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이는 안방에서 베개를 베고 누운 채 숨져 있었다. 빨간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고 양말을 신었는데, 주영이의 다리에는 엄마가 신기지 않은 살색 스타킹이 약간 흘러내린 채 신겨져 있었다. 양말과 머리띠는 방안에 놓여 있었고, 주영이가 신었던 노란색 슬리퍼는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주영이는 7월16일 오후 2시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점심 때 먹은 삼계탕이 거의 소화되지 않은 채 위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부패 정도가 심한 데다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자 경찰은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8월6일 오전 B사찰을 찾았을 때 주영이 엄마 김모(66)씨는 막 주영이의 제사를 마친 뒤였다. 절에서는 49제 때까지 매주 제사를 지낸다. 이날 제사상에는 주영이가 평소 좋아했던 초콜릿과 과일이 올랐다. 김씨는 “49제 때까지 절에서 주영이에게 사죄하기로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씨는 주영이의 친엄마가 아니다. 주영이는 첫돌이 지난 후 부모가 이혼을 하자 이 사찰에 맡겨졌다. 독실한 불자이자 주지스님의 친구인 김씨는 주지스님과 함께 주영이를 애지중지 길렀다. 넉넉치 않은 절 살림이었지만, 주영이가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해주었다. 주영이는 태어날 때부터 사시였는데, 주지스님은 주영이를 데리고 침으로 사시를 고친다는 침의(鍼醫)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서너 차례 다녀왔을 정도다.
주영이는 천성이 밝고 정이 많은 아이였다. 불자들이 절을 찾는 날이면 신이 나서 겅중겅중 뛰어다녔고, 제 손으로 음식을 싸서 불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런 주영이가 네 살 되던 해, 김씨는 주영이의 말 한 마디에 모녀 인연을 맺었다.
“주리(김씨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 할머니, 나는 엄마가 없으니까 할머니를 엄마라고 할래.”
탈북, 송환, 재탈북
경찰은 박진철을 검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많다. 박진철이 혈혈단신 탈북한 까닭에 남한에 친척이나 특별한 연고지가 없는 데다, 그와 친하게 지낸다는 동료 탈북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 동기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박진철은 혼자 행동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는 것.
박진철과 친분이 있던 유일한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탈북자 이모씨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와 박진철은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로, 박진철이 드물게 마음을 터놓고 지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6월, 박진철이 이씨에게 칼을 휘두르기까지 하며 대판 싸운 후 둘 사이는 틀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박진철에게 ‘자리를 좀 잡으라’고 충고하자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덤벼들었다는 것.
이씨는 이 일을 매우 괘씸하게 여겨 박진철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거부했고, 이씨의 부인은 “우리는 박진철이라는 이름 석 자밖에 모른다.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진철은 1975년 함경도에서 태어났으며, 지난해 4월 한국에 들어왔다. 3개월간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7월9일 원주로 내려와 명륜동 임대아파트에 자리를 잡고 남한생활을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약 7년간 군 복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술에 취하면 “나는 북한 인민군 하전사 출신이다. 군대에 있을 때 머리를 심하게 맞아 수술을 했다”고 말하곤 했다.
박진철은 탈북과 북한 송환을 반복하면서 서너 차례 탈북을 시도했고, 1년 정도 중국에 머물다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그런 그가 남한 사회에 자리잡은 지 1년 만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경찰이 사라진 주영이를 단순 미아로 간주하고 있는 사이, 박진철이 아파트 단지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을 여러 주민들이 목격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박진철은 주영이가 숨진 날로부터 2∼3일 후인 18일 혹은 19일 오후에 아파트로 돌아왔다. 몇몇 주민들은 박진철이 아파트 입구의 편의점 탁자에서 라면과 소주를 먹는 모습을 목격했다.
주영이 엄마 김씨는 한 불자로부터 주영이를 찾는 전단지를 받기로 해 1층으로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고꾸라져 있는 박진철을 봤다. 김씨는 “전단지를 받고 집에 들어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진철이 15층 복도에서 마구 소리지르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이후 박진철을 봤다는 주민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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