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으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았다.
- ‘또 하나의…’는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제국 탄생에서부터 전성기까지의 통치철학과 제도를 새로이 정리한 책. 시오노가 평생을 로마사에 몰두하며 파고든 주제가 다름 아닌 ‘정치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추천은 흥미롭다.
- 시오노의 저작을 중심으로 그가 탐구한 인간학을 들여다본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빠진 적이 있는 그는 “학생 때의 사회주의 운동은 한 번쯤 치러야 할 홍역이지만, 인간의 본성인 이익 추구를 부정하는 좌파사상에는 매력을 오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한때 꿈은 외교관. 고등학교 때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1년가량 공부하면서 서양 문화에 매료됐으나 미국에서 돌아와 읽은 ‘일리아드’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 영어 대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독학하면서 지중해 세계에 빠져든 것.
대학 졸업 후 ‘아사히신문’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낙방한 뒤 딱히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않고 있다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5년 동안 이탈리아 체류를 마치고 귀국했다가 몇 년 후 다시 건너가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해 피렌체에 정착했다. 집필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 무렵부터다. 데뷔작은 1968년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한 ‘르네상스의 여인들’이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 첫 장편이자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남편과는 일찌감치 헤어지고 그 후 줄곧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일관, 집중, 집요, 지속
그에게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쓰게 한 가스야 잇키 전 ‘중앙공론’ 편집장은 시오노의 초년병 시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30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오노씨를 만나 사흘 동안 그로부터 로마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상당히 건방졌다. 불끈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르네상스에 흥미가 있다면 ‘여자’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떠냐 했더니, 왜 하필 여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반 년 뒤 정말로 책을 써 왔다. … 많은 작가와 사귀었지만, 시오노가 가장 성장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만큼 많이 컸다. 집중과 지속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어찌 보면 꼭 수도하는 수녀 같다. 기독교를 경유하는 역사에 도전하고, 20세기 인간의 환상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일을 마지막까지 뒷받침하고 싶다.”(‘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중)
그의 말대로 시오노의 작업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일관성과 집중력이다. 조직에 매인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라도 묶여 자기절제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철저히 혼자다. 웬만한 인내력이 없이는 힘든 작업을 지속할 수 없다. 시오노는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을 쓰기 위해 서재로 건너갈 때는 마치 출근하는 사람처럼 정장을 차려입는다는 그였기에 장장 15년에 걸쳐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써냈으리라. 그 사이 나이는 50대 중반에서 70세가 됐다. 그동안 여름휴가 한 번 안 갔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 완간 인터뷰에서 “혹 나쁜 병이라도 발견되면 일을 중단해야 하고, 일단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 병원에도 한 번 가지 않았다”고 고백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집요함은 번역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번역을 모두 자기 돈으로 진행했다. 특정 국가가 아닌 인간 일반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고의 번역자와 감수자를 택하느라 도쿄에 집을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썼다는 것이다.
그가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동기는 ‘지력, 체력, 경제력,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 민족보다 열세에 있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고 중근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1000년 넘게 경영한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바로 그 ‘의문하는 힘’이야말로 시오노에게 세상과 사람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갖게 했다.
“호기심은 나의 힘”
시오노는 도쿄 도립학교인 히비야(日比谷)고교를 나왔다. 일본 전역에서 수재들이 모여드는 우수한 학교다. 졸업생의 3분의 2가 도쿄대에 진학하는 이 학교에서 시오노는 도쿄대를 지원했다가 낙방한다. 당시를 회고하는 시오노의 말이다.
