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꽃으로 달리는 부안 돈계마을의 하루

‘환경석유’ 유채의 혜택 열 손가락이 모자라요!

  • 고덕규 자유기고가 paxpen@empal.com

    입력2008-04-04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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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 반대운동으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던 전북 부안에 ‘노란 석유’가 펑펑 솟아난다. 먹는 유채기름이 신재생 에너지로 변신한 것. 가을걷이 후 유채 씨를 뿌리면 새순은 상큼한 샐러드, 꽃은 에너지, 나머지는 썩어 질 좋은 퇴비가 된다. 그 땅이 생산한 쌀은 최우량품. 주민들은 이제 ‘유채석유’와 태양전기를 직접 만들어 쓰며 부안사태 때 ”너희는 전기 안 쓰냐”단 국민들의 비난에 말없이 화답한다.
    꽃으로 달리는 부안 돈계마을의 하루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 신동엽 ‘봄은’에서

    전북 부안군에서 논과 밭을 거대한 유전(油田)으로 바꾸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실험의 주체는 해외에서 꾸준히 유전을 개발해온 석유개발공사도,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도 아닌 이 지역의 농부들이다. 농부들이 어떻게 평범한 논과 밭을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유전으로 바꾸겠다는 것일까.

    부안은 전국 최대 油田?

    비밀은 유채에 있다. 유채씨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연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석유를 대체할 기름을 추출할 수 있는 콩, 해바라기, 유채 같은 작물을 ‘오일작물’이라고 하는데, 유채(油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름이 많이 나는 대표적인 오일작물이다.

    유채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인 입춘은 이제 막 이 땅에 봄이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입춘은 음력 정월에 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올해는 설날보다 사흘 빠른 섣달 스무여드레(2월4일)였다. 이날 TV 9시 뉴스를 통해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려온 것은 제주도 유채꽃이었다. 성산일출봉을 먼 배경으로 서귀포 바닷가 다랑이 밭에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난 유채꽃이 화면 가득 비쳐졌다.

    우리나라 최대 유채산지를 제주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제주도가 유채의 메카처럼 돼버렸지만, 실제 국내에서 유채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은 전라북도 부안군이다. 올해 부안군에서는 402 농가가 728ha의 논에 유채를 심었다. 여의도 면적에 버금가는 노란 유전이 부안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안이 유채를 가장 많이 심는 지역이 된 것은 이 지역 농민인 영농법인 주산사랑(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김인택 사무국장의 공이 컸다. 김 국장은 2004년부터 직접 유채농사를 지으며 농민들을 설득해 이 지역 유채 재배면적을 꾸준히 늘렸다. 결국 부안군은 농림부가 주관하는 ‘바이오디젤용 유채사업’의 시범단지로 선정됐다. 논과 밭을 일궈 산유국의 꿈을 이루겠다는 농부 김인택씨, 그는 어떤 사람일까. 부안 들녘의 유채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 과연 유채가 석유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부안군 주산면을 찾아갔다.

    개불알풀꽃은 피었는데…

    꽃으로 달리는 부안 돈계마을의 하루

    부안 돈계마을의 유채가 싹을 틔웠다.

    지난 설 연휴 마지막날인 2월8일. 아침부터 날씨가 쌀쌀했다. 영하 5℃다. 일기예보에서는 눈이 내릴 거라 했는데, 다행히 구름이 엷게 끼었을 뿐 눈은 내리지 않는다. 푸른 유채밭이 보일까 해서 가는 길 내내 차창 밖을 내다봤으나, 간간이 이모작으로 심어놓은 보리가 보일 뿐 유채는 끝내 보이지 않는다. 부안군에 728ha, 주산면만 해도 70ha나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많이 심어놓았다는 유채는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약속장소인 주산면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면사무소 공터에 주차하고 김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10여 분쯤 지났을까. 그가 파란색 1t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2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프로 농사꾼이라고 보기엔 다소 왜소한 체격. 첫인상은 농군이라기보다는 시골마을에 묻혀 사는 서생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작달막한 키에 빛나는 눈매만 보면 영락없는 녹두장군이다.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다짜고짜 유채밭부터 가보자고 했다. 도대체 어디에 유채가 심어져 있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잠시 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4만9500여m2(1만5000평)의 유채재배 시범단지가 조성돼 있다는 주산면 돈계마을 앞 들판. 그런데 여기서도 작년 11월에 파종했다는 유채는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논둑에서 청아한 푸른 바탕에 하얀 빗살무늬가 곱게 수놓인 들꽃이 눈에 띈다. 이 꽃은 이름이 입에 담기가 영 쑥스러워 봄까치꽃이라고도 부르는데 본래 이름은 개불알풀꽃이다.

