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예 잠수사 20명 뽑아놓고 투입 못한 사연
- 초기에 세팅 바지(setting barge) 안 댄 게 결정적 실수
- 크레인으로 선체 고정하고 구멍 뚫어 선내 들어갔어야
- 3등 항해사나 조타수 잘못 아니다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수중파괴대)전우회 명예회장 조광현(74) 씨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바쁘게 움직였다. 사고 현장의 해군 및 해양경찰 지휘부에 수중 탐색과 관련해 조언을 하고 민간 잠수부 투입에도 관여했다. 4월 29일엔 서울시의 긴급 요청에 따라 한강유람선을 관리하는 직원 200명을 상대로 2회에 걸쳐 특별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각종 방송에 20여 회 출연하고 해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동아일보 5월 8일)하기도 했다.
조씨는 1998년 한국수상레저안전연합회를 설립해 초대, 2대 회장을 지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트·요트 조종 면허시험 제도를 도입한 단체가 바로 안전연합회다. 이 단체는 수상인명구조원과 래프팅 가이드 양성 교육도 실시한다.
전문가 부재와 허술한 통합지휘체계는 결국 민간 잠수사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조씨는 5월 7일 밤, 세월호 수색 과정에서 숨진 잠수사 이광욱 씨의 빈소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잠수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이씨의 부친 고(故) 이진호 씨와 가깝게 지낸 인연 때문에 슬픔이 남달랐다. 인터뷰는 그다음 날 진행됐다.
잠수 전 적응 기간 필요
▼ 상가 다녀온 얘기부터 하자.
“구조에 참여했던 동료 잠수사 몇 명이 와 있더라. 조화가 대통령 것부터 총리, 장관… 100개가 넘어 보였다.”
▼ 고인의 부친과 잘 알고 지냈다는데.
“한국 다이빙계, 잠수계의 거장이다. 1960~70년대 물속에서 하는 큰 공사는 다 참여했다고 보면 된다. 잠수협회 창설에도 공이 컸다.”
▼ UDT에서 같이 근무했나.
“그건 아니다. 그 양반은 UDT에서 오래 근무하진 않았다. UDT 훈련 중 수중공사를 하는 그와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전역 후에도 계속 바다에서 활동했기에 가까이 지냈다.”
▼ 아들(고 이광욱 잠수사)은 본 적이 있나.
“부친 생전에 그 집에 가끔 들러 식사도 하고 술도 했다. 아들은 어릴 때 한두 번 봤다.”
예비역 해군 대령인 조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바다 사나이’다. 그는 해군 최정예 특수부대 UDT의 신화적 인물로 통한다. UDT 교육훈련대장을 세 번 맡고, 해군 첩보부대로 북파공작에 관여한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대장도 지냈다. 구축함 함장과 경비전대장을 역임한 후 초대 특전전대장에 임명돼 현 UDT/SEAL 부대의 기틀을 마련했다. SEAL은 ‘Sea Air Land’의 약자로 육해공 전천후 특수팀을 뜻한다. 전역해서는 UDT전우회를 전국조직으로 창설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구조작전에 참가했으며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고인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입수했고, 물속에서 가이드라인과 공기 호스가 엉킨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한다. 뭐가 잘못된 건가.
“잠수 작업을 지휘하는 쪽에서 워낙 실적에 쫓기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는 잠수사의 수중 적응이 필요하다. 전날 도착한 사람을 이튿날 새벽에 입수하게 한 건 무리한 처사였다.”
▼ 잠수 능력과 상관없이 말인가.
“그렇다. 잠수 능력이 뛰어나도 그런 험한 해역에서 다이빙 할 때는 어느 정도의 적응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중 가이드라인 설치는 가장 위험하고 체력 소모가 큰 작업이다. 조류에 낙엽처럼 휩쓸리면서 (선체 집입구를) 찾아 묶어야 하니까.”
