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모의고사 낙제는 본고사 합격의 보약

히딩크를 위한 변명

  • 김화성 <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 mars@donga.com

    입력2004-11-02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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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 블랜차드와 셀든 보울즈가 함께 쓴 경영학 서적 ‘하이 파이브’의 내용과 히딩크의 대표팀 운영 방식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하이 파이브’는 모래알조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단단한 조직으로 변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도 홍명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대표팀의 컬러를 세밀한 담금질을 통해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히딩크는 마지막 승부에서 웃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자청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축구에는 기술을 뛰어넘는 예술이 없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는 나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바로 그게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감동이 없고 승부만 있다.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지 즐기지 못한다. 승부에 집착해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갈 공도 골대에 맞고 다시 튕겨나온다. 그런 뻣뻣함이 선수들 개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들이 우리 선수들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에서, 하다못해 지하철 광고에서도 한결같이 16강을 외치며 선수들의 등을 떠민다.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무시무시한 획일성과 감상적인 애국주의, 콤플렉스가 뒤섞인 한심한 작태다. 그래서 불쌍한 우리 선수들은 무늬만 신세대지, 남미나 유럽 선수들처럼 진정한 자아를 자유롭게 운동장에 풀어놓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 축구는 한(恨)의 축구였다. 나라를 뺏기고 못 먹고 괄시받은 온갖 설움을 ‘슛! 골인’으로 풀려는 답답한 속내를 내가 왜 모르랴. 하지만 이제는 국력을 체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집단 초조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의 글

    축구감독의 권한은 막강하다. 기업의 CEO나 같다. 전쟁중인 군대 사령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축구감독은 우선 자신의 전략 전술과 철학에 따라 선수들을 뽑는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면 벤치에 앉아 선수들을 독려하고 전술과 전략을 지시한다. 맘에 들지 않으면 선수를 가차없이 교체할 수도 있다. ‘경영도사’로 불리는 잭 웰치가 GE에 새로 취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전체 직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만2000명의 목을 자르는 일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고나 할까. 1982년 ‘뉴스위크’지는 이런 잭 웰치를 빗대 “건물들은 멀쩡한데 사람들만 조용히 죽이는 중성자탄”이라고 비아냥댔다. 1984년 ‘포춘’지는 잭 웰치를 ‘미국에서 가장 무자비한 10명의 경영자’ 중 1위에 선정했다.





    축구기술은 열 살 때 완성된다


    물론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CEO나 감독이 진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요즘엔 감독의 임무 가운데 선수들을 교육하는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잭 웰치도 ‘교육’을 개혁의 심장으로 삼았다. 잭 웰치는 사원들의 목을 자르는 등 자신의 말마따나 ‘창자를 오려내는 일’을 하면서도 교육의 심장부인 크로톤빌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당장 이익이 나지도 않는 일에 웬 돈을 그렇게 쏟아붓느냐고. 그러나 잭 웰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육투자에 대한 회수기간은 무한하다”고 일갈했다.

    축구에서도 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소년축구의 경우 이것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만큼 어린 축구 꿈나무들에게 감독은 신(神)이나 마찬가지다. 98프랑스월드컵 우승을 이끈 프랑스의 에메 자케 감독은 “축구에서 선수들의 기술수준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결정된다. 열다섯 살쯤 되면 프로선수가 될 것인지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우리로 말하면 초등학교 3,4학년 때 이미 축구의 모든 기술 습득은 거의 다 끝나며 그 이후엔 더 이상 기술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거꾸로 말하면 어렸을 때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평생 축구선수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예를 봐도 그렇다.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언의 경우, 프로축구선수인 아버지가 오언이 일곱 살 때 몰든구단의 10세 이하 리그 유소년축구팀에 입단시켰다. 오언은 그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몸집도 작았지만 불과 여덟 살에 구단대표로 뽑혔다. 오언은 이때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해 3년 동안 한 시즌에 매경기 평균 3골을 넣었다. 11세 때엔 한 시즌에 97골을 넣어 잉글랜드 유소년리그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것은 오언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공차기를 즐기며 기본적인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언의 아버지는 오언에게 늘 “넌 타고난 골잡이야. 비록 네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힘은 없지만 넌 타이밍과 위치선정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라고 칭찬했다. 그뿐인가. 그는 오언의 어머니에게 “우리는 특별한 아이를 키우고 있어. 이 아이가 재능을 발휘한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선수가 될 거야”라며 오언의 운동감각을 계발하는 데 온갖 뒷바라지를 다했다.

