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 자녀 ‘위장취업’, 법적 문제 없지만 도덕적 비난 못 면해
- BBK 사건은 ‘써놓은 것 외엔 더 말하지도 답하지도 말자’ 다짐
- 주어와 술어 빼는 이 후보 말버릇 때문에 BBK 사건 더 꼬여
- 수행 대변인 하는 날엔 이 후보 말실수할까 초긴장
- 발표내용 중 틀린 것 발견하면 다음날 묘한 어법으로 수정
- 다운증후군 16세 딸, “한나라당 대응이 강해져야 해!” 문자 메시지
● 1963년 서울 출생<br>● 서울대 법학과 졸업<br>●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부산지법·인천지법·서울 행정법원 판사<br>●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여성특보,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대변인<br>● 現 한나라당 대변인,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나 대변인은 요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난해 12월19일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인기검색어 상위권에 맴돌았다. ‘나경원 미니홈피’는 네이버의 실시간 뉴스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네티즌의 호들갑에는 이유가 있다. 2002년 16대 대선 때 판사 출신으로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법률자문특보’로 전격 발탁됐을 때만 해도 아나운서 같은 단아한 외모와 서울대 법대 출신 전직 판사였다는 것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선거기간 내내 이 후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미모의 여성 특보쯤으로 인식됐을 뿐이다. 하지만 17대 대선에선 달랐다. BBK 사건 등 각종 의혹으로 ‘이명박 대 반(反)이명박’ 전선이 형성돼 역대 어느 대선보다 치열한 선거전을 치러야 했다.
나 대변인은 네거티브로 얼룩진 17대 대선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이명박의 ‘입’이 아니라 ‘백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활약이었다. 그는 이 후보 자녀의 ‘위장취업’ 문제에 대해 당의 방침대로 “별 문제가 없다”는 논평을 냈다가 3시간 만에 후보가 고백과 사과를 하는 바람에 “거짓말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법률가의 양심으로 해명하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근거 없는 얘기는 절대 발표 안 해”
그는 선거 기간 내내 후보의 도덕성 문제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 여론조사에서 ‘대변인 선호도 1위’로 선정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정가에서는 ‘대선 때 더욱 쓰임 받는 여성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BBK로 한창 다툴 때 신당 쪽에서 ‘하다하다 할 말이 없으면 판사 출신 대변인이 거짓말을 한다’라고 했어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전직을 들먹이기에 섭섭했죠. 제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어요. 저는 대변인 하면서 나름대로 원칙을 지켰다고 생각해요.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분이 제게 와서 ‘이러이러한 걸 논평에 담아달라’고 요구했어요. 저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선 과감하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어요. 근거 없이 심증만으로 하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법률상 입증할 수 있고 적법한 조사를 거친 증거만을 인정하는 증거재판의 중심에서 일하던 판사 출신다운 얘기였다.
▼ 대변인으로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점이 후보 자녀의 위장취업 문제였을 텐데, BBK로 묻힌 감이 있지만 여론의 지탄을 받고 도덕성에 흠집이 나지 않았습니까.
“위장취업에 대해 제가 해명하는 논평은 했으나, 사실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만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신당측 주장이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도덕적인 문제와 법률적인 문제는 달라요. ‘탈세’라고 세법 위반을 자꾸 얘기하는데, 실제로 나중에 세금을 냈잖아요. 세법 위반에 대해선 다른 해석이 필요한데, 신당에서 탈세니 뭐니 하면서 ‘탈법이고 불법’이라고 몰아붙였어요. 그런데 법률 위반이라기보다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죠. 정치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국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비난받을 수 있어요.”
▼ 보통 사람들에게는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요.
“그렇죠. 보통 사람들에겐 도덕성의 의미가 더 크죠. 정치와 법이 다른 게 바로 그런 점이에요. ‘정서법’이라는 말이 있듯이 국민에게는 도덕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므로 위장취업 문제는 어찌 보면 지탄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수행, 하루는 논평
지난해 11월30일 제주 유세를 위해 김포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명박 후보가 나경원 대변인에게 얘기하고 있다.