“당시 히비야고교에서 도쿄대에 낙방한 학생들은 ‘미야코오치’(都落ち·낙향이란 뜻으로 관청에서는 좌천을 뜻함)로 불렸는데 내가 바로 미야코오치였다. 당시 교토대로 진학해 훗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동창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도 미야코오치였다. 나는 모범생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 따르면 공부를 잘하려면 첫째 기억력이 좋아야 하고, 둘째 교사가 말하는 내용에 의심을 품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은 교사가 뭔가를 말하면 곧 의심을 품는 의심덩어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를 비롯해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선생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면 다른 것들을 연상해 결국 엉뚱한 것을 생각해버린다. 자연히 선생님이 말하는 다음 이야기는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고교시절 나는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재가 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의 고교시절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왜?’ ‘어떤 조건에서?’라는 두 가지가 설명되지 않으면 수업이 끝난 뒤 꼭 질문하는 학생을 교사들이 반길 리 없다. 더군다나 그 나이에 그리스나 로마에 관심을 갖는 아이가 몇이나 됐을까. 하지만 그는 무엇에나 의심을 갖는 것, 즉 호기심을 자신의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호기심이란 바꿔 말하면 자기를 개방하는 것이다. 개방적인 사람이야말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찐빵 하나를 만들더라도 팥 대신 크림을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생각이 커져 새로운 것을 자꾸 만들어낸다. 다른 데서 받는 자극이 없다는 것은 곧 무균상태, 면역성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상태에서 균이 들어오면 당장 병에 걸린다. 자극이란 독(毒)이다. 요컨대 균이다. 독이니까 해롭지 않을 정도로 계속 받아들여야 면역이 생긴다. 내가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 강하다는 정도였다. 그런 ‘긍지’같은 것이 30년 뒤의 처지를 갈라놓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네로 황제는 흔히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오노는 열일곱 살에 황제에 오른 사람(네로)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폭군 네로라는 기존의 평가를 전부 버리고 새롭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를 보게 됐다. 어떤 사상과 윤리, 도덕으로도 재단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 그 자체를 추적해가는 그의 작업은 남들과 똑같은 사료, 이미 존재하는 것을 토대로 해도 자신만의 시선이 있기에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원천이다.
‘리스크’를 떠안는 지도자
시오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뒤에도 주류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곤 한다. 이탈리아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내일 도쿄에서 유명 대학 교수들이 오니 만찬에 참석해라”고 요청했다가 곧 “교수들이 시오노와 동석하기 싫다고 했다”는 연락을 받는다거나, 누군가 출판사를 통해 마키아벨리 번역집에 발문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얼마 후 “시오노의 발문은 싫다”고 했다는 얘길 듣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럴 때마다 ‘두고 보자. 남보다 더 큰 성과를 내면 된다’며 작업에 매진한다고 한다.
그가 로마에 몰두하며 구축한 작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정치 리더십’의 문제다. 단지 로마를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를 잘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로마사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시오노는 이 과정에서 인텔리들에게 정치를 비하하거나 경시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정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서민이다. 나아가 정치는 축적된 부를 운용하고 지속시키는 작업이기에 단지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고 경영자 ·언론인, 심지어 주부들까지 동참해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경제가 돈 버는 것이라면 정치는 번 돈을 잘 쓰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문화는 성공한 경제와 정치로 번 돈을 운용하는 것이다. 한 나라가 번성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우선 경제력이 확보돼야 하고 다음은 정치 안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꽃피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단계를 밟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운이 사회에 퍼지는 것이다. 그런 기운은 위기의식에서 나오는데, 망해가는 나라는 한결같이 뛰어난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중)
그가 무엇보다 지도자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직이란 항상 강력한 리더가 있어야 움직인다. 기관차가 차량만 늘어놓았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관사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란 어떤 인물일까. 우선 ‘리스크(risk)를 지는 존재’다. 그의 말이다.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리스크가 있다. 지도자는 그것을 파악한다. 그리고 가능한 데까지 그것을 축소한다. 아무리 해도 처리할 수 없는 나머지 리스크는 자신이 직접 진다. 이것이 지도자가 하는 일이다.”
