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긴급분석] '명태균 여론조사', 누구에게 유리했나

"ARS 특성 활용한 '고객 맞춤형' 결과물 생산"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입력2024-10-15 13: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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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이준석, 김영선 조사에 드러난 함의

    • 이준석, 나경원 제치고 1위…대선주자 반열

    • 11명 적합도 조사…2030은 이준석 ‘몰표’

    • 김영선 조사에서는 ‘초단기’ 한나라당 대표 활용

    • 2022 대선 경선-본선 여론조사만 42번

    • 尹 vs 이재명, 지지율 차 유난히 커

    [Gettyimage, 명태균]

    [Gettyimage, 명태균]

    지금 정국은 명태균발(發) 블랙홀이다. 미래한국연구소 회장을 지낸 명태균 씨의 폭로가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에서 시작된 명 씨의 폭로는 거침없다. 명 씨는 윤 대통령 부부 앞에서 총리를 추천했다거나, 자신이 얘기를 풀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 달이면 탄핵된다거나, 대선 출마 선언 전후 거의 매일 통화를 했다는 등 온갖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명 씨는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여론조사를 통한 선거 컨설팅’에 능숙한 걸로 알려졌다. 그가 회장으로 있던 미래한국연구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중앙여심위) 등록 기준으로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모두 109개 여론조사를 (주)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에 의뢰했다. 주로 언론사와 유튜브 방송이 함께 의뢰하는 형식을 취했다.

    명 씨는 인터넷 매체 ‘시사경남’의 대표로도 알려져 있다. 시사경남은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와 함께 2021년 7월부터 12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명 씨의 말대로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매일 보고했다는 이른바 ‘명태균 여론조사’(명 씨와 관련 있는 여론조사)는 당시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명태균 여론조사’ 결과는 그와 관련된 김영선 전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게는 어떻게 작용했을까.(여론조사 관련 구체적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준석 당대표 당선 1등

    2021년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꽃다발을 들고 손을 들어 기쁨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2021년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꽃다발을 들고 손을 들어 기쁨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된 것은 2021년 6월 11일 전당대회에서였다. 이 의원은 당시 나경원 의원의 추격을 받았지만 경선 중반부터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보수정당의 30대 당대표 출현은 여야 모두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은 이준석 당대표 체제 출범에 따른 2030 남성의 지지 때문이기도 했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적합도 1위에 처음으로 오른 것은 2021년 5월 16일이다. 머니투데이·미래한국연구소가 PNR에 의뢰한 100% 무선 ARS 여론조사였다. 총 11명의 인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의원은 20.4%를 얻어 그 이전까지 여론조사에서 1위였던 나 의원을 제치고 처음 선두에 올랐다. 2030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1위를 꿰찬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뜻밖에 1위를 차지하면 지지율 상승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른바 ‘밴드왜건(bandwagon·편승) 효과’가 본격화한다. 5월 16일 PNR 여론조사를 계기로 이 의원은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대세론’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분석된다. 밴드웨건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이 의원은 PNR 여론조사에 이어 실시된 한국갤럽의 2021년 6월 1주(4일 공개) 여론조사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 3%를 얻어 이재명(24%), 윤석열(21%), 이낙연(5%)에 이은 전체 4위였다. 안철수(2%), 정세균(1%), 홍준표(1%)가 그의 뒤를 이었다. 이 조사에서 이 의원은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면서 사실상 국민의힘 당대표를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이 의원이 1위를 기록한 ‘명태균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사 설계도 무난했고, 통계 처리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1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2030의 지지를 받는 이 의원에게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설문 구성이었다. 2030 설문 대상자들 중에서 2030의 이준석 몰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응답률이 낮은 ARS 조사였기 때문에 전화면접 조사보다 적극 지지층이 많은 이 의원에게 유리한 방식이었다. 무선 100%를 활용한 것도 그 이전까지 선두를 지켰던 나 의원에게 불리했다. 일반적으로 유선은 강성 보수 여론이 반영된다. 만약 10∼20% 정도 유선을 반영했다면 나 의원의 선두 고수 가능성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명태균 여론조사’가 조사 자체를 왜곡한 것은 아니었지만 ARS 조사 방식을 시의 적절하게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10월 8일 윤 대통령이 이 의원을 통해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명 씨를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원은 명 씨가 자신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헛소리”라고 일축하며,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직전 세 번째로 윤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명 씨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초단기 ‘한나라당 대표’ 경력 활용한 김영선 여론조사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김영선 전 의원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명 씨를 윤 대통령 등에게 소개하는 등 정치권 인사들에게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은 경남 김해갑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경선에서 배제되면서 실제 ‘공천 개입’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천 개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패한 개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창원 의창구 선거구에는 국민의힘 공천을 받고 출마해 당선한다.