“전직이 지금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고 봐야겠죠. 필요 없는 과장은 절제하려고 했어요. 근거를 가지고 가급적 절제하면서 대변을 하다보니 ‘과감한 공격을 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자제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강경하고 자극적인 단어가 대중에게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을 순 있겠지만 거칠고 독설적인 표현은 설득력이 떨어지거든요. 대변인 된 지 얼마 안 돼 TV에서 제가 한 논평을 본 적이 있어요. 자극적인 표현이 담겨 있었는데 제가 들어도 싫더라고요. 여기 분들은 ‘카타르시스’라고 말하는데 저는 싫었어요.
BBK 사건만 해도 그래요. 언론이 제가 한 말의 일부분만 떼어 옮기는 바람에 오해받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BBK에 대해서는 써놓은 것말고는 더 말하지도 대답하지도 말자’고 다짐했어요.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짧게 말했어요. 괜히 부연설명을 하다 보면 종합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부분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죠.”
언론과 신당이 ‘앞뒤를 안 따지고 일부분만 떼어내어 이해한다’는 말을 하기에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공개된 ‘광운대 특강’ 동영상에 대해 물어봤다.
▼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이 후보의 육성이 담긴 생생한 동영상이 등장했을 때 대변인으로서 무척 당혹스러웠을 텐데요. 아무리 말의 일부분만 떼어 편집했다 하더라도 “저는 요즘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했습니다. 금년 1월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라는 말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지요.
“‘BBK를 설립했다’고만 했지 ‘내가 설립하였다’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특강 하루 전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선 ‘BBK 사장은 김경준이고, 김경준을 영입했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어요. 당선인을 옆에서 모셔 보면 자주 말씀이 꼬이는 걸 알 수 있어요. 주어와 술어가 안 맞는 편이에요. 평소 그분의 말의 뉘앙스와 문맥에 비춰 ‘(BBK를) 내가 설립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신당과 언론이 딱 그 부분만 떼어내 보여주니 오해가 생긴 거예요. 이명박 당선인의 말을 듣다 보면 갑자기 주어가 사라질 때가 많아요. 주어를 빼고 말해 자신의 얘기처럼 들리게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정말 국민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나 대변인은 한숨을 쉬면서 답답해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평소 말투를 명쾌하게 예로 들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기색이었다.
▼ 논리적이고 차분한 나 대변인으로선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후보가 답답하셨겠어요.
“맞아요. 후보께 ‘이 정도만 얘기하면 좋겠어요’ 하면 후보는 ‘이렇게 하면 안 될까’라고 고집을 안 꺾으시는 거예요. 결국 하고 싶은 대로 말씀해버리죠. 선거 초반에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매우 높을 때가 있었잖아요. ‘말실수만 안하면 된다’고들 했어요. 두 명의 대변인이 하루는 수행을 하고 하루는 논평을 담당하는 식으로 돌아가며 일했는데, 수행 대변인을 하는 날은 초긴장 상태가 돼요. 저는 기자들과 친한 편이었는데, 후보를 모실 때는 기자만 나타나면 긴장이 되더라고요. 후보가 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힐 때 보면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는 거예요.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그런 거죠. 그땐 걱정했는데, 지나고 보니 자신의 스타일대로 솔직하게 말한 게 오히려 국민에게 먹히지 않았나 싶어요.”
▼ ‘말실수’ 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르는데, 노 대통령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언변이 더 화려하죠. 두 분 다 하고 싶은 얘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이죠. 노 대통령이 화려한 언변과 거침없는 말솜씨라면, 이 당선인은 어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매끄럽지도 않은 편이죠. 좀 텁텁한 말씨라고 할까요.”
▼ 2002년에 이회창 후보 특보를 하셨는데, 이 후보의 말솜씨는 어땠나요.
“딱딱하고 엄격하고, 준비된 언어만 쓰는 편이었죠. 수행하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 이명박 당선자는 성격이 좀 급한 편이지요? 경상도 특유의 다혈질인가요?
