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중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북한이 도발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으로 인해 남북이 포격을 교환한 후 북한이 준전시 사태를 선언해 전면전 가능성마저 거론될 때 일이다.
“경거망동 말라”
인민해방군이 북중 접경으로 이동한 것과 비슷한 시각 훈춘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삼은 중·러 해상 합동훈련(8월 20~28일)이 실시됐다.
다롄(大連)의 재중동포 사회에서는 병력 이동을 포함한 중국의 압박에 대한 항의 표시로 북한이 8월 27일~9월 3일 평양-옌지 간 전세기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2010년 11월 말에도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다. 평양은 국군의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서남방 포사격 연습을 빌미 삼아 11월 23일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 연평도 주둔 해병대는 즉각 자주포를 동원해 맞은편 북한군 진지를 포격했다. 공군은 포격 직후 KF-16 2대, 추가로 KF-16 2대와 F-15K 4대를 출격시켰으나 전투기들에는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이 장착되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결돼 북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컸다. 국민 다수가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보복을 요구했으며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베이징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황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게 아닌지 우려한 것이다. 11월 27일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을 한국에 급파했다. 다이빙궈는 비자도 없이 한국행 특별기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에 내린 후 도착비자를 받았다. 부총리급 인사가 황급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일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인은 외교관이더라도 한국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했는데, 국무위원이 비자도 없이 날아온 것이다.
다이빙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김성환 당시 외교부 장관을 차례로 면담하면서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혀달라고 서울에 요구했다. 평양을 향해서도 “더는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에 전개된 것에 중국은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한미 양국이 2010년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에서 항모 조지 워싱턴함을 동원한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하자 중국은 베이징군구와 선양군구 병력을 동원해 대항 훈련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의 항모전단(航母戰團)이 두 나라 간 암묵적 합의를 무시하고 북위 36도 34분의 격렬비열도(충남 태안) 선(線)을 넘어 북진하는 게 아닌지 극도로 긴장했다. 인민해방군은 산둥반도의 지난군구와 북해함대 등에 비상을 걸었다.

박근혜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승 열병식 행사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