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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청년 삶 옭아매는 ‘영케어러’의 굴레

“방사선사 시험보다 어머니 간병이 시급하다”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사바나] 청년 삶 옭아매는 ‘영케어러’의 굴레

  • ● 가족 돌보는 ‘청년 간병인’ 3만 명 추정
    ● 간호간병통합·노인요양보험 사각지대 방치
    ● 간호·간병 병상 확대, 노인 주치의 도입… 제도 개편 시급
    ● 고민 상담해 주고 지원받을 권리 알려줄 시스템 필요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돌봄의 사회화’ 이뤄져야”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2021년 11월 대구지방법원 형사합의2부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22세 강모 씨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강씨는 앞서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GettyImage, 대구지방고등법원 제공]

2021년 11월 대구지방법원 형사합의2부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22세 강모 씨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강씨는 앞서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GettyImage, 대구지방고등법원 제공]

이수빈(22·가명) 씨는 자택 인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간다. 방사선사 시험이 코앞이지만, 집에서 이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머니 서희경(53·가명) 씨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을 2주 앞둔 어머니의 기력을 회복하는 게 이씨로선 무엇보다 다급하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친 건 2021년 5월.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넘어져 다친 일도 여러 번이다. 딸 없이는 병원 진료도, 산책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이씨는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청소, 빨래, 식사 준비 같은 가사는 물론 틈틈이 어머니를 간병하며 말벗을 자청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가 방사선사로 취업하면 당장 어머니를 돌봐줄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 간병인 일일 급여는 13만 원. 일주일에 5일씩 한 달 동안 간병인을 고용하면 월 260만 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 이외에 생활비, 공과금 등을 계산하면 신입 방사선사의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족 돌보는 ‘청년 간병인’ 3만여 명 추정

“12년 전 아버지와 이혼하고 어머니 혼자 저를 키웠습니다. 어머니가 허리디스크 판정 이후 3개월 동안은 병원에 입원해 생활했어요. 없는 형편에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집을 팔고 평수를 줄여 전셋집으로 이사했죠. 당시만 해도 어머니는 거동이 가능했고,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이 없어 퇴원해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 겁니다. 어머니가 엉덩이 골절 진단을 받고부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주저앉고 맙니다. 그 이후 제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집 근처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알아봤어요. 벌이는 적어도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면 바로 집으로 달려올 수 있으니까요.”

이씨는 “어머니의 병환이 완치되기를 바라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람일 것 같다”며 “어머니의 병환도, 재정 문제도, 내 앞날도 그저 이 상태에서 더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사례에서 보듯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학업을 마치기 전에 가족의 보호자가 된 청년들이 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운데 만 25세 미만 청년·청소년은 모두 3만1921명. 2019년은 3만7820명이고, 2018년은 4만380명이었다. 김 의원은 “이들 상당수가 ‘영케어러’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가 영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으니 정확한 현황은 알 수 없으나 3만~4만 명은 최소한의 수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케어러(Young Carer·청년간병인)는 부모, 형제, 조부모 등을 부양하고 돌보며 학업을 병행하는 청소년 또는 소득이 없는 대학생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막 자기 인생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시작하기도 전에 가족의 보호자가 된 청년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사각지대 방치된 사람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안타까운 수준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간병 살인’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나 이 문제를 주목해 왔다. 노부모나 배우자를 간병하는 중장년층의 안타까운 사연이 주를 이뤘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지 시스템이 확충되면서 중장년층의 간병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졌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모의 부모가 된 청년들이 가족을 돌보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앞서 이씨 사례처럼)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목욕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기저귀는 어떻게 갈아야 할지, 병원비와 간병 비용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매일 반복되는 극도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통스러운 일투성이다. 의식 불명 환자가 가장이라면 당장 생계조차 곤란을 겪게 된다. 청년 간병인이 학생이거나 취업준비생이라면 취업 준비 시기, 유예기를 놓쳐 훗날 온전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청년간병인 중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처럼 노동시장이 경직된 상황에서는 빈곤의 악순환이나 빈곤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간병을 위한 지원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공보험인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가 마련돼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한 팀이 돼 환자를 돌봐줌으로써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두거나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지 않고도 입원 생활을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개인 간병인을 쓸 경우 하루 1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하면 자기부담금으로 하루 2만 원 정도가 든다.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곤란한 65세 이상 노인, 치매와 뇌혈관성 질환 및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병을 앓는 65세 미만 사람에게 활동지원(목욕·간호)이나 재가급여(요양보호사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로, 2008년 7월부터 시행됐다. 요양 1~5등급을 받은 어르신은 이 같은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자기부담률은 15% 수준이다.

