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규 카지노 허가 없다, 드림타워 전면 재검토
- 총리 후보자 4·3사건 역사 인식 문제 많아
- 부총리, 장관에 야당 인사 기용해야
- 차기 대권 나서지 않겠다
그가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30년 만에 귀향했다. 2010년 당 내 서울시장 경선, 2011년 당 대표 경선에서 내리 패배하고 이듬해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후 첫 정치적 도전이다. 그를 바라보는 제주도민의 마음은 복잡하다. ‘제주의 인재’가 귀향한 것에 대한 반가움과 그간 그가 고향을 등한시했다는 섭섭함, 중앙정치판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제주판 3김 시대’의 막을 내리고 변화의 바람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6월 13일 제주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원 지사는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이었다. 그는 선거 직후인 6월 6일, ‘마을 심부름꾼 투어 시즌2’를 시작했다. 제주도 170여 개 마을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주민과 만나는 것. 시즌1은 선거유세 기간에 진행됐다. 한 캠프 자원봉사자는 “당선인이 지역별로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이장 집에서 자고 이튿날 새벽 바다에 나가 해녀들 배웅하고 온다”고 귀띔했다.
당선 후에도 마을 투어
▼ 선거 기간에 마을을 돌 때와 당선 후가 많이 다른가요?
“네. 옛날에는 제가 싫어서 악수를 피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티를 안 내는 거? 선거 후에 오니까 기특하다는 말도 많이 하시고. 취임 후에도 계속 마을 찾아다녀야죠.”
▼ 임기 중에도 마을 투어를 하신다고요?
“저는 현장이 집무실이자 사무실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당선됐다고 관료들한테 둘러싸여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 인사 청탁받고, 이권 있는 사업가들이랑 점심 먹기 시작하면 싹수가 노랗죠. 제가 살기 위해 마을 돌아다니는 거예요.”
▼ 선거 기간에 캠프 관계자들에게 ‘당선 이후 자리를 탐하지 않겠다’는 일명 ‘백의종군 서약서’를 받았는데.
“사실 저는 서약서까지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캠프 관계자 중 강경파가 스스로 주도했어요. 결국 돈이 나오는 데서 문제가 생기니 원천봉쇄한 건데, 그 덕에 생각보다 돈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선거가 됐어요.”
▼ 캠프 관계자들도 같은 마음일까요?
“아니겠죠, 내심 자리 바라는 마음이 있겠죠.”
▼ 그럼 어떡하나요?
“뭘 어떡해요. 그냥 무시하고 원칙대로 해야지.”
대통합은 시대적 흐름
▼ 경쟁자였던 신구범 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새도정준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겼습니다.
“신 후보님은 경험이 많고 그쪽 캠프 관계자들도 최소 6개월간 제주도 발전을 위해 고민했는데 선거 졌다고 뿔뿔이 흩어지면 아깝잖아요. 낙선했다고 해서 훌륭한 정책, 인물을 사장하는 건 낭비입니다.”
▼ 그럼 신 후보뿐 아니라 야당 인재를 적극 등용하겠다는 건가요?
“현재 인사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고, 준비위원회 차원에서 야당 캠프 브레인들이 고민한 부분을 정책에 충분히 반영한다는 거죠.”
▼ 신 후보가 위원장직을 받아들이자 야당은 ‘인재 빼가기’라며 신 후보에게 “탈당하라”고 밀어붙였는데.
“신 후보께 위원장직을 제안했을 때는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아 야당에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거지,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지금은 오해가 잘 풀렸습니다.”
▼ 그럼 향후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도 뜻을 함께할까요?(새누리당 소속인 우 전 지사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원 당선인과 경선 방식을 두고 갈등하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있었으나, 결국 불출마했다.)
“우 지사님은 큰 지도자이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같이 갈 거라고 봅니다.”
▼ 제주도지사는 행사할 권한이 많아요. 제주시장, 서귀포시장을 임명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인사가 300여 명에 달합니다.
“그 막대한 권한을 자기 패거리를 위해 쓰는 것, 그게 바로 불신의 씨앗이에요. 주어진 권한을 자신을 낮추는 데 써야죠. 권력은 나눠야 커집니다. 건강한 권력 분할을 위해 야당, 도외 인사를 적극 등용해야죠. 범위를 두지 않고 무제한으로.”
6월 11일 제주시 한덕면 덕수리 마을회관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있다.
“아니, 전면 재검토할 생각이 있으니 하겠다고 했지요. 제가 말만 해놓고 실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 그만큼 전면 재검토가 어려운 일 아닌가 해서요.
“어려워도 해야죠. 답을 찾는 건 제 몫이죠.”
▼ 이미 녹지그룹에서 드림타워 건설과 카지노 입점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녹지그룹과 재협상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죠.”
