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김정렬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

강사·학생으로 만나 公·私 부동산시장 거물로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입력2006-12-13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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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는 부동산 컨설턴트로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그에게 부동산 분야는 생소하기만 했다. 직장을 잃고 재기의 길을 모색하던 때 그의 손을 잡고 이끌어준 이가 현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 김정렬씨다. 지연, 학연, 그 어떤 것으로도 엮이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의 인생 제2막에 훌륭한 조연이 된 사연을 들어보자.
    김정렬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
    1997년 말, IMF 금융위기라는 매머드급 폭탄이 터지자 그 충격과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누구나 허리띠를 졸라맸고, 많은 중장년층이 대책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고종완(高鍾完·50)씨는 폭탄을 피하는 듯했지만 끝내 ‘백수’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97년 고씨는 한국통신 인사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동료 직원에게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둘러야 했다. 그 후 ‘내 손에 피를 묻혔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1998년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퇴직금 3억원과 살고 있는 집 판 돈을 합한 5억원을 잘 관리하면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직장에 다니면서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부동산 중개업 자격증을 취득해놓은 것이 든든한 힘이 됐다. 자격증 취득을 준비할 때만 해도 실제로 자격증을 활용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건국대 행정학대학원 부동산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부동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는 한편, 생계유지 수단으로 부동산중개소를 차리기로 마음먹고 있을 즈음, 고씨는 눈에 번쩍 띄는 신문광고를 보게 된다. 매일경제신문사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 수강생 모집 광고였다. 그는 곧바로 수강생으로 등록해 1기생이 된다.

    학생과 강사로 첫 만남

    매경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을 기획하고 교육을 이끈 사람이 김정렬(金淨烈·50) 현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이다. 동갑내기인 고씨와 김씨는 이곳에서 학생과 강사로 조우해 서로의 인생 제2막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99년에 처음 시작한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 1기에는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이 모여들었다. 김씨의 회고다.

    “강사들이 명성만큼 실제로도 강의를 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강의실 맨 뒤에 앉아 강의를 들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나이 지긋한 수강생들의 뒷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다들 자신을 재무장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갖고 오신 분이잖아요. 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강의를 해서 현장에 바로 투입할 정도의 실력으로 무장시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씨가 은행지점장을 비롯해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사람, 사업하다 부도를 낸 사람 등 사연 많은 수강생 80여 명 중 고씨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3개월 과정의 마지막 수업 때 고씨가 자신의 팀을 대표해 ‘가상의 부동산 중개 사례’를 발표했는데, 그때 김씨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준 것. 삼성, 대우, 한국통신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한 경험이 있던 고씨의 발표가 단연 돋보였다고 한다.

    김씨는 고씨의 발표를 듣고 나서 특별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실력 있는 수강생을 강사로 발탁해 수강생들에게 ‘나도 열심히 하면 강사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자는 것. 그 첫 기회를 잡은 이는 물론 고씨였다.

    “우리 팀 대표로 발표를 해서 1등한 건 제 인생에 큰 행운이었어요. 김 단장이 이것을 눈여겨봤다가 저를 김 단장과 같은 위치로 단번에 신분 상승시켜줬죠.”

    고씨는 김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강의를 훌륭히 해냈다. 두 사람은 이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부동산업이 유망하다”

    그즈음 고씨는 옛 직장 상사로부터 벤처기업을 창업하려는데, 참여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는다. 고씨는 고민에 빠졌다. 옛 상사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옛 상사가 창업한 벤처기업에 들어가는 편이 직접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차에 김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고씨에게 부동산업에 종사할 것을 권유했다. 첫째, 부동산업은 대단히 유망한 직종이다. 왜냐하면 IMF 금융위기를 잘 넘기면 많은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려 시장이 훨씬 다양해질 것이고, 몇몇 외국 기업이 국내의 A급(100억원 이상의 부동산) 건물들을 사들이면서 부동산에 대한 접근 방식도 변하고 있다. 이젠 우리나라도 부동산을 사두기만 하면 80% 이상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서서히 깨지고, 과학적인 투자와 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둘째, 고씨는 유동적인 부동산 흐름의 맥을 잘 짚어내고, 그것을 네트워크로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부동산업엔 아직까지 엘리트가 모여들지 않아 조금만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다.

