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국민적 영웅이 된 황우석 서울대 교수에게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배아(胚芽) 단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황 교수의 연구 방식이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반대의사를 개진했던 가톨릭계가 성체(成體)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가톨릭 세포치료사업단에 100억원을 쾌척한 것. 천명훈 가톨릭 세포치료사업단장을 만나 지원의 의미와 성체줄기세포 연구 계획을 들어봤다.
천주교측은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하면 궁극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그 효용성을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주교측이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생명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는 척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인 염수정 주교는 “어림잡아 150만명이 넘는 태아 생명(배아)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며 “더 이상 침묵하거나 소극적 대응만으로 우리의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이번 지원의 의의를 밝혔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생명 파괴
그렇다면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실질적으로 진행하고 지원할 세포치료사업단은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배아줄기세포는 완성된 인간, 즉 성체가 되기 전 수정란(배아) 상태에서 획득하는 까닭에 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명(배아)에 위협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세포치료사업단의 견해다. 천명훈(千命薰·53) 세포치료사업단장은 “황 교수의 연구는 어쩔 수 없이 인간배아를 파괴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황 교수측은 난자에 체세포를 이식해 만든 배아의 경우 수정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만큼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 배아도 자궁에 착상되면 복제양 돌리나 이번에 복제된 스너피와 같이 엄연한 생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과학자인 세포치료사업단의 연구진은 배아를 생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아기를 낳을 때 나오는 태반에서 추출한 탯줄 혈액이나 골수, 췌담도, 지방 등에서 추출이 가능한 까닭에 생명 파괴와는 무관하다는 게 세포치료사업단의 주장이다.
세포치료사업단은 생명윤리 문제는 논외로 하고, 연구 자체로만 평가하더라도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황 교수의 연구보다 이미 한 발짝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분화기능이 좋고 암을 유발하지 않으며 임상 적용이 용이한 반면, 배아줄기세포는 증식력은 우수하지만 암을 일으킬 수 있고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복제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세포치료사업단은 또 인체 이식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추가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마저 언제 해결될 수 있을 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치료단계에 들어가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성체줄기세포로 면역계를 재생해주는 조혈모세포에 대한 연구, 즉 골수이식은 이미 수천건이 넘었으며 말초혈관이 막힌 경우(동맥경화 등) 골수세포를 이용해 혈관을 재생하는 치료법도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 중 하나다. 이외에 골질환(특히 무혈성 괴사질환) 치료에도 골수에 있는 성체줄기세포가 이용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의 경우 수정란을 제공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공여자 확보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 제대혈은 이미 여러 생명공학 회사가 각각 몇천 에서 몇만개의 제대혈을 확보하고 있으며, 골수도 자신의 골수세포를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세포 공급에 큰 문제가 없다. 골수정보은행에 등록된 사람이 공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다.
“무사안일한 정책결정”
성체줄기세포가 대량 증식과 다양한 분화가 어려워 비효율적이라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진의 지적에 대해 세포치료사업단은 “성체줄기세포의 대량증식은 세계적으로 매우 치열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로, 이는 성체줄기세포의 장애라기보다는 연구개발 목표로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로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 천명훈 단장은 “최근 성체줄기세포가 인체 내의 거의 모든 장기와 생식세포인 난자로까지 분화가 가능하다는 과학적 보고가 쏟아지고 있다”며 “가톨릭의대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오른 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진은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배아줄기세포 연구 지원에만 열을 올리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천명훈 단장은 정부의 이런 편중 지원에 대해 “무사안일한 정책결정”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정부가 일단의 과학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면서, 실패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업적은 확보할 수 있지 않으냐는 안이한 발상을 하고 있다”며 “과학의 발전은 한두 명, 또는 한두 분야의 집중 발전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모든 기반기술이 확보되고 수많은 우수 연구자가 골고루 생겨나 탄탄한 기반이 형성돼야 사상누각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점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100억원 지원은 이들에게 가뭄 속의 단비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연구가 국가지원 연구비에 의존하고 있고, 국가가 수립한 정책 방향에 모든 연구가 편중될 수밖에 상황에서, 서울대교구가 지원한 100억원이라는 돈은 사학재단에서 한 가지 과제를 위해 투자한 가장 큰 액수다. 세포치료사업단은 이를 ‘생명존중에 대한 신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가톨릭계의 큰 노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생명존중 전통의 연장선
일각에선 가톨릭계의 100억원 지원에 대해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한 ‘물타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계는 “가톨릭의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지금까지 계속 있어 왔으며 어느 한 시점에서 지원이 갑자기 시작된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이 모두가 가톨릭의 기본 이념과 생명존중 전통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천명훈 단장도 “성체줄기세포가 최선의 의학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윤리적 문제가 없으므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밝혔다.
가톨릭계의 지원을 받은 세포치료사업단은 우선 가톨릭의대 내에서 150명의 연구자를 모집하고 이후 교외로 확대할 계획이다. 연구지원조직으로 임상연구지원센터를 두고, 센터 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임상연구 과정을 투명화·체계화·국제화할 수 있도록 세포치료 전담팀을 구성할 예정이다. 전담팀에는 분야별로 선도 연구자 중심의 임상연구팀이 꾸려진다. 이와 관련, 가톨릭의대측은 이미 강남, 여의도, 의정부, 대전 성모병원에 세포치료센터를 열었으며 코디네이터 발령을 완료한 상태다. 세포치료사업단측은 “모든 조직이 국제수준의 관리 규범과 생명윤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첨단의 프로토콜을 개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명훈 단장은 “연구과정에서 효과가 증명된 분야는 신치료기술 등록을 통해 기술확산 속도를 높이고, 임상연구 중인 분야는 과학적 검토를 끝내고 임상연구가 끝나면 그 결과를 투명하게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세포를 통해 장기의 기능을 재생해 나가는 이른바 ‘재생의학(rege-nerative medicine)’이 미래 의학의 주요한 콘텐츠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성체줄기세포를 통한 연구개발과 임상시험이 본격화함에 따라,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국제적 허브 기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