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대체율 양보한 野, 세 가지 조건 내걸어
‘국민의힘안’ 수용해도 2050년 미적립채무 6159조 원
‘법 속 문구’ 아닌 ‘기금 존재’가 국민연금 보장
“자동조정장치 없는 연금개혁은 눈 가리고 아웅”
![손영광 연금개혁청년행동 공동대표(오른쪽)가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금개혁 청년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d9/30/bf/67d930bf035fd2738276.jpg)
손영광 연금개혁청년행동 공동대표(오른쪽)가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금개혁 청년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연금제도 운용 여건이 가장 나쁜 나라다. 연금제도 운영의 기반이 되는 세 요소인 출생률과 평균수명, 노인인구 비중이 연금 운용에 불리하게 나타나고 있다. OECD는 3월 5일 ‘한국의 태어나지 않은 미래’라는 책자를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률은 0.7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2082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58%가량 차지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겼다. 국민연금을 내는 인구보다 받는 인구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다.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연금개혁이 필요하다.
1%포인트 차이, 25년 후 299조 원으로 벌어져
여야 모두 “국민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자는 것 역시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 인상 폭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국민연금개혁안은 오랜 기간 국회를 표류했다.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44%를 외치며 맞서왔다. 현행 소득대체율은 41.5%이며, 2028년까지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40%가 되도록 설계됐다.
수년째 연금개혁 논의가 공회전하면서 시민의 답답함도 커지고 있다. “1%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으니 그냥 한쪽이 양보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목소리마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소득대체율 1%포인트 차이가 훗날 생각지도 못한 청구서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연금연구회의 분석에 따르면 현행 체계가 지속할 경우 2050년 기준 국민연금 미적립채무는 633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적립채무란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기로 돼 있는 연금액 대비 부족분’으로, 사실상 미래세대에게 청구되는 부채다. 만일 국민의힘안으로 국민연금이 개편되면 2050년 미적립채무는 기존 대비 173조 원이 감소한 6159조 원이 된다. 반면 민주당안을 따르면 현행 대비 126조 원 늘어난다. 소득대체율 1%포인트 차이가 25년 후 299조 원의 차이로 벌이지는 셈이다.
민주당이 소득대체율에 대해 양보 의사를 보인 만큼 관련 논의는 제2막을 맞이할 전망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월 14일 “민주당은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문제, 출산 및 군복무 크레디트 확대,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확대 등 세 가지 사항을 국민의힘이 최종 수용하면 소득대체율 43%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조건부지만 소득대체율을 양보할 의사를 보인 것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당은 상임위원회에서 관련 문제를 처리한 뒤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구성안에 “여야 합의 처리” 문구를 기재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문제는 진 의장이 내건 세 가지 조건이다. 특히 ‘국민연금법에 국민연금 지급 보장 명시’가 우려스럽다.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니 언뜻 당연한 말로 보이지만, 실상은 간단치 않다. 양당이 합의해 향후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13%, 43%로 인상하더라도 2050년 6159조 원(GDP 대비 119.2%), 2095년에는 4경2032조 원(GDP 대비 311.4%)까지 급증할 미적립채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향후 해당 법률 규정을 이유로 추가적인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가능성도 상당하다. “법이 보장한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법으로 지급을 보장한다고 약속했으니 걱정 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청년은 얼마나 될까. 돈(기금)이 있어야만 후세대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훗날 상황이 악화되면 그제야 연금개혁에 나설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적립채무 문제가 악화돼 있을 공산이 크다.
청년세대가 국민연금 시스템에 불안해하는 이유는 법이 지급을 보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심화로 기금 고갈이 불가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에 지급을 보장한다고 명시한들 미적립채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고액 연금 수급자의 연금액을 일시에 50% 삭감했다. 연금 지급을 보장하는 것은 기금의 존재지 법 속 문구가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월 7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에 대해 “연금개혁에 협조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d9/31/43/67d931430d5ad2738276.jpg)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월 7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에 대해 “연금개혁에 협조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동아DB]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기’ 선택한 시민대표단
한국의 ‘연금개혁사(史)’는 세대 간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다툼의 장이었다. 지난해 국회 주도로 연금특위 산하에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의 논의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연금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결정이 난망하니 시민대표단에 관련 내용을 설명한 후 연금개혁 방향을 결정하자”는 취지였다.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시민대표단이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자는 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는 안’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연금개혁의 당초 목적을 거스르는 결과였다.
