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환자 검체 채취를 하러 나서는 모습. 사진 오른쪽이 필자 이진한 기자다.
방역당국은 이때 대한의사협회, 경북대병원, 대한감염학회 등 의료계에서 제안한 생활치료센터 개념을 받아들였다. 2월 말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대구를 찾아 의료진과 이에 관한 대책회의를 했다. 2월 29일에는 10개 국립대 병원장이 머리를 맞댔다. 이후 방역당국 대처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3월 2일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3월 4일엔 경북 문경 서울대병원인재원이 각각 생활치료센터로 탈바꿈했다.
당초 대구시는 체육관이나 운동장, 대규모 캠핑카 시설 등을 병실 대안으로 검토했다. 만약 이 아이디어대로 코로나19 환자를 체육관이나 운동장 등에 집단 수용했다면 열악한 상황 탓에 증상이 폐렴으로 악화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사망자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많은 이의 노력과 고민으로 시작된 생활치료센터는 이후 계속 늘어 현재 전국 18개소에서 운영되고 있다. 입소 가능 정원은 전체 4000여 명에 달한다. 환자들은 이곳에 대개 2주 동안 머문다. 발병 후 자가격리 기간을 포함해 2주가 지난 뒤엔 24시간 간격으로 2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아 결과가 모두 음성으로 나오면 퇴소한다. 필자는 3월 12~14일 3일 동안 경북 경주에 있는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농협경주교육원)에서 의료봉사를 진행했다.
또 하나의 전쟁터
육체 및 정신적 피로로 힘겨워하는 자원봉사 간호사를 격려하는 수간호사의 모습.
3월 13일 오전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는 매우 소란했다. 퇴소를 앞둔 한 정신지체 장애인 검체 채취를 거부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한동안 어르고 달랬지만 계속 도망가듯 내뺐다. 그러길 20분, 방호복이 그때만큼 얄미울 때가 없었다. 첫째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서다. 둘째 혹시라도 격렬하게 움직이다 방호복이 찢어지면 바로 밀접 접촉자가 될 순간이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결국 시설에 같이 입소한 이 환자의 나이든 부모가 아들 양팔을 붙잡아준 덕에 검체를 채취할 수 있었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 아들은 자신도 코로나19 환자면서 자식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는 부모의 마음을 알까. 겨우 면봉을 환자 코와 입안에 넣어 검체를 확보한 뒤 아이 달래듯 한 마디 했다. “그래, 이젠 너도 지긋지긋한 격리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 축하한다.”
다음날 아침, 이 가족의 검사 결과를 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정신장애인 아들은 양성,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음성이었다. 부모는 퇴소가 가능하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힘드셨나보다. 결국 아들을 챙기고자 아버지만 남기로 했다.
퇴소가 결정됐지만 나가길 거부한 할머니도 있었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계속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알고 보니 신천지 교인인데, 퇴소 뒤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이 여성은 의료진의 설득 끝에 간신히 생활치료센터를 떠났다. 그분에겐 정신과 상담과 복지 상담 등이 필요했을 터인데 그런 것까지 지원할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앞으로 생활치료센터에도 심리상담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가 일한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에는 간호사 10명, 간호조무사 9명, 공중보건의 6명과 고려대 의료원에서 파견된 의료진 2명 등 20여명이 있었다. 이들이 190여명의 경증 환자를 돌보려니 일손이 모자라 의료진은 모두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이외에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국방부, 119소방본부 등에서 파견 온 공무원도 60여명 있었다.
생활치료센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3월 초엔 모든 게 혼란, 혼동 그 자체였다. 급하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파견 공무원도 뭘 어떻게 할지 몰랐고 그저 몰려드는 환자를 입소시키기에 바빴다. 가끔은 현재 경증이지만 중증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는 환자까지 생활치료센터로 들어왔다. 환자를 꼼꼼하게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파견 온 의료진이 중심이 돼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은 3월 5일부터다. 이런 혼란은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생긴 생활치료센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당시 센터장을 맡았던 경북대병원 이재태 교수는 “센터 운영의 중심이 의료진인지 보건복지부인지 행정안전부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초기 세팅이 잘 안 돼 있다 보니 갑자기 파견된 공중보건의도 어떤 일을 해야 될지 몰라 혼란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병원 아닌 환자 관리 공간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 봉사자들의 식사 시간. 이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실상 생활치료센터는 병원과 전혀 다른 시설이다. 대부분 무증상 또는 경증 환자가 들어오고, 의료진도 치료보다는 환자 상태 관찰 및 관리에 초점을 맞춰 움직인다. 코로나19 진단검사를 거쳐 환자를 사회로 돌려보내는 게 목적이다.
