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신동아-미래硏 공동기획 | 미래한국 청년열전

‘꿈꾸는 유목민’ 김수영

“헬조선? 꿈을 찾아 판을 깨라”

  • 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2-03 17: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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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토바이 타고 싸움질하던 비행소녀가 ‘꿈쟁이’로 컸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남녘 항구도시 여수 출신 소녀의 무한도전 성장기.
    여기, ‘꿈꾸는 유목민’이 있다. 김수영(35). 남녘 항구도시 여수에서 자랐다. 10년 넘게 세계를 누볐다. 비행소녀였다. 폭주족과 어울렸고 싸움질을 밥 먹듯 했다. 칼 맞은 적도 있다. 검정고시를 거쳐 또래보다 1년 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다. 1999년 실업계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KBS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렸다.
    여행가, 작가, 강연가, 기업인, 콘텐츠 제작자, 작사가, 배우다. 책 네 권을 냈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드림 레시피’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214만 명이 김수영의 블로그를 찾았다. 80개국을 여행했다. 인도 ‘발리우드’에서 영화에도 출연했다.
    2000년 연세대에 입학해 영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골드만삭스와 로열더치셸에서 일했다. 스물다섯 살 때 암을 앓았으나 완치됐다. 2005년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30만 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20만 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는 지구촌 365명의 꿈 이야기다.
    2005년 꿈 목록 73개를 적었다. 1번은 한국을 뜨는 것. 목록은 현재 83개로 늘었다. 그중 68개는 달성했거나 진행 중이다.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 싱가포르, 네팔, 레바논, 중국, 대만 언론에서 그를 다뤘다. “꿈이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김수영은 말한다. 지금껏 겪은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꿈을 나누고 있다.
    꿈 목록의 일부는 이렇다. △인생의 두 번째 3분의 1은 전 세계 돌아다니기 : 진행 중 △해외에서 커리어 쌓기 : 성공! △고향에 부모님 집 사드리기 : 성공! △살사 퀸으로 무대에 서기 : 성공! △재정적 자유 얻기 : 진행 중…. 사망 후를 전제로 한 꿈도 있다. ‘전 재산과 장기 기증’이다. 
    김수영은 “사람의 인생 크기는 꿈의 크기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꿈 중 하나는 더 많은 사람이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소녀 시절 그를 삐뚤어지게 한 것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꿈을 꾸면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고 꿈을 하나씩 이뤄갔다. 말마따나 행복은 꿈꾸는 자의 몫일 것이다. 



    노마디즘 욕망

    ▼ 페이스북에 ‘꿈꾸는 유목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더군요. 수영 씨 인생에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 고민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거, 예컨대 태어난 국가, 성별 같은 것 중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바꿀 수 없는 게 있잖아요. 국적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실제로 바꾸기도 하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고 꼭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세상에는 검은 머리칼만 있는 게 아니라 빨강 머리칼도 있고, 노랑 머리칼도 있잖아요. 다양한 색의 삶이 있는데, 꼭 한곳에 정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꿈 목록을 처음 썼을 때는 적어도 30년은 돌아다니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0년 넘게 지구촌 곳곳을 쏘다녔어요. 지금은 대한민국이 좋아요. 추운 겨울은 싫지만요.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말에는 방랑하며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면서 살겠다는 의미가 담겼죠.”  
    ▼ 여행하면서 실제 유목민을 만나보기도 했나요.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대륙에서 유목민의 생활을 들여다봤는데, 그분들이 그냥 막 돌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들 나름의 경험에서 축적된 아주 정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더군요.”
    그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한다. 
    ▼ 인간의 삶에서 ‘집’이 차지하는 의미가 상당한데요. 유목민 집은 몽골의 이동식 집 ‘게르’에서 확인되듯 고정돼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됐어요. 꿈꾸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유목민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현대인이 유목민화하는 것 같습니다. 여행하면서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서비스)를 주로 이용했어요. 20㎏ 배낭에 전 재산을 담고 도시마다 한 달씩 살았습니다. 뉴욕에서 한 달,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 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 달, 이런 식으로 막 돌아다녔거든요. 에어비앤비가 붐을 일으킨 것은 현대인의 노마디즘에 대한 욕망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르완다의 한국인 커피숍