부동산 소유권 아닌 임대권으로
▼ 우 지사는 왜 드림타워를 이렇게 밀어붙였을까요?
“글쎄요. 저도 물어보고 싶은데 한번 우 지사한테 물어봐주시죠.”
▼ 우 지사가 그렇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 중앙정부와 교감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중앙정부까지 갔겠어요?”
▼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 때 녹지그룹 장위량 회장이 배석하기도 했고….
“드림타워에 투자하려는 녹지그룹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투자를 받는 제주도의 문제지. 제주도가 명확한 방침과 기준을 갖고 투자 자본을 선별하고 사후관리해야 하는데, 투자를 환영한다고 해놓고 투자하려는 녹지그룹이 문제라고 할 수 있나요?”
▼ 투자 자본의 옥석을 가리려면 어떻게 해아 합니까.
“일단 외국 자본에 부동산 소유권 자체를 넘기는 건 안 됩니다. 필요하면 장기 임대해야지. 부동산 소유권 받아서 콘도, 빌라 지은 후 분양하고 끝내는 식의 투자는 안돼요. 제주의 자연과 자산을 지키면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건강한 투자 방향으로 바꿀 겁니다. 투기성 투자 자본에 대해서는 사업권 회수도 검토할 예정입니다.”
▼ 사업권 회수까지요?
“계약에 따라 사업을 안 하면 사업권을 회수해야죠. 그래야 진짜 좋은 자본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접한 자본이 와서 다 차지해버리면 진짜 좋은 자본이 올 틈이 없죠.”
▼ 이미 사업권을 준 경우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요.
“새 도정이 시작되면 투자 원칙을 세워서 어떤 대책이 가능한지 검토해야죠.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인 경우에도 맞춤형 대응방식을 세워야 하고. 무엇보다 원칙을 세우는 것이 시급합니다.”
▼ 제주 부동산 건설 업체가 800여 개가 될 정도로 건설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건설업자들도 좋은 자본을 골라 받아야 제주지역 건설경제가 활성화하죠. 10조 원짜리 공항을 지을 생각은 안 하고 중국 자본으로 빌라 몇 채 짓는 공사 해서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정치적으로 줄 서서 사업권 받고, 재하청 주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 외국인 카지노 신규 허가는 없습니까?
“당분간은 보류할 겁니다. 카지노는 허가를 남발해선 안 되고 기존 카지노가 제대로 된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정비할 겁니다. 기존 카지노도 너무 영세하고 손님이 없어요. 정상적으로 운영해 제주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죠.”
▼ 규제가 많아지면 해외자본 투자가 축소되지 않을까요.
“제주도가 신뢰를 회복해야 제주도에 투자할 기업도 많이 생기겠죠. 투자를 했을 때 결과가 예측 가능해야 건강한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제6회 지방선거에서 당선 확정된 후 아버지, 어머니, 원 지사, 부인 강윤형 씨(왼쪽부터).
“다원화해야죠. 무엇보다 국내 자본이 많이 와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 2011년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 유치가 화제가 됐지만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작습니다.
“공항 때문에 출퇴근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어요. 선결과제를 해결해야죠. 작은 도시도 큰 기업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IT, 교육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신하는 기업을 많이 유치할 계획입니다.”
초고령사회 제주형 복지 모델
▼ 이번 선거도 그렇고,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복지인데,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나요?
“일단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복지제도는 따라가는 거고, 제주형 복지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여기는 농업 등 1차 산업 종사자가 많고 초고령사회예요. 인구는 적고. 그래서 공동체적 복지를 더 잘할 수 있어요. 현재 ‘제주형 복지모델’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요청해놓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과감하게 도입할 겁니다.”
▼ 초고령사회인 만큼 노인복지제도를 먼저 도입해보는 시험장 구실을 할 수 있을 텐데 ‘제주형 복지제도’를 구체적으로 예시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최근 귀농하는 젊은 세대가 많습니다. 본래 제주에 거주하는 분 중 시간도 많고 인정도 많은데 연세가 많은 분을 젊은 귀농인과 연결해 관광, 아이 돌봄, 봉사 등과 연계하는 거죠. 현재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입니다.”
▼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역사 인식을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지사 당선인이며 4·3사건 유가족으로서 문 후보자가 4·3사건에 대해 “공산주의자의 폭동”이라 언급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 당선인은 선거 기간에 큰아버지와 배우자의 할아버지 가족이 4·3사건 희생자로 인정됐음을 밝힌 바 있다.)
“매우 문제가 많습니다. 기사가 나갈 때쯤(6월 17일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 얘기하면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 여당에서도 사퇴 쪽으로 방향을 정했나요?
“어차피 기사 나갈 때쯤이면 무의미할 텐데. 넘어갑시다.”
