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태극기 노인’ 본 청년, 강렬한 동정심
광장 청년, “노인에 감사함+죄책감 느껴” 자기 고백
청년층, 노년층과 사회경제적 불만 공유
급진주의, 제도권 정치 실패 증상…‘극우’ 낙인 비생산적

임명묵 작가는 3월 10일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광장에 나선 청년은 노인을 보며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아DB
임명묵(31) 작가가 3월 10일 노년층과 청년층이 함께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현상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한 2030 남성이 12·3 비상계엄 이후 위기감을 느껴 광장에 나섰다가 이른바 ‘태극기 노인’을 보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게 됐다는 것이다. 임 작가는 저서 ‘K를 생각한다’를 통해 1990년대생의 심리 기제를 분석한 청년 논객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되면 어쩌나”
“탄핵 반대”를 외치는 2030을 ‘극우’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민주주의 훈련이 안 된 지체된 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자유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2월 12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탄핵 찬성 집회나 유튜브 등에서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2030을 두고 “극우” “파시스트”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임 작가는 “상대방을 극우라고 정치적 낙인을 찍기보다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초래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2030, 특히 청년 남성은 왜 광장으로 나섰나.
“이들은 민주당 비토 정서를 보여왔다. 12·3 비상계엄 직후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민주당의 독주 체제가 강해질 것 같다’는 우려가 관측됐다. ‘민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고,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쩌나’ 하는 위기의식도 보였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이후 광장에 나선 청년은 노인을 보며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시점을 계기로 인터넷 공간에서 ‘노인 세대에 감사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자기 고백 글이 굉장히 많이 올라왔다.”
그간 인터넷 공간에서 청년층은 노년층을 무시해 왔는데,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나.
“사실 인터넷에서는 노인 세대를 향한 조롱이 매우 많았다. 오늘날과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에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에티켓이 부재하다며 말이다. 하지만 노인은 ‘푸근함’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가 상실한 가치를 가진 집단으로도 여겨졌다. 우파 성향의 청년들은 ‘광장의 노인’에게서 긍정적이고 낭만화된 이미지를 발견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 세대는 대표적 소외 계층이다. 자살률은 전 세대에서 가장 높으며, 빈곤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광장에 나온 이유 역시 정치권이 노인 세대의 소외감을 제대로 달래지 못해서였다. 청년들이 광장에 나왔다가 추운 날씨에도 오들오들 떨며 태극기를 든 노인들을 마주했다. 이는 강렬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사회가 노인을 방치한 게 이번 현상의 토대가 됐다는 것인가.
“노인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참여하거나, 관련 집단이 주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조직 ‘자유마을’에 가입하는 계기는 소외감이다.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소속감’과 ‘삶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조직을 찾게 된다. 앞선 조직은 이러한 정서를 공략했고, 성공을 거뒀다. 이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기존 사회체제가 노인 세대의 소외감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진보 및 보수 진영의 사회운동 역시 노인이 참여할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광장에 나선 노인들을 두고 ‘극우 노인’이라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열심인지 살펴야 한다.”
청년층보다 사회 주류로 자리매김한 중년층이 노인 세대에 대해 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와 충돌하며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았다. ‘노인 세대의 정치적 요구를 우리가 들어줄 필요는 없다’고 여겼을 테다. 청년 세대의 경우 바로 윗세대인 민주화 세대와 갈등하는 만큼 노인 세대와 이어질 개연성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의 표준은 좋은 직장에 취업해 자산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수도권의 부동산을 매입해 자산을 부풀리는 것이다. 노인 세대는 관련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이 굉장히 많다. 청년층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취업난으로) 진입 통로가 막혔다. 사회경제적 불만에 대한 공유 역시 민주화 세대보다 노인 세대와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관련 움직임을 두고 “2030이 극우화됐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극우’라는 표현은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물론 학술적으로 이들이 극우적 성향을 가졌는지 따져보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극우의 주요 특징은 제도권 정치를 전면적으로 불신하고, 더 나아가 전복으로까지 나아가려 하는 ‘급진성’이다. 내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이들을 공동체 쇠락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 역시 극우의 특성 가운데 하나다. 알다시피 서부지법 사태에서 폭력이 사용됐다. 또한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 집단은 민주당이나 반국가 세력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고, 중국을 외부의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급진주의는 ‘제도권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되는 증상’임을 유념해야 한다. ‘제도권 정치가 왜 실패했는가’를 숙고해야 한다. 그저 상대를 극우라고 낙인찍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정치적 욕설’ 파시즘, 신중히 사용해야”
임 작가의 설명처럼 ‘청년 세대와 노인 세대의 결합’은 문제 요소 또한 보이고 있다.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분노한 시위대는 서부지법에 난입했다. 이들은 법원 내부의 기물을 부수는 등 강한 폭력성을 보였다. 서부지법 사태 당시 현행범으로 체포된 90명 가운데 과반(46명)이 2030이었다.
일련의 현상은 서부지법 사태라는 상흔도 남겼다.
“우파 유권자 집단의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다. 과거 1980년대 운동권의 활동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이들이 법원을 향해 폭력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각종 폭력 투쟁과 비합법 투쟁을 벌였다. 운동권이 이 같은 행동을 한 이유 역시 당대의 정치제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연결된다. 제도 바깥에서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서부지법 사태 역시 ‘사법부나 국가 제도를 믿을 수 없다’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다만 지휘부가 없었다는 점은 과거 학생운동과 다르다.”
일각에서는 관련 흐름을 두고 “파시즘”이라고 표현한다.
“파시즘은 굉장히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단어다. 파시즘은 세계적으로도 상대방에게 정치적 발언권을 주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적 욕설’이다. 우파 진영이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기 위해 ‘빨갱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양 집단이 두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지 않으면 이른바 ‘빨갱이와 파시스트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번 현상이 향후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보나.
“‘이데올로기 싸움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그간 민주당은 ‘운동권 정당’에서 ‘수도권 부동산을 보유한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이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보수층의 불만이 누적됐고, 이들의 이념화가 상당 수준 진행됐다. 이념에 대한 논쟁 역시 불붙고 있다. 보수 청년층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1987년 형성된 민주화 세계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툼이 더 잦아질 전망이다.”

신동아 4월호 표지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광장 목소리만으로는 선거 못 이겨… 비명·반명 뭉쳐야”
“무정자증도 아이 낳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