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일파만파,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후폭풍

‘저주받은 89년생’, 내신·수능·논술 ‘버뮤다 삼각지’에 빠지다

  • 글·사진: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5-24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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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주받은 89년생’이 폭발했다. 노트가 찢기고 교과서를 도둑맞는 전쟁터 같은 교실. 내신등급제는 우정을 갈라놓는 철조망이 됐다. 주요 과목은 물론 줄넘기, 뜀틀, 초상화 그리기, 노래 부르기까지 전방위 과외에 매달리며 ‘1등급 사수’에 이를 악무는 아이들.
    •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마련됐다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공교육 체제의 아이들을 ‘죽을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교육도, 아이들도 함께 살리는 길은 없는 걸까.
    [장면 1] 우울한 수학여행…봄이 춥다

    일파만파,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후폭풍

    5월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 추모제’에 참가한 시민단체 관계자들.

    봄 햇살이 따사롭던 4월30일. 서울의 한 외국어고교에서 만난 1학년 학생들의 얼굴은 팽팽하게 긴장돼 있었다. 중간고사 1주일 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좀체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들은 2008학년도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대입제도가 처음 적용되는, 이른바 ‘저주받은 89년생’. 상대평가에 의한 내신등급제가 시행되고 대입 전형에 내신 반영비율을 높인다는 새 입시안은 이들에게 최대 관심사다. 입시안에 대해 묻자 불만이 봇물 터진 듯 쏟아진다.

    “어휴, 고3 선배들은 수능을 200일 앞뒀지만, 우리는 수능을 1주일 앞뒀다고 해요. 1주일 뒤에 중간고사를 보거든요. 3년 동안 수능을 12번 치러야 한다니 끔찍해요.”

    “다들 공부 잘해서 들어온 애들인데, 어느 정도 수준인지 서로 모르잖아요. 그러니 모르는 게 있어 물어보면 친한 친구조차 잘 안 가르쳐줘요. 친구가 아니라 적이 돼버려요. 공부 안 하는 척하면서 남몰래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애들이 수학여행 가면서도 기차 안에서 책 펴놓고 공부해요. 내신 3등급 밑으로 나오면 좋은 대학 못 들어간다니 이번 시험 잘 못 보면 일반계 학교로 전학갈래요.”



    “엄마가 그러는데, 고3인 언니보다 저한테 사교육비가 배로 들어간다고 해요. 내신 대비를 더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저는 지금 국어·영어·수학·사회·독어·논술을 가르치는 종합학원에 다녀요. 예체능 과목이나 2학년 때 배울 중국어(외국어고는 제3외국어를 가르친다) 과외 수업 받는 애들도 있는데요, 뭐. 참, OO는 독어 과외 한다던데. OO야, 너는 독어 누구한테 배워?”

    “비밀이야!”

    “이것 봐요. 친구끼리 누구한테 과외 받는지도 안 가르쳐주잖아요. 아이들이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씩 매달린 것 같아요.”

    대화를 마친 아이들은 학원으로, 독서실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밝은 햇살과 환하게 핀 봄꽃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었다.

