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농민단체 대표해 쌀 협상 참여한 김충실 경북대 교수

“‘자해공갈단’소리 들어가며 협상했다, 그런데 ‘이면협상’ 이라니…”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사진: 성기영 기자

    입력2005-05-23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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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협상 도중 사과·배 검역 문제 거론
    • ‘쌀과 분리 대응’방침 변화 없었다
    • 그때그때 농민에게 모두 알렸다
    • 정부 발표 보고 당황했지만 설명 듣고 수긍
    • 쌀과 연계 여부는 국정조사서 드러날 것
    농민단체 대표해 쌀 협상 참여한 김충실 경북대 교수
    쌀 관세화 유예 협상 결과를 놓고 지난 5월12일부터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이번 국정조사는 장장 35일간 이어지며, 6월13~14일 이틀간 청문회를 열어 협상 당사자들의 증언을 직접 청취할 예정이어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이번 쌀 협상 파동은 정부가 지난 4월, 협상 결과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검증을 거친 최종 인증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쌀 외에 중국산 사과·배 등에 대해 신속한 검역 조치 등을 약속한, 이른바 ‘부가적 합의사항’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부가적 합의사항’에는 중국산 과일에 대한 검역 완화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산 가금육(家禽肉)과 오렌지에 대한 신속한 검역절차를 보장하는 등 농민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여럿 들어 있었다.

    중국산 사과·배 ‘신속 검역’ 약속

    야당과 농민단체는 정부가 과수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줄 만한 검역 완화 등에 합의하면서 이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이면합의’했다고 몰아붙였고,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쌀 협상 최종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가적 사항에 대해 검증 기간에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으므로 ‘이면합의’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정조사를 계기로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확산될 조짐이 다. 국정조사에서 일부 과수와 육류에 대한 검역 완화 등 이면합의 의혹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9개국과 벌인 양자간 쌀 협상 과정이 정부 훈령과 각종 비밀문서를 통해 하나하나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내 벌어진 쌀 협상 과정에 농민단체를 대표해 협상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경북대 김충실 교수(농업경제학)는 이러한 의혹을 풀 열쇠를 쥔 인물 중 한 명이다. 김 교수는 이미 국정조사에도 핵심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김 교수가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5월12일, 경북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이면합의’ 의혹에 대해 따져 물었다.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되셨는데요.

    “내가 왜 증인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나는 사실대로 명명백백하게 밝힐 테니까.”

    -‘이면합의설’이 불거지면서 협상팀이 뭔가 감추고 있다는 의혹이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이면합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협상 결과와 달리 감춰진 협상 내용 중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냐 없냐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는 거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가적 합의사항’을 정부가 숨겼다면 이면합의라고 해야겠지만, 정부는 이걸 밝혔단 말이에요. 지난번 마늘 협상 같은 경우는 숨겨놓고 안 밝혔지만…. 그런데 이걸 이면합의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정부가 쌀 협상 결과를 최종 발표한 지난해 12월 이전에도 이미 중국이 과일 검역 완화 등의 조건을 쌀과 연계해서 내놓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부가 합의’와 관련한 협상을 해놓고도 숨긴 것은 아닙니까?

    “(총 8차협상 중) 2차협상까지는 서로 말도 안 하고 탐색전만 벌였어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 그것이 곧바로 빌미가 돼버리거든요.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방이 쌀 외의 양자간 문제도 당연히 요구할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우리 쪽 입장은 단호했어요.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목소리를 냈을지는 모르지만(김 교수는 협상단의 일원이지만 실제 협상에 참여하지는 않고 전략 수립 및 자문 역할을 맡았다), 다른 품목의 문제는 쌀 협상과 완전히 별개라는 것이었죠. 별도의 기회에 별도의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었습니다. 또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농민에게도 이야기했어요. 심지어 3차협상을 마치고 나서 내가 직접 제안해서 공개발표회까지 열었습니다.”

    “농민에게 이미 설명했다”

    -설명회 당시 농민들에게 중국이 사과나 배의 검역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도 얘기했습니까?

    “상대방이 쌀 협상 외의 내용을 한꺼번에 집어넣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쌀과는 별개 문제라는) 원칙을 갖고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중국 등 상대방이 쌀 외의 요구조건을 꺼내든 것은 3차협상 이전입니까?

    “적어도 초기에는 속마음을 안 내보였을 거예요. 협상이 진전되면서 상대방에서 쌀 외에 다른 요구조건을 꺼내들었지만 우리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죠. 농민단체에도 그때그때 설명했습니다.”

    -농민단체에서는 쌀 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과일 검역 완화 등의 요구조건을 내놓으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주장합니다. 의심이 들어서라도 정부 협상팀에 이 문제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까?

    “여태까지와 다른 내용이 들어 있는지는 물어봤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내용을 허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허용했더라면 국회에서 국정조사에 준하는 수준의 추궁을 당할 것이 뻔한데….”

    -그러한 정부의 방침은 협상 막바지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까, 아니면 변화 조짐이 있었습니까.

    “협상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12월8일 워싱턴에서 열린 마지막 협상까지만 해도 그런 문제를 협상 내용에 포함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12월8일 이후에는 사실상 주요 국가들과 모든 협상을 끝내고 최종 사인만 남겨뒀던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다 끝났고 부가적인 부분들에 대해 문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아 있었죠. 하지만 원래 쌀과 다른 품목은 분리한다고 했으니까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내 사고 영역의 바깥에 있었다는 말이에요.”

    김 교수가 언급한 12월8일은 허상만 당시 농림부 장관이 직접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간 쌀 협상에 대해 마지막 담판을 지은 날이다. 김 교수는 이때까지 공식적으로 협상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렇다면 12월8일 이후에 정부 협상팀내에서 부가적 합의사항에 대해 변화 기류가 있었다면 김 교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마지막 협상을 한 12월8일부터 정부가 쌀 협상 최종 결과를 발표한 12월30일 사이에 ‘부가적 사항’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요.

