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환경부 블랙리스트 피해자 4인 “우리는 채용 비리의 희생양”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2021-06-2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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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부 블랙리스트 1심 판결이 말한 진실

    • 강만옥 전 환경공단 본부장 “사퇴 압박한 임직원공무원도 단죄해야”

    • 김현민 전 환경공단 상임감사 “논공행상도 적당히 해야지…”

    • 류재용 경남대 교수 “공정 내세웠는데 내정자 있으리라곤…”

    • 주진우 전 검사 “평생 검사 꿈꿨는데 좌천 인사에 사표”

    2018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용남 자유한국당 전 의원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칸에 있는 ‘사퇴 반발’ 인사가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감사와 강만옥 전 한국환경공단 경영본부장이다. [뉴시스]

    2018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용남 자유한국당 전 의원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칸에 있는 ‘사퇴 반발’ 인사가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감사와 강만옥 전 한국환경공단 경영본부장이다. [뉴시스]

    지난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1심 재판(2019고합350)이 열렸다. 형사25-1부(김선희, 임정엽, 권성수)는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구속),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은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환경부 공무원에게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도록 지시했다”고 명시했다. 또한 공모직 채용 과정에서 청와대 추천 후보자가 임명되도록 개입한 혐의 또한 인정했다. 사표를 종용받아 제출한 피해자만 13명, 내정자가 있지만 정당한 채용이라 믿고 공개 채용에 지원해 탈락한 피해자가 130명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진 지 2년 6개월이 다 돼가는 시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기사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사퇴를 종용받아 직을 내려놓은 한국환경공단 임원이다. 한 사람은 내정자가 있던 공채에 지원해 14개월 뒤 탈락 통보를 받은 학자다. 마지막 한 사람은 블랙리스트를 수사하다 좌천성 발령을 받고 법복을 벗은 법조인이다.

    표적 감사, 공개적 망신 주기 통한 사퇴 압박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최초 공개된 2018년 12월 26일, 김용남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이라 적힌 문건을 들고나왔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소속으로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으로부터 자료를 입수했다. 문건 상단에는 한국환경공단 소속 상임감사와 경영기획본부장이 사표 제출에 반발했다고 적혀 있다. 두 사람이 김현민 전 상임감사와 강만옥 전 경영기획본부장이다.

    6월 9일 전화로 인터뷰한 강 전 본부장은 현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명예연구위원으로 은퇴를 1년 앞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명예연구위원은 주로 자문 역할을 맡지만 강 전 본부장은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며 “외로운 섬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 전 본부장은 2017년 7월 김 전 장관이 부임한 다음 달에 인사 담당 주무관이 전화를 걸어 “KEI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18년 1월에는 전병성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이 강 전 본부장을 불러 직접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전 전 이사장도 강 본부장과 같은 처지였다. 전 전 이사장은 2017년 12월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박천규 당시 기획조정실장에게 사표 제출 요구를 받자 이에 응했다. 강 전 본부장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도 상부의 뜻을 전달하는 의미였다.

    강 전 본부장은 전 전 이사장의 요구에 “나는 임기가 보장된 사람이다. 왜 나를 내쫓으려 하느냐”고 반발했다. 그러자 약 3개월 후인 2018년 2월 20일 환경부에서 직접 감사를 하러 내려왔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표 제출에 반발하고 있는 김현민, 강만옥을 주된 감사 대상으로 하라”는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강 전 본부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불행했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며 “감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라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강 전 본부장은 임기를 마쳤다. 현행법상 공공기관 임원은 후임자가 부임할 때까지 임기를 이어가게 돼 있어 4개월을 더 근무하다 KEI로 돌아갔다. 그는 블랙리스트 유죄판결에 대해 “사필귀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처벌을 받았지만 사표를 강요한 공무원들은 승진해 요직에 앉아 있다”며 “부당한 지시를 따른 이들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절차는 지켜가며 자리 나눠줘야지”

    김현민 한국환경공사 상임감사도 윗선으로부터 사표를 종용받았다. 김 감사는 6월 10일 전화를 걸자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와 서면을 통해 사퇴하게 된 경위를 묻자 그는 “임기가 1년 4개월이 지나던 시점인 2018년 1월, 전병성 당시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주제로 이사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사회 주제는 “환경부에서 사표를 종용하니 임원들이 동반 사퇴 의사를 표명하자”는 것. 김 전 감사는 “논의는 이루어졌지만 안건으로 상정되지는 않아 공식적으로 사퇴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2018년 2월 말, 이사장 및 퇴직 예정 임원을 제외하고 전 임원에 대한 환경부 감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전 감사는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일부 임원진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판단해 적절한 감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환경부는 김 전 감사의 업무추진비를 집중적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환경부는 김 전 감사가 사표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표적 감사가 실시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2월 28일에는 환경부 감사팀 직원이 사무실로 와 김 전 감사가 업무추진비로 주선한 회식을 “부당 업무추진비”라며 문제 삼았다. 환경부 감사팀 직원은 “회식에 참여한 감사실 직원 모두 부당 업무추진비 사용에 동참했으니 전부 환불 조치하겠다”고 윽박질렀다. 김 전 감사는 “사무실 분위기는 엉망이 됐고 체면을 구겨 업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전 감사는 3월 초 환경부 감사팀 직원에게 “사표 때문에 이 소동을 벌이는 것이냐”고 물었다. 환경부 감사팀 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김 전 감사는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환경부 감사는 중단됐다.

