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처음엔 당나라 장수 설인귀를 암살하려는 애첩으로, 중반 이후엔 여장군으로 열연하며 눈길을 끈 ‘금란’ 심은진. 여성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으로 섹시한 미모를 지닌 그는 다소 차가운 첫인상과는 달리 새하얀 눈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화끈한 여인이었다.
지난해 숱한 화제를 모은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남성 시청자의 눈길을 끈 배우가 있다. 남자 배우 중심의 사극에서 여장군 ‘금란’을 연기한 심은진(27)이다. 처음엔 당나라 무장 설인귀의 애첩이 되어 그를 암살하려는 무희로 등장했고, 중반부터는 발해의 여장군으로 변신해 남자 배우들 못지않은 무술실력을 보여줬다. 금란을 보고 있으면 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그러나 실제로는 부드러우면서도 뜨거운.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에게서 금란의 여운은 찾을 수 없었다. 과거 5인조 여성 댄스그룹으로 인기를 끈 베이비복스 시절의 섹시한 미녀로 돌아와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기로 한 터라 옷차림에도 신경 쓰지 않고 메이크업도 짙지 않았지만 늘씬한 몸매(168cm, 48kg)와 커다란 눈이 단박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좀 쉬었어요. 전에는 쉴 때면 여행을 가곤 했는데, 이번엔 오늘처럼 중간 중간 스케줄이 잡혀 있어 그냥 집에서 푹 쉬었어요. 그러다 시상식에도 가고, 연말엔 친구들 만나 수다 떨고, 술 마시고, 클럽도 가고…. 이 생활도 이제 끝이에요. 새로 시작하는 오락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거든요.”
▼ 집에선 뭘 하면서 쉬나요.
“뭐든지 집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향수를 모으기 시작하면 왕창 모으고, 그러다 질리면 또 다른 걸 모으고…. 이번엔 책에 ‘필’이 꽂혀 책을 잔뜩 사서 읽었어요. 일본 소설을 좋아해요.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소설은 읽을 땐 참 슬픈데 읽고 나면 뭔가를 생각하게 해요. 마음속에 ‘짠’한 게 남아 좋아요.”
▼ 국내 작가들 작품은 안 읽나요.
“읽긴 했는데, 좀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요. 너무 어렵게 돌려서 얘기하는 게, 작가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맘에 안 들어요. 저는 감성적으로 가슴에 다가오는 소설이 좋아요.”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미리 계산하지 않는다.
“소설말고는 그림책을 많이 봐요. 고등학교 때 디자인과를 택해서 그런지 그림에 관심이 많거든요. ‘미술산책’류의 책들은 작가의 감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그 작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 고등학교 디자인과?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산업디자인과가 있어요.”
지난해 말, 심은진이 남몰래 태안에 내려가 자원봉사를 하고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 어떻게 그런 착한 생각을 하게 됐죠?
“그 사건을 모르는 국민은 없잖아요. 저도 전해듣긴 했지만 피부에 와 닿지않았어요. 그런데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자원봉사하는 걸 보고서 정말 심각한 상황이란 걸 알았고, 작으나마 내 힘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방송을 보고 저처럼 결심한 분 많을 거예요. ‘라인업’에서 참 좋은 일을 했어요.”
지난 12월27일, 두 친구와 함께 무작정 태안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내려가던 날 현지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손을 도왔다.
▼ 추운 겨울날 온종일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일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요.
“대조영 촬영할 때는 더 힘든 일도 많았는걸요. 하루 종일 웅크린 채 돌을 닦다 보니 나중엔 어깨가 저리고 팔도 아팠어요. 특히 손가락 끝이 심하게 아리더군요. 일을 끝내고 나서 서울까지 제가 운전하고 올라왔는데 온몸이 쑤시고 손가락이 부어서 혼났죠.”
▼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불편하지 않았나요.
“금란 연기할 때와 딴판으로 스타일을 확 바꿔서인지 금세 알아보지는 못하던데요. 제 옆에서 돌을 닦던 아저씨가 저를 한참 보시더니 ‘거, 날마다 칼 들고 싸우는 처자 아니냐’고 해요. ‘그렇다’고 하니까 ‘만날 싸움질만 하는 여자가 여기서 돌 닦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함께 간 친구가 돌을 닦으면서 ‘욕이 나온다’고 했어요. 도대체 배를 어떻게 관리했기에 자연을 이토록 처참하게 망쳐놓을 수 있느냐고, 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고 분통을 터뜨렸죠.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이왕 좋은 일 하러 왔으면 기분 좋게 돌 하나라도 더 닦고 가야 행복해진다. 이게 돌이 아니라 엄마의 얼굴, 조카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닦으라’고 하셨어요.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어요.”