    고씨는 김씨의 조언에 따라 1억5000만원을 투자해 부동산중개소를 차렸다. 그리고 주위에서 권유하는 주식과 벤처기업에 3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가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폭락하고, 벤처기업은 망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중개소 실적도 별로 좋지 않았다. 고씨는 강의를 잘했지만, 매수자와 매도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서툴렀다. 강의하러 다니느라 중개소 일을 직원에게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한 잘못도 컸다. 결국 직장을 그만둔 지 2년여 만에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고씨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단연 청중 앞에서 하는 강의였다. ‘건국부동산경제연구소’라는 1인 기업을 세우고, 본격적인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한 재건축과 경매 관련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고 일반인 대상 컨설팅도 했다. 그가 제공하는 정보가 유익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네티즌 사이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도장가게 주인의 안목

    2002년 초, 고씨는 김씨로부터 다시 ‘러브콜’을 받는다. 법률, 금융, 마케팅 등 부동산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부동산 드림팀’을 만들고 있는데, 고씨가 국내 부동산 중개 분야를 맡아줄 것을 제안해온 것. 박준봉 한국리모델링협회장, 유정봉 주식회사 PSNS 대표, 이경욱 뉴씨티코퍼레이션코리아 이사, 양철원 HMD AMC 본부장, 강병규 부동산씨너지 사장, 김응조 한결법무법인 변호사, 김종필 세무사, 채천석 토지공사 처장, 박경자 멕스리얼티 대표, 김영도 대일에셋감정평가협회 이사, 조욱현 현대산업개발 상무, 김재희 대한토지신탁 사장, 심영섭 우림건설 대표 등이 당시 ‘드림팀’ 멤버다. 이들의 면면에 비해 고씨의 이력이나 명성이 턱없이 뒤떨어졌지만, 김씨가 나서 ‘보증’함으로써 고씨는 드림팀에 합류했다.

    그 무렵 김씨는 고씨와 종로의 이름난 도장가게를 찾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 김씨는 그곳에서 친구의 소개로 거금을 들여 도장을 새긴 적이 있다. 당시 관상과 사주를 보는 데 능한 주인이 김씨에게 “10년 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김씨는 10년 후 부동산 업계에서 꽤 유명해졌다.

    김씨는 대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1981년에 지금의 한국자산관리공사 전신인 성업공사 공채 1기에 수석 입사했다. 성업공사에서 부동산에 대한 기획과 집행, 채권추심 등의 업무를 10년 동안 맡아 했다. 1991년 정부에서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부동산 신탁회사인 대한부동산신탁을 세우자 김씨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 때 대한부동산신탁이 문을 닫았고, 김씨는 ‘대한부동산경제연구소’를 열었다.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워낙 부동산 기획통으로 이름을 날린 김씨에게 일간지 기자들로부터 금융위기 상황에서의 부동산시장을 전망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그러던 중 ‘매일경제’ 기자가 김씨에게 생계형 부동산 실무 강좌를 개설해보자고 제안했는데, 그것이 고씨를 처음 만난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이다.

    김씨는 그 후 경향신문에 ‘김정렬 부동산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높여갔다. 1999년 말엔 지방 언론사 사주가 ‘부동산써브’라는 부동산 정보회사를 만들고, 김씨를 전문 경영인으로 스카우트했다. 1년간 좋은 실적을 내며 이론에 실무 경험까지 쌓은 김씨는 부동산 드림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김씨는 드림팀의 다른 구성원의 반대에 상심한 고씨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 도장가게를 찾았다. 주인은 머리가 하얗게 되어 두 사람을 맞았다. 가게 주인은 고씨에게 “내가 권한 도장을 파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꽤 고가(高價)였지만 고씨는 선뜻 도장을 새겨달라고 했다. 김씨는 성공을 향한 고씨의 강한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RE멤버스’ 날개를 달다

    김정렬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

    김정렬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오른쪽)과 고종완 RE멤버스 대표는 공통점이 많은 동갑내기다.