    노마디즘(nomadism)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지향을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 용어로 자리 잡았다.
    “맨 처음 꿈 목록을 적을 때는 소유와 관련한 게 많았는데, 유목민처럼 각지를 쏘다니다보니 소유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더군요. 예전에 가진 꿈 중 하나가 요트를 갖는 거였는데,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요트를 소유한 친구들을 보니 정박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더군요. 그래서 요트 항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그때 빌려서 항해하는 게 훨씬 편하거든요.
    고정된 집이 하나 있는 것도 좋지만 꼭 한곳의 집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국 겨울이 춥잖아요. 겨울철에는 동남아시아에 가서 살고 싶어요. 동남아에서는 수십만 원 월세로도 아주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거든요. 이렇듯 전 지구적으로 보면 선택지가 굉장히 많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인 DNA에는 북방계 유목민적 특성이 70% 안팎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꿈꾸는 유목민의 위치에서 한국인의 어떤 점이 유목민적 DNA라고 봅니까.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고 감탄할 때가 아주 많아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성공한 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우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와 삶을 개척했을까, 감탄이 나와요.”
    ▼ 태평양 조그만 섬에도….
    “맞아요. 르완다에 갔는데 한국 대학생들이 거기서 커피숍을 열어 대박을 친 거예요. 한국에서는 커피 가게가 레드오션이지만, 르완다에서는 다르거든요. 대학생들이 커피숍이라는 흔한 아이템을 갖고 블루오션을 찾아 아프리카까지 찾아간 겁니다. 한국인은 생존력, 생활력이 굉장히 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따뜻한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독기가 없어요. 추운 나라 사람들이 독한데, 한국인은 침략을 많이 받고, 위기를 자주 겪어선지 본능적으로 생존의 길을 잘 찾는 것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법

    ▼소녀 가장으로서.
    “맞아요. 소녀 가장이죠. 가족이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고요. 되돌아보면 불평, 불만할 틈조차 없었기에 더 강해지고,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청년에게서 e메일을 받습니다. 돈이 없어 서럽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부모님한테 용돈을 많이 못 받는 현실을 괴로워하는 거였습니다. 저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그 친구 정도만 됐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군요. 현실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흙수저이기에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이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꿈을 현실에 맞춰 줄여 살 것인지, 현실을 개척해 꿈을 이뤄낼 것인지의 선택일 겁니다. 1년 후 호주 유학을 가고 싶은 대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봐요. 6000만 원이 드는데, 1년에 1200만 원씩 5년을 모아야 하는 큰돈입니다. 1년에 6000만 원을 벌 방법을 궁리하는 게 먼저여야 해요.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안 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뤄낼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아픈 청소년기를 극복하고 명문대에 입학했으며 세계적 기업 골드만삭스에 취업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유수의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에서 일했고요. 암을 앓아 고비를 맞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의 청년들이 다종다양한 문제로 고민, 방황, 좌절, 고통을 경험하는데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때 필요한 지혜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2005년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꿈 목록을 처음 썼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열심히 산 게 죄가 아닐진대 왜 다들 나를 힘들게 할까’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의 한국이 저에겐 헬조선이었어요. 세상은 저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제 잣대로만 세상을 멋대로 판단하면서 괴로워했죠. 한국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한국을 뜬 거죠. 돌이켜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제 마음이 헬이었던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분노 에너지가 힘이 됐습니다. 산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에베레스트와 킬리만자로에 올랐어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도전하려 했습니다. 작은 세계에서 억눌려 지낸 것에 대한 반동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축복받은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외적 도전이 내적 탐색으로 이어지더군요.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귀한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인간의 아주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욕망을 충족하고자 지나치게 아등바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존과 안전의 문제는 해결됐거든요.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에서 자존감의 문제, 그러니까 자아실현을 두고 괴로워하는 것인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면 스스로를 토닥거려주면서 ‘나’를 충분히 사랑하는 게 해법 혹은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값진 여정을 겪은 것 같습니다.
    “깨닫기까지 정말로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21세기는 세계화·정보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 같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국인은 유목민적 DNA와 농경문화가 융합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비빔밥 문화’ 등을 발전시켜 ‘디지털 유목민’으로 불리면서 새로운 세계 문명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꿈꾸는 유목민’과 같은 자유로운 정신, 도전 정신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꿈꾸는 유목민’이 바라는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떤 걸까요.