    ‌미래한국연구소는 당시 지역 언론과 공동으로 모두 5차례에 걸쳐 창원 의창구 보궐선거 여론조사를 PNR에 의뢰했다. 첫 조사는 그해 4월 25일 공개됐는데, 김영선 ‘한나라당 전 대표’ 42.4%, 김지수 당시 경남도의원(더불어민주당) 21.9%로 나타났다.

    김 전 의원은 2006년 6월 16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사퇴하면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24일 임기의 ‘초단기’ 당대표를 지낸 적이 있다. 명씨는 이런 초단기 경력을 주요 경력으로 설문 대상자에게 제시한 것이다. 김 전 의원은 1996년 15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배지를 단 이후 18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하다가 두 번 낙선한 뒤 2022년 보궐선거를 통해 5선 고지에 올랐다.

    당시 창원 의창구 여론조사 역시 조사 설계나 통계 처리에서 위법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김 전 의원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데에는 자신의 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여론조사 기법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점은 김 전 의원의 경력을 한나라당 전 대표라고 표기한 것이다. 과거 새누리당 의원 경력이나 국민의힘 후보를 앞세우기보다는 ‘보수정당 대표’를 지낸 경력을 강조한 것은 보수 색채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또 있다. 유선 비중이 28%였는데 이는 김 전 의원에게 매우 유리한 방식이다. 농촌 지역도 아닌데 유선 비중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보수정당 지지세가 높은 곳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7∼8명이나 있었는데도 김 전 의원과 민주당 도의원과의 맞대결 구도로만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주요 정당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민심 또는 경쟁력, 구도다. 당시 민주당은 여성인 김 도의원 외에 다른 후보가 거의 없었다. 국민의힘은 구도상 민주당 공천 움직임에 맞대응하기 위해 우선순위로 여성을 검토했고, 여기에 김 전 의원은 4월부터 ‘명태균 여론조사’를 통해 일종의 ‘본선 경쟁력’을 입증한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당시 윤상현 국민의힘 6·1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은 2022년 5월 10일 김영선 전 의원을 경남 창원 의창 후보로 확정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번 공천 후보자 추천에서 몇 가지 원칙을 가지려 했다. 첫째는 해당 선거구가 포함된 시·도지사 경선에서 탈락한 분들은 추천에서 배제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둘째는 여성 인재 발굴에 주안점을 뒀다. 우리 당이 여성가족부 폐지 등으로 여성에 대단히 인색한 모양으로 투영되고 있고 지난 대선에서 20대 여성들의 우리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대선 승리 기여도가 높고 윤석열 정부 탄생에 노력하고 윤석열 정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분을 추천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명태균의 2022 대선 여론조사

    머니투데이·미래한국연구소는 공동으로 PNR에 의뢰해 2021년 4월 20일(공개 기준)부터 7월 3일까지 매주 11차례에 걸쳐 ‘전국 정기(정례) 조사 대통령선거 정당지지도 국정평가’를 실시한다.

    첫 조사는 검찰총장 사퇴 후 한 달 반 만에 이루어졌다. 윤 대통령은 당시 정치참여 여부를 고심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의 관심사였고 윤 대통령과 옷깃만 스쳐도 화제가 되던 때였다. 매주 실시된 PNR 여론조사는 거의 모든 신문·방송·인터넷언론·유튜브 등이 경쟁적으로 받아썼고, 온라인에선 퍼 나르기가 유행이었다.

    ‌여론조사는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특히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ARS 여론조사에선 통계의 진폭이 크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PNR 첫 정례조사에서 윤 대통령 대선 출마와 관련 ‘국민의힘 입당 vs 새로운 정치세력화’ 질문이 포함돼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반(反)문재인, 반민주당 대표성을 확고히 굳힌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출마 방식에 대한 질문은 정답이 거의 정해진 것이나 진배없다. ‘국민의힘 입당’(42.2%)이 ‘새로운 정치세력화’(23.7%)를 크게 앞섰다. PNR을 필두로 많은 여론조사가 이러한 결과를 속속 내놨고,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은 상수가 됐다.

