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北 포로 고문할거냐” 발언 파장
근거는 고작 ‘영화’, 요즘 시대에 고문이라니…
러 군사‧경제‧기술, 北엔 도움 한국엔 위협
北에도 전쟁 겪은 新세대 온다
10월 18일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공개한 영상에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보급품을 받고 있다. [SPRAVDI 페이스북]
10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전투 병력을 파병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가운데,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북한군 전쟁포로를 심문하기 위한 ‘심문조’를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대표의 ‘고문기술 전수’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우려와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너무 비판 일변도로 흐르면 재미가 없으니, 본격적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대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이재명, 영화 장면 근거로 “국정원이 北 포로 고문할 것”
10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전쟁 포로에 대한 심문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는, 그냥 영화 장면들을 상상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 혹시 어느 전선에 계셨어요? 아, 어떤 작전에 참여하셨어요? 이렇게 물어보겠습니까? 얼마나 잔학한 행위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필자는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지 않다. ‘팩트’를 말하고 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대한민국 원내 제1당의 대표가, 대한민국 국정원이 해외에서 전쟁포로를 고문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그 판단의 근거로 ‘영화 장면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대표는 평소에 어떤 영화를 보는 걸까. 그것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서 포로를 고문할 것이라는 발상이야말로 너무도 단순하고 유치할 뿐 아니라 위험천만해 보인다. 제네바 협약이라는 게 있으니 전쟁 포로를 고문하는 일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믿는 정치 지도자와, 영화를 보니까 포로는 고문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 가운데 유사시 전쟁 포로에 대한 잔학 행위를 더 쉽게 허용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가진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 가장 진지한 판단을 내려도 모자랄 때다. 그런데 대한민국 원내 제1당의 대표는 “영화를 보니까 포로를 고문하던데” 같은 발언을 하고 있다. 그 어떤 국회의원도, 최고위원도 당대표를 말리지 않는다. 무엇이 비극이고 무엇이 희극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마치 영화 ‘판도라’(2016)를 보고 원자력 발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권의 역사가 반복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러시아 통해 강해질 北, 대한민국에 심각한 일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단순히 군사적 차원만 놓고 봐도 그렇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한 후 탄두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한반도를 넘어 미국에 닿을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을 완성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체제 보장을 확보하길 원한다.
이런 북한에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많다. 물론 지금은 많이 퇴색됐다고는 하나,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축적된 핵 기술과 우주항공 기술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엄청난 자금이나 물질적 지원이 필요한 사안조차 아니다. 마치 ‘쪽집게 과외’를 하듯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에서 부족한 지점을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러시아는 북한에 가뭄의 단비를 내려줄 수 있는, 구세주 같은 존재다. 북한과 러시아는 육로로 연결돼 있고, 러시아는 세계 2위의 산유국이다. 물론 러시아는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를 겪으며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보다 훨씬 열악한 상태다. 러시아의 경제적 위기 해결에 북한이 도움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북한의 경제난에 러시아의 손길은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줄 수 있는 군사적‧기술적‧경제적 도움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경로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최첨단 전쟁’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이 드론전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실로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이 전쟁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대한민국 역시 이 전쟁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야만 한다. 자유민주진영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국제사회에의 책무 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이번 참전이 북한이라는 경직된 사회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 자체다. 아직 향후 전개가 어찌 이뤄질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전개된 바만 놓고 보더라도 우려할 이유는 충분하다. 북한은 지금 전쟁을 직접 경험한 ‘러-우전(戰) 세대’의 출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나이여도 ‘실제 세대’는 다르다
세대라는 단위를 사회학적 문제로 처음 정식화한 사람은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1893~1947)이었다. 그는 학술지 ‘지식사회학’에 수록된 논문 ‘세대 문제’(1928)를 통해서 세대를 사회학적 단위로 규명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지적 도구를 제시했다.
세대란 무엇인가. 필자가 속한 1980년대 생을 떠올려 보자. 1980년대 생은 1차 베이비부머의 자식들이다. 워낙 부모 세대 수가 많았던 탓에 산아제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2차 베이비부머’를 이뤘다. 이렇듯 1차적으로 달력 위에서 세대를 바라보는 것을 ‘세대 위치’라 한다.
하지만 세대 위치는 객관적 지평일 뿐이다. 세대는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 사람들로 이뤄진다. 요컨대 ‘실제 세대’는 세대 위치와 다른 것으로 파악돼야 한다. 여기서 질문을 더 깊게 던져볼 수 있다. 1980년대 생이라 해서 과연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 가령 1980년대 초반생 가운데 대졸자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대학이 학부제를 도입하던 2000년대 초에 대학에 입학했다. 2002년 월드컵의 열풍 속에서 대한민국이 후진국,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함께했다. 여전히 대학가에는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남아있었지만 그것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는 것을 목격하며, 한국이 본격적으로 미국식 시장경제를 전면 도입하는 분위기 속에서 청년기를 맞이했다.
반면 1980년대 후반생, 가령 1988년생 가운데 대학에 가지 못한 이들은 어떨까. 그들이 20세가 돼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디던 시절은 2008년 경제위기와 맞물린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 재정 확장 정책에 힘입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 위기를 가볍게 넘긴 편이었지만, 그래도 2008년 무렵은 사회 초년생이 되기에 썩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이후 한국 사회의 산업 구조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마땅치 않은 여건으로 바뀌었다.
