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부당 해고 항의하자 갑질 방관·책임 회피한 건국대 산학협력단

“재계약 위해 사직서 내라”더니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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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4-04-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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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마다 사직서 내게 하고 재계약

    • 산하 산업기술연구원 원장 “내 지시 안 따라 해고”

    • 산단 “산기원 책임, 우리는 사용자 아냐”

    • 근로자 손 들어준 중노위, 산단 재심 요청 기각

    • 부당 해고 판단 3개월 넘어도 미복직… “우리도 어떻게 할지 고민”

    [Gettyimage]

    [Gettyimage]

    “계약이 만료되니 사직서를 10월 20일까지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10월 16일 A씨가 건국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받은 문자다. A씨는 2021년 10월 18일 건국대 산학협력단(이하 산단)에 기간제근로자로 입사해 건국대 부설연구소 산업기술연구원(이하 산기원)에서 지난해 10월 31일까지 일한 근로자다. 주차권 등 구매 관련 청구, 회의록 관리 등 ‘행정’ 업무를 봤다. 산단은 대학 산하 연구소에 연구 재원, 인력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는다.

    A씨는 사직서를 내라는 말이 놀랍지 않았다. 이 문자를 받기 1년 전 이미 사직서를 두 차례 낸 바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직서를 낸 이유는 산단이 “재계약을 위해 사직서를 내는 것”이라며 “1년마다 사직서를 내고 다시 계약하고 있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A씨는 ‘왜 굳이 사직서를 내고 재계약을 할까’ 의아했지만 “관행”이라는 산단의 말을 듣곤 따랐다.

    A씨는 지난해 10월 문자를 받았을 때 2022년 재계약 때와 같은 수순으로 여겼고, 이에 이튿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산기원 원장 B씨는 이를 그대로 수리, 사실상 A씨를 ‘해고’했다. A씨는 부당 해고라고 판단해 지난해 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서울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자 B씨는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아 계약을 종료한 것”이라고 항변했고, 산단은 “우리는 실질적 사용자가 아니다. 책임은 산기원에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A씨는 해고된 것이 아니라 계약만료일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올해 1월 2일 서울지노위는 “부당 해고로 판단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30일 이내 A씨를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의 급료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산단은 이에 불복,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노위는 4월 4일 이를 기각했다. 그럼에도 A씨는 여전히 미복직 상태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노동 사각지대가 드러난 셈”이라고 지적한다.

    A씨의 구제 신청에 대한 1월 2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문 일부. 부당 해고임을 인정하며 30일 이내 복직, 해고 기간에 대한 임금 지급을 명령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A씨의 구제 신청에 대한 1월 2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문 일부. 부당 해고임을 인정하며 30일 이내 복직, 해고 기간에 대한 임금 지급을 명령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말도 안 되는 일”

    사건의 발단은 A씨와 B씨의 불화다. A씨와 B씨는 주차권 구입 문제, 회의록 작성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 B씨가 법인카드로 주차권을 할당량(20매) 이상인 40매를 구매하고, 산단에서 요청하는 증빙서류 제출을 거부했다. 또 규정상 적게 돼 있는 회의록을 적지 않았다. 이에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A씨가 규정 위반을 지적하다 마찰이 생긴 것이다.



    다툼 과정에서 B씨는 “원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 어디서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그런 식으로 하면 나랑 일 못 한다”고 고성을 지르며 주먹, 펜, 결재판 등으로 책상을 치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건국대 인권센터에 신고했고, 건국대 인권센터 역시 이 행위의 부당함을 인정했다.

    문제는 A씨가 재계약 이전 사직서를 받는 산단의 ‘관행’에 따라 지난해 10월 17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벌어졌다. A씨가 사직서를 내자 그를 탐탁잖게 생각하던 B씨가 사직서를 그대로 수리한 것이다. A씨는 즉각 부당 해고임을 주장했으나 B씨는 “당신이 일을 못해서 자른 것”이라며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지난해 11월 6일 서울지노위에 산단의 부당 해고에 대한 구제 신청을 했다.