지혜와 용기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과 축소하는 비결은 ‘지혜’와 ‘용기’에서 우러난다. 지도자가 리스크에 대해 가진 지혜와 용기가 크면 클수록 구성원들은 자진해서 그 리스크를 함께 지는 데 동참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한마디로 리스크를 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쟁에 이기고도 늘 양보했다. 어제까지 적으로 맞서 싸우던 민족도 이기고 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 자신들의 선진기술로 만든 무기를 건네주면서 ‘자, 이제부턴 당신들이 지켜라’, 요샛말로 방위조약을 맺었다. 적들이 자신들이 제공한 무기로 다시 공격해 들어올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이렇게 포용한 것이 로마의 성공비결이다. 로마인은 무기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건축 기술과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비롯해 경제와 문화까지 아낌없이 피정복자에게 제공했다. 로마인들이 이긴 뒤에 양보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지 않고 양보하면 질서가 생기지 않는다. 로마인들은 피정복민에게도 시민권을 주고 과감히 요직에 등용했다.”
“정치가는 지옥을 봐야”
율리우스 카이사르 입상(立傷).
“내가 로마인에 흥미를 갖는 것은 인간성에 환상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인도 인간인 이상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했다. … 로마가 1000년 이상이나 계속된 것은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기개가 있었기에 번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실주의적 태도야 말로 시오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두 번째 덕목이다.
“정치가는 선인(善人)이 아니다. 지옥을 봐야 한다. 정치는 결과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지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길만 말하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천국으로 가는 길밖에 모른다며 다같이 손잡고 가자고 하면, 자칫 모두를 지옥으로 이끌게 된다. 동물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계도 결국 싸움터다. 일단 싸움터에 나가면, 즉 프로가 되면 ‘절대로’ 이겨야 한다. 세계에는 평화롭지 않은 나라나 지방이 많다. 그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저 평화를 외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야말로 현실주의다. 그가 말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투쟁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투쟁할 경우에는 상대를 잘 알 것, 자신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할 것, 자신의 입으로 표현할 것, 이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현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 상대의 속을 읽는 ‘인텔리전스’도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하지만 시오노는 리더십에 어떤 법칙이나 방정식 같은 게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좋은 자질을 타고났어도 자신의 시대와 맞아야 리더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시대와 맞지 않아 스러져간 리더도 무수하다. 나는 그들에겐 그들대로 애정을 느낀다. 훌륭한 전술, 전쟁에 이기는 시스템을 찾아낸다고 해도 싸우는 방식은 적(敵)에 따라 달라진다. 전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다만 승부를 걸지 않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지도자와 지식인의 차이
시오노를 만나본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그가 대단한 멋쟁이라고 전한다. 늘 고급 정장 차림에 화려한 액세서리로 단장하고, 화장을 곱게 하고 좋은 향수 냄새를 풍긴다. 한마디로 대단히 여성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관심의 대부분은 ‘남자’다. 그는 아예 “나는 여자의 세계에 관심이 없다. 내가 여자니까. 나의 관심은 남자다. 남자의 세계에서도 특히 가장 남성적이라 할 전쟁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마의 역사도 멋진 남자들이 차례차례 나타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이야기로 읽어낸다.
그는 영화광이기도 한데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영화 에세이집에서 자신의 남성관을 이렇게 적고 있다.
“30년 전 대학 여자 동급생들이 생각하는 결혼상대란 오너의 아들이거나 도쿄대 법학부 아니면 게이오대 경제학부, 사법고시나 외무고시, 행정고시 합격자였다. … 나는 그녀들보다 내가 훨씬 더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폭이 넓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민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훨씬 더 좁았다. 일류대학 일류학부에 입학하는 것이나 외교관이나 변호사나 관료가 되기 위한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두뇌가 있고 공부하는 방법만 알고 있으면 대부분 남자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품위 있는 행동이라든지, 유머 감각이라든지, 절묘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모든 일에 대처하는 능력은 시험으로 측정될 수 없는 자질이다.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다는 말이다. 대학 시절 나는 동급생들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것을 남자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의 남성관을 피력한 ‘남자들에게’란 책에서 이른바 인텔리 남자들이 섹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보강 정도밖에 안 되는 것(즉 본질이 아닌 것들)’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인텔리 남자들)에겐 하찮은 것을 하찮은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없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그럴듯한 이유를 얼마나 잘 생각해내느냐에 전력을 집중한다. 또 욕망은 있으나 그것이 콩알만하다. 정치가가 뭐라 부추기면 창피할 정도로 홀랑 넘어가고, 재계의 어느 위인이 접대해준다고 하면 기생보다 먼저 뛰어간다. 기생은 화대라도 받지만 인텔리는 하루 저녁 얻어먹을 뿐인 것을. 이런 궁상이 어디 있을까. 그들이 무언가 자기 맘의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 권력이 필요하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이용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건 봐주기 힘든 꼴불견이다.”