    오언이 중학교에 다닐 때는 오언으로 하여금 학교 축구팀은 물론 럭비팀 크리켓팀 육상팀에서 활약하도록 했다. 오언은 17세 때 리버풀구단에 입단하기까지 여느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받고 방과후에 축구연습을 했다.

    ‘축구황제’ 펠레도 프로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펠레의 아버지는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선수 생활을 하면서 경기가 끝나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그동안 펠레는 아이들과 골목에서 공을 차며 실력을 키웠다. 펠레는 학업에 전혀 뜻이 없었다. 툭하면 수업에 빠지거나 학교에 가지 않아 3학년을 두 번이나 다녔다. 열세 살 때 프로축구팀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4학년도 한 번 더 다녀야 될 처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짬이 나면 아들을 데리고 동네 빈터로 나가 축구를 가르쳤다.

    “자 헤딩연습을 해보자. 눈은 크게 뜨고 입은 꼭 다물어라. 상체를 뒤로 젖힌 다음 곧장 앞으로 튀어나가 볼을 때려라. 가급적 상체를 뒤로 더 멀리 젖히고 앞으로 더 세게 튀어나갈수록 공을 더 멀리까지 받아칠 수가 있다. 절대 눈을 깜박거려서는 안된다. 그렇지. 눈을 뜨고 입은 다물고…. 이마의 한가운데로 받아치는 거야. 낮은 볼을 차려면 무릎을 굽혀라. 무릎이 바로 볼 위를 향하도록 말이다. 그런 다음 발등으로 차는 거야. 다른 발은 반드시 목표물과 일직선상에 있어야 한다.”

    펠레와 그의 아버지는 땀으로 온몸이 젖어 지칠 때까지 반복했다. 그리고 어두워지면 부자가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펠레는 자서전에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회고했다. 펠레의 아버지는 기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과 축구선수로서의 몸가짐도 가르쳤다.

    “그라운드에는 두 팀이 있다. 그래서 팬도 두 종류가 있지. 한쪽 팬이 즐거우면 상대쪽은 당연히 화가 나는 법이다. 그중 한쪽은 언제나 네게 나쁜 소리를 하게 돼 있다.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흥분하고 화를 내는 것은 네가 네 자신에게 화가 나기 때문이다. 그건 네 스스로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 네 스스로를 걷어차라…. 축구는 팀스포츠다. 네가 혼자 공을 세우려고 하니까 공을 놓치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넌 축구에 재능이 많고 일류선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90분 동안 쉬지 않고 네가 원하는 대로 뛸 수 있을 만큼 체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결국 펠레는 13세가 되던 해 프로구단의 유소년팀에 스카우트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브라질 축구사상 위대한 이름 중의 하나인 발데마르 데 브리투 감독을 만났다. 발데마르 데 브리투 감독은 1934년 브라질대표팀에서 인사이드 포워드로 뛴 스타였으며 당시 브라질리그의 최고 감독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펠레가 있는 구단의 유소년팀 감독을 맡은 것이다.

    그는 엄격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 명령에 따라라. 여기 있는 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술 담배는 절대 입에 대선 안된다. 제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라. 그리고 지금부터 스포츠기사를 읽지 말아라. 신문에서 너희들에 관한 기사나 사진을 보면 너희들은 자신을 과대포장하기 쉽다. 선수가 자만심에 빠지면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축구선수에게 치명적이다. 난 너희를 몹시 피곤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말을 듣는 사람에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겠다.”

    이회택 감독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나은 조건은 딱 하나 소속팀 안봐주고 월드컵까지 무제한 연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딩크라고 그걸 모를까. 마음에 드는 선수가 모자라니까 여러 선수를 세워보는 것이겠지. 내가 히딩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 가운데 막판까지 전국을 누비며 70∼80명씩 테스트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지금 가장 답답한 사람은 히딩크 감독이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수십년동안 한국방식으로 해봤지만 월드컵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코리아타임스’ 축구담당 기자인 오은 스위니의 지적은 따끔하다.