“솔직한 편이죠. 뭘 잘 숨기지 못해요. 저희가 ‘이렇게 말씀하면 손해 봅니다. 후보께선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말씀하지 마세요’라고 해도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죠. 또 말씀을 너무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요.”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보통의 정치인과 달리 튀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일각에서는 이 당선자가 오랫동안 비즈니스 현장에 있었고 서울시장을 지낸 탓이라고 한다. 우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이 길고 퉁명스럽다. 경험이 워낙 많다 보니 말이 길어지다 못해 나중에는 주어와 술어를 찾기 어려울 지경으로 꼬이는 경향도 있다. 또한 직설적으로 생각을 툭툭 던지다 보니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어절만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현대측 관계자는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투가 주어와 술어 없이 의미만 툭툭 던지는 식이었는데, 이 당선인이 꼭 닮았다”고 귀띔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들러 호떡 사 먹어
나 대변인은 “이명박 당선인의 말투는 서민적으로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식사하는 걸 보면 굉장히 서민적이란 걸 느낄 수 있어요. 테러 위험이 있다고 해도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서 호두과자나 호떡을 직접 사 드세요. 유권자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호두과자나 호떡을 좋아하시거든요. 옆에 있으면 저도 자꾸 먹게 돼 살이 많이 쪘어요. 워낙 음식을 아무거나 잘 드시니까 수행원들이 신경을 안 써도 됐지요. 영양보충을 위해 좋은 음식을 챙겨야 하는데, 늘 김밥과 샌드위치, 호떡 등으로 때우셨어요. 한번은 비행기로 지방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저도 허기질 정도였으니 후보께서는 얼마나 허기가 졌겠어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보께서 수행원들에게 ‘지금 불고기 좀 먹으면 안 될까?’ 하더라고요. 그것도 수행비서들 눈치를 보면서. 그 순간 ‘아차’ 싶었어요. 너무 민망했죠.”
▼ 이명박 당선자가 돈 잘 안 쓰기로 소문 나 있던데, 정말인가요.
“그런 면이 없지 않아요. 무척 검소한 편이죠. 옷에도 별로 신경을 안 쓰고….”
▼ 기업인 출신이라서 여느 정치인과 다른 점이 많지요?
“맞아요. 원래 직업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일반 정치인은 추상적인 거대담론만 말하지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힘이 부족하잖아요. 이명박 당선인은 그런 점에서 달라요. 자신이 내건 정책과 공약을 반드시 실현할 분이라 생각합니다. 기업에선 목표대로 계획대로 꼭 해내야 하잖아요. 그런 경험이 충분히 살려질 거예요.
역대 대통령은 군사정권을 제외하고는 다 정치인 출신이었어요. 말이 앞서는 정치인들은 정치 자체에만 매몰되어 있어 정치가 건전해지지 않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국민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경험을 축척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명박 당선인은 기업인 출신답게 실천력을 충분히 발휘하실 것 같아요. 국회의원이 좋아하는 덕담이 ‘4선, 5선 의원 하세요’라는데, 저는 그런 말보다는 ‘좀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정치활동을 하라’는 말이 더 좋아요.”
흔히 ‘대변인’ 하면 후보 옆에 서서 TV에 함께 나오거나 당을 대표해 논평을 발표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대중에게 노출되어 인기를 얻고 싶은 정치신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7대 대선의 경우 대변인은 전쟁터의 최전방 막사에서 입이 아닌 몸으로 싸워야 했다.
지난해 12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애인지원단체인 ‘장애아이 위 캔(WE can)’(회장 나경원 의원) 주최로 열린 제 4회 ‘산타의 작은 선물’ 행사에 참석한 나경원 의원.
“싸움도 해본 사람이 하는 것 같아요. 한나라당 의원들은 힘이 약해서…. 정말이지 몸싸움에 능한 분들이 따로 계시더라고요. 대통합민주신당 J의원 등 몇몇 의원은 몸을 날리는 분위기였거든요. 어떤 분들은 의장석 앞에 놓인 책상을 밟고 올라오는 거예요. 정말 눈이 동그랗게 될 정도로 놀랐어요.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어…’ 이러기만 하지 밀어붙이는 시늉도 안하는 거예요. 제가 너무 답답해서 ‘좀 미세요’라고 했을 정도니….
