디 측의 의혹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사우디는 결국 증산결정을 감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증산 결정이 나오기까지 일련의 과정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08년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사우디를 방문한 바 있는데, 두 번 다 공교롭게도 원유가 급등이 이슈가 되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방문은 양국의 친선관계뿐 아니라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부시 대통령 가문의 사우디에 대한 친근감과 신뢰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아버지 부시는 원유가가 폭락했던 1986년 부통령으로 사우디를 방문해 감산을 요청했고, 사우디가 이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원유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한 바 있다).

    두 차례 정상회담의 주제는 다방면에 걸쳐 있었지만 원유 증산 요청에 상당한 무게가 실려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이는 사우디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문이 아니었고, 언론에서는 사우디가 부시 대통령의 증산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1월 방문 즈음에는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불쾌감을 표하면서 “미국을 위해 증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사우디가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도 증산을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OPEC 총회 역시 증산 결의는 내리지 않았다. 이 무렵까지만 해도 OPEC와 사우디는 시장에 석유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의 2차 방문을 전후해 변화가 찾아왔다. 증산을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와 달리 사우디는 부시 대통령 방문 직전인 5월10일부터 1일 30만배럴을 증산해 하루 945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발표는 실제 석유통계로도 확인된다. 말하자면 이 시기 사우디는 증산에 대해 OPEC이 그간 견지하고 있던 봉인을 손수 뜯어버린 셈이 된다.

    강경파와 온건파

    5월 사우디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리야드 교외 자나토리아 목장에 있는 국왕 사저에서 양국 간 협력을 다짐했다. 2008년이 양국 수교 75주년임을 기념하는 각서에는 미국이 사우디의 핵개발을 전면적으로 지원한다는 악속이 담겨있었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6월6일 원유가가 역사상 최대의 상승폭을 기록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지다에서 각국 정상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필요하면 얼마든지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이른바 ‘무제한 증산’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는 워낙 석유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공급은 절대 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그간의 통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들이민 것이었다. 즉 당시의 고유가는 결코 정상적인 수요공급 원리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역시 비정상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이러한 강경한 관점은 OPEC 입장에서 보자면 용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OPEC 의장을 맡고 있던 차킵 켈릴 알제리 석유광업장관은 “의장이 아닌 알제리 장관 자격으로 참석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위중하다 보니 강경파 국가들 역시 논의 및 대책 마련을 끝내 거부하지는 않았고, OPEC 주요 국가들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논의를 벌이기 시작했다.

    고유가에 고민하던 미국과 영국은 즉시 이에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뉘앙스는 달랐다. 고든 브라운 영국 수상은 즉각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 등의 월스트리트 투기자본에 대한 규탄이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결국 부시 대통령의 참석이 어려워지면서 회의는 장관급 회담에 가까워졌고, 미국측에서는 역시 투기자본의 한 축인 골드만삭스 출신의 헨리 폴슨 재무장관 대신 새뮤얼 보드먼 에너지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사우디는 월스트리트의 투기행위를 규탄한다는 취지에서 JP모건 등 대규모 투자은행의 CEO에게도 출석을 요청했지만 이들이 국제적인 비판의 무대에 모습을 나타낼 리는 없었다. 그 결과 지다 회의는 그로부터 두 달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에너지포럼(IEF) 장관급 회담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 시기 사우디는 1일 50만배럴 규모의 증산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앞서 실행한 30만배럴 증산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실질적으로는 20만배럴이 증산된 것이었다. 제한된 증산은 그 효과도 미미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후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긴급대응기관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비관적인 중기 석유수급 전망을 발표함에 따라 2008년 7월초 유가는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게 된다.

    ‘엔론 루프홀’과 버락 오바마

    미국의 경우는 어땠을까. 부시 행정부는 투기가 원유가격 급등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미 상하원의 관련 위원회들은 2008년 5월부터 7월 사이에 유가 급등을 주제로 앞다투어 공청회를 열었다(그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당선자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소속된 위원회도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나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미 정부기관 관료들은 투기자본의 개입을 부인했으나, 다수의 민간 전문가와 학자들은 투기자본의 악영향을 증언하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들 공청회에서 투기세력 원유시장 개입의 원인으로 주로 지목된 문제점은 이른바 ‘엔론 루프홀(Enron Loophole)’ 조항이었다. 엔론 루프홀이란 대형투자자들이 에너지 선물상품을 장외에서 전자거래하는 경우 CFTC의 감시 규제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령(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의 관련조항을 가리킨다. 회계부정 스캔들을 일으킨 엔론사의 로비로 만들어진 이 조항 탓에 CFTC의 규제가 유명무실해져 대형 투자자들과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장외에서 원유 선물거래를 급격히 늘렸고, 이러한 흐름이 방아쇠가 되어 최근 수년간의 유가급등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 의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법안 제출도 줄줄이 이어졌다. 작게는 선물거래를 위한 위탁 보증금을 인상하는 방안에서부터 크게는 투기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방안까지 규제 내용도 폭넓다. 그러나 자유주의 시장국가를 표방하는 미국 입장에서 투기의 전면금지는 쉽지 않은 노릇이므로 법안 역시 ‘지나친 투기를 규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편 연말 무렵에는 엔론 루프홀에 이어 ‘런던 루프홀’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NYMEX에서의 선물거래가 엄격한 규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상당수 투기자본과 대형 투자자들이 런던에 기반을 두고 있는 ICE(국제선물거래소)로 무대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FSA(영국금융청)의 규제는 CFTC에 비해 덜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문제는 ICE가 미국 내에 단말기를 두고 NYMEX와 마찬가지로 서부 텍사스 원유의 선물거래를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의회에서는 이러한 경로의 ICE 거래가 규제당국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원유시장의 투기세력 움직임이 공론화되면서 이 문제는 마침 열기를 더해가던 미국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8년 6월22일 오바마 후보는 민주당 진영의 투기억제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선거 캠페인에 수용해 쟁점화했다.