    A씨가 건국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받은 사직서 요청 문자. “재계약할 경우 사직서 포함 및 계약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 바란다”고 써 있다. [A씨]

    A씨가 건국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받은 사직서 요청 문자. “재계약할 경우 사직서 포함 및 계약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 바란다”고 써 있다. [A씨]

    이에 대해 산단과 B씨는 모두 부당 해고가 아님을 주장했다 B씨는 서울지노위 판정 과정에서 “(A씨가) 원장인 내가 얘기하면 내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산단은 “계약서상 사용자가 산단으로 돼 있긴 하지만 지휘·명령권을 산기원이 갖고 있다. 실질적 사용자는 산기원”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A씨는 현행법상 ‘연구근접지원업무자(연구인력)’로 분류돼 일한 지 2년이 넘어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 해고가 아니라 계약만료일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서울지노위는 부당 해고로 판단했다. 서울지노위는 먼저 재계약을 위해 1년마다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봤다. 판정 과정에서 지노위 소속 한 공익위원이 “재계약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산단이 “연구과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업무 특성상 기존 과제에 대한 계약을 끝내야 새 계약을 맺을 수 있기에 해온 관행”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지노위는 A씨가 ‘연구근접지원인력’으로 일했지만 ‘연구인력’이 아닌 ‘행정인력’이라고도 판단했다. 현행법상 기간제근로자의 근로 기간이 2년을 넘기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분류돼 명백한 해고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해고할 수 없다. 서울지노위는 “A씨가 연구근접지원업무자로 분류되긴 했지만 실제 한 일은 행정업무이므로 행정인력으로 보는 게 타당하고, 분명한 해고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산단을 사용자로 인정하고, 산단에 A씨를 복직시킬 것을 명했다.

    A씨가 해고된 후 대체 근로자를 구하기 위해 건국대 산학협력단이 낸 채용 공고. “건국대학교 산업기술연구원 행정 선생님 모십니다”라고 써 ‘행정 업무’를 보는 근로자를 구함을 알 수 있다. [A씨]

    A씨가 해고된 후 대체 근로자를 구하기 위해 건국대 산학협력단이 낸 채용 공고. “건국대학교 산업기술연구원 행정 선생님 모십니다”라고 써 ‘행정 업무’를 보는 근로자를 구함을 알 수 있다. [A씨]

    “대학가 노동 사각지대 밝힌 판정”

    산단은 판정에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중노위는 4월 4일 이를 기각하며 서울지노위의 판정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산단은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상당의 이행강제금을 중노위에 내게 됐다. 이에 대해 장지선 노무사(노무법인 테헤란)는 “산단이 지급해야 할 이행강제금은 결국 건국대 학생들의 등록금”이라며 “산단의 책임 회피로 애꿎은 학생들의 돈을 잃게 됐다”고 꼬집었다.

    건국대 측은 "산단의 운영 자금은 교수들이 획득한 연구비이며 등록금과 상관이 없다"고 반박했다.

    산단은 A씨에게 부당 해고 기간으로 인정된 지난해 11월 1일부터의 급료도 지급해야 한다. 1500만 원 상당이며 아직 미납 상태다. 이 기간 급료를 받지 못한 A씨는 생계에 곤란을 겪게 됐다. 그럼에도 복직은 요원하다. B씨가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단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4월 4일 중노위에서 재심을 기각하는 판정이 났으니 30일 후 판정서가 내려온다. 그러면 그때 판정서를 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해 봐야 될 것 같다. 다만 주장해 왔듯 실질적 사용자는 산기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사권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B씨가 강경하게 나오면 우리도 마음대로 복직시킬 수가 없다. 내부적으론 외부 자문을 받는 등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인력으로 여겨 써온 사람이 행정인력으로 판단된 것도 그렇고, 우리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다. 산기원과 A씨 중간에 껴서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관행으로 여겨진 일의 모순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한 사립대학 산학협력단 관계자 C씨는 “그간 대학 산단에서 고용 및 해고가 자유롭도록 실질적으론 행정업무를 보더라도 연구지원업무라며 연구 인력으로 쓰는 경향이 있었다. 산단마다 고용 형태가 제각각인데, 이번 중노위 판정으로 골머리를 앓을 대학이 제법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국대 산단과 산기원 사례처럼 대학 전반적으로 산단과 부설 연구소의 고용관계를 명확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정민 노무사(노무법인 테헤란)는 “엄연히 A씨가 계약을 맺은 주체는 산단임에도 산단은 자신들이 ‘실질적 사용자’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다”며 “서울지노위·중노위 판단은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고 고용 주체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노무사는 “대학가의 ‘근로 사각지대’가 드러난 사건”이라며 “이번 판정이 대학 관련 근로자들의 노동권이 개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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