    ‘놀아본 언니’가 청년에게

    “흙수저론이 상징하듯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세상이 너무나도 좋아졌어요. 진입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과거에는 소수에게만 허락되던 정보와 기회가 인터넷이나 미디어의 발달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 각지의 주옥같은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웬만한 정보는 다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에 돈이 많아야 과외를 받았는데 요즘에는 인터넷 강의가 널렸어요. 지인이 페이스북에 웃기는 동영상 같은 것을 올려 팔로어 100만 명을 만든 후 200억 원을 투자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죠.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들어가는 전통적 방식의 성공만 생각하니 흙수저론이 나오는 겁니다. 판이 마음에 안 들면 판을 깨뜨리면 됩니다. 한국의 문제는 절대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불평등이잖아요. 미디어를 통해 보면 남들은 다 잘사는데 나만 못사는 것 같은 거죠.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흔히 북유럽을 얘기하는데,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곳이나 장단점이 있거든요. 개개인이 나한테 맞는 것을 고르면 되는 겁니다. 국가도 나한테 맞는 곳을 고를 수 있고요. 꿈 부자가 돼야 해요. 학원에 갖다 바칠 돈과 에너지로 경험이라는 공부를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미래의 한국은 청년들이 각자의 로드맵으로 꿈을 찾아 나아가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미래전략연구원과 ‘신동아’가 함께 진행하는 ‘대한민국 청년열전’의 첫 순서는 한반도에서 가장 북녘인 두만강변에서 살다 탈북해 세계가 주목하는 인권운동가가 된 이현서(35) 씨였습니다(2016년 1월호, '탈북소녀 ‘생존투쟁’ 세계인 가슴 적시다' 제하 기사 참조). 2월호의 주인공은 한반도의 남녘 항구도시 여수 출신의 꿈꾸는 유목민 수영 씨고요. 북한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탈북한 분들의 경험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북한 체제에서는 꿈을 꾸는 데 한계가 상당할 듯싶어요. 통일을 이루고 난 후에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나 한국 청년이 갖지 못한 독기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된 나라에서 엄청나게 성공하는 북한 청년이 있을 거예요.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북한 청년과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 청년의 격차가 줄어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통일이 언제쯤 이뤄질까요. 제 소망 중 하나가 북한 청년의 인력 개발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북한 청년들이 꿈꾸는 일을 이루는 것을 돕고 싶어요. 통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가 CD 두 장을 꺼내 인터뷰어 두 명에게 선물하면서 말했다.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 데 왜 나만 불행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면 삶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또래의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누렸습니다. 경험한 것을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하다 생각한 게 창작입니다. 판타지를 가미한 동화를 쓰기도 했어요. 노래도 두 곡을 작사했는데요. 직접 불러 CD로 제작한 겁니다.
    하나는 제목이 ‘Fly to your dream’이고요. 다른 하나는 제목이 ‘I-YA’인데, 아이는 I(나)와 child(어린이)를 뜻합니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심리학 용어로 ‘내면의 아이’를 가리키는 건데요. 내(I) 안의 어린아이(child)에게 불러주는 치유의 노래예요. 직접 만든 ‘I-YA’ 뮤직비디오 링크를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창작활동입니다.”  
    잠시 후 드림아이중창단 어린이들이 부른 뮤직비디오가 카카오톡으로 배달됐다. ‘I-YA’의 가사는 이렇다.
    “이제껏 토닥거려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이젠 말할게. 아껴주지 못해서 미안해. 살아줘서 고마워. 널 사랑해, 나의 예쁜 아이야. 귀한 아이야, 소중한 아이야.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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