    이 같은 흐름을 통해 투기억제 분위기가 가시화함에 따라 마침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사우디의 증산과 더불어 원유가격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투기세력에 대한 미국 국내정치의 견제 움직임이 원유가 인하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 일련의 상황은, 역설적으로 석유를 실제로 사용하는 해당 사업자가 아닌 외부세력, 즉 투기세력이나 대형 투자자의 움직임과 원유가격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위기는 교훈을 남긴다. 2008년 한 해 동안 벌어진 원유가격 급등락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석유의 수요공급 문제에 대해 정확하고 신속한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것이다. IEF는 이미 2000년에 이 문제에 주목해 관련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IEF가 주요국 정상급 회합과 에너지 관련 각료회의 등을 통해 추진했던 JODI(공동 석유데이터 구상)은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상태다.

    한 국제기구 애널리스트의 ‘변신’

    세계 전체의 통계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리하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과학적·경제적 요인 외에도 까다로운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어 있다. 국제 석유수급 통계를 다루는 각종 컨설턴트, 연구기관, 국제기구들은 이를 종합해 통합 데이터로 만드는 시도를 일종의 기득권 침해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협력을 꺼리는 것이다. 이렇듯 원유 수요공급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가 부재한 상황이다 보니 시장은 투기세력의 움직임에 쉽게 흔들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에너지부·에너지정보청(EIA) 같은 정부기관이나 IEA·OPEC 같은 국제기구의 월례 보고서는 시장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밖에서 보기에는 객관적일 것 같은 이들 전망치는 실제로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도록 의도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 전망치의 발표와 달리 석유 공급이 무리 없이 진행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가 겪은 한 사례는 이러한 의심을 더욱 심화시킨다. 2008년 6월의 석유시장 상황과 관련해 OPEC조차 유가급등에 투기세력의 영향력이 개입돼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IEA는 이에 대해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이 무렵 필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IEA의 보고서 작성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내 “일류 애널리스트인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투기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는 “투기의 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 회의를 거치기 전에 사전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답신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후 그가 책임자가 되어 작성한 중기 전망 보고서는 역시 유가 급등의 원인을 주로 수급 문제에 초점을 두어 설명했다. 그리고는 곧이어 파리 IEA 본부를 떠나 9월부터는 대표적인 투기세력으로 꼽을 수 있는 뉴욕 JP모건에서 상품조사팀 리더로 새 둥지를 틀었다.

    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고유가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2008년 6월22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에서 열린 36개 주요 석유 생산 및 소비국 각료급 회의. 가운데 앉은 이가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고 그의 왼쪽에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오른쪽에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가 국제기구의 영향력 높은 전망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유가 급등을 수급의 기본원리 문제로만 설명하면서 투기세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일단을 알 수 있을 듯했다.

    다시 몰려오는 먹구름

    유가는 하락했지만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는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컸지만 OPEC의 감산 이후인 2007년부터는 재고에 여유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유가격 하락을 지켜보던 사우디가 2008년 8월과 9월 다시 감산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언제까지 얼마나 감산할지에 대한 결정이 오로지 사우디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가격목표와 OPEC 내에서의 줄다리기 게임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OPEC이 11월18일에 임시총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한 2008년 10월9일은 원유가격이 90달러 이하로 떨어진 시점이었다. 이는 OPEC이 내부적으로 목표유가를 80달러선으로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케 한다. 10월16일 70달러 선이 무너지자 11월18일로 예정됐던 OPEC 임시총회를 10월24일로 앞당겼다.

    문제의 10월24일 총회에서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OPEC의 강경파 국가들은 최대 200만배럴의 대폭 감산을 외쳤고, 이에 대해 온건파인 사우디는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임시총회는 그 중간인 150만배럴 감산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유가 하락이 지속되자 강경파 국가들은 12월7일 총회나 혹은 그 이전에 다시 임시총회를 열어서라도 추가 감산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유생산 국가들이 통상 10월부터 3월까지 재고물량을 처리해왔음을 감안할 때 섣부른 추가감산이 올 봄 국제유가와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유가란 애매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이다. 수요공급 통계조차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보니 적정가격이 얼마인지에 대해서 나라마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카타르 같은 생산국은 인구도 적고 1인당 국

    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河原一夫

    945년 일본 도쿄 출생

    와세다대 정경대학 졸업

    일본석유연맹 해외조사담당 근무

    국제에너지포럼(IEF) 사무국 에너지국장 역임, 국제석유통계 담당 근무

    2006년 5월부터 국제 에너지문제 분석가로 저술·강연활동 중


    민소득도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유가가 높을수록 수입이 늘어 좋다는 탐욕스러운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란 등 비교적 큰 나라들이 무심결에 내비치고 있는 목표가격 역시 근거가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OPEC 의장 같은 주요 인물들도 끊임없이 입장이나 말을 바꾼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탐욕스러움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연 자국에도 도움이 되는 것인지, OPEC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냉정히 전략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암울한 2009년 세계경제 전망을 생각하면 특히 온건파인 사우디아라비아에 기대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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