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폐쇄적 리그 갇힌 尹, 실패한 文의 길 가려는가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미국 땅에서 한국 민주주의 회복을 기대하며

  •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입력2023-03-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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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자유주의·포퓰리즘·정치 양극화

    • 尹 시대에 여전한 집단·진영주의

    • 前 정권 수사, 적폐 칼날 아닌가

    • 문빠, 개딸, 태극기부대 공통점

    •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존

    • 진영 간 권력쟁취 위한 전쟁터

    • ‘스트롱맨 리더십’ 리턴하는 尹

    • ‘검찰 슈퍼 네트워크’의 폐쇄성

    [Gettyimage]

    [Gettyimage]

    1월 초, 같은 대학에 재직하는 동료이자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와 ‘문화일보’ 신년 대담을 했다. 대담에서 그는 “2022년은 한마디로 매우 좋은 해였다”라고 회고했다.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그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이에 대해 후쿠야마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권위주의로 향하던 국제정치 흐름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반등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시작됐는데 러시아는 완전히 수렁에 빠졌으며, 중국은 백지시위를 경험했고, 이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더 나아가 같은 해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세력이 패배했다며 “그래서 난 2022년을 15년 이상 지속하던 민주주의 쇠퇴가 마침내 바닥을 친 해라고 돌아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바닥을 쳤다는 데는 나도 동의했다. 하지만 회복 여부에 대해선 난 조금 더 신중한 입장이다. 설사 후쿠야마 교수의 말대로 바닥을 쳤다 해도 바로 민주주의 회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지지부진한 정세가 지속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역사적 경험을 봐도 그렇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이 죽었다고 나치즘, 스탈리니즘, 마오이즘이 바로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후에도 리틀 히틀러(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리틀 스탈린(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리틀 마오(캄보디아의 폴 포트) 가 세계 곳곳에서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낙선했다고 트럼피즘이 사라지거나 리틀 트럼프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예단하긴 이르다. 민주주의 회복은 피나는 노력과 많은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일이다.

    또 다른 적폐청산의 칼날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지난해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역류 현상은 일단 멈췄다. 그러나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짖으며 들어선 윤석열 정부의 1년 성적표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반(反)다원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는 가운데, 여야는 일종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있을까?

    필자가 처음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거론한 건 ‘신동아’ 2020년 5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였다.(‘문재인 5年, 소나기에 흠뻑 젖은 한국 민주주의’) 문재인 정부 임기가 3년을 지나던 시점이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선악의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상대편을 거악으로 몰고, 서민의 투사를 자처하면서 반(反)기득권의 논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포퓰리즘을 활용하며, 법원을 정치화하고 삼권분립을 흔드는 등 ‘형식적 법치’의 미명 아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적 정신과 규범을 무시한 채 절차적 정당성만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없으며, 자칫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랑비에 옷 젖듯’ 무너질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특히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투쟁했던 이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서글픈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호소했다.

    이러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아 지난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Korean Democracy in Crisis)’를 출간했다. 한국과 미국, 진보와 보수 진영을 포함해 여러 학자의 글을 담았다. 이 책에서는 힘겹게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기에 처하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비(非)자유주의·포퓰리즘·정치적 양극화를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다가오는 만큼 이 세 가지 기준에 근거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선 비자유주의의 측면에서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정치와 사회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가르고 적폐청산을 외치며 국수주의적 반일 죽창가를 부르던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를 의식하듯 윤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수없이 자유를 강조했고 자유주의 가치 연대를 천명했다. 그러나 국민은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나 가치 연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실감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공허한 수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집단·진영주의는 여전히 자유주의를 압도하고 있다. 개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조차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견 내기를 주저한다. 공무원의 정책적 판단에 대한 ‘직권남용’ 처벌도 지속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권력의 절제(forbearance)는 요원하다. 지난 정부 인사에 대한 현 정부의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비리와 부패척결을 넘어서 또 다른 적폐청산의 칼날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포퓰리스트와 지지자 사이의 ‘직거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다음 날인 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민주당이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다음 날인 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민주당이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두 번째는 포퓰리즘 문제다. 21세기 포퓰리즘은 과거의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과 달리, 반(反)엘리트주의와 반(反)다원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기득권을 공격하는 행태가 반엘리트주의라면, 다른 세력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행태는 반다원주의다. 반엘리트주의는 다시 정당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반다원주의는 상대 정치 세력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다. 여기에 정보사회의 진전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포퓰리스트 리더와 지지자들 간의 직접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직거래주의’ 또한 21세기 포퓰리즘의 주요 특징이다. 문빠, 개딸, 태극기부대 등이 직거래주의적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득권에 대한 이념 공세는 줄었지만, 노조 등 ‘신(新)기득권’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성을 안고 있다. 노조의 비리나 ‘귀족화’ 등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보수 지지층에 어필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포퓰리즘적 리더십도 문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보인 모습이나,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모습은 다원주의와 거리가 멀다. 소통과 협치를 중시하는 민주적 리더십보다는 ‘스트롱맨’의 리더십에 가깝다. 스트롱맨은 대화와 조정의 정치력보다 결단과 추진의 실행력을 중시한다. 이러한 면에서 두 지도자는 유사한 리더십을 공유하며 일종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양극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심화된 정치적 양극화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불황과 불평등의 심화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개인 간, 집단 간 상호 불신이 커지고 흑백논리가 득세하는 모양새다. 구동존이(求同存異)나 ‘Agree to disagree(견해 차이를 인정)’라는 다원적 규범은 사라지고 오직 내편과 네 편만 존재할 뿐이다. 젠더 갈라치기,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정치는 민심의 수렴이 아닌 진영 간 권력 쟁취를 위한 전쟁터로 전환되고 있다.