    엄동설한에 피어난 개불알풀꽃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김인택 사무국장이 옷을 갈아입고 성큼 마른 논으로 내려선다. 뒤따라가 논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린 유채가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냉이처럼 땅바닥에 바싹 엎드려서 자라는데, 잎 빛깔이 TV 화면에 비치던 제주도의 연둣빛 유채와는 딴판이다. 이곳의 유채 잎은 보호색이라도 가진 양 흙빛과 거의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검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같은 월동작물이면서도 추운 겨울을 나는 방법은 보리와 유채가 서로 다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얼마 전 아내가 밥상에 올린 유채나물하고는 다르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아뿔싸! 여태 유채의 새순으로 알고 먹던 ‘하루나’가 유채와 유전자가 전혀 다른 작물인 왜갓(하루나는 일본식 표현)이었단다. 제주도 유채꽃을 떠올리며 먹던 유채나물이 실은 ‘왜갓나물’이었다. 왜갓은 생김새는 엇비슷해도 유채하고는 전혀 다른 작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왜갓이 알싸한 맛이 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독성을 제거한 다음 무쳐먹는 반면에 유채는 아린 맛이 없는 대신 달고 고소해서 보통 데치지 않고 겉절이로 먹는단다.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너무 어려서 좀 안쓰러워 보이죠? 5월이 되면 이 넓은 들녘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 겁니다.”

    왜 하필 유채냐고 물었더니, 유채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단다. 우선 키우기가 쉽다. 유채는 보통 이모작을 하는데,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씨만 뿌려놓으면 웬만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잘 자란다. 이렇게 자란 봄의 어린 새순은 쌈 채소나 새싹 채소로 입을 즐겁게 하고, 꽃이 피면 훌륭한 관광자원인 동시에 양봉농가에는 소중한 밀원을 제공한다. 또 유채기름은 최고급 식용유나 바이오디젤의 원료로 쓰인다. 공기 중의 질소를 땅에 붙잡아두는 녹비식물이어서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도 유채의 미덕. 유채를 심었던 논에는 비료를 따로 뿌릴 필요가 없단다. 이 논에서 생산된 쌀의 맛이 유난히 좋은 것도 그 때문이다. 유채는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도 가축의 사료나 유기농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니 그 은덕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리기 힘들다.

    마을회관을 찾으니 지난해 짠 유채기름으로 온갖 전을 굽고 있다. 물론 지난해 각자의 논밭에서 키운 유채꽃에서 나온 것들이다. 트랜스지방산이 없어 이곳의 유채기름은 최고 인기 상품이다. 거기다 유채 퇴비를 먹고 자란 쌀로 지은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뿌리지 않은 순 유기농 쌀. 한상 가득히 차려진 유채밥과 유채기름 전을 먹고 나니 꿀차가 나온다. 이곳의 유채꽃에서 비롯된 꿀차를 마시니 전날의 취기가 싹 사라지는 듯하다. “유채가 최고여, 최고”라는 한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곳은 유채가 아니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적어도 부안에선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오디젤이 뜬다!

    더구나 최근에는 유가가 급등하면서 유채유를 비롯한 바이오연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제 원유가는 2000년대 초 배럴당 20달러이던 것이 7년여 만에 무려 5배가 올라 100달러를 돌파한 상황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고갈돼 가는 석유의 대체 에너지원으로 바이오에너지에 주목하고, 오일작물의 재배 면적을 앞 다투어 늘리는 실정이다.

    꽃으로 달리는 부안 돈계마을의 하루

    유채의 어린 새순. 쌈이나 겉절이로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바이오연료는 크게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로 나뉜다. 바이오에탄올은 주로 밀, 사탕수수, 옥수수, 감자 등 전분이나 당분을 알코올 발효시켜 만드는데, 휘발유와 에탄올의 대체 연료로 쓰인다. 쉽게 말해서 술로 빚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바이오에탄올의 원료가 된다는 말이다.

