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기술적으로 저장기간을 늘리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수조의 수질(Ph)을 조절하면 1600일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또한 폐연료봉 하나하나를 금속 컨테이너에 포장하면 부식이 일어나도 컨테이너 안만 오염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말 그대로 ‘연장’일 뿐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폐연료봉은 재처리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빼내 외국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등 흑연감속로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재처리시설을 보유해 자체적으로 폐연료봉을 처리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비핵화선언은 ‘재처리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발생한 폐연료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불성설인 셈이다. 그러나 비핵화선언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한편 비핵화선언으로부터 2년4개월이 지난 1994년 5월 북한은 5MW 원자로에서 사용기간이 끝난 폐연료봉을 꺼내 영변의 수조에 보관한다. 이것이 북핵 문제의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인 폐연료봉 8000개다. 비록 알루미늄 컨테이너에 보관중인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꺼낸 지 9년을 넘긴 지금 폐연료봉 가운데 일부는 방사능 누출의 위기에 봉착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봉인을 풀 때까지 이 폐연료봉을 저장하고 있는 수조는 IAEA의 무인카메라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다.
현재 이 폐연료봉이 영변에 남아 있는지 여부는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거리다. 북한측은 지난 4월 “이미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통보했지만 원자력 전문가들과 CIA 등 정보기관들은 이에 대해서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대신 영변에 있던 폐연료봉이 이미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우리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전했다.
만약 이 가운데 이미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폐연료봉이 있다면 운반작업에 참여했던 인력이나 이동과정에서 폐연료봉을 접했던 사람들 중에는 방사능에 피폭된 이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외국의 경우 무인로봇 등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지만 북한의 경우는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피폭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몰랐다”와 “알았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비핵화선언은 북한에게 ‘남는 장사’였다. 우선 눈엣가시였던 팀스피리트 훈련을 한 해나마 중단시키는 성과가 있었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당시 국제사회의 가장 첨예한 요구 사항이었던 IAEA 핵 안전협정 서명과 사찰을 상당기간 뒤로 늦췄다는 사실. 북한은 비핵화선언 논의과정에서 끝내 안전협정에 서명하지도 않았고 사찰 일정을 밝히지도 않았다. 때문에 결국 이에 대한 언급은 공동선언문에서 제외됐다. 이를 통해 공동선언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10월부터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영변을 방문한 이듬해 6월까지, 북한은 국제사회의 공격적인 사찰요구를 피해가며 이미 시작한 재처리시설 건설공사를 진척시킬 시간을 벌었다.
궁금한 부분은 당시 우리측 관계자들은 왜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선언을 체결했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당시의 우리측 관계자들은 남한에 관련정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데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북한 핵 현황에 대한 기술분석작업에 참여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영변의 5MW 시설의 구체적인 내역과 특성에 관한 정보는 이미 1980년대 말 우리측에 전달됐다. 이 무렵 북핵 문제가 처음으로 이슈화되자 미국이 위성사진과 IAEA 자료 등을 통해 수집해온 상당량의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여기엔 당연히 폐연료봉 피복의 부식성에 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공동선언 논의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공동선언 이행과 관련해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한 당국자는 “비핵화선언 협상은 외무부와 통일원 등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고 과기부 등은 관여하지 않았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관련정보를 검토할 수 있는 인물들이 동참한 것은 공동선언문이 채택되고 80여 일이 지나 남북핵통제공동위가 개최될 무렵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민간 전문가들이 자문에 응하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해서 원자력학계 인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핵화선언 논의과정에서 자문을 요청받은 적이 있거나 자문을 했다는 전문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요청이 있었다면 원자력학회나 원자력위원회 등 공식기구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비핵화선언 이후 알려졌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한 연구원은 “원자력연구소 등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들에게도 정부가 비핵화선언 협상과 관련해 도움말을 요청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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