    [장면 2] ‘고딩’들의 반란, 촛불집회

    5월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는 입시교육에 내몰린 고교생들의 작은 반란이 시작됐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이 주최한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추모제’에 고교생들이 참가한 것. 올 봄에만 성적 비관으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이 10명이다.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불만에다 새 입시안의 내신등급제가 초래한 비인간적 경쟁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초 이 행사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불만을 표출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대규모 촛불집회가 될 것으로 알려져 교육당국을 긴장시켰다. ‘내신등급제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급속히 전달됐고,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각종 인터넷 사이트로 순식간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5월6일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교육부총리 서한문’을 띄워 진화에 나섰고, 서울시교육청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력 대처하고 나섰다. 그 결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학생은 400명에 불과했고 학생들을 만류하기 위해 나온 교사와 교육청 관계자들은 600명에 달했다. 교육당국의 ‘오버’는 과잉대응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집회에 참여한 학생의 면면은 다양했다. 교복을 입고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참여한 김모(16·K고 1년)군은 “상대평가인 내신제도가 우리들의 인성 및 도덕 교육까지 망치고 있다”며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의사 표현까지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군은 또 “중간고사를 마친 친구들이 모두 의기소침해 있다. 문항도 많고 난도도 높아 제 시간에 다 풀기도 어려웠다.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건지,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5명의 친구와 함께 단지 호기심 때문에 집회를 구경하러 왔다는 이모(16)양은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 친구들이 시험공부하느라 돌아가며 코피를 흘리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양과 친구들은 갑자기 취재진이 몰려들자 “TV에 얼굴이 나오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지 모른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사상 초유의 ‘고1 반란’은 우려와는 달리 조용히 마무리됐다. 일각에서는 “학생이 아니라 어른들이 주도한 집회였다”고 비판했고, ‘내신도 본고사도 싫다’는 식의 대안 없는 피켓 구호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들을 밀어내는 잔혹한 경쟁은 싫다”는 학생들의 공통된 외침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었다.

    “교육부 못 믿겠다”

    2005년 봄, 새 입시제도로 한바탕 진통을 겪은 우리 교육현장의 풍경이다. 지난해 10월 교육부는 내신성적의 비중을 높이고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교육의 중심축을 학교 밖에서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 바로 새 대입제도의 취지다. 새 대입제도에서는 내신성적의 산출방법도 달라진다. 현재 수·우·미·양·가 평어 중심의 절대평가에서 9등급 상대평가로 바뀐 것. 절대평가 체제에서 빈발했던 일선 고교의 성적 부풀리기를 막아 내신의 신뢰성을 높이자는 목적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기대와는 딴판으로 새 대입제도의 파장은 커졌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던 목표가 무색하게 내신 대비를 위한 사교육 수요가 급증했다. 친구들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내신등급제에 대한 고1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교육부 게시판에는 ‘고1’ ‘저주받은 89년생’과 같은 ID로, 내신등급제에 항의하는 글이 수천건씩 올라왔다. ‘인터넷 키드’의 조직적인 반란은 ‘폭풍전야’를 예감케 했다.

    이렇듯 교육부의 꿈과 현실이 엇갈린 이유는 뭘까. 무엇이 고1 학생들을 폭발하게 했는가. 그 원인은 교육주체간 의사소통이 꽉 막힌 데 있었다.

    고교 1년생들은 내신 반영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오해했다. ‘내신 반영비율을 높인다’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의 일반화된 설명을 ‘내신으로 대학 간다’는 논리로 비약한 것이다. 모든 과목의 성적이 입시전형에 반영될 것이라 여긴 학생들은 예체능 과목의 과외도 불사했다. 사실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대해 ‘내신 반영비율을 높이겠다’는 원칙만 발표했을 뿐, 실질 반영률을 결정하는 주체는 대학이다. 이러한 사실이 초기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현장의 혼란이 가중된 것이다.

    서울 강남 J고의 한 1학년 담임교사는 교사에 대한 교육부의 입시정책 지도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논술고사 위주의 전형안을 발표하는 걸 보고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육부가 제시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원칙에 따라 학생들에게 지금껏 내신 준비를 강조해왔는데, 아이들에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죠. 이것은 교육부가 교사에게 입시 지도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또한 내신등급제가 논란을 부르자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부터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가 ‘시험 한 번의 실제 내신 반영률은 0.625%에 불과하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앞으로 교육부를 믿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3년 전 발표된 7차 교육과정에 따른 입시안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느라 힘들었는데, 다시 새 입시안을 대하니 정말 힘에 부칩니다.”

    위기감 부채질한 언론

    교육부 정책이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는 갈팡질팡해왔다. 지난해 고교등급제 파동을 보며, 광주에서 서울의 한 외국어고로 진학했다는 배모(16)양의 이야기는 귀기울일 만하다.

