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김은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그려냈다.
“현진이가 7이닝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더그아웃의 모든 선수가, 심지어 허니컷 투수코치까지 현진이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느 누구도 현진이한테 다가가지 않았다. 모두가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퍼펙트가 깨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신경을 썼다. 현진이가 8회 마운드에 올라가서 신시내티 레즈의 첫 타자인 토드 프레이저한테 안타를 맞았을 때는 매팅리 감독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아쉬워했고,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진 퍼펙트 게임을 안타까워했다. 8회 불펜투수와 교체된 후 클럽하우스로 들어간 현진이는 오히려 해맑게 웃고 있더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현진이의 여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류현진은 이후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퍼펙트 게임 직전까지 갔던 것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난 매 이닝 퍼펙트 게임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오르지만, 매번 1, 2회 때 안타나 포볼을 내줬다. 그런데 신시내티 레즈전 같은 경험은 미국에서 처
음이었고,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퍼펙트 게임을 놓친 게 내 야구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나한테도 언젠가는 슬럼프가 닥칠 것이다. 그럴 때 레즈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놓친 부분은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 어깨 근육 부상
4월 28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경기 후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급기야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데뷔 후 부상자 명단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다. 부상 부위는 이전 한화 이글스 시절에도 겪은 바 있는 어깨근육염증인 견갑골 통증.
류현진은 로키스전 3이닝을 마친 이후부터 어깨 통증을 느꼈고, 5이닝 이후 매팅리 감독에게 어깨에 통증이 있음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선발투수는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가 3점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6이닝 3실점하려다 5이닝 6실점이 된,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어깨에 통증을 느끼며 투구를 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게 역효과를 낸 셈이었다. 감독님은 가급적이면 부상자 명단에 올리지 않으려 하셨던 것 같다. 시간을 두고 호전되기만을 기다리신 듯한데 마이애미 원정을 가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엔 나랑 마틴 형 먼저 LA로 돌아가 팀 닥터를 만나는 것으로 결정됐다.”
류현진은 당시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다저스 선수단 전세기가 아닌 마이애미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LA로 향했다. 선수단 전세기는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활주로까지 진입해 선수들이 바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데 반해 일반 국내선은 길게 줄을 서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탑승할 때까지 오랫동안 대기 상태로 공항에서 머물러야 했다.
“마틴 형이 없었으면 정말 정신 못 차렸을 것이다. 나 혼자서 미국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 나중에 검색대 통과 후 탑승을 기다리면서 마틴 형이랑 햄버거 사들고 공항 내에서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순간 웃음이 나오더라.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봤고, 그 속에 있는 난, 그저 덩치 큰 동양 남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LA 공항에 내리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사인 요청 때문에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웃음)”
어깨 부상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류현진에게 오히려 ‘보약’으로 작용했다. 여느 시즌보다 일찍 호주까지 가서 선발 경기를 치렀고, 샌프란시스코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비롯해, 홈 개막전까지 연달아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면서 그의 어깨는 지쳐만 갔다. 그런 가운데 15일짜리 휴식은 그에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깨근육염증은 쉬어야 낫는 병이다. 욕심 같아선 더 오랫동안 쉬고 싶었다. 어깨 상태를 더욱 싱싱하게 만들려면 조금 더 쉬어야 했지만, 팀 사정상 15일 이후 복귀해야 했다. 아마 감독님도 뉴욕 메츠전으로 복귀 경기를 할 때, 긴가민가하는 심정이셨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마무리 짓고 내려오는데 어깨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복귀전에서 승리한 것보다 어깨가 아프지 않다는 게 더 기분 좋았다.”
어깨 부상 후 24일 만에 마운드로 돌아온 류현진은 뉴욕 메츠전에서 6이닝 9피안타(1피홈런) 9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4승을 챙겼다. 이날 류현진은 최고 구속 94마일의 빠른 공과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메츠 타선을 요리해나갔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류현진이 첫 5이닝 동안 맞은 5개의 안타가 점수로 이어지지 못했다”면서 “더욱이 메츠 선수들은 만루 상황에서 유독 약한 면모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에서 그 경기를 지켜봤고, 경기 후 다저스 클럽하우스가 아닌 뉴욕 메츠 클럽하우스를 찾았다. 류현진과 맞붙었던 메츠 선수들의 소감을 듣기 위해서였다. 1회말 첫 안타를 기록한 대니얼 머피는 류현진의 투구에 대해 “정말 치기 어려운 공만 던지는 선수였다. 류현진이 나오는 날에는 다저스가 이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말로 류현진을 추켜세웠다. 6회 류현진을 상대로 2점짜리 홈런을 뽑아낸 에릭 켐벨은 자신이 홈런을 친 건 류현진의 실투였음을 밝히며 “류현진은 오늘 공의 구질과 구속을 잘 섞어가며 빼어난 마운드 운영을 해가고 있었다. 오늘 딱 한 개의 실투를 한 것 같은데, 그 기회가 나한테 찾아왔을 뿐이다”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류현진을 상대로 안타 2개를 뽑아낸 윌머 플로레스도 “커브와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낮은 제구로 경기 운영을 잘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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