▼ 평소에도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은가요.
“저보다도 베이비복스 멤버였던 (간)미연이가 정말 많이 해요. 미연이네 동네에 보육원이 있어요. 버려진 아이, 학대받던 아이, 장애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인데, 몇 년째 그곳에 가서 목욕도 시켜주고 놀아주고 그래요. 저도 연말에 같이 갔어요. 봉사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에요. 연예인은 팬들로부터 인형 선물을 많이 받는데, 그 인형들을 집에 진열한다고 무슨 업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걸 더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눠주는 것도 봉사죠.
드라마 ‘대조영’에서 금란(심은진 분)은 걸사비우(최철우 분)와 애틋한 사랑을 나눴다.
▼ 이력을 보니 홍보대사를 많이 했더군요.
“집에 있는 홍보대사 패만 15개쯤 돼요. 뭔지 모르고 한 것도 있어요. 그런데 홍보대사 패를 보면 ‘나쁘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뭐 하나 잘못하면 열다섯 곳이 욕을 먹게 되잖아요. 그래서 나쁜 짓은 하고 싶어도 못해요(웃음). 2004년에 서울시 건강엑스포 홍보대사도 했는데, 그때 서울시장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였어요. 그때 함께 차 마시고 시청 구경하던 생각이 나네요.”
▼ 지난 대선 때 연예인들의 대선후보 지지선언이 줄을 이었는데, 혹시 이명박 후보 측에서 연락은 없었나요.
“그럴 나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는 관심도 없고요.”
변신의 귀재?
심은진에겐 ‘대조영’의 금란 역이 첫 연기였다. 처음엔 연기가 어색하다는 비난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평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사랑하는 걸사비우를 위해 온몸으로 화살을 대신 맞으며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적에게 포위당한다. 금란 ‘장군, 날 업어주십시오. 그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걸사비우, 금란을 업고 달려간다. 금란의 등 뒤로 무수히 날아와 꽂히는 당나라군의 화살들. 서서히 죽어가는 금란…. 대본에는 이게 전부인데, 이걸 찍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어요. 최철우 선배(걸사비우 역)는 이틀 동안 저를 업고 뛰었으니 죽을 뻔했죠. 미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체중을 줄이려고 밥도 안 먹으려 했는데,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저절로 입으로 들어가니….”
▼ 연기자들은 작품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던데, 몸과 마음이 여전히 금란으로 남아 있진 않나요.
“저는 훌훌 잘 털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이제 금란이는 안녕!’ 하면 그때부터 제게 금란은 없어요. 가수, 특히 댄스가수는 이 곡에선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가 다른 곡에선 또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빨리 변신할 수 있어야지요. 10년 동안 그런 일을 반복했잖아요. 털 건 빨리 털고 가져갈 건 빨리 가져가자는 주의죠. 그래서 마지막 촬영이 끝나자마자 심은진으로 돌아오기 위해 헤어스타일부터 바꿨어요. 옷 스타일도 바꾸고, 손톱도 붙이고….”
▼ 지난 연말에 연기대상 신인상을 기대했을 텐데요.
“주위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작년엔 주연급 신인이 많았잖아요. 저는 조연이었고. 그래도 동료 연기자들이나 감독님들이 ‘당연히 상 받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고 하셨을 땐 ‘아, 나를 인정해주는구나’ 싶어 고마웠어요.”
나를 버리고…
▼ 드라마 출연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전에도 영화나 드라마 출연 제의는 있었어요. 썩 끌리는 게 없어서 거절했죠. 솔로 2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조영’ 측에서 배역 하나가 비었다며 섭외가 왔어요. 처음엔 ‘웬 사극?’ 했는데, 캐릭터가 워낙 좋아 오디션을 봤어요. 그런데 김종성 감독님은 사극배우만 고집하는 분이었어요. 저를 보시더니 ‘가수 출신이잖아’ 하며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무튼 오디션을 봤는데, 다음날 다시 오라면서 ‘한번 해볼래? 각오는 돼 있어?’ 하셨어요. 주위에서 가수 출신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존심이 상해 ‘두고봐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나도 나름대로 10년 동안 베이비복스를 하면서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는데…하는 심정이었죠.”
‘베이비복스’는 10년 동안 한국과 중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몸으로 때우는 역할이었죠. 전투 장면이 많아 상처를 많이 입어요. 칼싸움을 하다 손을 다치는 건 보통이고, 액션배우가 연기를 하다 팔꿈치로 제 입술을 쳐 터진 일도 있었어요. 가장 힘든 건 한여름에 요동성 함락시키는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 당나라 장수와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34℃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이었어요. 칼싸움은 힘들지 않았지만,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촬영하니까 진이 다 빠지더라고요. 나중엔 병든 닭 꼴이 됐죠.”