그러면서 지식인들은 지금 세상의 어디가 잘못돼 있는지에 대해 비판을 하라고 하면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는 구체적인 제안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도자와 지식인의 차이다.
게리 쿠퍼냐, 카이사르냐
그가 좋아하는 남자란 한마디로 ‘스타일이 있는 남자’다. 스타일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다. 강한 신념을 가리킨다. 깊이 있는 인격이 자신도 모르게 배어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남자다.
그는 ‘남자들에게’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윤리,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 독자적이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참된 용기를 가진 자라고 해도 좋다 ▲궁상스럽지 않은 사람. 육체적으로 멋있지 않아도 비참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면 곤란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성에 부드러운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 속된 말로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진짜 휴머니스트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남자를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시오노는 자신의 ‘이상향’을 지금은 세상에 없는 두 남자라고 말한다. 미국의 영화배우 게리 쿠퍼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300년 후에 나타나 로마제국의 설계도를 만든 인물이다. 시오노는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란 책에서 자신이 아들에게 들려준 말을 그대로 소개한다.
“게리 쿠퍼와 카이사르에겐 많은 공통점이 있어. 비쩍 마른 몸에 키가 크고 볼에는 세로로 주름이 잡히고 꼿꼿한 자세에 몸놀림이 우아하고 유머도 있고 광신적인 점이 하나도 없어. 하지만 근본적인 점에서 달라. 쿠퍼는 ‘위대한 평범’을 가진 사람이지만 카이사르는 ‘위대한 비범’을 지닌 사람이야. 그런데 만약 이 두 사람이 엄마에게 프러포즈를 하면 어떻게 할까. 쿠퍼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그의 프러포즈는 결혼을 의미하고 평생 평온과 행복한 생활을 약속해줄 거야. 그런데 카이사르는 결혼을 정치적 계산으로 하고 게다가 플레이보이로도 유명한 사람이야. 그와는 두 달 정도가 고작일 거야.”
하지만 시오노는 “설령 두 달이라 해도 카이사르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카이사르는 지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지속하는 의지, 자기제어라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를 다 갖췄다. 경제와 외교 등 여러 분야에 정통했고 귀족 출신이기에 오히려 혁신적일 수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한 엘리트였기에 오히려 현 체제를 부수는 데 저항감이 없었다. 배경이 좋은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여유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가 바람둥이에 낭비벽이 있다는 점도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는 타인에게 자극을 준다,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권력은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는 힘이다.”
시오노는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를 지도자의 다섯 가지 덕목이라고 열거하면서 저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에 이를 적시했다.
“민주정체에서 지도자로 산다는 것은 가느다란 로프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변하기 쉬운 민중의 마음을 능숙하게 지배하기 위해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스스로를 제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관철하는 강한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 지도자의 지적 능력이란 학문을 통해 얻어진 지식과는 별개다.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의 문제해결 능력이다. 선견지명도 거기에 포함된다.”
‘설득력’의 미덕 편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예로 들고 있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이 강한 사람이었다. 위험한 지역에 스스로 나아가서 싸웠고, 물이 없어 병사가 괴로울 때는 자신도 물을 마시지 않고 함께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의 부하들은 멀리 인도까지 함께 갔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 심취하는 것은 그의 행동을 가까이서 보고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된다. 행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 수많은 인간을 움직이려면 말로 설득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육체적 내구력’이란 것도 체력이 강하다거나 운동능력이 높다는 얘기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통치하느냐는 것이라는 게 시오노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병약했으나 자신의 육체가 약하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기에 결코 무리하지 않아 77세까지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게 하라
시오노는 작가 이전에 어머니다. 그의 저작들에는 간간이 교육 문제가 언급되는데, 이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은 이탈리아인과 일본인의 혼혈이지만, 이탈리아인으로 자랐다. 그는 아들을 세계 어디에서나 살아갈 수 있는 남자로 키우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일이 외국어 습득능력을 키우는 일이었다. 우선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철저히 배우게 했다. 그 다음에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를 배우게 했다.
