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같았던 트럼프 2기 취임식
일론 머스크, ‘방 안의 코끼리’ 구실하다
푸틴도 꿈꾸지 못한 절대적 통치 구조 확립
부정부패, 도덕적 권위 약화 등 불길한 징후

1월 22일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무도회는 마치 왕의 ‘대관식’처럼 보였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다. 뉴시스
취임 3주도 되지 않은 2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소유한 SNS ‘트루스 소셜’에 말을 타고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배경으로 위의 문장을 부각한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법원 명령을 위반했다”는 문구를 첨부했다. 미국 지방 판사가 트럼프 행정부의 자의적인 연방 자금 지원 중단, 예를 들어 국립보건원의 자금 동결에 대해 위법 소지를 지적하며, 이를 무시하면 ‘법정모독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을 빗대어 조롱한 것이다.
왕관을 머리에 씌워준 것은 국민
영화 ‘워털루’에는 나폴레옹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나는 왕관을 찬탈한(usurp) 것이 아니다. 시궁창에서 왕관을 발견하고 칼로 집어 들었을 뿐이다. 그 왕관을 내 머리에 씌워준 것은 바로 국민이었다.”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절대군주였던 나폴레옹을 롤 모델로 삼은 트럼프는 그전에도 절대 권한과 면책특권에 대한 주장을 제기했다. 일례로 2017년에는 “법무부에 (지시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가 있다.” 그리고 2019년에는 “헌법 제2조는 대통령으로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에는 2020년 선거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투표 사기’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사건에 연루된 자들(주로 민주당원)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모든 규칙, 규정, 조항, 심지어 헌법 조항까지 폐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2023년 그는 자신이 ‘독재자’가 될 것이지만, 대통령 임기 첫날에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나폴레옹이 한 말을 새삼스레 반복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폴레옹이 말했다는 그 ‘원칙’을 행동에 옮기려는 것이다. 이처럼 초법적 면책 의식으로 무장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보호할 목적으로 취한 조치라면, 그것이 설령 현행 법률·규범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2월 18일 기준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오바마 및 1기 트럼프 행정부의 31건·14건·12건보다 훨씬 많은 무려 68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가입한 파리기후협약은 물론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하고, 미국국제개발처(USAID) 같은 국제 공공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에게 연방정부 개혁의 전권을 넘겨준 것처럼 보인다. 미 연방정부 공무원 규모는 230만 명 이상이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목표는 이 중에서 최대 5%(11만5000명)를 줄이는 것이다. 트럼프가 내년 7월 4일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이 되는 시점까지 개혁 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머스크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주요 언론 집계에 의하면 2월 20일 기준, 수습 직원 1만9300명을 포함해 연방정부 공무원 약 2만8600명이 해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각료회의에서 일론 머스크를 잔뜩 치켜세웠다. 그 덕에 머스크는 부통령보다 먼저 발언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회의에 앞서 트럼프는 SNS에 영어 대문자로 “나는 머스크와 함께해 너무너무(EXTREMELY) 행복하다”는 글을 올렸다. 머스크가 “역대 최고의 내각”이라고 칭찬하자, 트럼프는 “일론이 일을 잘하고 있지만,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어딘지 모르게 회의 분위기가 ‘쎄~’한 느낌이 들었던지,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일론에게 불만 있는 사람은 없나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쫓아내겠어요. 불만 가진 사람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그런 사람은 문밖으로 내던지겠다”는데, 누가 감히 불만을 가질 수 있으랴. 트럼프가 머스크를 내각의 사실상 우두머리로 지명한 이유는 분명하다. 반대는 무의미하고, 침묵은 금이며, 복종만이 살길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내각의 멤버(장관)가 아니라 한시 기구인 정부효율부 수장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은 강력하지만 왕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1월 22일(현지 시간) 월요일 심야에 열린 취임 무도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되찾은 기쁨에 들떠 “마치 왕이 된 것처럼” 축하 케이크를 자르는 예식용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백악관 복귀 행사가 ‘취임식’이 아니라 ‘대관식’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취임 연설에서 작년 여름 암살범이 자신에게 총격을 가했을 때 “신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을 구원했다”며 국왕의 신성한 권리를 가리키는 ‘왕권신수설’을 언급했다. 