병원이 아니다 보니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도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열진통제, 두통약, 감기약, 소화제 정도가 구비돼 있다. 환자가 평소 복용하던 약을 처방해주기도 힘들었다. 가령 항생제, 고혈압치료약, 당뇨병치료약 등이 필요하면 현장에 있는 공보의가 수기로 처방전을 쓴 뒤 약국에 팩스로 보내거나 환자 가족에게 전달해 대신 약을 받아오도록 했다. 약 배달 서비스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다.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에 비치된 의약품 목록.
원격진료를 통해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고, 약을 배달 서비스로 받을 수 있다면 환자 불편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생활치료센터는 법적으로 병원이 아니라 원격진료 자체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이 시설을 의료기관으로 등록했다면 쉽게 해결됐을 일인데, 행정적 문제가 규제 전봇대로 작용했다.
생활치료센터 내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상당수 환자는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19 진단을 받고 수용소 같은 곳에서 생활하게 된 데 대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했다. 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게 매우 중요했다.
생활치료센터 오픈 초기엔 심리치료사가 자원봉사를 나와 환자를 전화로 상담하고, 매일 아침이면 환자방 스피커를 통해 방송도 들려줬다. 하지만 그가 8일 간 활동 후 자원봉사를 끝내자 그 뒤를 이어나갈 사람이 없었다. 이후 환자 상담은 간호사들이 떠맡았다. 환자들이 간호사실에 걸어오는 전화가 하루에도 200통이 넘었다. 주로 불편을 토로하거나 언제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 내용이었다. “밥과 국이 식어서 먹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고, “남들은 다 퇴원하는데 왜 나만 계속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느냐”며 항의하는 환자도 있었다.
이런 전화를 하루 종일 받아야 하는 의료진의 정신적 피로가 심각했다. 기자와 함께 자원봉사를 한 한 간호사는 “환자들 불만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원미숙 수간호사가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며 “많이 힘들지? 조금만 참자. 환자들도 오죽하면 이러겠니? 기운내자”고 말했다. 이경남 수간호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면 좀 괜찮을 텐데 대부분 전화로 이야기하다보니 더욱 힘든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환자들이 ‘의료진 너무 고맙습니다. 파이팅!’을 쪽지로 적어 보여주거나 퇴소 뒤 전화해 ‘까다롭게 굴어 미안하다. 고생하셨다’고 할 때 큰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영미 간호사는 “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나도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확진자가 너무 평범해서 놀랬다”고 말했다. 또 “레벨D 방호복을 입고 2시간 이상 있으면 이마랑 귀가 아팠다. 땀이 많이 나고 답답했으며,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의료진과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양보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 의료진이 스마트 환자관리 시스템을 통해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3월 13일 오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65세 할머니가 엑스레이 검사에서 폐렴 소견을 보이고 체온도 37.5도로 측정됐다. 의료진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119 소방본부에까지 비상이 걸렸다. 공중보건의와 상의한 끝에 그 환자를 포항의료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적절히 조치할 인력 및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병원에 비해 오히려 뛰어난 부분도 있었다. 입소자를 일일이 점검할 수 있게 돼 있는 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그것이다.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환자들은 휴대폰에 이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매일 기침, 근육통, 인후통 등 본인이 느끼는 증상을 입력했다. 본부에서는 그 내용을 확인해 위험을 사전에 감지했다. 의료진과 환자 간 대면 접촉을 최소화해 모두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치다.
이 시스템을 만든 손장욱 고려대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해 환자 체온, 혈압, 호흡기증상 등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환자들이 고려대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진과 심리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핫라인을 구축하고, 보건복지부의 협조를 받아 동국대경주병원과도 시스템을 연결해뒀다”고 소개했다.
생활치료센터 각 방에는 입소자가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면 그 내용이 개인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에 바로 입력되도록 한 장비가 비치됐다. 그런데 일부 환자가 퇴소하면서 이들 기기를 가져가 문제가 됐다. 한 번은 22명이 퇴소한 날 기기 19개가 없어지기도 했다. 3월 14일 아침 회의시간에 이 문제가 안건으로 올랐다. 의료기기를 반납하지 않으면 퇴소를 못 하게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국방부에서 파견한 군인들이 퇴소자들에게 직접 의료기기를 수거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따뜻한 응원과 기부의 힘
대구경북2생활치료센터 봉사자들이 환자와 의료진을 향한 격려 메시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내 소상공인도 연일 각종 물품을 지원했다.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청년농협인연합회 등 각종 단체도 환자를 위한 생활물품과 소모품은 물론 생활치료센터 내 의료진을 위한 간식 등을 전달했다. 또 환자와 의료진 모두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의 영웅입니다” 같은 응원 문구에 큰 힘을 얻었다.
현재 생활치료센터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 의료진은 “각계에서 응원과 기부, 봉사 문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감사할 뿐이다. 모두 서로 격려하고 마음을 모은다면 더 큰 희망이 돼 코로나19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힘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