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MRO 핵심인 장비·기술 정비엔 손 못 대
군함은 못 고치고 군수지원함 수리만 가능
국익 생각하면 무기체계 포함 美 군함 전면 MRO 필요
현재 美 함정 고칠 설비·인력도 부족한 상황
전시에도 MRO 가능 역량 등 특색 갖춰야

2025년 3월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쉬라’호가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함정 정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출항하고 있다. 한화오션 홈페이지
국방 분야에서는 특히 미국의 해군력 보완 사업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이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 지난해 3월 6일 미국 의회 조사국(CRS)이 발표한 ‘중국 해군력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중국이 보유한 함정 수(425척)가 미국(294척)보다 훨씬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2015년에 중국이 5척 앞섰는데 2022년 그 격차가 57척으로 벌어졌다. 인도-태평양을 호령하는 위치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갈 길이 바빠진 셈이다.
미국의 해군력 강화 사업은 함정 신규 건조와 기존 함정을 보완·수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2024년 12월 미 당국은 ‘미 해군 전략보고서 2045’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 조선업의 실태는 현재 규모의 해군 유지도 버거운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이 꺼내 든 카드는 해외 동맹과 우방에 위탁하는 것이다.
한국은 미 함정 MRO 사업 후발 주자
2024년 5월에 미 정부는 해외 군사기지에 전개된 육·해·공군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정비(Maintenance·Repair·Overhaul·MRO) 정책을 발표했다. 고칠 수는 있으나 새 배를 만들 수는 없다. 미국 법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과거 자국의 조선업 최고 위상을 자랑했을 때 미국 조선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톨레프슨 수정안(1965)과 번스 수정안(1968)을 통과시켰다. 외국 조선소에서 미 군용 선박 건조를 제한하는 법안이다. 일컬어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이라 한다. 이 법안이 수정한 법안은 1920년의 ‘존스법(Jones Act)’으로 일명 ‘상선법’이다. 당시 미국 항구를 이용하는 모든 선박(해군 함정 포함)은 미국산으로 제한한 법이다. 이때부터 미 정부는 자국의 해군 함정은 물론 상선의 수입마저 막은 셈이다.이 법안들은 현재 미국의 조선업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를 개정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미 상원 마이크 리, 존 커티스 공화당 의원은 ‘해군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했다. 동맹국에서 미 해군 군함 건조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전자는 미 군함, 함정, 잠수정 등의 해외 건조를, 후자는 미 해경의 함정을 나토 회원국 조선소에서 건조를 허용하는 법안이다. 다만 아직 입법화되지 않고 미 의회에 계류 중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손 놓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최소한 장기간 운영한 미 함정의 MRO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를 위한 정책은 마련돼 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2024년 초 해외 우방에서 미 함정의 MRO를 허용하는 정책을 소개했다. 이를 실제로 운영하기 위해 ‘권역 거점 정비 지원 구상’ 정책을 그해 5월에 소개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물론 유럽과 남미 지역에서 MRO 작업의 수행 국가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한국이 포함됐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는 1990년대부터 이미 MRO 거점국이었다.

미국 공군의 주력기인 F-35. 일본은 최근 F-35의 유지·보수·정비 사업 수주에 도전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나 한국만 미군 함정 MRO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든 한국은 후발 주자다. 싱가포르, 호주, 일본 등은 미국 함정 및 무기를 오래 고쳐왔다. 같이 일한 기간이 긴 만큼 신뢰도 쌓았고, 사업 영역도 확장하고 있다. 가령 일본은 함정을 넘어 이제 전투기의 MRO까지 미국의 수주를 따낼 태세다. 현재 일본은 미국의 최첨단 주력 전투기 F-35의 MRO 사업 수주에 도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MRO는 어떤 수준으로 진행될까.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이 출간한 한 보고서(이하 고려대 보고서)는 함정의 MRO의 개념과 범위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통상적으로 ① 외부 선체, 갑판, 방수 격실 등을 포함하는 선체 ② 엔진, 감속기어, 스크루 등을 포함하는 추진체계 ③ 발전기, 배전반 등을 포함하는 전력과 배전 체계 ④ 항해 레이다, 자이로 등을 포함하는 탐색과 감시체계 ⑤ 함포, 수직발사대(VLS), 근접방어무기체계(CIWS) 등을 포함하는 무장과 무기체계를 대상으로 한다. 완전한 MRO 사업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위 5가지 대상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과제는 ④번과 ⑤번이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최첨단 과학·무기 기술 이전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 의회가 국제 무기 거래 규제(ITAR)를 승인해야 이 단계의 MRO가 가능하다.