“안철수? 답답하더라”
▼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야 모두 패배했다고 봅니다. 여당은 더 깨졌어야 했는데 야당이 시원치 않았죠.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는가’에 대한 근본적 믿음이 흔들렸어요.”
▼ 이럴 때 여당이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요?
“국가 대개조뿐 아니라 소통에 대한 좌절감을 해소해줘야죠. 궁극적으로 향후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여당은 ‘박 대통령을 잘 돕자’고, 야당은 ‘박 대통령을 반대하자’고 하는 수준입니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하는데….”
▼ 이번 정부의 인사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정말 커요. ‘인재가 그렇게 없느냐’는 여론이 많은데.
“그러니까 말이에요.”
▼ 원 당선인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여야를 포용하는 ‘연정’을 시도하는 것에서 대안을 찾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인재풀은 항상 좁을 수밖에 없어요. 지도자는 자기의 눈짓까지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분명 필요하지만 그 외의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공식 지위에는 폭넓게 사람을 써도 괜찮아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야당 사람을 쓸 수는 없지만 공식 권한을 가진 장관, 부총리는 야당 사람을 못 쓸 이유가 없다는 거죠.”
▼ 새로운 인물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큰데, 안철수 의원은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안 의원에 대해 “대화해보니 답답하더라”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욕한 건 아니고,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죠. 안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 거예요. 정치적 현실에서 맷집도 기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제적 리더십도 검증해야죠. 크고 작은 정치적 성취와 실패를 겪으면서 검증을 거친 사람만이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어요.
이번 준비위원회 구성을 두고 언론에서 ‘독일식 연정이다’ ‘경기도와 제주도는 어떻게 다른가’ 등 논평을 하는데, 전 간단한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정치는 선악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고, 제주도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권력을 나누겠다는 겁니다. 저는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도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실천적 방안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그렇기에 더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본질은 양보하면 안 된다”
▼ 정치 인생이 벌써 15년입니다. 좌절과 실패를 겪은 때가 있다면요?
“내 소신과 당에 대한 충성이 부딪칠 때 어려웠죠. 3선을 하긴 했지만 대선, 서울시장, 당 대표 등 당내 큰 경선에 도전했을 때 늘 ‘너무 진보적이다’ ‘고정적 지역기반이 작다’는 이유로 벽에 부딪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경험을 하면서 맷집이 좀 세지긴 했죠. 앞으로 다가올 시험이 더 무거울 것이지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올 거라고 믿습니다.”
▼ 그렇게 당의 이익과 본인의 소신이 부딪칠 때, 판단의 근거가 되는 원칙이 있다면요?
“본질적인 것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나의 확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러면서 우왕좌왕하는 게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본질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죠.”
▼ 향후 추진할 도정(道政)의 핵심이 뭔가요
“제주도가 가진 가치를 키워서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거죠. 아름다운 자연, 제주 사람들의 자존심 등. 제주가 주인이 된 속에서 개발과 확장을 해야 합니다.”
▼ 당선인의 삶에서 권력은 어떤 의미입니까.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절대 권력 자체를 즐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권력에 민감해야 하지만, 그러면서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권력의 포로가 되지 않으며 권력을 공적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
▼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렵지만 그게 권력의 본질이니까요. 정치인이 권력에 더욱 초연해야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요. 마치 사업하듯 정치를 해버리면 금방 권력의 노예가 돼 많은 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역사적으로도 권력을 탐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기억될 뿐이니까.”
1%의 희망
▼ 그래서 지금 제주도에서 원룸 생활 하시나요?
“원룸이 아니라 투 룸인데….(웃음)”
▼ 불편하지 않으세요?
“서울 집을 내놨는데 안 팔려서. 여기 살 사람이 아내와 저, 둘뿐인데 방 두 칸이면 충분하죠. 제주도에 좋은 집이야 많지만 제가 돈이 별로 없어요.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가는 다른 건 포기해야죠.”
▼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데요.
“저 차기 대통령 시켜준답니까? 하하. 말은 그냥 말이죠. 저는 4년간 제주도정을 맡아 성실히 운영하겠다고 제주도민과 약속을 맺었습니다. 그게 운명인데 ‘도지사 당선됐으니 다음 인생을 준비하라?’ 이건 아니죠. 4년간 도지사 일에 집중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 원 당선인을 두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아칸소 주의 지사 출신인 그가 대통령이 됐으니까.
“하하. 제가 대답할 문제는 아니네요.”
▼ 지역주의의 혜택을 못 본 만큼, 자유롭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대권에 도전할 수 있겠죠. 정치는 사업계획이 아닙니다. 계획할 수 없어요. 국민의 선택과 시대적 흐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요. 무엇보다 제주도지사라는, 하늘이 준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그림을 그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