“20명만 뽑아라”
▼ 민간 잠수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간 잠수사는 크게 레저·스포츠 잠수사와 직업 잠수사로 나눌 수 있다. 직업 잠수사도 하는 일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눈다. (세월호) 수색 작업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사람은 그런 걸 정확히 파악하고 팀을 구성하거나 임무를 부여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걸 검증할 시스템도 없다. 나도 산업잠수사 면허가 있지만, 잠수사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다. 평소 톱클래스 다이버들을 분류해 잘 관리하다가 이런 큰 사고가 나면 즉각 투입해야 한다. 수중작업을 할 때는 온 톱(on top), 즉 선체 바로 위쪽에 세팅 바지(setting barge)를 설치한 후 잠수사가 들어가 가이드라인을 수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러면 최단거리다. 그런 뒤 여러 팀이 동시에 들어가 신속히 선내를 수색하면 된다. 그런데 조그만 고무보트에서 입수하다보니 조류에 휩쓸려 진입구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구조의 ABC가 지켜지지 않다보니 가이드라인 설치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 민간 잠수사는 의욕과 열정을 갖고 현장에 달려가지 않았겠나. 이들을 통제했어야 했다는 얘긴가.
“한번 해보겠다고 해서 험학한 수중환경에 단련되지 않은 사람을 다 들여보낼 수는 없다. 경험 없는 일부 잠수사는 조류에 떠내려가 실종됐다가 어선에 구조되기도 했다. 수중 구조도 하나의 작전이다. 그런데 작전 개념이 없었다. 정조 시간 딱 맞춰 작업하는데, 배 타고 밀고 들어와 ‘나도 들어가겠다’고 하면 이미 작업 중인 사람들에게 지장을 주고 위험을 초래한다.”
조씨는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며 우수한 민간 잠수사를 선별해 투입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가 민간 잠수사 투입에 관여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4월 23일 현장 지휘부에서 민간 잠수사 철수를 결정했다. 그중 일부는 조씨가 안전연합회 회장으로 수중자연보호활동을 주도할 때 알게 된 사이였고, 일부는 UDT 후배였다. 이들이 조씨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봉사하러 왔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갈 순 없지 않으냐, 지휘부에 얘기해 우리한테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너희가 현장에서 지휘한다면 다이버 몇 백 명을 다 투입하겠냐. 자체적으로 최정예요원 20명만 뽑아라. 그러면 내가 지휘부에 얘기해 작업시간을 별도 배정해 투입하고 침식도 현장에서 할 수 있게 하겠다.’ 그랬더니 내 말대로 했다. 20명 뽑아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해경 특수구조대 활용 못해
조씨는 해경과 해군 측에 이들의 투입을 건의했다. 해경과 해군 지휘부는 3000t급 해경함에 있었다. 해군 지휘관 김모 소장은 조씨의 UDT 후배였다. 김 소장은 “좋은 생각”이라며 김석균 해경청장에게도 조씨의 의견을 전달했다. 조씨는 선체 수색 작업을 주도한 민간구조업체 언딘(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측에도 연락해 협조를 구했다.
“언딘 쪽에 ‘(민간 잠수사들의 요청을) 자꾸 거부하면 너희도 욕먹을 테니 받아들여라’고 했더니 말귀를 알아들었다. 최대한 협조하고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다음 지휘부에 얘기해 민간 잠수사들을 태우고 현장에 갈 배를 팽목항 인근의 서망항에 대도록 했다. 배가 도착했다는 얘길 듣고 잘되나보다 했는데, 잠시 후 ‘출발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실종자 가족 중 일부가 민간 잠수사의 참여를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가족 대부분은 민간 잠수사 투입을 요청하지 않았나.
“대부분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일이 틀어진 데는 뭔가 작용했다. 군과 해경에 다 얘기가 돼 손발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누군가 손을 쓴 게 아닐까 짐작한다.”
▼ 가족의 영향력이 가장 세지 않나.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그는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 해경과 언딘의 유착 의혹이 제기됐는데, 언딘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국내 업체 중에선 유일하게 국제구난협회(ISU)에 가입한 단체다. 그런데 거기는 뭐 특별히 실력이 좋다고 가입하는 데는 아니다. 기존 회원사 2곳에서 추천해주면 된다. 언딘은 구난업계에서 평이 좋지는 않다. 물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거리를 싹쓸이해버리니.”