    김씨는 당초 단순한 친목모임으로 부동산 드림팀을 구성했다.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가 생겨 각자의 일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잦은 난상토론에선 각 분야 고수들의 모임답게 생생한 고급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성원들도 놀라워했고 결국 ‘RE멤버스(Realty Expert Members)’라는 법인을 만들고, 김씨가 대표로 취임했다.

    언론과 업계로부터 RE멤버스가 한창 주목을 받을 때 김씨는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는다. 여러 계획과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지만 김씨는 공기업을 택했다. 같은 능력을 쏟아붓는다면 나라의 부실 부동산을 회생시키고 잘 관리해 이윤을 내는 것이 더 큰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RE멤버스 대표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김씨는 고심 끝에 RE멤버스 대표 자리를 고씨에게 내줬다. 덕분에 이사 신분이던 고씨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대표직을 고씨에게 넘겨준 이유에 대해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고 사장은 스펀지 같은 사람이에요. 모든 사람과 일에 스펀지처럼 잘 스며드는 적응력을 지녔죠. 부동산 문제를 잘 꿰뚫어보고 풀어가는 능력도 탁월해요. 인적 네트워크도 고 사장을 더욱 빛나게 하죠. 얼마 전에 고 사장이 부동산에 대한 책을 냈는데, 출판기념회에 유명인사가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모두 고 사장의 컨설팅 덕분에 재산을 불린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되기 쉽지 않죠. 부동산 컨설팅을 잘못해서 의뢰인이 손실을 보게 되면 컨설턴트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는 건 어느 정도의 책임감 없이는 안 됩니다.”

    RE멤버스 대표라는 직함은 부동산 컨설턴트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고씨에게 날개나 다름없었다. 기자들에게 ‘고종완’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화려한 구성원을 자랑하는 RE멤버스의 대표라고 하면 신뢰를 보냈다. 고씨는 대학과 방송사, 그리고 백화점 등에서 강의하며 명성을 높여갔고, 점차 부자들이 만나보고 싶어 하는 컨설턴트로 자리매김했다.

    명쾌한 강의, 깨끗한 인품

    “인생에서 어떠한 사람을 만나느냐가 참 중요해요. 저는 김 단장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 여기까지 왔어요. 김 단장은 제게 두 번이나 기회를 줬습니다. 매경 강좌 때 강사로 발탁하고, RE멤버스 사장으로 인생을 업그레이드해 주었죠. 그래서인지 늘 고맙고, 동갑내기인데도 어렵게 느껴지는 상대죠.”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많다. 1956년생 동갑내기에, 대학은 다르지만 법학을 전공한 점이 같다. 만학으로 부동산학을 공부한 것도 닮았다. 김씨는 단국대에서 부동산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고씨는 건국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직장을 나와 창업한 것도 공통점이다.

    업계 선배로서 김씨가 고씨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외국과 달리 ‘투기’ 개념이 늘 따라다니기 때문에 부동산업자는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 정보가 곧 돈이기에 부동산업에 종사하면서 청빈하기란 쉽지 않다. 동시에 고객이나 언론에 한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부동산업자에게 도덕성이 그 어떤 덕목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김 단장의 중언부언하지 않는 명쾌한 강의 솜씨와 깨끗한 인품은 참으로 본받을 만해요. 술도 안 마시니 절대 흐트러짐이 없죠. 최고의 부동산 컨설턴트지만 자신의 재산 증식에는 무심해요. 자신의 부를 늘리면 남에게 떳떳하지 못해 신뢰받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죠.”

    고씨는 김씨의 반듯한 인품과 훌륭한 강의 솜씨를 닮고자 노력하고, 김씨는 집념이 강하고 언제나 노력하는 고씨를 아낌없이 이끌어준다. IMF 금융위기의 칼바람에 넘어졌던 두 사람이 아름다운 우정으로 재무장, 각각 공기업과 사기업을 이끌며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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