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년 동안 역술과 자신의 전공인 컴퓨터를 결합하는 데 매진해온 구암 김상숙 선생은 “2년 후 정년퇴직하면 컴퓨터 사주 도사로서 본격적인 인생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게 마련.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 옆을 졸졸 따라가는 종자(從者) 중의 하나가 바로 사주팔자 또는 명리학(命理學)이다. 주지하다시피 역술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게토’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담론이었다. 한국의 ‘게토’ 지역이란 ‘미아리 골목’이 아니겠는가.
미아리 골목의 주력상품과 첨단기술인 IT의 결합은 참으로 묘한 만남이다. 만남도 궁합이 맞지 않는 것과 맞는 것으로 나뉘는데, 필자가 보기에 컴퓨터와 역술은 후자에 해당한다. 궁합이 맞다는 말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사주팔자를 보는 역술 사이트가 수백 개에 이른다.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북적대고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 사주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사주의 이종접합
첫째, 사주팔자를 보기 위해서 직접 점(占)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 마치 러브호텔에 갈 때 프런트에서 요금 받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장점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익명이 주는 편안함이라 하겠다.
둘째, 자기 운명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 자기 운명과 앞일에 대해서 관심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주팔자를 알려주는 ‘운명예측업’ 또는 ‘팔자사업’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 사업은 기원 전 5000년 전부터 존재해온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미래를 알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 한 이 직업은 앞으로도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인터넷 사주는 바로 이 미래욕(未來慾)을 손쉽게 충족해준다.
셋째, 컴퓨터와 역술의 수학적 공통점으로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컴퓨터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는 수학이다. 사주를 보는 기본 원리에도 수학적 규칙성이 작동한다. 그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만세력에 대입해보면 육십갑자로 환산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甲子), 을축(乙丑)으로 시작되는 육십갑자는 규칙적이다. 아무렇게나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수학적인 궤도를 따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육십갑자의 양대 골격이 되는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는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두 수학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낼 수 있다. 이것이 수학의 묘미다.
컴퓨터와 역술은 출신성분이 전혀 다르지만 그 속살을 파고들어가면 수학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선다. 공통분모가 같은 것은 호환(互換)된다. 그래서 컴퓨터에 사주가 침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한 사람의 연월일시에 따라 파생할 수 있는 사주의 종류를 계산해보면 숫자로 뽑을 수 있다. 육십갑자니까 60종류다. 태어난 달도, 날도, 시도 모두 60종류다. 따라서 60 × 60 × 60 × 60 = 12,960,000이 나온다. 여기에 다시 2를 곱해야 한다. 남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25,920,000가지가 나온다. 즉 60갑자를 기본공식으로 삼는 사주팔자의 종류를 계산하면 대략 2600만가지가 나온다. 엄청나게 많은 수이기도 하지만, 수학적으로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충분히 담을 수 있는 유한한 숫자다. 바로 여기서 컴퓨터와 사주의 이종(異種)접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