    반면에 바이오디젤은 동·식물성 기름을 원료로 하고, 디젤의 대체연료로 사용된다. 바이오디젤 원료는 유채유가 8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다음은 해바라기씨유(13%)다. 콩기름과 팜유는 각각 2%와 1%로 미미한 수준. 유채유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유럽에서는 가장 선호되는 원료다. 포화지방산이 적고 액화점이 낮아서 엔진이 막힐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휘발유 엔진의 비중이 디젤 엔진에 비해 2배가량 높은 미국은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디젤 엔진 비중이 2배 정도 높은 유럽에서는 바이오디젤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부안의 농부들이 바이오에탄올보다 바이오디젤 생산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도 우리의 사정이 미국보다는 유럽과 더 비슷해서다.

    현재 세계 각국은 면세혜택과 사용 의무화 등 각종 제도를 통해 바이오연료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바이오디젤이 석유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들고 오염 또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청정연료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다. 이미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00여 개 도시에서는 버스나 관용차에 바이오디젤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특히 유럽연합은 현재 경유 사용량의 1%가량인 바이오디젤 사용량을 2010년까지 12%까지 늘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김인택 국장은 이 지역에서 ‘유채 전도사’로 불린다. 주변 농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유채 재배를 권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으로 부족하다 싶을 때는 멀리 목포에서 유채 전문가인 농촌진흥청 목포시험소 장영석 박사를 초빙해 강연을 들려주기도 했다. 김 국장이 이처럼 유채에 빠져 있는 것은 그가 꿈꾸는 농촌의 미래가 바로 자원 순환형 농촌 공동체이기 때문. 자원 순환형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립이 핵심인데, 유채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게 김 국장의 신념이다. 그는 유채 전도사답게 자동차는 물론이고 경운기, 트랙터와 난방 보일러까지 유채꽃 기름으로 만든 바이오디젤을 연료로 사용한다.

    “배기통에 코를 대보세요. 고소한 냄새가 날 겁니다.”

    거꾸로 가는 에너지 정책

    그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14년이나 된 1994년식 1t 트럭이다. 3년째 경유 대신 유채 바이오디젤을 넣고 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단다. 오히려 엔진 소음이 확 줄어들었고, 매연은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단다. 리터당 11km이던 연비가 15km로 개선된 것은 바이오디젤의 또 다른 부수효과.

    이렇게 바이오디젤의 효과를 톡톡히 본 그는 트럭 짐칸에 유채기름으로 만든 바이오디젤 통을 여러 개 싣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의 경운기나 트럭에 유채 기름을 넣어주기 위해서다. 특히 폐쇄된 공간인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해보면 바이오디젤의 매연 감소 효과를 실감할 수 있단다. 그러다 보니 엔진 고장을 일으킬까봐 께름칙해 하던 주민들이 이제 스스로 찾아올 정도다.

    지난해 6월 이곳 돈계마을 들녘에서 열린 제1회 유채축제에서는 주산초등학교 통학버스 2대와 급식차 1대 등 총 3대의 학교 차량에 유채꽃 기름 20%가 들어가는 BD20을 1년간 무상으로 공급하는 협약도 체결했다. 그런데 이 협약은 보름도 가지 못했다. 다음달인 7월에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자가 주유소 및 자가정비시설을 갖춘 차량에 한해서만 바이오디젤의 주유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산자부에서 이처럼 거꾸로 가는 에너지 정책을 내놓은 반면에 농림부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바이오디젤용 유채생산 시범단지 사업이라는 제법 기특한 정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전국 최대 유채 재배 단지인 부안은 농림부가 선정한 시범 단지 3곳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의 시행으로 부안은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3년간 중앙정부로부터 총 25억5000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또한 이 지역 500ha에서 생산된 유채는 농협 및 바이오디젤업체 간의 생산·공급계약에 따라 전량 수매되어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로써 부안군은 안정적 농가 소득을 보장하는 든든한 대체작목 하나를 갖게 됐고, 경관농업으로 기대됨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특구’로서 지역브랜드 가치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꽃으로 달리는 부안 돈계마을의 하루

    유채기름을 지게차에 넣고 있는 영농법인 주산사랑 김상음 대표. 배기통에선 매연 대신 고소한 냄새가 난다.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죠. 그러나 이 사업을 미래 에너지 정책으로 생각한다면 현재 연간 26억원인 사업비의 규모도 늘리고 주무부서도 농림부가 아닌 산자부로 전환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이제 농부들도 힘없고 돈 없는 농림부에 찾아가 지원을 애걸복걸할 게 아니라, 당당히 에너지 생산자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다.