신당 의원들은 투쟁을 많이 해 봐서 그런지 대단했어요. 어떻게 끌어내려야 하는지, 어디를 잡아서 들어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았어요.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는 남의 몸에 손을 대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분이 많았어요. 이처럼 본회의장을 점거하고도 맥없이 끌려내려 왔으니 의장석을 내주게 된 거죠. 한나라당 의원들은 나중에 농담으로 ‘이렇게 몸싸움을 못해선 안 된다. 다음에 비례대표 1번은 씨름선수였던 분을 뽑아야겠다’고 말했어요. 특검법을 이런 방식으로 통과시킨 것은 법에 정한 절차를 무시한 일이었죠. 국회 밖 국민은 ‘왜 몸싸움을 하느냐’ 하겠지만 절차가 무시되는 국회의 현실이 늘 안타깝죠. 아무리 다수결이 민주주의 원칙이라 해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식이면 안 되잖아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하루는 논평, 하루는 수행
▼ 대선 때 대변인이 두 명인 투톱 시스템이었는데, 장단점을 꼽는다면요.
“단점은 ‘말이 다르다’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사람마다 말의 뉘앙스가 다르거든요. 대응 방법에서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전략적인 생각이 좀 다르다는 게 아쉬웠어요. 반면 장점도 많았어요. 대변인 업무가 과중했거든요. 두 사람이 돌아가며 하루는 논평에, 하루는 후보 수행에 집중했지요. 교대로 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죠.”
▼ 선거기간 중 대변인 간에 의견 차이도 있었을 법한데요.
“좀 있었어요.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출마 선언과 관련해서는 표현의 강도 차이였지 의견 차이는 아니었어요. 의견 차이는 BBK를 두고 있었지요. 사실상 김경준이 설립한 BBK와 당선인은 처음부터 아무런 관련 없는 것처럼 당이 대응하는 것으로 비친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그건 잘못됐다고 본 거죠. 이 후보는 김경준과 잘 알고 있었고 김경준과 함께 정치적인 금융그룹을 만들려고 한 일도 있기 때문에 사건의 본질상 BBK 사건이라기보다는 ‘옵셔널벤처스 사건’이라고 규정짓는 게 옳았어요. ‘김경준하고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에서 주가조작한 일에는 관련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것이지요. 표현도 그래요. ‘한 점 부끄럼이 없다’라는 게 결백을 강조하는 데는 좋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 (이 후보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어느 정도 알았던 관계임을 감안하면 다른 표현이 낫다고 주장했어요.”
▼ 김경준씨에 이어 그 어머니가 계약서를 들고 입국했을 때, 또 계약서에 사용된 도장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일반 국민에게는 이명박 후보가 완전히 코너에 몰리는 걸로 비쳤습니다. 당 대변인으로서 어떤 심정이었나요.
“정말 답답했어요. 저는 언론에 회의를 느꼈어요. 기자들이 BBK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출입기자들 중에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분도 있었지만. 이 사건에서 ‘도장이 똑같으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거든요. 회사에서 사용되던 도장이라면, 도장을 찍을 권한을 김경준에게 줬느냐 안 줬느냐가 중요하죠. 법률가적 논리로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이상한 쪽으로 기사가 나와 너무 답답했어요.
막판에 한나라당이 BBK에 대한 무대응을 결정하고 한동안 일절 대응하지 않았어요. 제가 강력히 주장했던 거예요. 언론 토론회에 참석해 맞대응을 해봐야 오히려 국민에게 BBK 이슈만 부각시키고 온 언론이 그 문제로 도배질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 ‘클리어’가 안 되는 거예요. 언론의 특성상 양쪽의 공방을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고 이해하면서도 화가 났어요. 그저 이런 주장이 있고 저런 주장이 있다고만 하지, 이건 틀리고 저것이 맞다는 식으로는 다루지 않았어요. 결국 불리한 싸움밖에 안 됐어요. 더 이상 대응하는 건 손해라고 생각했지요.”
나 대변인은 “법률적인 문제에 대해 언론을 통해 재판하는 형국이 되니까 언론의 특성상 바람직하지 않더라”고 했다. 결국 네거티브를 유혹하는 결과를 빚었다는 것. 그는 “역시 법률적인 것은 법률가들이 판단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 BBK 사건이 진행될 때 클린 특보인 홍준표 의원과 박형준·나경원 대변인의 발표내용이 다를 때도 있었는데요.