    “최고의 외국감독 한 명 데려온다고 해서 기적을 만들 수는 없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에 대해 잘 몰라서 한국팀을 톱 수준으로 이끌 수 없다고 한다면, 한국은 왜 한국감독이 지도했을 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나? 차범근 이회택 김정남 김호 감독이 한국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단 말인가?”

    히딩크는 “이번 골드컵에서 밖으로 드러난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는 한국이 항상 우위에 있었다. 많은 유럽 전문가들도 골결정력 문제를 빼놓고는 모든 면에서 한국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다 이겨놓은 경기를 강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수십년간 실패한 프로그램으로 16강에 갈 수 없다. 결코 쉬운 길로 가지 않겠다. 강인한 체력이 곧 실력이다. 현재 한국팀에 적용하고 있는 체력 프로그램은 1998년 네덜란드팀에 적용해서 큰 효과를 본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팀은 후반 25분부터 체력적으로 상대를 압도했었다. 3월 유럽전지훈련에서도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병행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왜 히딩크는 체력훈련에 매달릴까. 그것은 간단하다. 축구수준이 떨어지는 한국으로선 지금보다 ‘더 많은 움직임과 더 심한 압박’만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예선전 없이 본선에 올랐다. 유럽팀들은 클럽경기가 5월까지도 계속된다. 그만큼 체력적으로 준비가 돼 있다. 또한 한국의 6월 날씨는 습기가 많고 후텁지근하다. 부상자가 속출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히딩크는 꿈쩍 않는다. “훈련도중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부상이 두려워 계속 소극적으로만 훈련할 수는 없다. 우리 목표는 6월이다. 그때에 맞춰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전지훈련에서 히딩크가 매긴 3월 현재 한국의 체력점수는 스피드 80점-지구력 60점-파워 50점이다. 히딩크는 “98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유고와 아르헨티나를 연파할 때 터진 골은 상대가 지쳐 운동량이 떨어지는 후반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하이 파이브’로 돌아가자. 앨런이 마지막으로 한 것은 아이들에게 자주 상을 주고 칭찬한 것이다. 사람은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수록 능력을 끊임없이 발휘하게 된다. 회사나 팀은 결국 잘못된 점에 매달리기보다 잘된 점을 늘려가야만 더 나아질 수 있다.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한 슈팅에 집착하지 말고 성공한 슈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면 잘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히딩크가 어림없는 홈런 슈팅을 날린 선수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앨런의 은사는 말한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점수차를 줄이는 비결이다. 사람들은 대개 눈에 띄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일 때 잘한다고 칭찬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아이스하키에서 퍽이 자기에게 오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며 방어하는 것도 잘한 것이다. 눈에 띄는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팀에 얼마나 중요한지 곧잘 망각한다.”

    이 책의 공동저자 블랜차드와 보올즈가 같이 쓴 또 다른 경영학 서적 ‘겅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축구경기에서 관중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은 후에만 환호성을 지르는 게 아니다. 자기 팀이 공격하고 있을 때도 열정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자기편이 공격하는 데도 조용히 앉아만 있다. 기러기들은 해마다 수천㎞를 이동한다. 하루에도 수백㎞를 V자로 떼를 지어 날아간다. 그런데 이들은 이동할 때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울어제낀다. 왜 울까. 그것은 바로 서로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는 울음소리다.”

    히딩크도 칭찬광이다. 그의 원칙은 남 앞에서 선수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난 선수들을 칭찬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는 것은 우리팀 내부에서만 한다. 그것이 나와 선수의 약속이고 신의다.”

    그래서 히딩크는 기자들에게 곧잘 부탁한다. “후보선수들에게도 인터뷰할 기회를 줘라. 인기선수에게만 인터뷰가 쏟아지면 팀워크를 해칠 수 있다”고. 히딩크는 언론에서 선수를 칭찬할 때나 잘못을 지적할 때도 누구를 꼬집어 하는 방식이 아니고 포괄적이다. 혹시 잘못을 지적할 때는 반드시 칭찬하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역대 국가대표팀 감독들도 이런 면에서는 마찬가지지만 언어표현 능력에선 히딩크를 못따라간다. 그만큼 머리가 비상하다는 뜻이다.