    승자독식의 막강한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관용과 공존, 타협의 지대는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지난 대선의 성패가 0.73%포인트라는 간발의 차로 갈린 점은 양극화된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는 사라졌다. 정부·여당은 사법 절차로 제1 야당을 압박하고, 다수당인 민주당은 특검을 주장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로 맞서고 있다.

    법안은 계류된 채 정치와 민생은 실종됐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22년 말 17개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은 1만3198건(상임위당 평균 776.4건)에 달했다. 2021년 8957건(평균 526.9건) 대비 약 1.5배다. 2020년 말 4023건(평균 236.6건)에 비해서는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권교체로 약화됐기보다는 외려 심화됐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정치적 양극화라는 세 가지 기준에 비춰볼 때 민주주의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정권교체로 더 이상의 후퇴는 일단 멈췄지만 지지부진한 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더욱 커지고 있다. 필자는 신동아 2022년 5월호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에 더불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시대정신을 논한 바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적셔가던 가랑비가 대선과 권력 이양 과정에서 거친 소나기로 변한 데 대한 우려와 함께, 새 정부가 민주주의를 악성 호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돼가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기상도를 냉정히 평가해보면, 일단 소나기는 멈췄지만 여전히 흐린 상태이고 언제 맑은 날씨를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스트롱맨의 시대’ 정말 끝났나

    그간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글로벌 흐름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후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현상이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도 여전히 큰 화두와 고민거리다. 국제 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의 비중은 1970년대에 시작된 ‘제3의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1990년대 중반엔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2006년 62%로 정점을 찍은 후 15년 연속 감소해 지금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마치 1930~40년대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는 듯했다. 더구나 당시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던 미국과 영국조차 민주주의에 있어 역류 현상을 보여 그 우려는 더 컸다.

    2월 21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우리는 서방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전쟁의 책임을 서방에 돌렸다. [모스크바=AP 뉴시스]

    2월 21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우리는 서방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전쟁의 책임을 서방에 돌렸다. [모스크바=AP 뉴시스]

    앞서 소개한 후쿠야마 교수의 주장처럼 민주주의 후퇴가 바닥을 쳤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푸틴은 위기에 빠졌고, 시진핑 역시 고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은 다소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러시아가 낙승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이 전쟁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리전쟁으로 확산했다.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자칫 이 전쟁이 푸틴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시진핑 역시 3연임에 성공하며 권력을 더욱 강화했지만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불황 등으로 국민의 불만은 쌓여가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권위주의 리더의 힘이 대체로 약화됐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3월 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최대 보수주의 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이것(2024년 대선)은 최후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AP 뉴시스]

    3월 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최대 보수주의 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이것(2024년 대선)은 최후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AP 뉴시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인 기드온 라흐만(Gideon Rachman)의 ‘스트롱맨의 시대(The Age of Strongman)’에 등장한 인물 중 미국의 트럼프, 영국의 보리스 존슨,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등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지진을 맞은 튀르키예의 레제프 에르도안도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라흐만은 2000년 이후 등장한 스트롱맨들이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전반적으로 이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힘을 쓰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미국 유권자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민주주의가 회복의 물결 즉 ‘제4의 민주화 물결(the fourth wave of democratization)’로 들어섰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세계 곳곳에 비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의 잔재가 남아 있고, 인플레이션과 불평등의 심화 등 사회구조적 여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정치적 양극화도 여전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최근 발표한 전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 지수’(0-10)를 보면, 2021년 5.28에서 2022년 5.29로 거의 변화가 없다. 미국만 해도 트럼프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는 2024년 대선의 유력 주자다. 트럼피즘도 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가 낙선한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한 공화당 후보들이 대거 의회에 입성했다.