“저쪽에서 매일같이 조작된 증거나 사건 본질과 관계없는 서류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저희는 ‘이 서류는 또 뭐야’ 하면서 부랴부랴 파악해 급하게 답변을 준비했어요. 그러다보니 더러 틀릴 때가 있었지요. 저는 법률가니까 사건을 쉽게 파악하는 편입니다. 전날 발표 내용 중에 뭐가 잘못됐다는 걸 발견하면 곤혹스러웠지요. 전날 제가 한 말이 틀리지 않은 것처럼 하면서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아야 하니 굉장히 어려웠어요. 우리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조사도 ‘은’과 ‘도’가 다르고요. 다음날 요령껏 말을 묘하게 해서 (전날 발표내용을) 수정하고는 며칠 있다가 논평을 다시 하곤 했어요.”
▼ 어느 신문에서 한나라당 대변인의 입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 ‘말이 바뀌었다’고 썼더군요.
“맞아요. 참… 말도 마세요.(한숨)”
이회창의 회한과 오판
▼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그쪽에서 러브콜을 하진 않았습니까.
“개인적 인연도 있고 같은 법관 출신으로 존경심도 있어요. 법과 원칙을 목숨처럼 지키는 분이었는데….”
▼ 회한이 많아 오판한 거라고 봅니까.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 정치에서 달라져야 할 점이에요. 정치세계에서는 원로에 대한 대접이 없는 것 같아요. ‘권력을 누가 가졌냐’에 정치가 좌우되기 때문에 이회창 전 총재가 다시 나섰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정치판을 떠났어도 영향력은 행사하고 싶었을 것 아닙니까. 하지만 자신의 뜻을 당에 전달할 방법이 전혀 없었죠. 2006년 7월 서울 송파갑 보궐선거가 있었어요. 총재 시절 특보이던 이형주 특보의 공천을 바라신 것 같아요.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당시 제가 송파갑에 나간다는 언론보도가 있었거든요. 전 사실 생각도 없었지만. 기사를 읽고 부르신 거죠. 그런데 이 전 총재가 추천한 이형주 특보는 1차 공천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어요.”
▼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출마에 대해 남다른 소회가 있었을 텐데요.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쪽을 따라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으신 거죠? 전혀 갈등이 없었어요. 러브콜도 없었고요. 제가 그런 선택을 안 할 거라고 짐작하셨는지… 말씀이 없었어요.”
▼ 서빙고동 같은 아파트에 사신다면서요. 자주 만나시나요.
“가끔…. 저와 같은 성당을 다니세요. 자주 뵌 건 아니고요.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 파는 참기름이 참 맛있어요. 한번은 이 전 총재 부부가 미사를 마치고 참기름 한 병을 사서 가시더라고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은퇴한 노부부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이 전 총재는 오랫동안 당 총재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처럼 막강한 분이셨어요. 그런 분이 은퇴해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 나 대변인은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출마를 선언할 때도 맹공하지 않고 ‘반칙’이라는 약한 단어를 썼는데, 최근 자유신당 창당을 두고는 ‘낙엽 같은 정당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공격했더군요. 한나라당 처지에서는 ‘좌파’가 소수정당으로 전락하고 보수 중심의 양당체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손학규 대표의 대통합민주신당과 더불어 보수 3당체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아요. 일단 손 대표가 이끄는 대통합민주신당은 한나라당과는 전혀 다른 정치세계죠. 총선을 앞두고 수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전혀 아니고요. 이회창 전 총재가 만든 자유신당은 이념으로 봐도 정책으로 봐도 저희와는 다른 정당입니다. ‘이회창 1인’에 의존하는 정당 아니겠어요. 정당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워요.”
나경원 의원은 2004년 5월 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국회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이 보건복지부에서 다루던 장애인 문제를 국회에서 장애인특위를 설치해 다루자고 제안한 것이다. 또한 국회 상임위에서 론스타 문제를 처음으로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국회연구단체인 ‘장애아이 위 캔(We can)’을 결성해 장애아동을 위한 정책 생산에 이바지했다.
그는 특히 인권 문제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2005년 1월에 발의돼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인신보호법이 나 의원의 작품이다. 인신보호법은 기본권 보장의 한 축이 될 ‘인신침해에 대한 구제법률’이다.
▼ 인신보호법 제정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셨다고 들었어요.
