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 주식회사’ 살리려면 세계화 끌어안아라”
- “규제는 ‘유저 프렌들리’로, 경쟁의 場은 공정하게”
- “한국, 금융산업 강화로 제조업 의존도 줄어들 것”
- “자본만 원하고 투자자는 원치 않는 정신 버려라”
- “HSBC의 외환은행 인수엔 절대 개입 안 해”
-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능통한 코스모폴리탄 가족
▼ 1945년 영국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출생<br>▼ 요크공작 왕립군사학교 수학<br>▼ 1968년 HSBC 입사 후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 홍콩 근무, HSBC 말레이시아본부 CEO, 홍콩 HSBC CEO<br>▼ 홍콩항셍은행 회장, 스와이어 퍼시픽사 회장, 홍콩상공회의소 회장<br>▼ 現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 회장,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고문
공동위원장에 임명된 지 열흘 만인 1월4일 방한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및 인수위 관계자들을 만나 향후 활동 계획 등을 상의한 뒤 8일 출국했다. 한 달 계획으로 중국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돌며 외자유치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는 인수위 사무실에 머물지 않고 출국한 데 대해 “내 임무 가운데 하나가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라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게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른 눈의 이 은발 신사는 지난 연말 정가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외국인이 인수위 요직에 발탁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대통령 당선자의 역점 사업을 다룰 특별기구의 공동 수장을 맡았기 때문.
그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공동위원장 선정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던 그가 방한하자 기자들이 공항에서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붙었고, 1월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200여 명의 내외신 기자가 취재경쟁을 벌였다.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과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은 엘든씨는 현재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 Dubai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 회장을 맡고 있는 글로벌 금융 전문가다. 국제적 컨설팅 전문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고문, 노블그룹 회장, 홍콩 MTR 이사로도 활동하며 전세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그가 한국의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요직을 맡은 배경이 흥미롭다.
1992년 처음 서울을 방문한 뒤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온 그는 2002년 서울시에서 주관한 서울국제경제자문회의(SIBAC) 총회 의장을 맡으며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당선자(MB)와 연을 맺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교유하며 MB의 개방적 금융 마인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MB가 엘든을 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감으로 찍은 것은 지난해 4월 두바이를 방문했을 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에서 호주 출신의 두바이 요직 인사를 소개받자 MB는 그에게 근무 배경과 환경, 만족감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다고 한다. 2000년부터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경제고문을 맡은 바 있는 MB는 이때 외국인을 요직에 앉힌 두바이의 결정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 이후 6월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뒤 한반도대운하에 투자하겠다며 외국인들이 접촉해오자 MB는 엘든에게 자문역을 부탁했고, 그는 기꺼이 돕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 며칠 사이 우리집에서는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서양 닉네임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공동위원장 임명이 발표된 뒤(한국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전화를 걸어)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어댔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주 기뻤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다소 놀란 것은 빼놓더라도).”(웹 블로그에서)
엘든 위원장은 MB와 출신배경이나 성장 과정, 성격, 일처리 방식, 비전 등이 비슷하다. 스코틀랜드 시골의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왕립군사학교를 중퇴한 뒤 잡일 치다꺼리하는 하급직원으로 시작해 세계적 은행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19세 때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중동과 홍콩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한 끝에 2003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선정 ‘올해의 홍콩 사업가’에도 선정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35세에 현대건설 사장이 된 뒤 대통령에 오른 MB도 엘든의 이런 성장배경에 동류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와 출신배경 비슷해 동류의식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왼쪽)와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엘든 공동위원장이 1월5일 두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MB는 1월5일 엘든 위원장을 만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큰 도움을 달라”며 국가경쟁력 강화와 외자유치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당부했다. 엘든 위원장은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와 한국의 일처리 차이점을 설명하고 한국만의 독특한 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겠다. 그것이 한국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엘든 위원장은 또 MB에 대한 우호적 시각을 견지하며 “이 당선자는 시장을 개방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의 비전과 추동력, ‘캔두(can do)’ 정신을 존중한다. 