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화간척지의 공식면적은 약 4500여 만평. 직접 눈으로 보면 얼마나 광활한지를 금세 알 수 있다. 1987년 1286만평의 담수호와 3302만평의 간석지를 활용하기 위해 12.6km의 방조제 공사를 시작하여 장장 10년의 대역사 끝에 완공된 시화간척지는 흡사 만주벌판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시화간척계획은 2000년 한 해 동안 ‘갯벌이 죽고 담수호가 간장빛으로 썩어간다’고 외치는 환경단체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결국 정부는 2001년 2월 시화호 물을 농공업용수로 쓰겠다는 원래의 계획을 포기했고, 지금은 바닷물을 들여오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방조제 안의 토지는 지금 갈대숲과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는 생태계로 소생했다. 새로운 녹색지대가 형성되자 노랑머리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 검은머리물떼새(천연기념물 326호),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 등 80여 종의 조류가 최대 15만마리까지 서식하는 보금자리가 되었고, 고라니 멧돼지 노루 너구리 등 포유류 수백 마리가 번식하는 동물낙원으로 변모했다.
월 80만원의 노무직
시화호의 자정능력이 되살아나면서 습지는 촉촉한 생명력의 보고로 거듭났고, 이 지역은 생태학습장과 휴식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제공됐다. 시화호가 이처럼 건강을 되찾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기까지 많은 이의 노력이 있었다. 생태계를 살려내자는 이 고장 사람들의 열망과 전국적인 환경캠페인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시화호의 보안관으로 불리는 최종인씨가 있다. 그의 공식직함은 안산시 환경과 조수보호원.
“말이 전문성이 있는 조수보호원이지 사실은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신분증에는 일용직도 아니고 노무직으로 되어 있어요. 대학 졸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조류연구에 평생을 바쳐도 아무 소용 없는 모양이지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 한편에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에 대한 대접이 말이 아니지 않느냐는 뉘앙스가 묻어난다. 노무직으로 받는 그의 월급은 일당 2만원 남짓과 시간외 수당을 포함해 월 80만원 정도. 그러나 이 액수도 올해 들어 시간외 수당을 더 산정해 10만원 정도 올려 책정된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것도 고마운 액수지요. 생활비야 아내가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큰 걱정은 없고요.”
그러나 그 말 뒤에 “일본만 하더라도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능력 위주로 평가한다”는 한마디가 따라붙는다. 우리의 경직된 학벌위주 사회구조, 공무원 세계의 보수성을 꼬집는 말인 셈이다. ‘내 비록 학벌은 신통치 않다마는 전문성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다’는 자신감도 스며 있다.
최씨의 사무실은 안산시청 별관 환경위생과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로 들어서면 검은 천이 유리창을 가로막아 실내가 흡사 시골 영화관처럼 어둠침침하다. 유리창이 서쪽으로 나 있어 햇빛이 들어오면 필름 등 자료들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검은 천을 둘러놓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창문 쪽에 가지런히 놓인, 골동품처럼 낡은 예닐곱 개의 사기그릇. 그릇마다 물이 3분의 2쯤 담겨 있다.
“무슨 실험을 하는 중인가요?”
“아닙니다. 먼지를 받기 위해 물을 떠놓았지요. 사나흘에 한번씩 물을 갈아주는데 물그릇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요.”
혼자 쓰는 사무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시화호에서 보낸다고 하니 늘상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무실이다. 그런데도 실내에 먼지가 많은 것을 걱정해 사기그릇에 물을 담아놓았다는 말에서 생활환경을 꼼꼼히 따지는 그의 성격이 엿보인다. 연일 장바닥처럼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서울의 일반 사무실에도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음을 생각해보면 더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