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의 TV 화면에서 흡사 비라도 맞은 듯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미친 듯 봉고를 두드리는 한 사내를 본 일이 있는가. 그 무릎 위에서 울려 나오던 신명나는 리듬에 취해본 기억이 있는가. 그가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퍼커션 연주자 류복성(62)씨다. 그 시절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제음악에서 박진감 넘치는 봉고 연주를 선사했던 류씨는 올해로 음악인생 45주년을 맞는 한국 재즈의 산 증인이다.
이 나라에 재즈의 혼을 심기 위해 분투해온 그의 인생은 처참한 전쟁의 기억과 씻을 수 없는 가난의 상흔이 깊게 남은 ‘싸움’의 시간이었다. 아무도 몰라주던,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는 묘기처럼 보였던(그 시절 그는 쇼프로 ‘묘기대행진’에 심심찮게 출연하곤 했다) 그의 음악은 이제 원숙의 시기를 맞았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시절만한 열정을 여전히 간직한 채 한결같이 봉고를 두드리고 있는 그를 만나려 그의 집을 찾았다. 날이 무척이나 덥던 8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경기도 남양주 덕소에 자리한 그의 집엔 보기에도 희한한 각종 타악기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이날도 류씨는 자신의 ‘재즈인생 45주년 기념공연(8월19~20일)’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색소폰 주자 이정식, 재즈 보컬 말로, 웅산 등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모두 ‘이름깨나 하는’ 실력파 후배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추는 무대다. 상업성만을 쫓는 우리나라 대중음악 풍토에 일침을 놓기라도 하려는 듯 노장의 손은 잠시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온통 백발이 된 나이지만 공연을 앞둔 그의 모습은 새로운 관객을 맞이한다는 흥분과 기대로 넘쳤다. 인터뷰 내내 밝고 호탕한 웃음을 잃지 않는 그에게선 여전히 재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청년의 모습이 엿보였다. 재즈를 너무도 사랑한, 재즈에 미쳐버린 한 퍼커션 거장의 음악여정 45년을 들어봤다.
“재즈가 대중화됐다고?”
-공연을 앞둔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준비는 잘돼 갑니까.
“아,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나도 기대가 크지. 1992년에는 대한민국 재즈 페스티벌도 연출했고 1997년과 1999년에도 큰 무대를 열어봤지만 이번에는 좀 느낌이 달라요. 그때는 선후배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지만, 이번에는 내 음악인생을 정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거든. 퍼커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세계를 이번 공연에서 모두 보여주고 싶어요.”
알록달록한 글씨체로 ‘JAZZ’라고 써있는 검정 티셔츠와 미군 군복바지 차림의 류씨가 막 연습중이던 여러 가지 타악기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류씨의 ‘주종목’인 봉고를 비롯해 콩가, 초칼로, 클레이브, 귀로, 팀발레스, 마라카스 같은 아프로-큐반(Afro-cuban) 계열 악기들과 아고고 벨, 쿠이카, 스도, 쉐이커, 베림바우 등의 브라질 삼바 계열 타악기들…. 이름을 외기도 쉽지 않은 그 악기들을 류씨는 하나하나 직접 연주해 보였다.
어린시절 누구나 캐스터네츠나 트라이앵글 같은 타악기를 두드려보았을 것이다. 그렇듯 타악기는 누구나 소리를 낼 수 있고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소리를 내는 악기다. 그런데 왜 굳이 타악기였을까. 피아노, 기타, 베이스가 아닌 타악기에 반세기 가까이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흔히 타악기라면 그저 신기한 소리를 지닌 악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될 때는 그냥 쉽게 지나쳐버리기 일쑤고요. 굳이 타악기 연주만을 고집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든 독특한 민속악기가 있죠. 내가 주로 연주하는 라틴 타악기, 브라질리안 타악기를 비롯해 아프리카, 아시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그네들 고유의 타악기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사물이라는 훌륭한 타악기가 있잖아. 사실 인류의 역사는 타악기로 시작된 거예요. 단순히 두들기는 것 같지만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 울림과 깊이는 달라지게 마련이거든. 88개의 건반이 빚어내는 피아노 선율도 아름답지만, 내가 연주하는 봉고는 단 두개의 ‘건반’으로도 사람들의 가슴을 강렬히 두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