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지속가능경영 평가 기관 BITC 웹사이트.
문제는 이번 설문에 응답한 기업뿐 아니라 기업 대부분이 CSR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행위’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CSR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차원에서 새로운 시장의 기회나 마케팅 전략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무분별한 봉사활동보다는 비용절감을 위해 사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자사가 강점을 갖고 있고 기업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또 CSR 활동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성과에 대한 피드백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해외에서의 CSR 활동이 중요해진 것은 전세계적 기업 환경변화 탓이다. 지난해 11월1일 CSR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26000이 발표된 뒤 이것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됐고, 서울 ‘G20 비즈니스서밋’에서도 CSR이 의제로 선정돼 협의되는 등 기업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하버드대 학자들인 포터와 크레이머는 “CSR은 하나의 새로운 기회이자, 창의적 경쟁우위”라고 정의한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원한다면 이젠 CSR을 전략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왜 CSR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 블로필드와 머레이는 2008년 저서 ‘기업 책임’에서 기업이 CSR 문제를 비즈니스의 핵심 가치로 둘 때 경제적 성장에는 부담이 된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기업이 “환경 친화적인 경영을 할수록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고 토로한다.
물은 마시고 싶지만 막상 물가에 이르러선 물을 두려워하는 염소처럼 기업들은 CSR이라는 샘물 앞에서 겁을 내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분위기를 이끌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나서거나, 언론의 견제와 전문 기관의 평가, 혹은 KOTRA가 지적한 것처럼 효율성 제고를 위한 피드백 과정이 필요하다.
독려하고 제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데 중요한 한 방법이 지속가능경영 평가지수(index)나 랭킹 시스템이다. 국내에 잘 알려진 다우존스지속가능지수(DJSI)나 영국의 BITC, FTSE4Good, Global 100, 도미니사회지수(Domini400) 혹은 국내 한국거래소의 SRI지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지속가능경영 평가지수는 기업들에 벤치마킹 기회를 제공하고, 자발적인 활동이나 정보공개 등을 독려한다. 지속가능 인덱스가 요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기업들은 리스크를 확인할 수 있고, 경영의 투명성과 적극적 책임의식을 높일 수 있다.
영국 찰스 황태자가 회장으로 있는 비영리단체 ‘비즈니스 인 더 커뮤니티(Business in the Community)가 만든 BITC 지수는 커뮤니티, 환경, 시장, 직장 4개 영역으로 나눠 기업의 사회책임 전략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이 인덱스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아는 기업들이 있다.
물론 기업 평가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덱스가 오히려 CSR과 관련한 기업 내부의 창의적 사고를 막는 수가 있고, 평가를 위해 기업이 스스로 내놓는 정보가 과연 신뢰할 만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평가지수마다 다르겠지만 적절하지 않은 기준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고, 보고서 작성 때문에 담당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평가결과를 통해 동종업계 간 비교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평가에서 꼭 1위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평가에 참가하면서 기업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BITC 기업책임 프로젝트 매니저인 드와인 버라카는 “한국 기업들이 가치를 창조해내고 책임 있는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방법으로 지속가능경영 평가지수를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책임 있는 비즈니스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