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누구나 부러워하고 ‘나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수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인 재벌 총수의 자살은 누구에게나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둘째, 정회장이 55세란 나이로 갑작스레 자살을 선택한 데서 오는 충격파는 특히 2000년 6·15선언 이래 남북이 화해한답시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이른바 남북경제교류사업에도 미치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 1001마리를 몰고 북으로 들어간 이래 불붙은 이른바 남북경제교류사업은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자칫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그가 속한 현대아산재단은 물론 현대 계열 전체에도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자신이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고 몇 차례 강조하고 ‘용서해줄 것’을 간청하면서도 김윤규 사장에게는 ‘대북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목에는 그가 외로이 자살이라는 길을 떠나면서도 남은 사람들이 회사를 잘 꾸려나갈 것을 당부하는 심정이 담겨 있다.
어쨌든 살기가 어렵다고 자식과 동반 자살하는 주부, 아들이 카드빚을 졌다고 자살하는 아버지 등이 생겨나고 있는 이 시점에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불과 4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으로서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세계 12대 무역국가, OECD에 편입되어 선진국으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허탈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 자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정몽헌씨 같은 사람도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정신분석학 이론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는 어떤 역경이 와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 하며, 다음 세대까지 연장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이런 만고의 진리와 같은 법칙을 무시한 채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현상은 도대체 어째서 일어나는 것일까?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920년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몸소 경험했던 탓인지 인간의 마음속에는 ‘삶의 본능(libido)’에 대립되는 ‘죽음의 본능(thanatos)’이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삶의 본능’이 사랑과 건설, 노동, 결합의 의지로 나타난다면 ‘죽음의 본능’은 증오와 파괴와 노동 거부와 분열의 길을 향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죽음의 본능’은 인간이 잠을 잘 때나 적을 만나 싸우는 공격행위를 할 때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 ‘삶의 본능’을 돕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너무 고달프거나,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일마다 실패해 절망 상태에 빠질 때는 ‘죽음의 본능’이 한꺼번에 치밀어 자살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죽이고 싶다’가 ‘죽고 싶다’로
자살현상에 대한 두 번째 이론은 K. 메닝거(Karl Menninger)의 학설에서 볼 수 있다. 프로이드의 ‘죽음의 본능’ 설에 기초하여 메닝거 박사는 인간이 자살하게 되는 3단계의 심리과정을 지적했다.
첫 단계는 일상생활에서 일이 제대로 안 되거나, 방해하는 자가 있다고 느낄 때 그 대상을 ‘죽여버리고 싶다(wish to kill)’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죽임을 당하고 싶다(wish to be killed)’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남을 향했던 살인적 증오심이 마치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이다. 메닝거 박사가 말하는 마지막 단계는 자기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상태(wish of death)’가 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