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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세월호 분노’의 비이성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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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관계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심리 특성은 분노의 대상을 사람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죽일 놈’을 잡아야 분노가 해소된다.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진도 팽목항에 유병언 부자 수배 전단지가 붙어 있다.

많은 사람이 얘기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월호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그만큼 세월호 사고는 한국인에게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괴롭고, 힘든 사건이었다. 꽃다운 고등학생 200여 명을 포함한 3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거나 실종되었다.

단지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도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그 과정, 그리고 사고 이후의 구조와 대처 과정을 보면 더 비극적이고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아직도 실종자가 남아 있고, 수많은 조사가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관련 사실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오랜 기간 필요하다.

더구나 사고와 관련해서 책임질 사람과 잘못에 대한 철저한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사고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 조사, 여론과 다양한 논의, 사회적 관심은 사고 원인의 규명과 구조과정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또한 이제는 이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또는 인적 쇄신과 개선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된다. 

분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지난 50여 일 동안 비통함, 슬픔, 실망, 미안함, 분노에 다 같이 빠져 있었고 그렇게 빠져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분석을 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언급이나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큰 논란을 일으켰다. 부적절한 표현과 방식의 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에는 국민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유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고통을 함께하지 않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반사회적 인물로 낙인찍히기 쉬운 분위기다.



더구나 감성과 정서에 유난히 예민한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행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있기에 위험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모든 사회적 이슈는 정치적 이념과 연결되어 논란이 되기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는 선장, 선원, 해경, 유병언 일가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우리 행동에 대한 분석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심리학자마다 동의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심리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이다. 심리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니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가치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심리학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떤지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지, ‘어떠해야 한다’라든지, ‘어떡해서 잘못됐다’라는 판단은 되도록 피한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그것도 산 채로 잡아먹는다고, 심지어 동물원의 사육사를 잡아먹는다고 사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냥 사자는 그렇게 타고났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선한 본성만큼이나 악한 본성을, 합리성만큼이나 비합리성을, 지혜만큼이나 착각을, 이타성만큼이나 이기성과 공격성을 가졌다고 해서 심리학자는 실망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항상 스스로를 살짝 긍정적으로 보려는 인간의 본능적 착각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밝혀내는 데 더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심리학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데 중독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심리학은 결코 우리 스스로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본질과 한계를 명확히 알 때, 우리가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데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모습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은 그래서 ‘잘한다’ ‘잘못한다’라는 가치판단을 최대한 피한다. 그냥 우리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다른 모습을 원한다면, 자신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근거로 해서 대책과 계획을 세우면 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분석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한국인의 행동과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좌절-공격 이론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기존의 어떤 사고보다도 크다. 피해자의 규모나 사고의 내용 면에서 최악의 사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삼풍백화점에서 502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이나 비슷한 규모의 288명 사망자를 낸 서해 훼리호 사고 등과 비교할 때, 국민의 분노 수준은 훨씬 높고 격해 보인다. 물론 청소년의 희생이 그 분노를 증폭시키는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슬픔이나 안타까움뿐 아니라 분노의 수준이 유달리 높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좌절-공격 이론(frustration-aggression theory)이 적절해 보인다. 

사회심리학에서 인간의 분노와 공격 행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인 좌절-공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좌절을 경험할 때 분노와 공격행동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서 좌절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 달성이 누군가나 어떤 것에 의해서 방해받는 경험이다. 이 좌절은 단순한 실패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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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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