그도 나를 존중하고, 내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말만 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른 견해가 있으면 그것을 그에게 전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MB는 실용주의를 모토로 ▲성장률 연 7%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진입을 뜻하는 ‘747공약’을 내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융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1월9일 금융계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MB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금융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엘든 위원장도 이 맥락에서 활용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과연 엘든 위원장은 MB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까. 엘든 위원장은 여러 차례 ‘규제완화’와 ‘개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국경제를 위한 긴급 처방으로 제시했다. 이에 재계뿐 아니라 일반인도 그의 처방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여건은 좋지 않다. 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 여파로 세계 금융 리스크도 커지고 있으며, 원자재 가격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한국이 경쟁력을 강화해 금융 및 산업 선진국으로 가는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신동아’는 그가 홍콩에 머무르던 세밑과 연초에 가진 두 차례의 독점 e메일 인터뷰, 국내 기자회견 및 미팅, 그의 웹블로그(www.eldon-online.com)에 공개된 글, MB 측 인사 등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짚어봤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아”
▼ 외국인이 인수위에서 주요 임무를 맡은 것은 이례적이다.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반외국인 정서가 짙다.
“많은 나라가 대부분 자국민을 통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한 일이다. 내가 어떤 가치 있는 것을 한국에 가져다줄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 한국인이 많다고 본다. 내가 모든 답(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내 의견(특정 사안에 대한 유일한 목소리)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달라. 다만 내가 여러 나라에서 일하며 살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한국에 주고 싶다. 한국민을 등지는 게 아니라 한국민과 협력해서 일하는 데 목표를 두고 싶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나는 공동위원장이라는 자리에 대해 어떤 착각이나 망상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어떤 마법도, 점쟁이의 수정구슬도 없다. 다만 어떤 편견도 없이 열린 마음과 객관적인 사고를 갖고 잠재력을 지닌 나라에 가고 싶다.”(웹블로그)
삼성이 두바이에 짓고 있는 세계 최고층 건물 ‘버즈 두바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도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에 빠졌다가 살아난 세계의 사례들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그들은 왜 성공하게 됐나. 성공의 첫 번째 요소는 변하려는 욕구라야 한다. 수수방관하고 포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 이명박 당선자가 당신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 식고 있는 외국 투자 열기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보나.
“한 사람을 임명한다고 해서 투자 열기가 완전히 되살아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인 스스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외국인 투자를 원한다면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해야 한다.”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최근 3년 연속 감소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에 신고한 외국인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6.5% 감소한 105억900만달러(약 9조8800억원)였다. 1년 전보다 6.5% 떨어진 수치다. 2004년 127억9200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에 서비스업에만 57억7000만달러의 투자가 이뤄져 전문가들은 올해 외국인의 투자 확대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한다.
“규제철폐와 개방 절실”
▼ 어떻게 해야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나.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가 성장하는 대부분의 나라는 경제를 개방하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했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가 하락한다는 것은 경제 성장이 느려진다는 의미다. 규제 철폐가 전적으로 바람직한 조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규제를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으로 만들고, 정말로 공정한 장(場, a genuine level playing field)을 창출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규제 철폐(혹은 완화)와 개방이 금융선진화로 이어진다는 성급한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KOTRA 산하 외국인 투자유치 전담조직인 ‘인베스트 코리아’의 정동수 단장은 “규제 완화와 개방은 투자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문제다. 더 개방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방식으로 개편돼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박원암 홍익대 교수(무역학)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겠지만 넘어야 할 고비가 너무 많아 숙고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폈고, 전창환 한신대 교수(무역학)는 “금융산업 발전이 21세기 서비스업의 핵심이고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개방과 규제 완화가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진 않는다.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거나 일반 제조업도 금융업으로만 몰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도 “금융산업을 강화한 영국에서 자동차산업이 설 자리를 잃었고, 미국에서도 군수산업과 우주산업, IT 일부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라고 덧붙였다.