해경 산하 단체 중 한국해양구조협회가 있다. 해경 전현직 간부와 해운수산업계 경영주, 항만공사 사장들이 주요 임원인데, 언딘 대표 김윤상 씨도 부총재 중 한 명이다. 구난업체 중에선 유일하다. 조씨는 이 협회에 문제가 많다고 언급했다.
“부총재가 19명인데, 구난·구조와 관련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바다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다. 이사진도 마찬가지이고. 전현직 해경 고위간부가 들어가 있으니 (해경과) 거의 한 몸으로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이 조직 만들 때 내가 얘기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실질적인 민관군 합동구조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내 구상은 지역별로 가용 구조자원을 통합해 구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낚시어선을 잘 활용해야 한다. 고속을 내는 낚시어선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비롯해 위치 탐색과 구조에 필요한 장비가 있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나더라도 가장 빠르게 구조할 수 있는 게 인근 어선이다.”
그는 2011년 해경 산하 단체로 발족한 수상레저안전협회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기존 안전연합회가 해오던 일(보트·요트 교육 및 면허시험, 안전교육, 안전요원 양성 등)을 중복 수행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하고 국고를 축낸다는 것이다.
해군 투입이 늦은 이유
▼ 해경의 가장 큰 잘못은 뭔가.
“긴급구조팀을 최대한 빠르게 투입했어야 했다. 인근 목포 해경에 다 있다. 구조인력도 있고 헬기도 있다. 그걸 써먹지 못했다. 동시에 세팅 바지를 수배해 설치했어야 한다. 이런 게 다 늦었다.”
▼ 해경 구조팀 실력은 어떤가.
“해경 특수구조대는 군에서 잘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 현장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가.
“투입은 됐는데, 구조에 대한 개념이나 준비가 없었다. 헬기에서 바구니만 내려 보내고, 소방헬기 접근이나 막고. 바구니 내려보낼 게 아니라 로프를 타고 선내로 진입했어야 했다. 이건 인명구조의 상식이다.”
▼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해경 구조대원이나 잠수사가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만 해도 배가 완전히 침몰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경사가 심하면, 예컨대 40도 이상 기울면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다. 선실 바닥이 벽면이 돼 미끄럽기 때문이다. 맨손으론 힘들다. 하지만 구조요원들이 들어가 각 선실로 로프를 던져줬다면 그걸 잡고 나올 수 있었을 거다. 초기만 해도 물이 다 안 찼기 때문에 4, 5층에 몰렸을 승객 상당수를 구조할 수 있었을 거다.”
▼ 해군도 UDT나 SSU(Ship Salvage Unit·해난구조대) 같은 뛰어난 부대가 있는데, 이번에 별 활약이 없었던 것 같다.
“구조팀을 신속히 투입하지 못했다. 특수부대 수송용 헬기가 포항 항공전단에 있다. 포항에서 진해까지 100여 ㎞를 날아와 진해에서 다시 인원과 장비를 싣고 가다보니 낮 12시 넘어 배가 침몰한 후에야 도착했다.”
▼ 진해 특수전단에는 헬기가 없나.
“없다. 내가 전에 해군 지휘부에 그런 건의를 하곤 했다. 테러 등 비상 상황에서 특수작전팀을 신속하게 태우고 이동할 수 있는 헬기를 배치해야 한다고.”
▼ 진해에 헬기 탑재한 구축함이 있지 않나.
“그건 다 대잠(對潛)헬기다. 몇 명 타지도 못하지만, 특수대원들 태우려면 장비 떼어내야 한다.”
▼ 국방부에서 해경이 해군을 막았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언딘 소속 잠수사를 먼저 투입하느라 UDT, SSU 대원의 투입을 막았다는 얘긴데.