    하버드대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랏(Daniel Ziblatt)이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지적했듯이 21세기 민주주의 후퇴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군사독재나 공산주의 혁명 같은 급진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법적 절차로 당선된 지도자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후퇴와 회복이 글로벌한 현상인 만큼 민주주의 회복 과정에도 국제공조가 매우 필요하다.

    한국 민주주의가 반등하려면

    한국도 글로벌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의미 있게 반등하려면 법치주의를 넘어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절실하다. 정치제도와 문화뿐 아니라 새로운 리더십의 정착도 시급하다. 사회구조적 변화는 물론 국제공조도 필요하다.

    우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치제도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른바 ‘1987년 체제’가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는 점에 대부분이 동의하면서도, 정작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단임제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한 헌법 개정과 함께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위성정당 폐지 등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국회의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무기명 투표제도 폐지해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여야가 협상을 통해 만들겠지만, 제도 개혁을 통해 승자독식과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구동존이의 자세로 여야가 소통하고 협치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상대를 악마화해선 결코 안 된다. 다원화된 민주 사회에서 다른 견해가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는 한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젠더’ 갈라치기와 같은 정체성의 정치나 ‘개딸’에 의존하는 팬덤 정치는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정당 문화도 마찬가지다. 여당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나온 소위 ‘친윤(친윤석열)’ 논란은 다원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다. 야당의 경우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부결표를 던지지 않은 의원들을 겨냥해 이른바 ‘수박 색출하기’ 같은 협박이 나타났는데, 이는 민주적인 정치 문화 형성에 걸림돌이다.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개혁도 시급하다. 특히 경제 회복과 중산층 복원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팬데믹, 미·중갈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경제불황은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정치적 양극화의 자양분을 제공한 것이다. 사회경제적 개혁 없는 정치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노조 문제도 정치 이슈가 아닌 노동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유민주주의에 걸맞은 정치적 리더십의 확립이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특징은 카리스마, 가부장적 권위, 수직적 위계질서, 강력한 유대감과 일사불란 등이었다. 이에 비해 자유민주주의적 리더십에는 소통과 수평적 관계, 다양성의 존중과 권력의 절제 등이 중요하다. 민주적 규범과 가치를 존중하는 리더십을 통해 스트롱맨의 리더십을 뛰어넘어야만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조셉 나이(Joseph Nye) 하버드대 교수는 국제 관계에서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소프트 파워 또는 연성 권력은 돈이나 권력 등을 통한 강요 대신 매력을 통해 설득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는 책 ‘리드하는 파워(The Powers to Lead)’에서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하드 파워 기술 외에 세 가지의 소프트 파워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자가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과 정치 특유의 감각(political acumen)이라면 후자는 소통, 비전, 정서적 공감 능력(emotional intelligence)이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이 임기 초에 보인 리더십은 소프트 파워 기술 면에서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공정과 상식, 자유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했다. 대통령실 이전과 출근길 문답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그 나름대로 국민들과의 정서적 공감과 소통을 추구했다.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자유민주주의 리더십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시도였다.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순신 검증 실패는 필연적 산물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점차 ‘스트롱맨 리더십’으로 리턴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이나 야당과 소통하고 정서적 공감을 구하려는 노력은 줄었다. 정치 특유의 감각보다는 사법적 잣대가 우선시 되고 있다. 누차 강조하지만 자유민주주의에서 ‘법과 원칙’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법치주의라는 미명하에 민주주의가 훼손됐던 것을 명백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민주적 규범 및 가치에 대한 존중과 수호가 없을 때 자유민주주의는 성립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과 권력 절제가 절실하다. 특히 검찰 등 공권력은 신중히 사용해야 하며, 인내를 갖고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권으로 얽힌 슈퍼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했던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 실패했다. 견제와 균형도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가 ‘검찰 슈퍼 네크워크’로 얽힌 그들만의 폐쇄적 리그에 갇혀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순신 변호사를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검증 실패는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폐쇄적 리그의 필연적 산물이다. 윤 대통령은 불의에 맞서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며 정치에 뛰어든 초심으로 돌아가 민주적 규범과 정신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고 ‘검사 윤석열’을 한국의 최고 지도자로 선택한 국민에 대한 보답이다.

