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직원 16명 중 15명 내보내”
“매출 0원인데 임대료 인하가 무슨 소용”
“46년 가업, ‘점포정리’ 문구 써 붙이는데 눈물 나”
“건물주가 나가라 해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
“권리금 없는 건물인데도 거래가 없어”
3월 31일 중구 명동 거리가 텅 비어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명동에서 찜닭 식당을 운영하는 강모(63) 씨는 체념한 듯 말했다. 강씨만의 사정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한파는 서울의 도심 상권을 송두리째 얼어붙게 만들었다.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며 활기로 가득했던 거리는 옛말.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신동아’는 3월 23, 26, 27일과 4월 7일 서울 도심 상권 4곳을 찾아 자영업자들의 애환을 들었다.
명동 거리 “이곳은 관광객 없으면 망해”
3월 23일 오후 12시 30분 명동 거리. 식사하는 사람들로 한창 붐빌 시간이지만 식당엔 손님이 드물었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화장품가게 골목도 생기를 잃었다. 할 일이 없어진 가게 직원들은 멋쩍은 듯 제자리를 맴돌았다.6개의 층에 달하는 강씨의 찜닭 식당에도 손님 한 명 찾을 수 없었다. 강씨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최저임금 인상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018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6470원에서 7530원, 2019년에는 8350원으로 급격히 오른 후폭풍으로 가게 매출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최저임금이 오르니 인건비가 급등했고 식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도 인건비가 올랐다며 납품가를 올렸다. 도저히 마진이 남지 않아 음식 값을 올렸는데, 가격을 올리니 손님 수가 급감해 하루 600만~1000만 원에 달하던 매출이 300만~400만 원으로 반 토막 났다.”
강씨는 매출 손실을 여행사와의 제휴를 통해 극복해 왔다. 동남아시아 관광객 방문 코스 중 한 곳으로 가게가 선정되게끔 노력했다. 사람 수만큼 정해진 돈(1인당 7000원)을 받는 일명 ‘개수치기’ 방식으로 수입을 올렸지만 코로나19로 인해 8월까지 꽉 차 있던 예약 리스트는 백지가 됐다. 그는 “명동은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죄다 망하는 상권인데, 코로나19로 관광객 발길이 끊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씨는 최근 가게의 하루 매출이 약 20만 원이라고 했다. 월 5000만 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내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액수다. 2월 초 그는 가게 직원 16명 중 주방 직원 1명만 남기고 모두 내보냈다. 지금은 강씨의 부인과 아들이 일손을 돕는다. 그는 가게 문을 닫고 싶지만 계약 기간이 남아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월세를 못 내 보증금에서 월세가 ‘까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2월 27일 정부는 임대료를 인하하는 건물주에게 인하분의 50%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씨는 “임대료 내린다고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고 장사가 안 되면 임대료가 반값이든 두 배든 어차피 못 낸다”고 답답해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지하상가에서 한류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0) 씨는 “관광객들의 캐리어 끄는 소리로 요란했었는데, 지금은 그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를 찾는 손님의 대다수가 외국인이기에 코로나19 사태는 직격탄이 됐다. 그는 “하루에 손님이 1명도 안 와서 매출이 0원인 날이 많다. 매출이 없는데 임대료 깎인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2018년까지는 하루 매출이 70만~80만 원에 달했다. 수백 명의 손님이 가게를 방문했고 50~60명이 상품을 구입했다. 월 매출 2400만 원에서 판매하는 캐릭터 상품의 원가 1200만 원, 인건비 180만~200만 원, 임차료 및 관리비 100만 원을 제한 나머지가 김씨의 몫이었다. 지금은 적자를 보는 상황이다.
“2019년 봄부터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느꼈다. 평일 매출이 20만~30만 원대로 떨어지고 한 달 매출이 100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고객의 90% 이상이 관광객이라 지금은 아예 매출이 ‘제로’나 마찬가지다.”