“현장 해군 지휘관한테 그 문제를 알아봤다. 해군은 지원하는 처지이고, 수난(水難)구호법에 따라 모든 지휘는 해경이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해경이 자기네 특수구조대를 먼저 투입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순 없다.”
▼ 해경이 주도해 아무런 성과가 없으니 모든 비난이 해경에 쏟아지는 면도 있지 않나.
“결과가 안 좋은 데다 언딘 문제도 얽혔으니. 난 지금 해경에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본다. 일단 해경청장부터 그렇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특채된 후 고속 승진했다. 배를 타거나 바다를 알 만한 경력을 쌓은 적이 없다.”
▼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경청장 자격에 대한 논의도 벌어질 듯싶다.
“내가 임명권을 갖는다면 주저 없이 해군 3성(星) 제독을 그 자리에 앉힐 거다. 가장 확실하게 일할 수 있다. 바다를 알고 배를 알고 작전을 알기 때문이다. 해상구조도 하나의 작전이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는 해경.
구조와 인양 병행해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화가 난다. 기자는 “만약 바지선이 빨리 도착하고 가이드라인 작업이 빨리 진행됐다면…”이라고 혼잣말처럼 질문했다. 조씨가 혀를 찼다.
“목포에 좋은 바지가 많다. 그걸 엔진 달린 예인선이 끌고 왔다면 첫날 해지기 전에 세팅 바지 설치가 가능했을 텐데…. 그걸 안 하고 고무보트로 (사고해역에) 들어가 가이드라인 설치하려니 조류에 밀려 접근이 안 되는 거지. 그런 상황에선 박태환이라도 안 돼. 그러니 며칠간 실패한 거다. 나중에 바지가 왔는데 언딘 거였다.”
▼ 해경이 자체적으로 바지를 설치할 순 없었나.
“당연히 할 수 있다. 내가 알아보니 사건 초기 해수부에서 바다를 좀 아는 사람들이 세팅 바지를 알아봤던 모양이다. 목포에 있는 선주 중에 해수부 연락을 받은 사람이 있더라. 그런데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거다. 언딘 걸 갖다 쓰려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틀 후 최신형 다이빙 전용바지로 교체하느라 또 귀중한 잠수시간을 뺏겼다.”
사고 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선체 인양 얘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 ‘인양을 시도하면 에어포켓 소멸로 생존자에게 안 좋다’ ‘시신이 유실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인양 시도도 못 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만, 기우일 수도 있다. 시신 유실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 인양을 병행하면서 구조작업을 하면 안 됐나.
“인양하는 데는 워낙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내 수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 인양을 하면 구조작업에 차질을 빚나.
“어차피 실종자를 다 찾기란 쉽지 않다. 인양을 한다면, 구조를 위한 인양이다. 지금 상태로는 선체를 100% 수색하는 게 힘드니까. 물론 인양 전 유실 방지 조치를 해야 한다.”
그는 처음 이틀간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 크레인으로 선수를 잡고 진입구를 수면상에 만들어 선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도면을 그려가며 그 원리를 설명했다.
“배 앞머리엔 ‘사이드 트러스트(side thrust)’라고 양쪽에 구멍이 나 있다. 계류나 출항 시 배를 옆으로 밀 때 사용되는 것이다. 소에 코뚜레 끼듯 거기에 크레인 체인을 끼우는 거다.”
▼ 사건 초기 배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위험하다는 이유로 실행되지 않은 것 아닌가.
“진입구를 수면상에 그냥 뚫으면 바로 공기가 빠지면서 가라앉는다.”
급회전한다고 전복되진 않아
▼ 구멍은 뭘로 뚫나.
“용접기면 된다. 수중에서도 다 절단하고 뚫을 수 있다.”
그는 “생존자를 구조하려면 그 방법을 썼어야 한다”고 말했다.
▼ 그런 문제에 대해 빨리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런 걸 결심하는 사람이 없는 거지, 현장에.”
얘기할수록 답답하다. 그저 무거운 한숨밖에. 화제를 돌렸다. 사고 초기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 중 하나가 급선회 탓에 배가 뒤집혔다는 얘기였다. 자동차가 아닌 배가 말이다.