취임식 행사에서 그는 마치 왕실을 소개하듯 친인척을 한 명씩 소개했다. 물론 많은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는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 화려한 취임 행사를 즐기며, 국왕처럼 강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나중에는 반대 여론이 형성돼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뉴저지 법무장관인 매튜 J 플래킨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된 ‘출생 시민권 제도’를 금지하자 “대통령은 강력하지만 왕이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별로 위축되지 않는 기색이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마친 직후 억만장자 후원자인 일론 머스크는 SNS에 “왕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전기를 쓴 그웬다 블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왕의 귀환이라? 취임식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신의 개입과 섭리에 대한 트럼프의 주장,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궁정의 측근들, 영부인 멜라니아가 착용한 왕관 같은 모자, 그의 자손들이 보여준 왕조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기 작가 블레어에 의하면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트럼프는 ‘승자’로서 자신의 브랜드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런 지위에 대한 자신의 권리, 즉 하늘이 내려준 신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건 바로 왕이 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적어도 오랫동안 영국 왕실에 집착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생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우상처럼 섬겼고, 여왕이 죽기 전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두 사람 사이에 “자동적 케미스트리(automatic chemistry·강한 친밀감)”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퇴임 후에는 사무실 벽에 여왕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두었으며, “정말 멋진 친구”라고 자신이 호칭한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꾸준히 서신을 주고받고 있다.
또한 그는 군주제의 화려하고 세습적 측면을 선호한다. 그는 플로리다에 있는 마러라고 저택을 일종의 ‘겨울 궁전’으로 꾸미고, 마치 군주처럼 자신의 자녀들을 후계자로 지명하려 했었다. 일례로 201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트럼프가 딸 이방카 트럼프를 러닝메이트로 삼는 방안을 제안하자 화들짝 놀란 참모들이 여론조사까지 실시했다. 결국 이방카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포기하도록 트럼프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게 끝이 아니다.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은 영부인 멜라니아를 유엔 대사나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J D 밴스의 부통령 지명은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밴스는 트럼프 대통령 나이의 절반에 불과한 1984년생 젊은이로 4년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
푸틴의 환호성이 들린다
3월 1일 트럼프-젤렌스키 간 광물 거래 협상이 파탄으로 끝나고, 백악관이 젤렌스키에게 떠날 것을 요청하는 비극적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 회담에서 ‘숨은 그림’은 단연 러시아의 푸틴이었다.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방식으로 협상이 재앙으로 마무리되자, 여러 매체는 “모스크바에서 푸틴의 환호성이 들린다”고 전했다. 이런 에피소드는 트럼프-푸틴의 이해관계와 세계관이 얼마나 긴밀히 얽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J D 밴스 부통령은 4년 후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다. 뉴시스
첫째, 일방적 포고령이다. 트럼프는 임기 첫날 대량 행정명령 발표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푸틴도 2023년 기준으로 996건의 포고령(decrees)에 서명했다. 포고령은 대통령·국가원수가 입법부를 완전히 우회해 정책·결정·행동을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식적 명령이다. 트럼프도 국내·대외 정책의 핵심 영역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통적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광범위한 행정명령에 의존하려 한다.
둘째, 관료에 대한 장악력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맹목적 충성분자(blind loyalists)’들로 채워졌다. 그중에서 캐시 파텔 FBI 국장, 트럼프의 선거 사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감싼 팸 본디 법무장관, 정보의 정치화 비판에도 불구하고 CIA 국장에 재임명된 존 랫클리프,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와 러시아의 푸틴에 호의적인 털시 개버드 DNI 국장, 트럼프의 대규모 불법이민자 추방 정책을 주도하는 J D 밴스 부통령 등이 ‘성골(聖骨)’로 꼽힌다. 이러한 인선은 푸틴이 핵심 측근을 FSB(연방보안국), SVR(대외정보국) 같은 보안·정보기관의 수장에 임명하는 관행과 닮은꼴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무조건적 복종, 반대·저항의 최소화, 강력한 국가 기관·조직을 활용한 개인적 권력 극대화가 공통의 목적이다.