시민대표단의 결정은 많은 논란을 낳았고, 결국 해당 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금연구회 소속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론화 과정에서 500명의 시민대표단을 선정할 때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기초조사를 반영했다”며 “30~50대 연령층이 중심이 되면서 청년세대는 과소 대표됐고, 특정 세대가 선호하는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인구구조가 연금개혁 논의에서 청년세대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향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면 청년세대의 비중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청년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이 난망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자동조정장치’다. 자동조정장치는 1999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독일과 일본 등에 도입된 제도다. 연금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세 요인인 출생률, 평균수명, 경제성장률 변화가 연금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해 연금제도를 재조정하도록 한 방식이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24개국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이들 국가는 자동조정장치 덕분에 ‘연금의 탈정치화’를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다.
자동조정장치는 국가별로 상이하게 운영되고 있다. 스웨덴은 완전한 확정기여방식(DC)으로 연금을 운영하고 있다. 낸 만큼만 연금을 받는 식이다. 연금 부채가 보험료 수입과 기금을 초과하면 ‘균형지수’를 적용해 연금액을 조정한다. 독일과 일본은 확정급여방식(DB)을 적용하고 있다. 사전에 일정 수준의 지급을 설정해 놓는 방식으로 연금을 운영하며, 여기에 자동조정장치를 병행하는 식이다. 독일은 ‘지속가능성 계수’를 도입해 연금제도가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연금 가입자와 수급자의 연금액을 변경하고 있다. 일본 역시 출생률과 평균수명,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연금액을 조정하고 있다.
앞선 방식 가운데 스웨덴의 연금 방식이 가장 높은 수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해당 방식으로 개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보험료율 한 자릿수 인상을 두고서도 수많은 갈등이 벌어지는 만큼 전면 개편은 사실상 “연금개혁을 하지 말자”는 소리로 들릴 수 있어서다.
현 상황에서는 준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 ‘핀란드 방식’으로 개편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핀란드는 평균수명의 증가로 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면 증가분을 연금액에서 차감한다. 이로 인해 개인이 사망 때까지 받을 연금의 총액은 동일하나 월평균 지급액은 줄어들게 된다. 핀란드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개편하는 등 다차원적으로 연금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연금 가입 기간을 늘려 적절한 연금액을 확보하면서 기금 고갈 문제에 대응한 것이다.
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진성준 의장은 3월 14일 “노동계와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자동조정장치) 도입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며 “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견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등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향후 ‘연금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선택 아닌 현실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반대는 현행 개편안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현실이다. 이미 2025년 기준 국민연금의 미적립채무는 2060조 원에 달한다.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리면 당장 보험료율을 21.2%로 올려야 미적립채무가 늘어나지 않는다.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30%, 보험료율 12%안’을 채택하더라도 2070년 기금이 소진된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고, 보험료율만 17%로 인상하더라도 재정 안정 달성이 어렵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소득대체율 43%, 보험료율 13%안’으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연금특위 위원장을 지낸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2월 26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소득대체율 43%든 44%든 자동조정장치가 없는 연금개혁은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말했다. 주 부의장은 “연금개혁을 하면서 소득대체율을 43~44%로 올리고 군 복무·출산 크레디트를 넣는 것은 독에 새는 구멍을 막는다면서 옆에 작은 구멍을 또 뚫는 것”이라며 “연금을 받고 나가는 사람은 ‘먹튀’하는 셈이고 청년세대 입장에서는 ‘약탈’이 된다”고 말했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지 않고, 크레디트 정책 등만 추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더 받고 청년세대가 더 부담하는 방식을 연금‘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법으로 지급을 보장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에 청년이 안심할까. 청년세대의 불안을 들어준다는 취지의 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는 오히려 청년세대를 더 힘들게 할 공산이 크다.
프랑스 경제사상가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법이나 정치의 도움으로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명명했다. 미적립채무를 키우는 지금의 방식은 자칫 연금이란 이름으로 후세대를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양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연금 개편을 두고 “586세대의 연금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세대의 불안을 덜어준다는 취지의 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는 오히려 이들을 힘들게 하고, 국민연금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세대가 비용을 분담하도록 OECD 회원국 방식의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신동아 4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