    “한국선수들은 기술이 좋다. 하나같이 왼발 오른발 양발을 자유자재로 잘 쓴다. 유럽에도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는 많지 않다.”

    “한국선수들이 약하다고들 하는데 난 동의할 수 없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네덜란드나 스페인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나 자기 포지션에서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있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을 때는 감독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하지만 개성이 강해 도리어 해가 될 수 있다. 한국선수들은 수동적이긴 하지만 그 열정과 성실성은 훌륭하다.”

    “고종수는 훌륭한 선수다. 기술은 타고났다. 그러나 현대축구에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선수들은 어떤 포지션에서 뛰든 매우 헌신적이고 공격적이며 빠르다. 그러나 배기량이 아무리 큰 자동차라도 마냥 고속으로 달릴 수 없다. 너무 저돌적인 플레이를 하다보니 쉽게 전술적인 위치를 잃는다. 자연히 선수들 사이의 밸런스도 깨진다.”

    한국팀이 골을 넣거나 혹은 먹었을 때 히딩크의 칭찬이나 꾸지람 방식도 독특하다. 보통 감독들은 실수한 선수를 꾸짖거나 골을 넣거나 도움을 준 선수를 칭찬한다. 그러나 히딩크는 팀 전체로 설명할 뿐이다. 골은 11명 전체가 넣거나 11명 전체가 먹는다는 것이다. 맨 앞의 공격진에서부터 수비가 안돼 미드필드진에서 밸런스가 흐트러졌고 결국 수비진에서 막아봤지만 골을 먹었다는 식이다. 골을 넣을 때도 수비진에서 첫번째 패스가 잘돼 상대가 당황했고 그 다음 미드필드진에서 선수들이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에 공격진이 골을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도훈은 “히딩크 감독은 절대 질책하지 않는다. 선수가 깨닫도록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러나 한번 기회를 줬는데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장”이라고 말했다.

    홍명보의 말도 의미 심장하다.

    “난 그동안 이회택 김호 박종환 차범근 허정무 감독 등 다섯 분의 대표팀 감독을 모셔봤다. 히딩크 감독이 내가 여태껏 모신 감독님들과 가장 구별되는 것은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훈련에 임한다는 것이다. 패스연습이면 반드시 패스연습만 시킨다. 거기에 체력훈련이 함께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전체적인 훈련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을 필요로 한다. 생각하는 축구를 하지 않으면 단번에 휘슬을 분다. 30분만 훈련해도 녹초가 된다.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꾸지람은 전혀 없다. 훈련에서 안된 부분만 지적한다. 선수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술 담배 여자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장에만 나가면 엄청난 에너지로 선수들을 장악한다.”

    히딩크의 축구철학은 한마디로 ‘지배(Dominate)와 압박(Press)’이다.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며 경기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그럴려면 공간과 시간을 상대보다 선점하고 지배해야 한다. 공간에서의 ‘숫적 우세’와 ‘공간 선점’을 해내야 한다. 당연히 체력과 스피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히딩크가 흔히 “운동장에서는 체력과 스피드가 앞서는 선수가 결국 이길 수밖에 없다”거나 “두 번 이상 볼을 터치하지 말고 낮게 패스하라”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윤정환과 안정환 등 테크니션보다는 체력과 스피드가 뛰어난 차두리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히딩크는 이런 자신의 축구철학을 실현하는 데는 실전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깨지더라도 강한 팀과의 실전을 원한다. “감독의 임무는 선수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강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하고 똑똑한 선수들이 있어야 하고 이런 선수들은 큰 게임에서 나온다”는 것.

