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요리 연구가, 요리 철학자, 한국요리 외교관 등 산당(山堂) 임지호 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에 ‘자연 화가’라는 표현이 더해졌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릇에 담아내 ‘요리 예술가’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그가 이번에는 캔버스로 무대를 옮겨 전시회를 열었다. 1월 5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 화천군의 ‘화천갤러리’에서 열리는 세계 명산전(展)이 그것이다. 사계(四季)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부터 미국, 네팔,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국의 명산을 담은 그림 76점을 전시하고 있다.
산당에게 산은 ‘생명을 키우는 곳’이다. 때론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다가도 넓은 품으로 껴안아주는 산의 모든 현상과 기운이 생사를 보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당은 생명을 지탱하는 세계 각국 명산의 기운과 자신의 영혼이 하나의 정점에서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결과물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세계 명산전을 소개하는 팸플릿에서 산당은 이렇게 말한다.
“끊어진 듯 연결되고, 없는 듯 생겨나는 마치 마술에 걸린 듯한 무심 영혼의 상태에서 아름답고 도도한 산이 지닌 빛의 울림을 얻었다. 흙 한 줌과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로 잃어버렸던 고향 언저리 기억의 한 자락을 통해 울림과 향기를 좇아가다가 어느 캄캄한 밤에 홀로 만난 것이 세계 명산이다.”
그는 이번 전시가 “내 몸속에 기록돼 있는 명산에 대한 소중한 인연을 끌어내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요리 연구가로 활동하던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리콴유 당시 싱가포르 총리 만찬을 준비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찬 준비에 앞서 싱가포르 번화가 오차드 거리를 거닐던 그는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상적인 루미나리에 빛에서 영감을 얻었고 만찬장에서 ‘싱가포르의 행복’이란 주제로 즉석에서 볼펜 그림을 그려 리콴유 총리에게 선물했다. 이후 드로잉 3000점을 비롯해 지금까지 5000점의 그림을 그려왔다. 지난해 가을에는‘영혼의 그릇전’을 열기도 했다. 음식으로 종합예술을 구현해온 그의 예술혼이 화폭에서도 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