“대선 기간에 통과되는 바람에 국민의 이목을 끌지 못했는데, 정말 중요한 법입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거든요. 개인의 인신이 수사기관에 의해 구속될 때는 구제절차가 있어요. 구속적부심이나 보석 같은 거죠. 하지만 사인(私人)에 의한 구금일 경우 그 구금이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을 받을 길이 없는 실정입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특정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는 등 인신이 갇힐 때 보호받을 수단이 전혀 없는 거죠. 인신보호법은 법원이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거예요. 우리나라 인권 역사에서 획기적인 법입니다. 17대 국회에서 해낸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변인 그만하고 싶어”
▼ 서울 마포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현행법상 비례대표 의원은 한 번만 할 수 있으니 이번 총선에선 지역구에 도전해야 할 텐데, 어느 지역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마포에 출신고교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요. 아직 지역을 구체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일을 잘할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하고 싶고, 지역구 관리에 힘과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하고 싶어요. 지역구 일 외에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요.”
▼ 앞으로 어떤 영역에서 활동할 생각입니까.
“법률가이니만큼 어떤 것을 파악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은데, 스페셜리스트가 못 되는 것 같아요. 관심이 있는 분야는 문화와 복지예요. 복지는 투자로서의 복지 개념이에요. 구체적으로는 17대 국회에서 못한 두 가지 프로젝트를 꼭 하고 싶어요. 법령 간 충돌로 규제에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국회가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돌하는 법을 정리하고 폐지하는 것에도 신경 써야 해요. 예컨대 어떤 법에 ‘이런 시설은 어떤 시설로부터 몇m 거리 내에 둘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다른 법에 따르면 규제 거리가 다르거나 아예 그런 제한이 없거든요. 일반 국민은 어떤 법을 따라야 할지 헷갈리고 행정처는 각자 편의에 따라 적용해요. 피해는 국민이 보는 거죠. (재선된다면) 그런 법령들을 정리하고 싶어요. 조세 부분도 마찬가지인데요. ‘조세 부담을 무조건 줄이자’가 아니라 ‘중복되는 조세를 찾아내 하나로 편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 청와대 대변인이 된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그렇진 않아요. 청와대 쪽은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총선에서) 다시 선택을 받는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초선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재선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고 봐요. 전 초선에 원내대변인, 당 대변인, 서울시장 대변인 등 3년6개월 중에서 대변인만 3년을 했어요.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한 정치인이었죠. 재선에선 제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으로서 좀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 대변인만 하다 보니 인기는 올라갔지만 신뢰도가 떨어진 감이 없지 않지요?
“좀 그런 것 같아요. 대변인은 당을 대표해서 말하기 때문에 신뢰를 떨어뜨리는 그 어떤 전략과 함정에 빠질 수 있어요. 안타까울 때가 많았죠. 국민이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신뢰도를 좀 접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국회의원은 공직자예요. 공직자한테는 신뢰가 요구됩니다. 정치인의 신뢰도를 낮게 평가하는 국민의 인식이 바뀌도록 의원들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밤 11시 귀가, 새벽 6시40분 출근
▼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정치를 즐겨야 한다는데, 나 대변인은 즐기는 편인가요.
“그 말이 맞다면, 정치인으로 성공하기가 어렵지 않나 싶어요.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사명감이 있어야 해요. 열심히 하다보면 고통스러울 때가 많죠. 제가 고지식한 편이라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자’ ‘정성을 다하자’고 다짐해요. 판사를 할 땐 재판을 하고 좀 쉴 수 있었는데, 정치를 하면서는 365일 쉴 수가 없어요. 즐기는 것과 거리가 멀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딸이 대선 기간 내내 한 번도 ‘어딜 가자’고 조르지 않더니 대선이 끝나자 ‘엄마, 하루 결석하고 어디로 여행 갔으면 좋겠다’고 해요. 선거 치른 주 토요일에 가게 됐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딸과 밥을 먹고 있는데 어떤 젊은 부부가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어요’라고 인사하더라고요. ‘수고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고마웠어요. 그런 걸 즐거워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겠다 싶어요.”
나 대변인은 두 아이의 엄마다. 최근 의정활동과 학창시절 사진 등이 올려진 그의 싸이월드 홈피는 슈퍼스타급이다. 많게는 하루에 2만~3만명이 다녀가니 웬만한 연예인 뺨칠 정도다. 그의 인기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뛰어난 학벌과 외모, 평범한 여성들을 살 떨리게 하는 경력과 커리어우먼의 말끔하고 똑부러진 이미지와는 달리 홈피 곳곳에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일상을 정리해 놓았기 때문인 듯싶었다.