    ‌여론조사도 싸움처럼 ‘선빵’이 중요하다. 선거는 기세이자 흐름이기 때문이다. 여론은 한번 형성되면 지속하려는 특징이 있다. 다자 구도에서도 윤 대통령 우위 방향이 정해졌다. PNR 첫 조사에서 ‘대선후보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윤석열(34.0%) △이재명(27.6%) △이낙연(11.9%) △홍준표(5.1%) △안철수(4.8%) 순으로 나타났다. 이후 PNR 여론조사에서 이러한 지지율 추이는 대체적으로 유지됐다. 물론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들이 나왔다.

    다만 ‘명태균 여론조사’에서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격차가 유난히 크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됐다. 일례로 2021년 6월 26일 PNR 다자 대결에서는 윤석열 32.7%, 이재명 25.5%였지만, 그보다 3일 앞선 6월 23일 NBS 조사 때는 윤석열 20%, 이재명 27%였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의 다른 대선후보 캠프는 물론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여론조사와 관련한 불만이 표출됐고, 머니투데이는 2021년 7월 3일(등록)을 마지막으로 PNR과 조사를 중단했다. 그리고 시사경남은 뉴데일리와 함께 PNR에 의뢰해 7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총 17차례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12월부터 프라임경제신문과 공동으로 PNR에 의뢰해 여론조사 실시를 재개한다. 여론조사는 거의 매주 실시됐고, 3월 초까지 모두 1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그해 11월 5일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날이다. 12월과 2022년 1월엔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당히 흔들리던 시기였다. 선거 주도권을 놓고 이준석 당시 당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 간 심각한 갈등이 불거졌다. 다수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역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PNR 여론조사에선 상대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결과들이 공개되곤 했다.

    명 씨는 시사경남 대표를 겸직했기 때문에 2021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거의 매주 PNR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셈이다. 머니투데이 11차례, 뉴데일리 17차례, 프라임경제 14차례까지 더하면 대선 경선부터 본선까지 실시한 여론조사가 42회가 된다.

    尹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온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동아DB]

    ‘명태균 여론조사’, 즉 PNR 조사는 왜 윤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왔을까. 조사 설계와 통계 처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전화번호를 불공정하게 활용했을 개연성도 크지 않다.

    우선 응답률이 낮은 ARS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이란 이름이 민감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맞서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ARS 여론조사에선 인지도가 곧 지지도로 연결되곤 한다.

    검찰총장 사퇴→ 대선 출마 고심→ 국민의힘 입당→ 대선후보 확정 같은 스토리가 ARS 여론조사와 ‘궁합’이 잘 맞았던 셈이다. 최근까지도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ARS 여론조사가 전화면접 조사보다 5%포인트 안팎으로 높았다. 다만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최저를 경신하면서 ARS와 면접조사 결과가 비슷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우스 이팩트’(House Effect·여론조사를 의뢰·수행하는 기관 성향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성을 가지는 ‘기관 효과’)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PNR 여론조사가 반복되면서 일반적으로 윤 대통령이나 보수정당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형성된다. 이렇게 되면 PNR에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층의 응답 가능성이 높아진다. 응답률이 낮은 ARS 여론조사에선 ‘하우스 이펙트’가 커질 수 있다.

    대표적 경우가 ‘여론조사꽃’이다. 여론조사꽃은 진보 성향 김어준 방송인이 운영한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정치 관심이 많은 보수 지지층도 이러한 사실을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PNR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꽃에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진보 성향의 응답 가능성이 높아진다.

    ‘명태균 여론조사’는 쏟아지는 비난과 달리 명백히 불법이란 증거는 아직 없다. 중앙여심위에 등록한 조사 결과들은 비교적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진다. 또 불법 조사로 판명돼 제재를 받게 되면 중앙여심위 홈페이지에 그러한 사실을 적시하고 조사 결과를 삭제한다. 따라서 ‘명태균 여론조사’는 ARS 특성을 100% 활용한 ‘고객 맞춤형’ 결과물들을 생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조사들을 통해 여론 형성에 개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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