    전쟁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떻게 주요거점(공간)을 빠르게(시간) 선점하냐의 문제다. 그럴려면 스피드와 강한 전투력이 필요하다. 선제공격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기습을 할 것인가는 사령관이 판단해 결정할 일이다. 병사들은 그 어떤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명령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사가 전투력이 강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병사들간의 전투나 사령관의 전술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다가 실패해 죽음을 당한 독일의 베크 장군은 “전쟁에선 불확실한 적의 의지나 우연, 실수가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상황과 조화를 이루며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미리 정한 계획에 구속받지 않고 시기적절하게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사령관의 큰 덕목이며 이런 면에서 전쟁은 과학적인 기초에 근거한 자유로운 창의적 행동”이라고까지 말했다.

    히딩크는 최근 유럽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다섯 번이나 월드컵에 진출했지만 이렇다할 좋은 인상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의 지상목표는 한국이 세계축구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만약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난 유럽으로 가는 첫번째 비행기를 타야 할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족집게 강사’는 시험이 끝나면 가는 게 당연하다. 이런 사실을 히딩크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으로선 그를 그냥 ‘족집게 강사’로서 돈을 줬으니 됐다는 식으로 보내면 안된다. 설령 16강에서 떨어지더라도 그로부터 ‘미래 한국축구의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요즘 히딩크에 대한 말들이 많다. 먼저 그의 여자친구 동반에 대해서 박종환 감독은 “처자식이 있는 선수들도 많은데 본처도 아니고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데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한국국민을 우습게 보고 그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런 지적은 정확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로선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프랑스의 자케 감독이 바로 히딩크가 경청한 강연에서 “축구지도자는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영역의 구분이 매우 중요하며 사생활이 노출되면 그는 전적으로 감독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한 걸로 끝냈으면 한다. 히딩크도 속으로 따끔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즈음 그는 여자친구를 네덜란드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우리로선 그런 문제에 매달리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삼성구단의 브라질 용병 산드로의 귀화문제도 그렇다. 세상에 감독에게 의향을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문제를 외부에 흘리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석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 데려다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이밖에 일본 프로구단에서의 히딩크 영입설이나 이용수 기술위원장과의 불화설, 일부 네티즌들의 감독 교체설 제기 등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쟁을 앞두고 사령관을 바꿔서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두 신중해야 할 때다. 다행히 히딩크는 “모든 게 루머일 뿐”이라며 겉으로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히딩크는 “난 어디까지나 나이며 바뀌지 않는다. 평소에 진지하지만 때로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할 때는 모든 부분에서 진지하다. 난 개방적인 성격이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언론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언론을 모두 수렴하다 보면 내 축구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받을 수 있다. 난 오로지 나의 길을 갈 뿐”이라며 마이웨이를 부른다. 나중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당당해서 좋다. 대표팀 감독이라면 이런 정도는 돼야 한다. 감독이 흔들리면 선수가 흔들리고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최근 브라질의 엔리케 카르도수 대통령이 “호마리우를 지지한다. 그는 최고”라며 1994년 미국월드컵 MVP이자 지난해 브라질리그 득점 1위인 호마리우를 국가대표팀에 선발할 것을 은근히 종용하자 스콜라리 감독은 “1억7000만 브라질 국민이 모두 감독 같다. 그러나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이며 호마리우는 현재 대표팀 전술과 맞지 않아 뽑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어차피 이 세상에는 확실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축구감독은 반드시 잘린다는 것이다. 스콜라리 감독도 언젠가 잘릴 것이다. 히딩크도 역시 잘릴 것이다. 아니 1년 계약이 끝나면 그는 한국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냥 가면 안된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보따리를 다 풀어놓고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슈우∼웃, 고∼올인.” 히딩크는 가도 한국축구는 계속된다.

    “축구는 한(恨)을 내지르는 거다. 가로막힌 한을 뚫고 나가 끝내는 한을 풀어주는 것이 축구다. 축구의 철학적 뜻은 우뚝 솟은 것도, 후미진 것도 다 발로 차버리자는 것이다. 그냥 운동장에서 1등만 한다는 것은 축구정신이 아니라 경기정신이다. 우뚝 선 곳도 후미진 곳도 한번 발로 차서 편편한, 태평한 세월로 만들자는 게 축구의 철학적 의미다. 축구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힘찬 맥박을 느끼는 것이다.