군함 MRO까지 나가야 10% 이익 볼 수 있어
현재 한화오션, HD현대에서 미 군수지원함의 MRO를 진행하고 있고, HJ중공업도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국 및 캐나다 해군과도 MRO 수주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부 군수지원함에 국한된 계약이다. 군수지원함의 경우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장비 및 기술에 대한 정비 소요가 없다. 단순 선체 수리만 진행되고 있다.한국 조선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향후 전투함 및 항공모함, 잠수함 등의 MRO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MRO 현장 관계자들은 “MRO 사업은 단순 선박 수리 개념보다 지속적 군수지원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이익을 고려하면 선박 또는 함정의 총 수명 주기 관리 개념을 포함한 방산 기술 협력 위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MRO 현장 관계자는 “선박의 설계 및 건조부터 운용, 유지보수, 그리고 최종 폐기까지 발생하는 모든 활동과 비용, 성능, 기술의 통합적인 관리를 통해 비용의 최소화, 효율성과 가동률의 극대화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며 “(미국 함정 전반 MRO를 할 수 있다면) 한국 조선산업 발전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 설명했다. 이는 미국에도 이득이다. 군수지원 지역의 다변화라는 점에서 세계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정 전반의 MRO를 해야 국내 조선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고려대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조선소는 일반 상선 등 선박 건조를 통해 약 7%의 수익을 볼 수 있다. 해군 함정의 건조는 약 5% 수준 또는 그 이하다. 완전히 새로운 함정, 즉 시제함 1척을 건조하는 사업의 경우, 건조 요구조건 충족 노력과 납품 지연에 따른 위약금 등으로 적자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위의 5단계, 즉 무장과 무기체계를 포함하는 완전한 함정 MRO 사업을 진행하면 통상 10%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전시에도 MRO 할 수 있는 역량 갖춰야
제대로 된 MRO 계약을 위해서 한국이 준비해야 할 부분도 있다. 먼저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대형 선박을 수리할 ‘건선거(乾船渠)’가 부족하다. ‘드라이독(dry dock)’이라고도 하는 건선거는 육상 선박 건조 시설이다. 바닷가 땅을 깊게 굴착해 만든다. 평소에는 물에 잠겨 있지만 수리할 배가 들어오면 수문을 닫고 물을 빼낸다. 이를 통해 선박 하부도 꼼꼼히 고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함정 건조 및 MRO는 깊이 300m급 건선거에서 거의 진행됐지만, 미국의 선박은 깊이 400m 이상의 건선거를 요구한다.
2025년 12월 22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의 건선거에서 근로자들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인력 부족에 신음하는 조선업계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2025년 4월 발간한 ‘2025년 상반기 주요 업종의 일자리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 기준 조선업종 인력 미충원율은 18.9%. 전 산업 평균(9.6%)보다 9.4%포인트 높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는 2024년부터 연평균 1만2000명 이상의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2027년부터는 13만여 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 내다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인력 양성 대책이 없다면 미국 MRO 수요에 응답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 말했다.
정부는 인력 양성 및 설비 강화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1월 9일 정부가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는 “국내 조선업 밀집지역 내 함정 MRO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내용이 있다. 클러스터를 통해 대형 조선소와 중소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더 나아가 조선업 인력을 키워낼 생각이다. 조성 지역으로는 대형 조선소가 밀집한 부산·경남 지역이 거론된다.
정부가 나섰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여전히 MRO 시장에는 경쟁자가 많다. 물론 한국 조선산업은 기술력이나 노동력에서 높은 경쟁력을 점하고 있다. 그러나 MRO 사업에서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비용이다. 한국은 저가 수주를 할 수 있는 동남아 국가나 인도 등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한국만의 특색을 갖춰야 한다. 평시에는 전 지구상의 어느 거점 구역에서 MRO는 가능하다.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파괴, 파손을 당한 함정의 MRO는 쉽지 않다. ‘미 해군 전략 2045’에서도 전시 함정 MRO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이 미 함정의 MRO 사업을 추진하는 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 국방 전략에도 전시 상황을 가정해 함정 및 무기 보수 시설에 대한 방어작전 전략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정교한 대비 태세가 미국 함정을 넘어 무기 전반 MRO 사업 진출에 더욱 설득력을 보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