    “나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고심하지 않았겠어요?”

    “마지막 협상까지도 거론 안 됐다”

    -그렇다면 중국산 과일의 검역 완화 문제도 그 뒤에 불거졌다는 이야기입니까?

    “큰 덩어리는 모두 다뤄졌으니까 글자 그대로 절차 및 부가적 사항만 남았던 거예요. 협상하는 사람으로서도 상대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측도) 돌아가서 주장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요구만 다 들어줬다는 얘기가 나올까 부담스러웠던 거죠.”

    -여하튼 12월30일 정부 발표에는 ‘부가적 합의사항’과 관련한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발표 내용을 보고 문제를 느끼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협상의 흐름을 살펴왔기 때문에 나중에 차분히 읽어보고 나서는 막판에 기술적이고 절차적인 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이 들어가게 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부가적 합의사항’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볼 만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정부도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이 나타나리라고는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부가 12월30일 협상 결과 발표에서 ‘부가적 합의사항’을 흘리듯이 슬쩍 언급하고 4개월이 지나서 이를 발표한 것은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협상대표들은 신상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걱정하면서 협상에 임했어요.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협상대표라기보다 국제협상 무대의 자해공갈단’이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어요. 나는 자해공갈단을 사주하는 ‘배후세력’이고….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협상에 임했는지를 표현해주는 말 중에 이것만큼 적당한 단어는 없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서글픈 현실이죠. 그만큼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내줄 것이 없는’ 협상이었다는 말입니다. 번번이 똑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협상은 계속 하자고 하니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동정을 받을 정도였어요.”

    중국이 선뜻 물러섰을까?

    -결국 지난해 12월30일 이전의 쌀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중국측에 사과와 배의 검역 완화 등을 보장해줬느냐 여부가 핵심 쟁점인 것 같습니다. 중국측은 우리와의 쌀 협상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검역 완화 등에 대한 보장도 받지 못하고 협상을 그대로 종결지었다는 이야기인데, 도무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를 않습니다.

    “그 부분은 뭐라고 추론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중국측에 ‘당신들도 관세화하는 것보다 관세화를 미루고 물량을 보장받는 것이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꾸준히 설득했습니다. 국내에 ‘역정보’를 흘리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고요.”

    -결국 중국측은 사과나 배와 관계없이 우리 논리에 설득당해서 의무수입 물량을 7.96%로 낮추는 데 동의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때는 그것으로 끝난 것으로 알았어요. 나중에 ‘부가적 합의사항’이라는 게 나오니까 나도 당황했죠. 처음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봤는데, 정부 해명이 나오면서 납득하게 됐습니다. ‘부가적 합의사항’에 나와 있는 ‘신속히’와 같은 문구는 법률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란 말이죠. 이런 합의사항이 아니라도 들어줘야 하는 거예요. 중국에서 밀어붙이면 우리가 그것을 방어해낼 국력이 없거든요. 마늘 협상에서 잘 봤잖아요. 결국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연계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부가적 사항’에 합의해 이렇게 난리를 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건 함부로 해석할 수가 없어요.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국정조사에서 연계 여부가 밝혀지겠죠. 하지만 내가 참여해본 결과에 따르면 이전부터 연계되어 있었다고는 보고 싶지 않아요. 협상 대표들이 자기 신상에 대한 문제를 굉장히 걱정스럽게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 자식들이 다 대학 갈 나이입니다. 만약 잘못됐을 때 책임져야 할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냐는 거죠. 마늘협상 때도 그랬잖아요. 이게 무슨 독립운동해서 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단순히 중국측에 선심을 썼다는 이야기입니까?

    “결국 ‘부가적 합의사항’에 언급된 내용은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관념적 용어니까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중국측이 (검역 완화를 요구하는데) 우리가 안 들어주면 다른 분야에서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가적 합의사항이 식물방역법상 농림부 장관의 권한을 해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건 법률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국정조사에서도 (야당 의원들이) 심하게 나올 것 아닙니까? 문제는 그런 내용 하나하나를 놓고 특정인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붙여서야 되겠느냐는 겁니다.”

    “99%는 밝혀졌다”

    김 교수의 발언 하나하나에는 ‘마지막에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만 않았더라면 이번 협상은 성공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묻어났다. 농민단체를 대변하는 자격으로 협상단에 참여했지만, 실제 협상에 임한 관료들의 태도에 대해 호의적 평가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농민이 정부에 대해 무리한 공격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사과와 배처럼 아주 민감한 품목이 들어 있는 만큼 ‘부가적 합의사항’ 내에 ‘신속히 평가절차를 진행한다’는 대목에 대해선 앞으로 정부 대응에 쐐기를 박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한 번 쌀 협상에 버금가는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를 향해 더욱 확실한 자세를 요구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국회의 국정조사 움직임을 보면서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 그건 아까 다 이야기했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청문회까지 나가서 욕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어렵게 이뤄졌다. 인터뷰 약속이 겨우 잡혔을 무렵 그가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기 때문에 김 교수는 언론과 인터뷰하기를 더욱 꺼렸다. 끝까지 ‘서면 인터뷰 정도면 응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던 김 교수를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야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는 “국정조사를 하더라도 이미 99%의 진실이 밝혀진 만큼 더 나올 게 없다”고 공언했지만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야 기자는 뒤통수 쪽에서 소형 녹음기가 몰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김 교수는 다음날 자신이 녹음한 내용을 모두 재생해 들어본 뒤 전화를 걸어왔다. “숫자 하나가 틀렸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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