▼ 날씨만 좋으면 남자랑 맞붙어도 할 만하다는 건가요.
“막대기 하나만 쥐어주면 이길 것 같아요. 무술감독님도 저더러 계속 무술을 배우라고 하셨어요.”
▼ 무술연습은 얼마나 했죠?
“촬영 들어가기 6개월 전부터 무술, 승마, 한국무용을 배웠어요. 촬영하면서는 거문고도 배웠고요.”
▼ 초반에 사극치고는 섹시한 자태를 보여줘 ‘눈요깃거리 캐스팅’이란 말도 있었잖아요. 연기에 대한 비난도 있었고. 마음고생이 심했겠어요.
“아뇨, 마음고생 안 했어요. 눈요깃거리라는 건 맞는 이야기니까요. 남성 시청자의 눈길을 끌 섹시한 여자 역할이 필요했고, 그래서 절 넣은 거잖아요. 연기력도 그래요. 처음부터 칭찬받을 거란 생각 안 했어요. 제가 봐도 정말 어색했어요. 연기를 계속하면서 ‘내가 버려야 할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과거의 제 이미지, 모든 욕심과 생각을 버리니 어느 순간 ‘아, 이거구나’ 하는 감이 오고, 그때부터 연기가 편해지더라고요.”
“악성 리플은 애교”
지난해 드라마 ‘커피프린스’에서 중성적 매력을 발산한 윤은혜도 베이비복스 멤버였다. 한 무대에 서다 지금은 연기자로서 경쟁하는 사이가 됐다. 당장은 후배인 윤은혜가 연기에서 한발 앞선 상태. “윤은혜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느냐”고 묻자 깔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웬 경쟁의식? 은혜는 우리 막내예요. 우린 다른 댄스그룹이랑 달라요. 10년 동안 정말 온갖 아픔을 함께 겪었거든요. 안티 팬들로부터 달걀 세례, 면도칼, 혈서도 받아보고 별별 일을 다 겪었죠. 연기를 시작하면서 받은 악플(악성 리플)은 애교예요. 그래서 우리 사이엔 누구보다 끈끈한 정이 있어요. 서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에요.”
▼ 지난해 여름에도 스포츠 스타와 염문설이 나도는 등 종종 스캔들이 있었잖아요. 스캔들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던데, 그 말이 사실이면 보도에 불만이 많겠군요.
“스캔들 때문에 억울할 건 없어요. 사실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아닌 경우는 금방 사라지니까요. 스캔들이 난다는 건 그만큼 제게 관심이 있다는 거니까 고맙게도 생각해요. 그런데 간혹 오버하는 기자들이 있어요. 최근에도 제가 1년 넘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연예인이 아니라고만 했거든요. 그 친구는 일반인이라고 얘기하기도 애매해요. 그런데 제 남자친구가 회사원이라는 기사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친구로부터 ‘너, 양다리 걸치고 있느냐’고 묻는 전화가 왔어요.”
“둘 다 아니에요.”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만 묻기로 했다.
▼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요.
“그냥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이해해줬으면 좋겠고요. 예전에 친구와 성격차로 헤어진 경우도 있어요. 이제는 서로 친구가 돼주는 그런 연애가 좋아요. 제가 힘들 때 수수방관해도 안 되겠지만, 너무 깊게 고민해서 같이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친구처럼 ‘힘들지? 다 이해해. 한잔 마시고 털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이가 좋아요. 지금, 그런 친구여서 오래 가는 것 같아요.”
평생 춤꾼으로 남고 싶어
심은진은 고교 2학년이던 1998년 10대 댄스그룹인 베이비복스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2006년 베이비복스가 해체된 후에도 솔로 앨범을 내며 가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기획사에 들어가면서 춤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죠. 기획사에서 5명의 여성 멤버를 뽑아 데뷔를 준비시켰는데 무산되고 말았죠. 그래서 백댄서라도 하겠다며 친구랑 여기저기 다니다 베이비복스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 춤의 매력은 어떤 건가요.
“그저 춤출 때의 그 느낌이 좋아요. 말로 설명하기 참 힘든데, 춤출 때 상쾌한 기분, 행복한 기분을 느껴요. 노래를 하거나 연기를 하면서는 아직 한번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춤추는 걸 봐도 가슴이 뛰어요.”
▼ 가수, 연기자보다 춤꾼으로 남고 싶겠네요.
“그렇죠. 저는 그간 주로 섹시 댄스를 췄지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원래는 남자들의 파워 있는 춤, 힙합, 팝핀댄스를 좋아하는데…. 이젠 나이가 있어 전처럼 추지는 못하겠지만 욕심은 있어요. 해외에서 춤을 더 배워서 힘닿는 대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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