    정부는 해외 유전 개발에 나서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하면서 채굴에 실패할 경우 원금을 전액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성공불 융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정부가 석유사업기금을 통해 1984년부터 지금까지 ‘성공불 융자’로 유전 개발 사업에 지원한 금액은 총 12억7526만달러(약 1조2000억원). 그런데 과연 이 중 상환된 금액은 얼마나 될까. 대출금액의 10분의 1 수준인 1억3424만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 국장은 이 중 일부라도 유채를 비롯한 바이오작물 개발에 투자한다면 자원 집중에 따른 위험도 분산할 수 있고, 안정적인 에너지원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부 김 국장이 ‘유채 전도사’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2003년 이른바 ‘부안사태’를 겪으면서부터. 투쟁 과정에서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논과 밭에서 생산 가능한 ‘환경석유’ 유채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석유와 원자력에 맞설 무기로 유채꽃을 선택했다.

    유채꽃으로 석유에 맞서다

    사실 부안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부안이라는 지명은 일반인에게 생소했다. 변산 해수욕장이나 격포 채석강은 알아도 정작 그곳이 부안군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 유명 관광지는 강릉 경포대, 정읍 내장산, 부여 낙화암 하는 식으로 명소 앞에 그 지역의 행정 지명을 자연스럽게 붙여 부르는 법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부안에서는 그 법칙이 예외였다.

    그런데 2003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 반대운동을 겪고 나서는 웬만한 초등학생도 부안이라는 지명을 알 정도가 됐다. 자기 지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홍보전을 펼치는 지방자치 시대에 대국민 인지도가 높아져서 나쁠 리 없다. 그러나 부안 사람들은 이를 반기지 않는다. 당시 언론이 방폐장 유치 반대투쟁을 지역 이기주의로 비난하고, 한편으로는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찬 어리석은 행위로 보도하면서 부안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부안 주민들의 반대투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는 이 사건이 ‘부안사태’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태’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 되어가는 형편’ 또는 ‘벌어진 일의 상태’지만, 톈안먼사태, 체첸사태, 광주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은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진 사건’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다. 특정 사건에 사태라는 말이 붙기는 광주사태(후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로 정착했지만)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부안사태’가 주민들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었다. 시위대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에 의해 유혈사태까지 빚어져 이 지역 주민 45명이 구속되고 121명이 불구속기소됐으며 경찰과 주민 500여 명이 다쳤다. 정부 쪽에서도 당시 김두관 행자부 장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 부안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래, 우리도 전기를 쓴다”

    ‘부안사태’는 인구 6만의 조용했던 지방도시 부안의 환경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가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환경·에너지 운동 등 소도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시민운동도 활발해졌다. 시민운동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부안시민발전소(소장 이현민)와 부안유채네트워크가 주도하는 대안에너지 운동.

    “그러는 당신네들은 전기 안 쓰냐?”

    방폐장 반대 투쟁 때 반대 측에서 던진 질문이다.

    “당신들이 쓰는 전기의 40% 이상이 원자력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쓰레기는 어디엔가는 처리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무조건 핵폐기장은 안 된다고만 하면 어쩌자는 건가.”

    꽃으로 달리는 부안 돈계마을의 하루

    유채기름으로 달리는 경운기를 타고 즐거워하는 돈계마을 아이들.

    맞는 말이었다. ‘부안사태’는 끝났지만, 부안 사람들은 투쟁과정 내내 가슴을 짓누르던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대안 에너지 운동을 시작했다. “그래, 우리도 전기를 쓴다. 우리의 주장은 전기를 쓰더라도 되도록이면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이용하지 않는 전기를 많이 만들어 쓰자는 말이다. 우리가 먼저 해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직접 발전소를 건설해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자동차 연료도 만들어 쓰자는, 어찌 보면 무모하고 황당한 일이 부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시작한 일이 유채였고, 두 번째가 햇빛이었다. 현재 부안에 설치된 상업용 햇빛발전소는 모두 4기. 부안성당, 원불교 부안교당, 하서면 생태학교 생명평화마중물, 변산공동체에 설치되어 있다. 이들 햇빛발전소에서는 우리나라 4인 가구 한 달 평균 전력 사용량과 비슷한 300㎾h가량의 전기를 생산해 한 달에 20만원씩 받고 한전에 판매하고 있다.