엘든 위원장은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개방과 경쟁력 시스템은 제조업체가 돈과 서비스를 더 값싸고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경제는 농업, 제조업을 거쳐 서비스업 분야로 진화해간다. 서비스 경제는 성공적인 금융섹터를 확보할 것이다. 물론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다는 부정적 효과는 있겠지만.”
▼ 외자 유치를 위한 구체적 정책 수단을 갖고 있나.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은 중국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다른 아시아 투자처를 찾을 때 한국이 거기에 포함돼야 한다. 투자자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 환경이 개방되고 투명한지, 경제활동이 활발한지,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지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는 한국이 그런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국가경쟁력강화특위는 이런 측면들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 투자가 투자자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을 모색할 것이다.”
엘든 위원장의 웹블로그.
“만약 한국 기업들이 외국에서 얻은 투자수익을 한국으로 송금한다면 비판을 받는 게 아니라 투자기업의 일상적 상거래로 여겨질 것이다. 보다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가령 삼성과 LG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한국으로 송금하지 못하게 한다면 절대 좋은 소리 못 들을 것이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인수위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 현재까지 엘든 위원장을 통해 한국 투자 의향을 밝힌 투자자가 있나.
“외국인이 인수위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외국 투자자가 접촉해왔고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의향을 밝힌 투자자는 없다.”
전문가 수준의 ‘한국 이해’
그런데 과연 그는 한국 상황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MB가 그를 단지 상징적 대외 과시용 카드로 임명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1월6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부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잘 안다”고 말했다.
▼ 2002년부터 4년간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 의장으로 있을 때 어떤 임무를 맡았나. 그때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는가.
“SIBAC에서 우리의 임무는 서울시가 고려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1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만 우리는 서울시가 주의 깊게 생각할 거리를 줬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엘든 위원장은 SIBAC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고,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다양한 외국 전문가들을 서울시에 소개했다. 또 서울시의 외국인 주거환경 개선, 상암DMC 마케팅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지난해 6월12일 엘든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세계화 시대의 한국 금융산업’이라는 주제의 국제금융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당시 그의 연설 주제는 ‘A-B-C처럼 쉽게 세계화 마스터하기’였다. ‘A-B-C’란 국제적 사고방식(Atti-tudes)-국제적 브랜드(Brand)-국제적 경쟁력(Competitive)을 말한다. 이후 그는 이 행사에서 받은 느낌을 웹블로그에 이렇게 올렸다.
“한국은 세계화를 실행하는 데 대해 약간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세계에 내보내고 있다. 한편으로 한국 정부는 한국경제가 크게 개방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와 ‘그들’을 구별한다. ‘최근의 증시 활황에서 이익을 누리는 이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고 국내 투자자들은 돈을 잃고 있다’라는 일부 관리들의 발언도 같은 시각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인용하면 한국 사람들은 ‘자본은 원하지만 투자자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주식회사(Korea Inc.)’를, 눈앞의 전망에 대해 흥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신부(bride)에 비유하면서 ‘세계화에 따른 기회를 끌어안으려는 자발성’을 지닌 두바이와 비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두바이는 ‘국제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반대쪽 극단으로 가 있는 곳’이다. 다시 그의 지적에 귀 기울여보자.
“한국은 그토록 원하는 금융 허브가 될 수 있는 이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먼저 한국의 지리적 위치와 양쪽에 맞붙은 경제권을 보자. 외국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좋은 말은 ‘말’일 뿐이다.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행동’이다. 세계화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이득임을 알아차린 나라 사람들의 욕구다. 그들은 외국인의 국내 시장 참여가 위협이 아니라 자국 미래에 대한 신임투표라고 믿는다.”
“대다수가 개방 혜택 입을 것”
이처럼 한국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그가 지금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종합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한 처방을 내릴 수 있을까.
