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견제에도 ‘李 대세론’ 굳건
DJ·文처럼 완전한 당내 1등 주자
범야권 ‘오픈 프라이머리’ 열어도 대세는 이재명
사라진 친문 영향력, 친명은 경쟁자 용납 않아
이재명 최대 약점은 사법 리스크
‘2심 유죄’라면 비명계 반발 커질 수 있어
‘범죄자 프레임’ 벗지 못하고 대선 치를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정치인 이재명’은 피아(彼我)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유권자의 호불호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유능한 실력파 리더’라는 극찬에서부터 ‘막장 범죄자’라는 혹평까지. 그럼에도 이 대표의 당내 패권은 확고하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등 비명계 주자의 도전과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다. 다만 정치는 생물이다. 최대 아킬레스건인 사법 리스크와 반(反)민주당 진영의 극단적 ‘이재명 불가론’은 예측 불허의 변수다. ‘골리앗 이재명’이 무너지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가능할까. 이재명의 대세론을 허물 다윗은 과연 누구일까.
민주당 ‘이재명 대세론’ 압도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를 예약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당내 경선에 출마하면 승리는 기정사실이다. 돌발 변수는 없다. ‘이재명 대세론’을 뒷받침하는 유무형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 대표는 2022년 3월 20대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휴지기도 없이 곧바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선택했다. 그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며 텃밭 경기도를 지켜냈다. 또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를 거쳐 원내에 진입했고,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선 이후 전당대회에 두 차례 출마해 승리하며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파열음에도 21대 총선 180석 대승에 버금가는 기적을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본인의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위협했던 사법 리스크의 악몽을 딛고 일궈낸 소중한 성과였다.
따져보면 이 대표의 일방 독주는 이례적 현상이다. 여야의 대선후보 경선은 과거 3김 정치 종식 이후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격렬했다. 상대적으로 보수 정당이 더 치열했다. 19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경선은 이회창 전 총재를 비롯한 ‘9룡의 전쟁’으로 화제를 모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더 극적이었다. 특히 ‘이명박 vs 박근혜’ 맞대결은 용호상박(龍虎相搏)의 정치 드라마 그 자체였다. 2022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도 ‘굴러온 돌’인 윤 대통령과 ‘박힌 돌’인 홍준표 대구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치열한 난타전이었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대세론이 강했다. 1등 주자는 곧 대선후보였다. 1987년·1992년·1997년 대권 도전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12년과 2017년 대선에 도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 사례다. 2007년 대선 당시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은 진흙탕 경선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은 가장 극적이었다. 꼴찌로 레이스를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인제 대세론’을 꺾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 대표의 현 정치적 위상은 역대 민주당 출신 대통령에 버금간다. 2017년과 2022년 두 번의 대선 도전, 성남시장 재선에 경기지사 역임, 두 번의 당 대표와 역대 최고 성적표의 총선 승리. 아울러 흉기 피습이라는 살인 테러 과정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진 것도 이 대표의 정치적 서사가 됐다. 이 대표는 1월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사실상 조기 대선 행보에 돌입했다. 흑묘백묘론을 앞세운 실용주의 우클릭 선언과 외연 확장을 위한 중도보수론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진보 진영의 압도적 지원사격까지 받고 있다.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그야말로 요식행위다.
김진욱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의 당내 경선 통과를 막을 걸림돌은 없다”며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이 걸림돌을 치워준 상황이다. 윤 대통령 석방은 비명계 주자들의 행보에 족쇄를 채웠다”고 평가했다.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 역시 “당원 아닌 일반 국민 비율 상향 등 경선룰이 어떻게 조정되더라도 이 대표의 우위 구도는 깨지지 않을 것”이라며 “탄핵 정국의 특수성으로 짧은 경선 기간을 상정한다면 현실적으로 이변은 어렵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선 경선 vs 야권 통합 오픈 프라이머리
조기 대선은 시간이 촉박하다. 대통령 파면 이후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야권 안팎에서 헌재의 탄핵 인용을 전제로 경선룰 논란이 일었다. 선택은 이 대표의 몫이다. 민주당 단독 후보로 나설 수도 있고, 아니면 야권 전체 공동 경선을 거쳐 통합 단일후보로도 나설 수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3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야권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대선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제안하고 있다. 뉴스1
다만 범야권 대선후보 국민통합경선인 오픈 프라이머리는 윤 대통령의 전격 석방이라는 변수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내란 사태 종식과 윤 대통령 파면이 우선이라는 분위기에 공론화되기 어려웠다. 아울러 선거인단 모집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조기 대선에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대선 경선을 앞둔 1등 주자의 고민은 두 가지다. 되도록 변수를 만들지 않는 방어 전략이다. 대세론 수성에는 유리하지만 대중적 임팩트가 없다. 반대로 치열한 토론과 검증으로 주도권을 쥐는 공세 전략도 있다. ‘경선 흥행’이라는 컨벤션 효과가 있지만 이변 발생 가능성은 커진다. 이 대표의 입장에서 전자는 민주당 경선을, 후자는 혁신당이 제안한 오픈 프라이머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과연 오픈 프라이머리를 수용할까. 2022년 대선 패배의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대선 구도는 ‘윤석열 vs 이재명’의 피 말리는 승부였다. 초박빙 패배였지만 정의당과 단일화만 했다면 질 수 없는 선거였다. 야권 통합 완전국민경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본선에 앞서 0.1%의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차기 1순위 주자이지만 지지율은 30%대 박스권에 갇힌 이 대표로서는 히든카드로 사용해 볼 수 있다. 모험이 성공하면 통합의 이미지와 지지율 상승은 덤이다.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민주당 경선 이후 야권 단일화를 하든 먼저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든 (이재명 대선후보라는) 결과는 똑같다”면서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 대표가 전격 수용할 수도 있다. 원샷 경선을 통해 비명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물론 중도층에 포용과 통합의 이미지를 던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진욱 평론가는 “택도 없는 이야기다. 당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민주당 후보가 경선하는데 왜 다른 집에서 만든 경선룰로 하느냐. 필요하다면 민주당 경선 이후 연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경수·김동연·김부겸, ‘착한 2등’ 전략 구사
정치인 이재명’은 강하다. 민주당 대선후보 지위를 위협할 라이벌은 없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는 관심을 가져도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는 무관심한 이유다.