    새만금에 ‘살’ 뜯긴 주산

    방폐장 문제가 일단락되자 이번엔 새만금 문제가 불거졌다. 새만금은 군산에서 부안까지 총 33km의 바다를 막아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되는 4만100ha의 토지를 조성하는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 부안사람들은 새만금이라는 ‘괴물’이 부안의 자연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두려워하고 있다.

    부안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 노인에게 새만금 공사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방폐장 때나 마찬가지지 뭐. 괴기 잡넌 사람덜은 괴기가 안 잽힌다고 허고, 조개 줍는 아짐덜은 씨가 말라버렸다고 헝게…. 글씨 어떻게 변헐지 몰러도 솔찬히 껄쩍찌근하지라” 하고 대답한다.

    계화도 갯벌에서 나는 부안 특산품 백합(이곳 사람들은 생합이라고 부른다)이 아직 그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다지만 채취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어업에 종사하던 어민들은 정부 보상금을 받고 아예 고향을 등진 경우도 많다. 아직 그나마 출어를 하는 어민들도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로는 그 옛날 ‘물 반, 고기 반’ 하던 칠산바다에서 텅 빈 그물을 건져 올리는 횟수가 늘었단다.

    주산면은 내륙에 있어서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주산도 새만금의 직격탄을 맞았다. 김 국장이 토석 채취가 한창 진행 중인 산 하나를 가리킨다.

    “저 산이 배주(舟)자, 메산(山)자 주산입니다. 우리말로는 배메산이라고 하는데 면 이름이 저 산에서 온 거지요. 그런데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파헤쳐버렸어요.”

    그러고 보니 해발 231m 주산의 허리께가 뼈가 드러난 것처럼 흉측하게 파여 있다. 새만금 방조제에 살을 뜯기고 있는 셈이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에 들어간 돌은 지금까지 무려 160만㎥.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토석이 들어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토석을 채취하기 위해 방조제와 가까운 부안군의 야산에 석산개발 허가가 무더기로 나 마구잡이로 파헤쳐지는 중이다. 돌방무덤과 소산산성 등 백제시대 문화유적이 산재하고, 1965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볍씨무늬 토기 조각이 발견됐던 배메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자연의 반격

    현재 배메산 석산 개발업체의 허가 물량만 해도 약 47만㎥다. 방조제를 다 막았다고는 하나 내부 개발을 위한 138km의 방수제를 쌓으려면 또 그만한 토석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새만금 공사가 완전히 끝난 뒤엔 이 산의 형체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주산면에서 취재를 마치고 부안 읍내에 들렀더니 재래시장에서 만난 이 지역 주민 김상훈(43)씨가 뜻밖의 말을 했다. 매년 이맘때면 새만금 갯벌에 쇠기러기, 가창오리, 청둥오리 등 수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오는데, 올해는 이 철새들이 갯벌로 가지 않고 인근 논으로 날아들어 보리와 유채 같은 겨울 작물을 크게 해치고 있단다.

    철새 피해가 심하다는 계화도 간척지를 서둘러 찾았다. 직접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철새가 훑고 지나간 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다. 계화면에 따르면 철새로 인한 피해 면적은 1월말 현재 80ha. 계화면 총 재배면적의 10%가량이 철새의 먹이가 돼버린 것이다. 잎의 윗부분만 뜯긴 보리는 생육기에 적절히 거름을 해주면 회복 가능성이 있지만, 한 번 싹을 뜯긴 유채는 사실상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채밭의 피해 면적이 계화도 일부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작년 6월 영국왕립조류보호학회가 예견한 것이었다. 학회는 33km의 방조제가 완전히 막히면서 새만금의 드넓은 습지가 마른 불모의 땅으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조개 밭과 식물이 말라들어가 수만 마리의 철새가 먹이 부족으로 굶주리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오만한 인간에게 가하는 자연의 반격인 셈이다. 그런데 왜 그 대상이 농민이어야 하는가. 부안 사람들은 그저 평생 제 자리에서 논농사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왔을 뿐, 핵폐기장도 새만금도 그들의 뜻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떠나오던 날 아침 부안에는 눈이 소복이 예쁘게 내렸다. 서설이다. “풍년 들겠네요”라고 했더니, 옆자리 ‘아짐’이 “올해는 눈이 징글징글 왔응께 풍년도 징글징글 들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 신동엽 ‘봄은’에서 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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