▼ 한국경제는 투자 부진, 부동산 가격 급등, 실업률 상승, 경제 양극화 현상 등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경제 성장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장은 수요를 창출하고, 취업시장을 개선하며, 다른 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성장을 하려면 경쟁력이 필요할 텐데, 한국은 금융 등 국제 경쟁력에서 뒤져 있는 부문이 많다. 그런 부문에서 경쟁력을 얻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경쟁 그 자체다. 경쟁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삼성과 LG가 자신들이 택한 시장에서 하룻밤 새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 ‘고통’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가.
“고통은 여러 형태로 올 수 있다. 경쟁에서 뒤지는 사람은 고통을 느낄 것이다. 또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뒤처져서 고통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해도 대다수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 요즘 중동과 아시아권의 일부 국가들은 외환보유고 가운데 일부를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로 만들어 이익을 챙기고 있다. 한국시장의 어떤 요소가 그런 국부펀드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나.
“국부펀드와 다른 투자 펀드에 차이는 없다. 누구든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안전하게 수익이 창출되기를 원한다. 그들이 한국시장에서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있을지 여부는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바다.”
영국 런던의 ‘더 시티’가 전세계 주요 금융센터의 경쟁력을 평가하기 위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금융센터지수(GFCI)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46개 금융센터 가운데 서울은 43위에 그쳤다. 런던이 1위였고 뉴욕 홍콩 싱가포르가 그 뒤를 이었으며, 두바이는 25위였다.
▼ 서울의 GFCI 순위가 너무 낮다.
“같은 지수에서 아일오브맨(the Isle of Man·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영국령)이 21위에 올랐다. 이곳은 새로 등장한 금융센터다. 핵심은 이것이다. 순위는 하나의 인식일 뿐이다. 인식은 바뀌는 것이다. 43위에서 5위로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매년 5계단 혹은 10계단씩 상승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24위에 올라 있는 상하이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 한국의 금융 허브 모델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이 독창적인 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이런 ‘창조’는 다른 금융센터로부터 최상의 경험들을 취해야 가능할 것이다. 두바이가 특별한 비교대상이 된다고 본다.”
▼ 서울은 그런 도시들과 제도, 통화, 언어 등이 다르다.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국제어인 영어 사용도도 낮다.
“그런 차이가 ‘할 수 없다’를 뜻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늘 진보한다. 그런 차이를 크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를 보는 것이다. 앞을 보는 게 아니다.”
“두바이에선 모든 것이 가능”
▼ 한국이 두바이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어떤 요소들인가.
“두바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아주 많다. 그러나 두바이와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차이점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두바이가 ‘아주아주’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바이는 왕실의 비전과 리더십에 의해 개발되고 있고 인구 140만 중 80~85%가 외국인이다. 두바이가 성공한 것은 경제가 열려 있고, 투명하고 다양한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또한 물류 허브로서 입지를 굳힌 후 금융 허브로 눈을 돌려 추진했다. 두바이에 진출한 금융기관에는 세율 0%에 가까운 세제혜택을 줬다. 그뿐만 아니라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규제 당국이 있었다. 한국이 특별 금융지역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두바이의 이런 경험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 이명박 당선자는 종종 두바이의 상상력을 강조했다. 당신은 두바이의 상상력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상상력의 경계는 상상하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 두바이 사람들은 뭐든 잘못될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미래지향적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삼성물산이 건설하고 있는 세계 최고층 건물로 두바이의 상징이 된 ‘버즈 두바이’, 돛단배 모양의 초호화 칠성 호텔 ‘버즈 알 아랍 호텔’, 야자수 모양으로 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섬 ‘팜 아일랜드’, 사막의 찌는 더위에서도 실내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스키 두바이’….