셋째, 사법부 무력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부에 대한 경멸심을 꾸준히 드러내며, 미국 법원의 독립성·정당성을 훼손해 왔다. 2018년 11월, 연방 판사가 트럼프의 ‘망명 금지령(asylum ban)’을 위법으로 판결하자 이를 “불명예”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해당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조롱했다. 이런 발언은 사법부 중립성·독립성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는 사법부의 헌법적 역할을 약화시키려는 그의 광범위한 노력을 반영한다. 한편 푸틴에게 사법부는 ‘고무도장(a rubber stamp)’에 불과하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 시대부터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방, 오늘날의 푸틴 정권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지도자들은 야당 침묵, 반대파 말살, 정치권력 강화를 위해 사법부를 단골 무기로 이용했다. 푸틴 정권하에서 러시아 사법제도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재판, 투옥, 심지어 고문·살인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억압의 도구로 전락했다.
끝으로 ‘절대 권력’의 추구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스타일을 공개적으로 존경하며 미국에서도 이처럼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경외심을 드러냈다. 종종 그는 푸틴의 “천재적”이고 “현명한(savvy)” 행동을 공개적으로 칭찬한다. 그래서 전 백악관 대변인 스테퍼니 그리셤에 따르면 트럼프는 특히 정적들을 대하는 푸틴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수법을 존경한다. 트럼프에게 민주주의 제도는 거추장한 걸림돌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트럼프는 “누구든 살해”할 수 있는 푸틴의 무제한 권력에 “경외심(admired)”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푸틴은 러시아에서 권위주의 통치 제도를 통해 대통령직에 대한 민주적 견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했다. 2020년의 헌법 개정안은 푸틴에게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판사의 해임 및 입법부 결정을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해 입법부·사법부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했다. 이로써 푸틴은 차르 시대의 군주도 꿈꾸지 못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확립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의 역사가·정치가인 존 달버그 액턴 경이 1887년 성공회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는 교황직 ‘출마’를 고려하고 있던 맨델 크레이튼 주교가 역사상 가장 타락·부패한 교황으로 악명이 높았던 알렉산드르 6세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을 ‘관대’하게 평가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놀랍게도 크레이튼 주교는 액턴 경에게 “역사적 지도자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답장을 보냈다.
사법부에 대한 경멸, 관료적 독립성 훼손, 푸틴 같은 독재자 선망 등은 ‘절대 권력’에 대한 트럼프의 분명한 열망을 보여준다. 과연 그가 ‘절대 권력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능력 위주보다 족벌주의·정실주의, 그중에서도 맹목적 충성 분자를 선호하는 트럼프의 성향은 벌써부터 ‘부정부패’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해외부패방지법(FCPA)의 집행을 180일 동안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하달했다. 이유는 FCPA가 “적절한 범위를 넘어 확장됨으로써 미국의 국가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FCPA가 미국 외교정책 목표의 달성과 경제적 경쟁력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투명성·부패 방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글로벌 부패와의 전쟁에서 미국에 가장 중요한 자산을 완전히 제거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민주주의 약화 알리는 불길한 징후들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시장 에릭 애덤스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한 조치를 취하하라고 미 법무부에 지시했다. 애덤스는 지난해 5월 사기·뇌물수수·불법모금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그는 뇌물을 받고 튀르키예(터키)를 부정한 방법으로 도운 ‘스파이’ 의심을 받고 있다. 이는 FCPA에 따라 명시적으로 금지된 불법행위다.
트럼프의 끈질긴 절대 권력 추구, 푸틴·시진핑 같은 독재자에 대한 공개적 찬사, 사법부 무력화 시도, 친(親)부패 행보 등은 단순한 개인적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 부정부패 묵인, 족벌주의 수용, 거래주의 선호, 민주주의 제도의 약화, 대중적 신뢰의 훼손, 국제 무대에서 도덕적 권위의 약화 등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를 알리는 불길한 징후들이다. 트럼프 2기가 지속되는 앞으로 4년 동안 기존의 규칙·질서·규범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 버팀목이 돼줬던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관계도 우려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이후부터 국제사회는 중국·러시아 관계의 밀착, 여기에 북한이 가세한 북·중·러 3각 관계, 그리고 북·중·러·이란으로 이뤄진 ‘격변의 축(Axis of Upheaval)’을 경계해 왔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두려운 것은 트럼프 2.0 시대에 가시화하기 시작한 새로운 ‘미·중·러 3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