    “지난해에 고교등급제 파동이 한창이었잖아요. 명문대에서 입시 전형에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걸 알고, 엄마가 저를 서울로 보내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광주에는 1등급으로 분류될 만한 학교가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원서 마감 이틀 전, 외고에 입학지원서를 넣었죠.

    그런데 막상 외고에 들어오고 나니 정부가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대학에 불이익을 준다는 거예요.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진 새 입시안 때문에 오히려 외고 학생이 불리해진다는 이야기도 들렸고요. 그런데 또 최근 주요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을 보면, 내신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기도 해요. 정부 방침을 무조건 믿어야 하는 건지,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겠어요. 무슨 입시제도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혼란스럽고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일파만파,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후폭풍

    5월7일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당초 예상보다 적은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고교 1년생들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언론이다. 교육정책의 정확한 내용과 문제점을 충분히 짚어주기보다 내신등급제로 빚어진 혼란을 자극적으로 포장하는 데 급급했다.

    서울 명덕외고 반진호 교육연구부장 교사는 “언론에서 내신등급제의 파장만을 지엽적으로 다뤄 마치 모든 대학이 획일적인 방법으로 내신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처럼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입시에 민감한 학생들에게 위기감과 중압감을 가중시켰다는 것.

    ‘내신 전쟁’을 앞다퉈 다루던 언론은 5월7일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뒤늦게 보도 방향을 전환했다. 학생들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신등급제의 오해와 진실’과 같은 기사를 내보낸 것. ‘함께하는 교육시민의 모임’ 김명신 대표는 “언론은 특수목적고나 서울 강남 학교에서 벌어지는 내신 전쟁에만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춰 보도하며 은근히 본고사를 유도했다”며 “일반계 학교나 지방 학교에선 오히려 ‘2008학년도 입시안’ 덕분에 학생들의 수업집중력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은 태생적 한계를 갖고 출발했다. 새 대입안은 교육부의 원칙만 천명할 뿐, 전형방법에 대한 각 대학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J고의 변모 교사는 “대학별 전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교육부의 입시 개혁안은 처음부터 혼란을 예고했다”며 “‘내신 비중을 강화한다’는 원칙만 내세운 교육부 방침의 불확실성 때문에 학생들의 불안과 공포가 더욱 증폭됐다”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뒤늦게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각 대학들이 6월말까지 대입전형 계획의 주요 사항을 발표하도록 각 대학에 권고했다. 이어 5월12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서울과 수도권 28개대 입학처장들이 모인 가운데 ‘전국 대학 입학처장 회의’를 열고 2008학년도 대입전형에서 자립형 사립고나 외국어고, 과학고와 같은 특수목적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과연 서울대의 ‘심화형 논술고사’ 확대와 대교협의 방침이 ‘내신 전쟁’으로 고민하는 모든 고교 1년생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교육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논술고사 반영 비중을 높인 서울대 입시안은 사실상 일부 지역과 특목고 학생을 위한 신고교등급제”라며 “결국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은 대학 서열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없이 학생들에게 내신, 논술, 수능을 모두 준비해야 하는 입시 3중고만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반면 ‘바른교육권실천행동’ 남승희 공동대표(명지전문대 교수·사회교육학)는 “서울대의 ‘심화형 논술고사’는, 내신을 신뢰하기 어렵고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교육부가 제시한 두루뭉실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은 어쩌면 대학에 선발 자율권을 주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결국 모든 대학을 같은 기준으로 서열화하지 않으려면, 교육부는 획일화된 원칙을 고집하지 말고 대학에 자율권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궁극적으로 입시에서 손을 떼고 각 대학의 선발과정이 투명한지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일시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특수목적고, 자립형 사립고 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대원외고 김일형 교감은 “서울대 특기자 전형 비율이 33%로 늘어났고, 각 대학이 동일계로 진학(어문계 진학)하는 학생에게 내신의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여 학생들은 편안하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오히려 입시제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 특목고 학생들의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도록 교육시켰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잡는 ‘대학생 교사제’

    그렇다면 일파만파로 번진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은 어떤 행태로 정착해야 할까.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 사교육비 절감이다. 당초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마련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오히려 내신 과외를 부추긴 주범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논술고사의 중요성까지 대두되자 학원가는 신바람이 났다.

