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수년 전 그는 ‘황제내경’을 읽으며 동양의학을 공부하다 수족침 원리를 찾아냈다. 손 안에 인체의 모든 장기와 사지가 축약돼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얘기이지만 그의 수족침은 이전과는 달랐다.
“손과 인체의 유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인체에서 손가락처럼 바깥으로 돌출해 있는 건 머리와 사지 아닙니까. 수족침은 이전과 달리 엄지를 머리로 봅니다. 인체의 머리와 목처럼 엄지도 짧고 굵으며 두 마디로 되어 있잖습니까. 양팔이 양다리를 감싸고 늘어뜨려지듯 엄지를 뺀 바깥의 검지와 새끼지가 팔에 해당하고 중지와 약지가 길이가 가장 긴 다리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손가락이 세 마디인 것처럼 사지도 팔(발)꿈치 윗부분과 아랫부분, 손(발) 셋으로 나뉘잖습니까.
몸이 앞으로 굽고 뒤로 굽지 않는 것처럼 손가락도 앞으로는 접을 수 있는데 뒤로 접히지는 않게 만들어져 있지요. 발은 해부학적으로 손과 똑같은데 손보다 덜 민감할 뿐이고….”
손과 신체의 유사성
따져볼수록 손 안에 정교한 인체의 축소판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손에 인체의 경혈(經穴)이 담긴 건 건강 목적만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황제내경’의 내용은 80%가 침술이다. 황제는 기원전 2600년경에 살았던 사람으로 그가 정리한 침술이 수천년 말로 전해내려오다 기원전 4세기경에야 책으로 집대성된다. 세계 최초의 방대한 의학서인 ‘황제내경’은 음양론의 깊은 차원이 언급된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엔 다른 음양론 책은 유치해서 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그 책이 생긴 지 2000년이 넘도록 동양의학과 침술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전이 없었어요. 크게 봐서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내가 ‘황제내경’을 네댓 번 읽고 난 후 수족침을 개발하는 동기가 됐어요. 손과 인체의 유사성에 착안한 건 1974년쯤이고 중요 이론을 완성한 건 1988년이지요.
그렇다면 ‘왜 손이냐?’를 묻다가 알게 됐어요. 손이 가장 쉽게, 가장 빨리 우리 눈에 띄는 부분 아닙니까. 가장 눈에 쉽게 띄는 부분에다가 문제의 해답을 준 거예요. 그게 인간을 만든 창조주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은 걸로 끝나지 않고 자상하게 돌보듯 사람을 만들어낸 창조주도 인간을 계속 보살피고 싶었던 겁니다. 손 안에 인체를 축약해둔 건 창조주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거든요. 창조주는 인간이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손 안에 치료하는 법을 담아놓고 자신과 교신하기를 기다렸던 겁니다. 손 안의 경혈을 안다는 건 병을 치료하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창조주와 교신하는 채널이 열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완성으로 다가가라는 뜻이에요. 그런데도 인간은 그걸 20세기가 지나도록 읽어내지 못했어요.”
비약 같지만 그의 이론을 다 들으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수족침 개발로 한국에서 힘겨운 일을 당하던 그는 1991년 구소련의 대체의학 심포지엄에 수족침을 들고 참석한다. 마침 소련은 약제조 공장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의사들이 약이 없어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심포지엄 참석 의사들에게 수족침 원리를 강의하고 현장에서 머리나 관절이나 심장에 통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부위를 문지르거나 비틀어보라고 지시했다. 효과는 당장 드러났고 참석자들은 열렬히 호응해왔다.
“그해 심포지엄은 4일간 계속되었는데 피니싱 세리머니에서 수족침이 앙코르 요구를 받았어요. 기간을 연장해서 강의를 더 듣자는 요청이 넘쳤어요. 그러나 마침 그 장소에 다음 스케줄이 예약돼 있어 어쩔 수 없이 폐회한다고 치프 오거나이저(Chief Organizer·대표 주최자)가 나서서 발표했어요. 그랬더니 거기 모인 의사들이 ‘닥터 박! 닥터 박!’ 외치느라 도무지 해산을 않는 겁니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정 그렇다면 내가 묵는 호텔로 와라, 강의는 거기서 계속된다’고 일단 진정시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