간호·간병 병상 확대, 노인 주치의 도입…제도 개편 시급

문제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이 부족해 실제 이용 실적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간호·간병통합 10만 병상 확충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복지부·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 6만여 병상에 그친다. 공공병원은 의무적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해야 하지만, 공공병원 96곳 가운데 11곳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실제 운영을 하는 곳도 간호인력 부족과 과중한 간병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아 정부가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여 부작용만 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4년간 일한 김모 간호사의 설명은 이렇다.

“말이 좋아 통합서비스이지 실제로는 간호사가 간병까지 책임질 수 없는 구조다.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각종 심부름을 전담하려면 다른 환자를 볼 수도 없는데 무조건 하라고 하니 간호사들이 퇴직을 하거나 통합서비스 병동을 기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소변 간병하려고 전문직(간호사)이 됐나 하는 우울감도 생긴다. 이처럼 간호사 퇴직 원인은 해결하지 않고 간호 인력을 확충하라는 정부 대처가 한심할 뿐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을 받아 혜택을 누리는 65세 이상 노인도 86만 명(2020년 기준)에 그친다. 의료보장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848만 명)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다. 노인요양보험의 등급 판정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급 판정에는 건강 상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혼자서 일상 또는 사회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포함되는 등 까다로운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으나 병원을 퇴원했거나, 거동이 불편하지만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노인장기요양등급 인정 수급자로 판정받지 못한 어르신들은 현재 노인 간병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젊은 나이에 부모 간병 생활에 매달리는 청년들이 생겨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이씨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신청을 했으나 어머니가 다리를 움직이고 발걸음을 떼 걷는 데다 수술 이후 이 상태가 고착화되지 않을 수 있어 수급자 대상에서는 제외됐다고 하더라. ‘등급 외 판정’(수급자는 아니나 돌봄이 필요한 경우) 처분을 받았지만 간병인 방문 등의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노인장기요양등급 인정 수급자의 요건이 제한적이고,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비율이 낮아 어린 자녀가 자기 삶과 계획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부모 간병을 도맡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며 “정부 당국이 나서서 간병 제도의 구멍을 메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간호·간병통합 병상을 확대하고, 노인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단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민 상담, 지원받을 권리

부모나 가족을 오랫동안 돌본 청년간병인 가운데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방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임나영(가명·32) 씨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임씨의 아버지는 간암을 앓다 2014년 세상을 떠났다. 임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7년간 어머니 간병에 몰두한 탓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랐다.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주위에 없다 보니 고립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년간병인의 마음을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지쳐가는 데도 홀로 끙끙 앓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울증을 겪게 된다”며 “이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이 아니라 지지와 위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간병 문제가 세대와 관계없는 사회문제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 ‘항아리형’에서 ‘역파리미드형’으로 변하고 있는 인구 구조상 청년간병인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은 청년간병인에 대한 현황 파악은커녕 실태조사조차 벌이지 않고 있다. 지원 방안을 수립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021년 11월 5일 국회 예결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청년 간병’ 사건과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조차 최대한 국가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 못한 것은 저희들의 책임”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뉴시스]

김부겸 국무총리는 2021년 11월 5일 국회 예결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청년 간병’ 사건과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조차 최대한 국가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 못한 것은 저희들의 책임”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뉴시스]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돌봄의 사회화’ 이뤄져야”

핵가족화와 저출산 현상으로 간병을 맡을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혼자 여럿을 돌보는 다중 간병인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낸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청년간병 지원 정책을 마련할 때 이를 한 가정의 불운 또는 가족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며 “국가가 책임진다는 ‘돌봄의 사회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부모 간병에 묶여 앞날을 포기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청년간병 #영케어러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 #신동아



신동아 2022년 1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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