시(詩)와 함께 자랐고 모든 영감과 상상력, 창의력을 시에서 얻는다는 셰이크 모하메드는 1995년 왕세자로 지목되자마자 “몇 년 있으면 바닥날 석유만 믿고 있을 수 없다. 석유 외의 곳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신속하고 획기적으로 벌어야 한다”며 금융 및 관광산업 중심의 21세기 비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바이의 성공 모델을 무작정 따르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1월8일 ‘두바이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제목의 정책보고서를 내면서, 무분별한 두바이 대안론을 경계했다. 이 보고서를 정리한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탈석유 경제의 대안으로 비치는 두바이 모델이 오히려 거대한 석유산업을 기반으로 건설됐고, 각종 제도적 규제완화는 두바이의 전제국가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며 두바이 모델은 생태적으로나 민주주의 원칙상으로도 우리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난이 자랑스럽다”
엘든 위원장은 스코틀랜드의 고도(古都) 인버네스 태생으로 부모가 모두 하급 군인이었다. 부모의 영향으로 그는 일반학교를 가지 않고 국가가 운영하는 요크공작 왕립군사학교를 다녔다. 이 군사학교에는 아주 엄격한 군사훈련 커리큘럼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부모님 덕분에 그 학교에 들어갔다. 군사학교에서 자제심과 독립심을 길렀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정정당당한 태도를 믿으며,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질적이 되곤 한다. 사람뿐 아니라 아마존닷컴 같은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은 마찬가지다. 그 회사가 내 명의를 도용해 항의 편지를 보냈는데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2007년 12월 초에도 편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몇 년 전에는, 돈 지급을 늦춰서 작은 기업을 속인 대기업에 맞서 싸운 적이 있다. 나는 내가 그 일을 해결하는 데 그다지 큰 기여를 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뭔가 좋은 일을 했고, 기분이 상당히 좋았던 경험이 있다.”(웹블로그)
가정 형편 탓에 이 학교를 중퇴한 그는 19세(1964) 때 런던의 호주금융그룹 지사에서 금융계 경력을 쌓았고, 4년 뒤 영국계 HSBC 그룹 소속이 되어 두바이로 옮겼다. 이어 1979년 홍콩 HSBC 본부에서 특별 프로젝트 담당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사우디 브리티시은행 상무이사로 선임됐고, 같은 해 전무이사가 됐다. 1988년에는 말레이시아 본부에서 CEO가 됐고, 1992년 홍콩으로 다시 돌아갔다. 홍콩 항셍은행 회장, 스와이어 퍼시픽사(社) 회장, 홍콩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했고, 1996년 홍콩 HSBC CEO, 1999년 회장을 거쳐 2005년 5월 은퇴했다. 그는 HSBC그룹에서 37년을 보냈다.
최근 금융권에선 HSBC 회장 출신인 엘든 위원장이 인수위에 참여해 HSBC의 외환은행 인수가 본격적인 수순 밟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더욱이 MB의 강력한 외자유치 의지를 감안하면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와 HSBC 사이에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여기에 엘든 위원장이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엘든 위원장은 “그런 시도는 꿈에서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인했다.
“나는 HSBC그룹을 떠난 뒤 내 생활을 즐기고 있다. HSBC 주식을 보유한 것, 그리고 그곳에 몇몇 친구가 있다는 것말고는 HSBC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세계화 가족’
엘든 위원장에겐 2남1녀가 있다. 모두 마케팅과 PR 분야에서 일한다. 장남(30)과 딸(25)은 홍콩에, 차남(28)은 베이징에 산다. 두 아들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만다린)에 능통하다. 딸은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 능하다. 아내는 페루 출신으로 남아메리카계와 스페인 혼혈이다. 1973년 두바이에서 아내를 만나 2년 후 결혼했다.
만나면 주로 스페인어로 대화한다는 이 가족은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여러 도시를 삶의 근거로 삼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의 전형이다. 엘든 위원장의 개방적 사고의 뿌리 또한 가족이 아닐까.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세계를 주유하고 있는 엘든 위원장은 한국 투자유치 활동을 벌인 뒤 2월 대통령 취임식 때 다시 방한할 예정이다. 그가 돌아와 펴놓을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그리고 새 정부에서 그가 맡을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그때는 서울의 사무실을 지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