    진짜 축구선수는 공이 통통 튀지 않아도 땅별(지구) 속에서의 숨결 소리를 듣는다. 우리 한국 축구선수들은 가만 보면 경기장에 선수로서만 나서는 것 같다. 선수로 나서지 말고 춤꾼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말에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이 어깻짓을 하라’는 말이 있다. 또 ‘버들가지가 바람을 몰고 가듯이 몸짓하라’는 말도 있다. ‘부드럽게’ 어깻짓하고 몸짓하라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자기를 다 놓고 우주를 몰고 가라, 자연을 몰고 가라는 뜻이다. 우리 선수들은 운동장에 나가면 ‘잘 차야 할 텐데…, 골을 넣어야 할 텐데…’하는 생각에 몸이 뻣뻣해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운동장에선 욕심을 가지면 안된다. 자기를 다 놓으면 그때부터 신바람이 나고 곧 춤꾼이 된다. 관중들의 응원놀이도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빰빠 밤∼’으로 시작되는 드보르자크의 ‘신천지’가 있는데 이것은 미국 개척시대에 원주민들을 파괴해가면서 부른 노래다. 이런 걸 해서는 안된다. 우리 노래 ‘옹헤야∼’가 얼마나 좋은가. ‘옹헤야∼’는 타작노래다. 콩이 여물었을 때 도리깨로 깨야 알맹이가 나오는데 이 노래는 껍질로 싸여 있는 위선을 깨 알맹이가 나오게 하자는 뜻이다. 목숨을 나오게 하자는 거다.”―통일운동가 백기완

    발데마르 데 브리투 감독은 그의 말대로 펠레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헤딩연습을 할 때도 펠레의 머리 위로 볼 3개를 연속해서 높이 띄웠다. 그리고 첫번째 공은 왼발로 점프를 해서 헤딩을 하게 하고, 두번째 공은 오른발로, 세번째 공은 양발로 점프해서 헤딩하도록 했다. 이렇게 몇 주일을 계속하자 펠레는 ‘헤딩을 하기 위해 점프를 할 때 어느 발이 앞으로 나갔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펠레는 아버지로부터 헤딩의 기본을 배웠고 발데마르 감독으로부터 고급기술을 배운 것이다.

    공을 차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발데마르 감독은 펠레에게 “다가오는 공과 수직으로 마주 보고 서있다가 짧게 바운드 처리하여 공을 세우지 말라. 공이 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과 비스듬한 각도로 서있어라. 그래야 다른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랬다가 마침내 공과 직각을 이루며 트래핑할 때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도 즉각 동료에게 패스할 수 있다. 드리블할 때도 상대선수와 공 사이에서 몸으로 드리블하고 팔을 어디에 두어야 몸의 균형이 넘어지지 않는지 늘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그렇다. 배우는 것도 다 때가 있다. 어린 꿈나무들은 가르치기가 쉽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스펀지처럼 쑥쑥 빨아들인다. 그러나 프로선수는 다르다. 어릴 때 몸에 밴 습관은 여든까지 가기 마련이다. 많은 돈을 받으며 최고의 팀에서 뛰고 있는 프로선수들에게 축구를 잘못 배웠다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습관을 고치라고 한다고 고쳐질 리가 없다. 오히려 감정만 상하고 팀워크가 깨질 수 있다.



    히딩크의 선택은 조직력


    어느 나라나 현재 축구대표팀의 수준은 이미 10여 년 전에 결정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축구가 맨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유소년부터 차근차근 키우기보다는 한순간의 과실을 따먹기 위해 주로 대표팀에게 돈과 행정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뿌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달콤한 열매가 맺기를 바란 거나 같다. 만약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취임한 1993년 1월20일부터라도 대표팀에 쏟은 정성의 상당 부분을 어린 꿈나무들에게 투자했다면, 지금쯤 한국축구는 적어도 제자리에서 맴돌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잔디구장이나 축구전용구장보다도 더 급한 게 유소년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눈 밝은 지도자’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한국의 오언이나 펠레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다음엔 그들을 보석처럼 갈고 닦아 ‘물건’을 만들어낸다. 에메 자케는 훌륭한 축구지도자의 요건을 △다양한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 선수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지도자 자신도 선수들과 같이 뛰면서 땀을 흘리고 △선수들이 잘못했을 때 일방적인 지적보다는 스스로 잘못을 찾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요건을 갖춘 지도자는 한국에선 찾기 힘들다. 유소년 지도자 중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본축구가 무섭게 발전한 것도 바로 이 유소년축구 지도자 양성에 10여 년 전부터 집중투자했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한국축구 담당 나카코지 기자는 “일본축구의 성장에 대해 한국인들이 잘못 짚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일본축구가 발전한 것이 어린 꿈나무들을 일찍부터 브라질이나 유럽에 유학시켜서 그런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축구협회는 조직적으로 유망주를 해외에 내보낸 일이 없다. 그 유명한 미우라 가즈도 개인적으로 고교를 중퇴하고 프로를 목표로 브라질로 간 것이다.