▼ 급회전한다고 그 큰 배가 엎어질 수 있나.
“그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떠서 다니면 안 될 배가 떠 다녔기 때문이다.”
▼ 배 구조 개조한 것과 과적(過積) 때문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승조원들의 안전 의식도 문제였고. 복원성 유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거다. 평형수를 빼낸 걸 보면. 복합 부실에 따른 100% 인재(人災)다. 검경 조사과정에서 말단 선원이 키를 급하게 돌려 배가 엎어졌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난센스다. 배 타는 사람은 웃을 얘기다. 해군도 계급 낮은 수병이 키를 잡는다. 상선도 마찬가지다. 또 선장이 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직접 통신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데 그것도 난센스다. 그런 건 선장이 안 해도 된다. 선장은 다른 할 일이 많다. 이번 사고 땐 안 해서 그렇지.”
▼ 조타수나 항해사 잘못이라고 할 수 있나.
“조타수는 시키는 대로 키를 잡을 뿐이다. 그리고 요즘은 웬만한 데서는 자동으로 침로를 유지하며 운항한다. 키를 잡거나 돌릴 일이 별로 없다.”
▼ 언론에선 경험 없는 3등 항해사의 조타 지휘를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보도했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 물살 센 것이 영향을 끼쳤을까.
“물살 세다고 배가 뒤집히는 건 아니다. 고속으로 급회전하면 배가 기울긴 해도 변침이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나도 사고해역을 1년에 한두 번씩 지났는데, 물살 세다고 전복할 뻔한 적은 없었다. 하여간 키를 많이 돌렸다고 넘어갔다면 그건 배가 아니다.”
그는 세월호가 사고 직전 항해 도중 몇 차례 정지했다는 데 주목했다.
“제주로 가는 항로는 원래 병풍도 밖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안전하다. 그런데 시간에 쫓긴 세월호는 단축 항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속력이 20노트 이상이므로 키를 5도만 틀어도 곧바로 변침(變針)한다. 그런데 몇 번 정지했다는 걸 보면 그전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배가 정지된 후 탄력에 의해 돌다가 조류 타고 한쪽으로 엎어진 게 아닌가 싶다. 사람 더 태우려 증축하고 과적하고 물(평형수)까지 빼낸 배니 안 넘어가는 게 이상한 거지.”
전문가 배치해야
▼ 험한 수로에선 선장이 나서야 하지 않나.
“선장이 조타실이나 선교에 위치하는 것은 주로 출입항할 때와 연안수로 빠져나올 때다. 배가 많이 다니니까 선장이 감독해야 하는 것이다. 심한 안개 등 기상이 안 좋을 때도. 그런데 그날은 날씨가 괜찮았다.”
▼ 맹골수로 정도면 선장이 직접 지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살만 갖고 따질 일은 아니다. 어선이나 어망이 많다면 선장이 지휘해야겠지만. 책임을 묻더라도 정확히 물어야 한다. 세월호 선장은 꼭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해서는 안 될 일만 골라 했다.”
그는 최근 대형 재난사고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 정부 고위층에 전달했다. 이후 고위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실무적 협의’를 할 뜻이 있음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가 전달한 문서의 제목은 ‘해양조난사고 신속대응 시스템 구축에 관한 연구 개요’다. 연구 목적은 세월호 사고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지휘체계를 단순화하고, 중앙정부, 자치단체 및 사고현장 지휘본부에 명실상부한 전문가를 배치해 정확한 상황판단으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선진화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최초 긴급구조는 군의 특공작전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고속 기동수단(항공기, WIG선, 쾌속함정 등)을 이용해 전문 구조팀을 신속히 현장으로 수송해 투입해야 한다는 것. 또한 민관군 구조자원을 조사해 이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 구조 네트워크를 지자체 단위별로 구성한다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그는 세월호 사건 조사단에 현장을 잘 아는 해양구조 전문가들이 참여해 문제점을 짚어내고 그것을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반영해야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재난사고에 편승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