영등포 상권 “관리비라도 내려고 문 닫지는 않아”
3월 26일 서울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인근 먹자골목이 한산하다. [문영훈 기자]
3월 26일 오후 3시. 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장은 조용했다. 상인들은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40년 동안 영등포시장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조금자(79) 씨는 지인과 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씨는 “하루에 손님이 하나라도 오면 다행”이라며 “요즘 전통시장이 아무리 인기가 없다지만 단골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근래에는 아예 손님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영등포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70대 김씨 역시 “관리비라도 내려고 문을 닫지는 않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롯데백화점 건너 먹자골목은 근처 직장인뿐 아니라 영등포 근처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만남의 장소로 꼽힌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군데군데 문 열지 않은 곳이 눈에 띄었다. 손님이 아예 없는 식당도 많았고, 일부 식당에서는 많아야 2~3팀이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인근 일식당 주방장 A씨는 “최근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식당이 많아졌다”며 “하루 최다 100명 넘는 손님이 찾아오곤 했는데 요즘엔 20명 정도 방문하는 터라 직원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24년째 먹자골목에서 전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60대 B씨는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데 요새는 점점 빚만 쌓여간다. 오래 일한 직원들 생계를 생각해 시간을 줄이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인사동 “46년 가업, ‘점포정리’ ”
종로는 서울시의 대표 번화가 중 하나이자 상업밀집지구다.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는 도로라고 해 운종가(雲從街)라고 했을 정도. 종로 상권 중에서도 주축인 인사동은 외국인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해 왔다. 수많은 연인과 관광객으로 붐비던 곳이지만 3월 27일 방문했을 때는 적막하기 그지없었다.“46년 된 가업이다. ‘점포정리’ 문구를 써 붙여야 하는데, 차마 낮에는 붙일 수가 없어 인적 드문 새벽에 붙였다. 눈물이 나더라.”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서 22년째 도자기 가게를 운영해 온 김모(65) 씨의 말에서 슬픔이 배어나왔다. 문 닫게 된 가게는 2대를 거쳐 46년간 인사동 거리를 지켜왔다. 인사동의 도자기 가게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김씨는 4~5년 전부터 경기가 나빠져 지속적으로 적자를 봐왔다고 말했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는 고미술품 상점, 전통 찻집, 전통 공예품 상점이 주를 이룬다. 주요 고객은 외국인 관광객인데,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이들의 발길이 끊겼다. 김씨가 말을 이었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매출이 1500만 원은 돼야 하는데, 지난달 매출이 120만 원에 그쳤다. 이번 달은 더 적을 것 같고 앞으로 나아질 희망도 보이지 않아 문을 닫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2005년 300만 원이던 김씨 가게 월 임대료는 현재 650만 원이다. 그는 “이제 매출로 임대료도 내지 못하게 돼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마이너스 통장도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보려 했는데 심사가 너무 길고 까다로워 포기하고 가게를 접게 됐다”고 덧붙였다.
변모(56) 씨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변씨는 인사동 거리에서 대를 이어 35년간 공예품 가게를 운영해 왔다.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시간이 60년에 달한다. “지금만큼 상황이 나빴던 적은 없다. 영하 17~20도 날씨에도 장사가 됐었는데…. 지금은 당장에라도 문 닫고 싶지만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버티고만 있는 것이다.”
그는 카드 리더기의 집계 내역을 보여줬다. 문 연 지 반나절이 지났지만 ‘집계 내역 없음’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어제 매출은 1만2000원이고 토요일 매출은 5만 원쯤 됐다. 하루 1000원도 못 파는 날이 많다.”
변씨는 월 매출이 6000만 원 이상은 돼야 가게 유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임차료가 월 1000만 원에 달하고 물건을 떼 와서 판매하는 구조라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60%로 높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변씨는 임차료를 낼 엄두조차 못 내는 상황이다. 그의 가게는 2월과 3월 각각 3000만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서울 강남권역 최대 상권이라 일컬어지는 서울지하철 2호선·신분당선 강남역 상권도 코로나19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강남역 상권은 평균 승하차 인원만 20만 명(서울교통공사 자료, 2019년 기준)이 넘는 강남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번화가다. 강남역 10번·11번 출구부터 신논현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강남대로를 필두로 주변 골목에 수많은 상점이 입점, 손님으로 붐비던 곳이다.
강남역, “상가 거래량 제로”
4월 7일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먹자골목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현준 기자]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조모 씨는 “원래 주방 5명, 홀 3명, 아르바이트생 3명 등 직원 11명이 일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주방 담당 3명의 직원을 제외하고 모두 내보낸 뒤 내가 홀 업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월 18일 코로나19 31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사태가 심각해져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다. 전 직원의 근무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며 버텼지만 3월에도 회복될 기미가 안 보여 결국 직원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씨가 보여준 매출표를 확인해 보니 월 1억 원을 넘기던 매출은 3월 3000만 원대로 곤두박질쳐 있었다.
조씨가 밝힌 월 손익분기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기준 월 7000만 원. 월 고정비용으로 임차료 1400만 원, 인건비 1800만 원, 기타 관리비 800만 원 등 4000만 원이 소요된다. 마진율은 10% 정도로 손익분기점 이후 매출의 10%가 조씨의 수입이 되는 구조지만 2월은 ‘노(No) 마진’, 3월은 3000만 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고 토로했다.
그는 “2018년 이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현재 인건비가 2018년 대비 1.5배 뛰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2000만 원의 임차료가 밀려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지 못할 것 같으면 나가라고 전해 왔다”고 했다. 조씨는 “나가려고 해도 인테리어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등 가게를 정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5000만 원이다. 그런 목돈이 어디 있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게 문만 열어놓고 있는 처지”라며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역 인근의 공인중개사 60대 박모 씨는 “가게를 내놓으려는 문의 전화가 수도 없이 많지만 어차피 들어올 사람도 없는 형편이라 정작 내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게를 내놓지도 못하고 직원들만 줄이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권리금이 없는 건물이 매물로 나오면 들어오려는 사람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거래가 전혀 없다. 우리만 해도 작년엔 8억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올해는 지금까지 거래량이 ‘제로’ ”라고 했다.
코로나 사라져도… “올해는 끝”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먹자골목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모 씨가 보여준 매출표. 2월부터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이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