    민주주의 회복이 글로벌한 과제인 만큼 국제적 협력도 중요하다. 과거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와 싸울 때도 영국과 미국을 축으로 한 자유 진영의 연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국제공조의 중요성을 인식해 ‘민주주의 정상회의(Democracy Summit)’를 제안했다. 특히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3월 말에 한국을 비롯해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미국, 잠비아에서 동시에 열린다.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회의를 자유주의 가치 연대의 비전과 전략을 좀 더 구체화하고, 한국이 민주주의 회복의 기수가 될 것임을 천명하는 중요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민간 차원의 국제포럼을 제안해 볼 수 있다. 미국엔 의회에서 지원하는 민주주의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이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소에서도 한국고등교육재단과 공동으로 한미 양국 전문가들이 모여 민주주의 회복을 논의하는 연례 ‘지속가능 민주주의 회의(Sustainable Democracy Roundtable)’(가칭)의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젊은 학자들과 학생들도 포함해 차세대 민주 리더를 육성하려 한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한국이 민주주의 국제포럼의 설립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민간 차원의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를 실현해 나가는 리더가 되길 기대해 본다.

    제로섬 사회 넘어 넥스트 코리아로

    신동아 연재를 마치며 오래전 대학원 재학 시절 읽었던 ‘제로섬 사회’라는 책이 생각났다. 레스터 서로(Lester Thurow) 메사추세츠 공과대(MIT)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제로섬 사회는 사회적 이득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사회를 뜻한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반드시 그만큼 손실을 보는 사람이 있다. 1980년에 출간된 이 책은 1970년대 성장이 멈춘 미국 사회가 에너지와 환경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특정 계층 간의 이해 충돌이 불가피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제로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식의 새로운 개혁이나 변화도 어렵다는 점이다. 누군가 이익을 보는 만큼 손실을 보는 사람이 존재할 뿐 아니라, 이들은 각각 이익집단화 돼 있어 결사반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사회 갈등이 증폭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든 현실도 이런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제로섬 사회를 사회적 이득의 총합인 ‘포지티브섬 사회’로 만드는 힘은 정치적 리더십에 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제로섬 싸움을 이젠 멈춰야 한다. ‘독재의 후예’이니 ‘종북 세력’이니 말하면서 상대를 악마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각 나름대로의 공과가 있음을 인정하고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포지티브 섬을 만들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최고조에 이른 남북갈등에 이어 남남갈등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는데 언제까지 갈등과 반목을 지속할 것인가.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 미·중갈등과 북한의 위협까지 마주한 현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 제로섬 사회가 아닌 포지티브섬 사회를 만드는 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 고(故)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주장대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의 길을 가야 한다.

    지난 1년간 신동아 연재를 통해 ‘넥스트 코리아(Next Korea)’로 가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고 제시해보려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이 어떻게 하면 한층 성숙된 다음 단계로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담으려 했다. 해외에 있기 때문에 한국 내의 나무는 잘 보지 못하더라도 숲은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밖에서 보기에도 전쟁, 분단,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단기간에 걸쳐 세계 10위권 국가로 부상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경제와 군사력을 넘어 인적 자원과 소프트 파워도 급성장했다. 말 그대로 기적이고 한국인들이 충분히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만하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과제는 완수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여기서 안주해 멈춰 설지, 아니면 톱 10 혹은 톱 5로 재차 도약할지를 놓고 한국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배고파야 한다”

    “Stay hungry.”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명연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야심만만한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에게 한 말인 동시에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던 자신에게도 한 외침이다. 한국도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여전히 “배고파야 한다.” 미국에서 바라보는 ‘넥스트 코리아’의 모습이 더욱 성숙되고 자랑스러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번 호로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연재를 마칩니다. 매번 중요한 의제를 제시해온 필자와, 그간 성원을 보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기욱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사회학 석·박사
    ● 미국 아이오와대, UCLA 교수
    ●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및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 저서 : ‘슈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등



    신동아 4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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