“아무리 외국어를 공부해도 모국어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외국어는 하나의 도구다. 실제로 외국인이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나라 말을 줄줄 지껄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은 서툴러도 무언가 전달할 것이 있는 사람 쪽이다.”
중요한 것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전달하는가, 즉 메시지라는 것이다.
로마의 ‘역사지구’광장을 중심으로 원로원, 신전, 감옥, 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싶을 정도로 여자가 프로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우량기업에 들어갔다고 걱정할 게 없는 시대가 아니다. 자신을 억제하는 것, 즉 자제하는 게 필요하고, 그것을 인생의 출발점에서 배우는 게 어머니와의 관계다. 난폭한 말대꾸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한테 버릇없이 말대꾸를 하면 다른 사람한테도 거리낌이 없어진다. 어머니라면 아들의 폭언을 참아줄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참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버릇없는 짓을 절대로 참아주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다.”
“우리가 교육 논의를 할 때 빠뜨리곤 하는 것이 가정교육이다. 한참 전 일이지만 모 총리가 일본에 와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내 대답은 ‘이탈리아에 있는 아들이 고교생이라 혼자 둘 수 없다’는 거였다. 나는 아들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살 수 있게 키우겠다고 늘 다짐했다. 혼혈이니까 더욱 그랬다. 그래서 방학 때면 한 달씩 영국에 보내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에 갈 때는 미국 대학으로 갈지, 유럽 대학으로 갈지 스스로 선택하게 했더니 본인이 유럽을 택했다. 아들을 독립시키는 조건은 매주 한 번 반드시 식사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응석도 허락한다. 세탁물은 가져와도 좋다고(웃음). 아이들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고, 자식은 어머니의 밥상머리에서도 자란다.”
“교육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름이 붙은 위원회 등에서 자문해 올 때마다 나는 ‘교육에 대해 배우려거든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말한다. 어떤 동물이든 부모는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는 성심성의껏 돌보고 키워주지만, 목표는 자식의 홀로서기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부모건 학교건 빨리 잘 키워서 떠나보낼 생각을 해야 한다. 연인이나 부부, 기업은 어떻게 잘 잡아놓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웃음)…. 요즘은 이런 각자의 역할을 마구 헷갈리는 듯하다. 학교나 부모가 학생을 잡아놓으려 하고 기업이 인재를 떠나보내려 하니 이건 기본이 잘못된 것이다.”
諸行無常 盛者必衰
역사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를 안다는 것인지 모른다. 차가운 현실인식을 무기로 냉정한 글쓰기를 해온 그이지만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란 책 말미에는 혼자 사는 그의 쓸쓸함과 치열한 작가정신이 함께 보인다.
“요즘 나는 오후가 되면 조깅 슈즈를 신고 로마 거리로 나선다. 조깅이 목적이 아니라 지도를 한 손에 들고 현대의 로마를 걸으면서 고대의 로마 거리를 머릿속에 재현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인 노부부를 만났다. … 내가 가르쳐준 길을 찾아 멀어져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부러웠다. 저런 행복도 맛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가 생각하니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버려두고 온 듯한 슬픈 기분이 들었다. 다만 멀어지는 노부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뒤를 따라가다가 내 눈의 초점은 점점 넓어져갔다. 노부부도 다른 관광객도 현대 로마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그 대신에 하얀 장의(長衣) 또는 형형색색의 단의를 걸치고 회당과 신전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2000년 전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명(天命)을 안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불가능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 권에서 ‘제행무상 성자필쇠(諸行無常 盛者必衰)’, 즉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고 흥한 것은 언젠가 반드시 쇠한다는 말을 썼다. 한때 국가나 조직, 개인을 흥하게 만든 요소가 언젠가는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그의 말은 사는 일의 엄정함을 느끼게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의 성공요소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