    온라인 교육사이트 ‘메가스터디’의 손은진 홍보부장은 “고1 내신 강의의 경우 올해 1월 매출이 전년 대비 30.1% 증가했고, 3월 들어서는 69.7%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서울 대치동과 중계동 학원가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 정보학원의 정보 원장은 고교 1년생이 사교육에 더욱 의존하게 된 데 대해 “내신 시험이 상대평가로 전환되면서 문제의 난도가 높아지고, 서술형의 비중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별 내신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주고 시험에 대한 노하우와 정보력을 지닌 학원을 찾게 되는 것”이라 분석했다.

    고1, 고3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라모씨(서울 일원동)는 한 달에 둘째아이에게 드는 사교육비가 200만원에 달한다. 고1인 아들 김군은 현재 국영수 종합학원과 영어 토플 과외, 수학 심층 과외, 심층면접 대비 과외를 받고 있다. 내신, 수능, 논술 및 면접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다. 그는 “다른 아이들은 예체능 과외도 다 받는데 우리 아이는 약과다”고 털어놓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에 대해 “EBS 강의를 교과별, 수준별, 내용별로 다양화하고 논술 대비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방과 후 학교 운영을 활성화함으로써 학교 밖의 사교육 욕구를 학교 안으로 흡수할 것”이라 밝힌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내신 부담에 대한 경감 대책도 마련 중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산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대학생 교사제’와 ‘고등학교-대학교 연결 협의체’는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고교와 대학간 스킨십을 강화하는 모범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올들어 부산대와 신라대 사범대는 재학생들이 부산지역 고교의 학습부진아를 60~120시간 동안 가르치지 않으면 대학을 졸업할 수 없도록 학칙을 변경했다. 설동근 부산시 교육감은 “대학생 교사제는 학습부진아에겐 교육기회를 부여하고, 대학생에겐 교수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된다”며 “이 시스템이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를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사교육비 경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등학교-대학교 연결 협의체’는 부산지역 고등학교와 대학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등장했다. 이를 위해 먼저 수시모집에 합격했거나 수능시험을 마친 고교생의 교육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고교와 협약을 맺은 부산지역 대학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부산시교육청의 고교-대학 협력 모델이 대입 혼란으로 빚어진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 협의체를 통해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발굴할 기회를 갖고 고교는 어떤 학생들을 어느 대학에 보낼 것인지 자세한 정보를 얻게 된다는 것.

    교육부, 대학, 고교간 삼각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살리기 위해 ‘교육발전협의회’의 역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주체간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발전협의회가 입시제도에 대한 혼란과 갈등을 풀어가는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고교등급제 파동과 일선 고교의 성적 부풀리기 논란을 겪으며, 다양한 교육주체간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 교육발전협의회입니다. 지난해 12월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학부모, 교직단체, 대학, 경제계, 언론계 등의 지도급 인사 26명으로 구성됐죠. 그러나 지난 3월에야 첫 회의를 여는 등 그간 활동이 미진했습니다. 대학과 고교, 학부모와의 의사소통이 더욱 활발히 이뤄졌다면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대한 오해가 빨리 불식됐을 겁니다.”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입시 사정관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5월12일 진행된 교육정책토론회에서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이 한국에서 부작용 없이 허용되려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학은 입시사정관 제도를 도입해 각 고교간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전문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 제안했다. 이 제도를 통해 대학과 고교간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활발해지고 학생 선발의 전문성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제도를 강구해도 현재 대학의 서열구조가 타파되지 않는 한 입시 혼란은 계속된다”는 전교조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5월7일 촛불시위 현장에서 만난 40대의 한 교사의 말은 한국에서 벌어진 교육 혼란의 본질을 명쾌히 짚고 있다.

    “나는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행복합니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에요. 입시 제도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결국 ‘좋은 대학에 가겠다’며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죠. 학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은 늘 갈등의 중심에 있을 겁니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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