또 1980년대 생이라는 세대 위치 속에서도 실제 세대는 다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생 가운데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해서, 인간의 ‘꼬리뼈’처럼 남아있던 학생 운동권에 발을 담근 사람이라면 당시 대학가를 휩쓸었던 ‘비(非) 운동권 선거운동 본부’의 열풍 속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경험과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실제 세대 안에서도 좀 더 특별한 집단, 말하자면 ‘세대 단위’가 출현하는 것이다. 카를 만하임의 ‘세대 문제’의 한 문단을 살펴보자.
“동시대의 낭만적‧보수적 청년과 자유주의적‧합리주의적인 청년은 동일한 실제 세대에 속하지만 두 가지 다른 세대단위들(Generationseinheiten)에 의해 결합돼 있다. 세대단위들은 단순한 실제 세대가 구성했던 유대보다 훨씬 더 구체적 유대다. 동일한 역사적‧실제적 문제에 정향하고 있는 이와 같은 청년은 동일한 ‘실제 세대’ 속에 살고 있다. 동일한 실제 세대 내에서 이러한 경험을 각각 다른 방법으로 소화하는 집단들은 동일한 실제 세대의 범주 내에서 다양한 ‘세대단위들’을 구성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세대 담론은 100년 전 만하임의 논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그저 나이라는 한 가지 변수만으로 ‘MZ 세대’라는 말로 뭉뚱그릴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특히 ‘세대 단위’라는 개념을 파악하지 않으면 세대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만하임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먼 지역에 떨어져 있어서 엄청난 격변을 조금도, 아니, 전혀 접촉하지 못하는 농민들을 동시대의 도시 청년과 함께 공동의 실제 세대 집단에 집어넣는가? 확실히 아니다!”
北‘ 러-우전 세대’에서 느껴지는 기시감
만하임의 세대 이론을 꺼낸 이유는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을 하는 것, 그것의 ‘사회학적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정리하자면 북한에 바야흐로 ‘러-우전 세대’라는 새로운 세대 단위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 1만2000명의 병력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 90%가 전사하거나, 죽거나, 탈영하고, 10%만이 생환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1만800명의 손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북한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최첨단 전쟁을 경험했고, 심지어 그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1200명의 전혀 다른 세대 단위가 탄생한다.
그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다. 해방 후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이들을 떠올려 보자. 가령 조금 연배가 높은 박정희를 앞세워 군사 쿠데타를 기획‧실현했던 김종필과 ‘육군사관학교 8기’는 어떨까. 그들은 현장 지휘관 혹은 그 비슷한 지위에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실력과 동질감을 쌓았다. 미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그들에게 정보력, 인맥, 자신감을 줬다. 그들은 동시대의 다른 한국인과 전혀 다른 세대 단위로 구성됐다.
3공 세력의 뒤를 이은 5공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육군사관학교 초년 생도로서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이후 지휘관이 돼 월남전에 참전한 그들은 결속력‧경험의 폭 등 여러 측면에서 국내의 다른 어떤 집단과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러-우전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유의미한 세대 단위를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숫자가 무사히 살아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세대 단위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김정은 지배 체제가 분할통치 및 포섭의 기술을 다각도로 구사할 것도 분명하니, 그것을 이겨내고 어떻게 독자 행동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북한이 과연 공식적으로 파병을 자국 내에서도 인정할지, 인정한다면 어떤 명분을 내세울지도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병이 북한이라는 정태적(靜態的) 사회에 동태적(動態的)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아직 얼마나 많은 병력이 러시아 땅을 밟을지, 우크라이나로 진격할지, 살아서 돌아올지 알 수 없으니 새로운 세대 단위가 반드시 출현하리라는 예상을 하기에는 다소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대 단위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은 이미 충분히 갖춰지고 있다.
이미 한반도에서도 전쟁은 시작됐다
이 대표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우크라이나에는 북한말을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기관이 남의 나라 전쟁포로 심문에 참여하겠다는 겁니까. 이거 제정신입니까?”
몰라서 묻는 걸까. 포로에 대한 고문은, 러시아‧중국‧북한처럼 국제법적 제재로부터 벗어나 있는 나라가 아닌 다음에야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조차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 포로를 고문하기 위해 미국 영토 바깥인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를 이용해야 했다.
심문은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아는 이러저러한 정보와 맞춰볼 때 너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식으로, 폭력이 아니라 정보의 힘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과정이다. 이 대표가 여러 차례 경험해본 검찰 조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국가정보원이 북한 포로 심문에 참여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북한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잘 알고 있으며, 심문이란 잘 아는 사람이 해야 더 많은 양질의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에 어떤 ‘신세대’가 나타날지, 그 여파가 어찌 될지, 지금부터 면밀히 추적해 나가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거리를 두고 평화를 지키자는 사람들, 그들은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됐다. 다만 정보전‧심리전 등의 형태로 치러지고 있을 뿐이다. 이 조용한 전쟁이 시끄러운 포성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의 국제 정세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