동갑내기인 남편 김재호(45) 판사와는 서울대 법대 동기다. 남편이 지난해 2월 대전지법 서산지원장으로 발령 난 이후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 판사로서 정치인 아내의 생활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요.
“저도 처음에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남편은 이해할까 싶어요. 남편은 처음에 ‘한번만 하고 말지’ 했다가 이젠 덤덤해졌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조언해주는 정도랄까요. 정치를 하면 아무래도 편이 갈리기 때문에 100% 지지를 받을 수 없잖아요. 가족은 제가 욕먹는 게 마음에 걸리나 봐요. 인터넷에 오른 무자비한 인신공격성 글은 안 보려고 해요.”
▼ 평균 귀가시간이 몇 시인가요.
“요즘은 좀 나아졌는데 거의 밤 11시 전후해 귀가해요.”
▼ 자녀를 돌보고 챙기는 분이 따로 있나요.
“아예 입주해서 애들을 돌봐주는 분을 뒀어요. 옛날엔 살림을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많은 부분을 포기했어요. 제가 꼭 해야 하는 일만 하고, 대체 가능한 일은 맡겨버려요. ‘애들 사랑해주기’ ‘공부 봐주기’는 제가 해야 하잖아요. 대선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시장을 봤는데, 선거기간에는 거의 못 했어요. 애들이 시험 때는 ‘문제지 풀었으니 채점해달라’면서 제 책상에 올려놓아요. 그런데 밤 11시 넘어 들어가니 정말 봐주기 힘들죠. 새벽 6시40분이면 출근해야 하고 논평 초고도 써야 했으니…. 하루 4시간 이상 못 잤어요.”
“엄마, BBK는 괜찮은 거예요?”
그는 늘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일생 최대의 보물은 딸 유나(16)와 아들 현조(12)”라고 말한다. 특히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나서 잘 자라준 딸에 대한 애틋함은 눈물겹다.
“딸이 많이 컸어요. 이젠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 조언까지 해줘요. (휴대전화로) ‘한나라당이 밀어붙여야 돼’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선언을 했을 땐 ‘엄마 이건 완전 새치기야’라는 문자를 보냈고. ‘다된 밥에 코 빠뜨린다’는 표현을 능청스럽게 하기도 하고요. 대선 내내 딸은 제게 ‘한나라당 대응이 강해져야 돼’라는 문자를 보냈어요. 반면 아들은 점잖아요. BBK로 곤욕을 치를 때 ‘엄마, 어떻게 된 거예요. BBK는 괜찮은 거예요?’라고 조용히 묻더군요.(웃음)”
▼ 유나와 현조가 TV에 나오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엄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라고 하지 않던가요. 한나라당 의원들 말에 따르면 “나경원 대변인은 권력의지가 약하다”는데요.
“제가 욕심이 많다는 분도 있고 없다는 분도 있어요. 전 일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자리에 대한 재주는 없는 것 같아요. 정치판에서 좋은 자리 차지하는 건 또 다른 능력인 것 같아요. 일하는 자리는 잘 떨어지는데 폼 나는 좋은 자리는 안 오는 것 같아요.(웃음)”
나 대변인은 정치 리더를 꿈꾸는 평범한 정치인이지만 법률가의 자세가 몸 곳곳에 배어 있다. 전직인 판사 시절의 경험과 자세를 버리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는 “국회는 남자가 아이 낳는 일 빼고는 뭐든 할 수 있는 곳”이라지만 “국회야말로 원칙과 법과 절차가 지켜지는 곳이어야 한다’고 내내 강조했다.
“정치인이 국민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늘 국민 핑계를 대거든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가 돼야 해요.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말이 있어요. 거문고 줄을 팽팽하게 고쳐 매는 긴장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출발할 자세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는 정치가 되기 위해선 신뢰가 관건이죠. 정치인들이 원칙을 지킨다 해도 그것이 자신들만의 원칙이라면 국민에게는 비상식적으로 비칠 수 있어요. 올바른 정치는 국민의 상식에 부합해야 하고 국민 눈높이에도 맞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