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6구에 있는 한 카페의 오후 풍경. 작가 필립 솔레르스가 가끔씩 이 카페에 나타난다.
2002년 파리로 떠났다 서울로 돌아온 지 10개월을 맞이했다.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더니 이제 점점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큰일이다. 이러다가는 이방의 도시에 살다 돌아온 사람의 시선으로 서울의 낯선 장면 101개를 제시하겠다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서울 풍경을 계속 새로운 눈으로 보기 위해서 나는 예술가의 시선을 가지려고 애쓴다. 시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용이든, 예술은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는 현실에 용해되어 그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거부한다. 예술가의 정신, 시인의 혼은 현실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초월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려는 지향성이다.
1990년대 초에 나온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에는 말(馬)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R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서울 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나는 이 서울이야말로 송두리째 하나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흡사 내가 허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남과 다르게 현실을 비판적으로 관찰하며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정신 상태다. 작가들만이 아니라 화가들도 현실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상투적인 시각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파리의 죄드폼(Jeu de Pomme),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추상화가 이우환이 1년에 6개월씩 도쿄와 파리를 오가는 생활을 하는 이유도 ‘당연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풍경 #46 사라진 옛 추억의 그림자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말이 있다. 대세가 조용한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 생활에서 정중동의 상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동중정(動中靜)의 상태,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한가한 구석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파리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도심은 복잡하지만 센 강 양안을 이어주는 생루이섬의 강변이나 시테 섬의 도핀 광장에 들어서면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선 그런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은 그야말로 동중동(動中動)의 상태에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또 다른 움직임이 있다.
서울을 ‘괴물도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서울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괴물은 자주 그 모습을 바꾸어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린다. 빠른 변화는 마치 기억과 추억을 거대한 쇠뭉치로 깨부수고 그 조각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듯하다.
서울에 내가 즐겨 다니던 카페나 식당이 몇 곳 있었다. 명동과 종로 2가에 있던 ‘한일관’은 내가 파리에 살다가도 서울에 오면 꼭 들르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이 식당이 어느새 사라졌다. 얼마 전 강남에 새로 생긴 한일관에 가서 갈비탕을 먹었다. 돌로 지은 새 건물에서 옛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지만 주인이 종로 한일관의 옛 주인이어서 음식 맛을 그런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장사진을 이루는 삼청동 수제비집이나 시청 뒤의 북어국 집은 옛날 그대로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아주 예외에 속한다.
서울을 떠나 외국에 몇 년 살다 돌아오면 예전에 다니던 식당이나 찻집은 사라지고 다른 업소가 들어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같은 찻집이나 식당이라도 주인이 달라져있어 전체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지 못한다. 이대 앞의 ‘가미’, 혜화동의 ‘마전터’ 등의 식당은 아직 남아 있지만 주인이 바뀌어 음식의 맛도 예전과 같지 않고 장소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연대 앞의 ‘독수리다방’과 ‘백양다방’, 동숭동 대학로의 ‘오감도’나 ‘마로니에’같은 경양식집, 이대 앞의 ‘미뇽다방’ ‘파리다방’, ‘아메리카’와 ‘멕시코’ 등의 경양식 집들은 지금 다 사라지고 이름도 없다. 대학로의 ‘학림다방’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파리에는 내가 1980년대 유학생 시절에 다니던 카페들이 지금도 옛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떤 곳은 실내장식을 다소 바꾸었지만 여전히 낯익은 구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장소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분위기, 다시 말해 그 장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뤽상부르 공원 옆의 ‘로스탕’ 카페, 생쉴피스 광장 앞의 ‘카페드라메리’, 생루이 섬의 ‘에스칼’, 뤼데제콜의 ‘르 소르봉’, 소르본 광장 앞의 ‘에크리트와르’ 등의 카페는 같은 자리에서 옛 분위기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내가 여전히 나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서울이 아니라 파리에서 내가 나라는 느낌을 받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