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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좀 편하게 살자고 자식에게 빚 떠넘겨서야”

문형표 前 보건복지부 장관, 퇴임 후 최초 인터뷰

“우리 좀 편하게 살자고 자식에게 빚 떠넘겨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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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상당한 평가 받을 것”

▼ 서울시 기자회견 사흘 후에야 병원 명단을 공개한 것은 ‘뒷북’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부러 늦춘 게 아닙니다. 발표 전에,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는 문의 전화를 담당할 콜센터와 의심 증세 환자를 수용할 병원 등 먼저 시스템을 갖추는 게 순서잖아요. 이런 준비에 이틀가량 걸렸습니다. 다른 지자체와는 긴밀하게 협조가 됐지만, 서울시와는 이때 협조가 잘 안 됐어요.”

▼ ‘국가가 방역을 삼성에 맡겼다’는 지적도 있었죠.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대형 병원에서는 병원 측의 협조 없이 역학을 할 수가 없어요. 워낙 환자가 많으니까요. 삼성서울병원이 ‘1번 환자’를 확진했고, 아무런 전파 없이 잘 끝났습니다. 그래서 ‘14번 환자도 1번 환자의 경우처럼 합시다’, 그랬던 것 같아요. 또 정부의 역학 활동을 평택에 집중하다보니 삼성서울병원에는 덜한 측면이 있었고요. 역량이 충분치 않았던 건 사실이나 삼성에 역학을 일임한 건 아닙니다. 6월 3일 복지부 과장이 삼성서울병원에 급파돼 협조 체계를 만들었고요.”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9월 초 방한해 “한국 정부는 소통에서는 미진했지만 메르스 대응은 제대로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공무원들이 밤새워가며 밀접 접촉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고도 했다. 문 전 장관은 “한 달가량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며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 정말 많았다”고 회상했다.

“세종시 청사에 마련한 대책본부에서 하루 세 끼 도시락만 먹으며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새벽 서너 시에도 일 터지면 대응하고…. 중동에서 귀국한 사람에게 발열 증세가 있다고 해서, 두 번째 인덱스 환자(감염 확산의 원인과 과정을 보여주는 환자)가 발생하나 난리가 난 적도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신규 확진자 수가 0이 되더니 일주일째 계속 0이더라고요. 꿈같으면서도 이러다 또 한 명이라도 새로 나올까봐 전전긍긍했고요. 아무튼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사태가 마무리돼 다행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신문에 ‘한국은 메르스를 3개월 만에 막았는데, 사우디는 3년이 지나도 아직 못 막았다’는 기사가 실렸다고 하더군요.”

그는 “초기 대응은 미숙했지만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협력해 조기에 메르스 사태를 종식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상당한 평가를 받지 않을까 싶다”며 “특히 환자들을 직접 보살펴준 간호사들의 희생정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급여만 올리자? 무책임하다!”

문형표 전 장관은 연금정책 전문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연금 주제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금 및 복지 정책을 연구해왔다. 그가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깜짝 발탁됐을 때, 세간에선 그를 여야 사이 갈등이 많았던 기초연금 도입을 위한 구원투수로 해석했다.

▼ 최근 내년 예산안이 발표됐는데, 복지 예산이 가장 많고 또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경제 발전 단계마다 정책적 선택이 달라져야 해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늘고 가계소득이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사회안전망보다 경제 발전에 재정을 집중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부(富)를 재분배해야 합니다. 이게 옳은 방향의 재정 정책이에요.

고령인구가 늘어나고 수명도 길어지기 때문에 복지 예산은 늘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 줄여야 한다는 논쟁은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현재 우리 복지제도는 불균형 구조예요. 취약계층의 혜택은 최소화한 대신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제도는 잘돼 있는 편입니다. 따라서 사회보험제도를 개혁하고 취약계층 복지를 늘려 ‘균형 복지’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공적연금 개혁, 건강보험 개혁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해요.”

▼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는 것엔 반대합니까.

“소득대체율 40%에서도 낸 만큼 받으려면 보험료율이 14%가 돼야 해요. 그런데 현행 보험료율은 9%죠. 즉, 5% 정도는 미래 세대의 몫을 가져오는 셈이에요. 그런데 정치권에선 보험료율 문제를 개선할 생각은 않고 소득대체율 상향만 얘기하지요. 더욱이 기초연금 도입으로 이미 소득대체율이 5~10%포인트 올라간 셈입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연금부채를 다 합치면 1000조 원이 넘어갑니다. 이런 문제에는 눈감은 채 급여를 올리자니, 얼마나 무책임한 말입니까. 연금 학자들은 이걸 ‘세대 간 불형평성’ 또는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5월 그는 국회에서 야당을 향해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발언했다가 ‘세대간 갈등을 부추긴다’며 사퇴 압박을 받았다. ‘도적질’ 소동은 가을 정기국회에서 연금 개편을 다시 논의할 때 문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으로 여야가 약속하고 일단락됐다고 한다.

“우리 좀 편하게 살자고 자식에게 빚 떠넘겨서야”

문형표 전 장관이 인터뷰를 마친 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국회 앞에 잠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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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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