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당선인이 선거 유세 도중 예비역 병장들에게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목도리를 걸어준 후 포옹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경제 회복’을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했고,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도록 지원하는 가족 정책이 곧 여성 정책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박근혜 당선인과 통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하루 전인 12월 18일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한 것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헌신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이후 가장 역점을 둘 분야는 경제 안정과 양극화 해소가 될 것임을 밝힌 것이다.
또 맞벌이 부부를 위한 방과 후 돌봄 서비스, 저소득층 자녀 수에 따른 세액 공제, 임신 기간 중 근로시간 단축 등 ‘일과 가정 양립’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공약을 내놨다. 여성계에서는 “여성 후보임에도 여성 정책이 부실하다”고 비판했지만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의 감성’을 갖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사회활동과 정치 참여 확대를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2004년 7월 한나라당 대표 취임 후 당사에 어린이집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당선인은 야근을 하게 된 여성 당직자가 아이돌보미를 찾기 위해 다급하게 여기저기 전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당장 당사에 어린이집을 만들어라. 어린이집 하나 없는 정당에서 어떻게 보육 정책을 논하느냐”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의 존재만으로도 사회 각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업 등에서 여성복지나 모성보호 등에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박근혜 당선인은 여성들이 보육에 대한 부담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여성각료할당제 등의 정책에는 거부감을 보여왔다. 2000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여성 후보에게 당연직 부총재를 주는 관행을 거부하고 경선을 완주한 적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서전과 인터뷰 등에서 그 이유를 “‘여성 정치인’으로 보호받고 특혜를 누리며, 여성 몫으로 만들어놓은 자리에 임명되는 것은 정치적 신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같은 부총재라도 선출직과 지명직은 말의 힘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고 소신 있게 내 목소리를 내길 원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당시 선거 과정에서 박 당선인은 “박근혜는 안 찍어도 여성 몫의 부총재로 임명될 것이니 꼭 필요한 사람을 찍어달라”는 얘기를 수차 들으며 여성 우대정책이 오히려 여성에게 장애가 되는 딜레마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당시 내가 ‘여성 지도부는 들러리’라는 금기에 정면 도전한 것이 나중에 김영선·전여옥 의원 등이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하며 “언젠가는 선출직 지도부의 반 이상이 여성으로 차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실질적인 여권 신장
이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대통령 박근혜’가 이처럼 또 한 번 다른 여성 정치인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일단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 국가에 산재한 문제를 잘 해결해야만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별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로서 해낸 성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박근혜 당선인이 국정의 주요 과제로 내세운 민생 경제 회복과 양극화 해소, 부정부패 일신 등의 ‘새정치’를 실현할 경우 여성의 사회적 영향력과 힘은 한 단계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시대정신도 바로 그것을 바라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소통의 리더십과 소외 계층을 보듬는 모성적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