    김 전 감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직에 미련이 있어 버틴 것이 아니라 나갈 명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인 이유로 임명한 ‘낙하산’ 인사다. 임명권자가 탄핵되는 걸 보고 1심 판결이 나오면 바로 사퇴할 생각이었다. 재판이 2017년 10월에서 이듬해인 2018년 4월로 연장돼 사표를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해 3월에 사표를 썼는데 한 달만 더 있으면 알아서 나갈 사람이었다. (그런데 감사까지 나오면서 괴롭혔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니 성급하게 자리를 만들려다 이 사달이 난 거다. 논공행상도 좋지만 적어도 절차만 좀 지켰더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바보 만드는 공개 채용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뉴시스]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뉴시스]

    “허허허 사람들이 저더러 바보라 하더군요.”

    6월 7일 전화기 너머 전해지는 류재용 경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니 화가 누그러지고 평안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판결문에 등장하는 “내정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정당한 채용 절차라 믿고 지원해 탈락”한 피해자 130명 중 한 명이다.

    2018년 4월 30일 류 교수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의 환경기술본부장 선발 공개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우선 실력에 자신 있었다. 25년간의 연구 경험, 5년간 환경기술본부에서 일하며 쌓은 실무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정부의 채용은 공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류 교수는 최종 3인까지 올라갔다.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위한 서류를 요구해 이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1년간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이 내정했다는 사람이 인사 검증에서 탈락해 채용이 무기한 보류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류 교수는 애써 소문을 무시했다.

    2019년 4월 검찰이 류 교수를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검찰은 류 교수가 애써 외면했던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 줬다. 검찰의 조사가 있은 지 2개월 후 기술원은 그에게 ‘탈락 통보’를 보내왔다. 사유는 “면접시험과 기술원 업무 부적합”. 당시 심정을 묻자 류 교수는 허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번 정부는 내정자를 정해놓고 채용 선발에 나선다는 사실을 다 아는데 왜 굳이 지원해 가슴앓이를 했느냐’며 ‘저보고 바보 아니냐’고 하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공직에 지원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번에 제가 느낀 건 공직이 실력 있고 도덕성에 흠결이 없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한참을 뜸 들이던 그는 “그래도 제가 잘 알고 있는 분야에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 댔다 좌천

    주진우 변호사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 부장검사 출신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지휘했다.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9년 8월 2일 안동지청장으로 발령을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 좌천성 인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던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 권순천 차장검사도 같은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법복을 벗었지만 그의 이름은 블랙리스트 판결문에 ‘기소 검사’로 여전히 남아 있다.

    6월 14일, 검찰 인사철을 맞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와 어렵게 통화했다. 주 변호사는 현재 ‘변호사주진우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 변호사는 사의를 표명할 당시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저는 정치색이 없는 평범한 검사”라며 “원칙에 충실하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란 믿었는데 능력 및 실적에 따라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다. 이어 “공직관이 흔들리는데 검사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국민과 검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판단했다”고 사퇴의 변을 남겼다.

    당시의 심정을 묻자 그는 “굉장히 착잡했다”며 “평생 검사를 꿈꿨을 정도로 일에 보람을 느껴 재미있고 힘든지 모르고 일했다”고 회상했다. 인사 결과를 받아 들고는 “이번 정권에서는 더는 중요한 업무를 맡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게 됐다”고 답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인사 결과를 받아들이고 안동지청장으로 근무하며 상황이 바뀌길 기대할 수도 있지 않았나.

    “비교적 젊은 나이여서 새로운 일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 인사 발령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나.

    “부장검사까지 좌천성 발령이 나는 경우는 드물어 인사 발령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내가 나서서 정권의 비리를 캐냈다면 정권에 밉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언론에 의해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수사를 해야 했다. 업무분장표에 따라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 수사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나는 평소에 법리 검토를 굉장히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당시 대검찰청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법리 검토를 요구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수사가 필요했는데 속도에 차질이 있을 정도였다.”

    - 직접 기소한 사건의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심정이 어떤가.

    “채용 비리는 증거가 명백해 유죄가 나올 것을 예상했다. 직권남용은 아직 법리적으로 정립이 덜 돼 있는 부분이다. 우려 반 기대 반이었는데 대부분 유죄가 나왔다. 제일 중요한 점은 같은 일(환경부 블랙리스트)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표를 쓸 당시 사건을 떠맡은 후배 검사들에게 가장 미안했다. 사건을 잘 마무리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고맙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퇴압박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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