3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동아DB
비명계 3인방의 경선 도전은 미지수다. 게다가 이 대표가 워낙 막강해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다. 어쩌면 아름다운 경선을 위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최선이다.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은 내부 총질 논란을 부르며 이 대표의 본선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유시민 작가의 직설 비판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 동아DB

김동연 경기지사. 동아DB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비명계 3인방의 도전은 이 대표와의 정면승부가 아닌 ‘포스트 이재명’ 전략”이라면서 “최대한 선전해서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고 향후 차차기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재원 교수 역시 “비명계 3인방은 이 대표를 이길 수 없다”며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존재감을 확보한 뒤 이후 당권을 확보해 차차기를 노리는 게 현명한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최대 변수
조기 대선은 일대일 여야 박빙 구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조기 대선은 다자 구도였지만 현 상황은 다르다. 거리와 광장의 탄핵 찬반 열기는 너무나도 팽팽하다. 게다가 탄핵 정국의 1차 표적이 윤 대통령이라면 조기 대선의 최대 표적은 이 대표가 될 공산이 크다.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탄핵 찬성이 우위지만 나머지 세부 지표는 다소 다르다. 3월 13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 표본오차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탄핵 인용 55%, 기각 39%로 나타났다. 탄핵 찬반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대략 6대 4 정도다. 다만 △헌재 심판 결과: 신뢰 51%, 불신 45% △정당 지지율: 국민의힘 38%, 민주당 36% △조기 대선 전망: 정권교체 47%, 정권재창출 42% 등 모두 오차범위 이내였다. 예측 불허의 변수에 따라서는 이재명 우위 구도가 무너질 수 있는 수준의 지표다. 최악의 경우 보수 진영이 경험했던 2002년 대선 역전패의 악몽을 민주당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패배’는 곧 ‘이회창 시즌2’다.
물론 현 상황에서 이 대표의 본선 승리 가능성이 높다. 여야 모두의 표적이 되는 이유다. 당내 경선에서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등 비명계 3인방의 움직임이 변수다. 대선 본선에 진출한다면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중 한 명과도 대결이 불가피하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2월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현안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현 상황을 종합하면 ‘골리앗 이재명’을 꺾을 민주당 안팎의 다윗은 없다. 그래도 정치는 생물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100%는 없다. 따져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도 낯선 풍경이었다. 이후 대통령 탄핵 및 체포와 구속 그리고 석방까지 모두가 비현실적이었다. 이 대표의 대선 라이벌은 어쩌면 본인이다. ‘골리앗’ 이재명은 ‘다윗’ 이재명에게 무너질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스스로 무너진다면 민주당 역시 플랜B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의 약점은 명확하다. 사법 리스크다.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가 3월 26일로 예정돼 있다. 2심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변수는 없다. 다만 1심과 마찬가지로 2심도 유죄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진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비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과거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교체론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대법 최종심이 남은 만큼 대선 출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비명계와의 신뢰는 불안 요인이다.
이 대표가 직접 3월 5일 지난해 체포동의안 사태 가결 사태를 두고 “당내 일부하고 (검찰이) 다 짜고 한 짓”이라고 언급, 비명계의 엄청난 반발에 시달린 바도 있다. 아울러 보수 진영이 대선 본선 내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범죄자 프레임’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이 대표의 본선 전망은 어떨까.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이 대표의 대선 본선 성적표는 보수 진영의 후보가 누구인지에 따라 엇갈릴 것”이라면서 “탄핵 반대 후보와 맞붙는다면 낙승이, 탄핵 찬성 후보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단일화할 경우 힘겨운 여야 일대일 싸움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진 원장 역시 “비명계 차기 주자는 전혀 변수가 아니다”라며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 대치 속에서 최대 40%에 이르는 중도층 표심이 관건이다. 이재명 집권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도록 이념적 강성 투쟁을 자제해 중도표를 흡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욱 평론가는 “조기 대선은 ‘윤석열 vs 이재명’ 2라운드 선거로 이 대표의 설욕전이 될 것”이라면서 “이재명 대세론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찍으면 윤 대통령이 사면된다’는 민주당의 선거 프레임은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아 4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