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6구 카트린 라브레 공원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왼쪽)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놀이터.(오른쪽)
그들 모두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발을 내디디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자기도 모르게 일상의 인류학자가 된다. 자기가 태어나 자란 그곳의 문화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의 문화 사이를 부단히 오가며 비교의 관점을 키운다. 자신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관습과 풍습에 거리를 유지하고 새로운 공동체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에 스스로를 적응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결코 새로 선택한 나라의 완전한 구성원이 될 수는 없다. 이방의 언어는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영원히 외국어로 남아 있다. 똑같은 어휘를 사용해도 언어에 담겨 있는 미세한 뉘앙스와 정서적 함축을 토박이들처럼 느끼지 못하고, 일상의 관습을 아무리 익힌다 해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방인은 옛 공동체와 새로 선택한 공동체 사이에서 늘 방황한다. 그 과정에서 이방인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어느 문화에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경계선 부근의 회색지대를 맴도는 주변인이 된다. 그에게는 어떤 공동체의 규범과 관습도 꼭 따라야 할 절대적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개의 공동체 사이를 오가는 이방인은 두 공동체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사고방식과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1628년 이후 암스테르담에 살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적인 관습의 자명함을 의심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네덜란드의 관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독일 출신의 혁명 사상가 마르크스는 1850년대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독일인의 관습과 영국인의 관행 모두를 비판적 안목으로 바라보았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사이드는 스스로를 ‘머무를 곳 없는 자(Out of place)’라고 불렀다. 프랑스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알튀세르와 데리다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나서 파리로 이주한 이방인들이었다. 식민지 영토 출신이었던 그들은 메트로폴리탄 중심부 사회를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마르크스의 ‘자본론’,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는 어느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방황한 자들이 남긴 사고(思考)의 흔적들이다. 그들은 지연과 혈연이라는 족쇄, 관습과 편견의 벽을 ‘비교의 눈’을 통해 넘어서면서 조금 더 보편에 가까운 사고를 하려고 애썼던 사람들이다.
1980년대 유학생활 7년, 그리고 2000년대 정신적 망명생활 10년을 파리에서 보내고 서울로 돌아온 나도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서울이라는 도시와 서울 사람들의 관습과 시각,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것을 파리에서의 체험과 비교하게 된다. 고향을 떠난 이방인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파리에서 서울을 떠올리던 나는 서울에 돌아와서는 파리를 떠올린다. 나는 완전한 서울 사람이 될 수 없고 온전한 파리 사람도 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파리에서는 프랑스어로 말하고 프랑스 라디오를 듣고 프랑스 책을 읽었지만, 파리지엥과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겉으로는 쉽게 서울 사람이 되었지만 마음속은 서울이란 거대한 연못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을 관찰하던 나는 서울에 돌아와서는 한국 사람들을 관망한다. 두 개의 도시에 속하는 사람은 사실 어느 하나의 도시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당연히 거기 있는 ‘실재(reality)’로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현실은 복수의 실재(multiple realities) 가운데 오로지 하나의 실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는 다른 실재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든다. 때로는 지금 눈앞의 세상이 신기루나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일상의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쇠로 만든 울타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방인은 결코 비교와 의심의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당연한 풍경과 물론의 세계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한다. 크고 화려한 것만이 아니라 작고 미세한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풍경 #84 행복의 사회학
이번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기온이 떨어져 추운 날이 잦다보니 겨울의 정취가 깊게 느껴진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 위에 흰 눈이 내려앉은 모습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발밑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올라온다. 눈길은 미끄럽지만 눈길을 걷는 마음은 상쾌하다. 동네 동물병원 유리창 앞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올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세요?! 더욱 부자되세요?! 더욱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