    지금 일본축구대표 선수들은 국내 고교팀과 클럽팀에서 자란 선수들뿐이다. 오히려 해외유학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지도자들이었다. 현재 유스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타지마 코조는 독일에서 코치학을 공부하고 일본축구협회의 지도자 양성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타지마가 정비한 프로그램은 J리그 코치뿐만이 아니라 중고교 감독 등 국내지도자를 육성하는 지침이 됐다. 요즘에는 J리그에도 해외에서 공부한 젊은 감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축구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런 유능한 지도자들이다. 그들이 선진축구를 배우고 와서 그것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가르쳤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히딩크 감독은 뭔가.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러 온 게 아니다. 한국이 급한 김에 모셔온 유럽의 유명한 ‘족집게 강사’일 뿐이다. 그는 한국의 유소년대표팀 감독이 아닐 뿐더러 선수들에게 ‘개인전투’를 가르쳐줄 시간도 없다. 그의 임무는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과 전략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히딩크가 ‘족집게 강사’라지만 결국 시험은 학생이 치르는 것이다. 학생 수준이 낮으면 아무리 손에 쥐어줘도 모른다. 역사상 개인전투에서 팡팡 나가 떨어지는데 전쟁에서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바로 여기에 히딩크의 고민이 있다. 결국 히딩크가 찾아낸 것은 조직력 즉 팀워크다.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팀워크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수십년 동안 한국팀이 해왔던 ‘반복 주입식 조직력’으로는 안된다. 그런 식은 상대가 우리가 예상한 대로 나와줘야만 맞아떨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반복 주입’은 소위 말하는 ‘박종환식 축구’다. 박종환 감독은 말한다. “한국선수들은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하루 빨리 엔트리 23명을 뽑아 끊임없이 반복 훈련할 수밖에 없다”고. 어쩌면 한국축구 수준에 맞는 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월드컵에서 비길 수는 있어도 결코 이길 수는 없다. 박종환 감독은 세계청소년대회에서 4강에 올라 그의 말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 선수들 세계에서 그렇다. 박종환식은 한국 프로무대까지는 통했지만(일화 한국프로리그 3연속 우승) 아시아무대부터는 통하지 않았다(1996년 12월 아시아선수권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 산전수전 다 겪은 유럽이나 남미의 프로선수들이나 감독들 눈에는 경기를 한 20분만 해보면 그런 고지식한 루트는 금방 눈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축구경기의 속성은 전쟁과 같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본질을 한마디로 ‘안개(불확실성)와 역동적인 마찰’로 규정한다. 축구경기도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래서 공은 둥글다. 또한 축구경기에서의 근육과 근육의 부딪힘은 수많은 우연을 만들어낸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행동의 기반이 되는 요소 중 4분의 3은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 있다. 잇따라 일어나는 우연은 사건의 진행을 방해해 모든 상황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모든 보고와 추정이 불확실하고 우연이 지속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상황은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된다”고 갈파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수제자이며 프로이센 참모총장을 역임한 몰트케도 “모든 작전 계획에서 확실한 것은 적의 주요 세력과의 첫 대면뿐이다. 원정하는 동안 미리 예상하고 아주 상세하게 계획된 최초 구상을 끝까지 갖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햇병아리들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쟁의 연속적인 행동은 미리 구상된 계획이 아니라 임의적인 것이다. 모든 것이 숨겨진 불확실한 상황에 침투하는 데 달렸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한술 더 뜬다. 그는 대작 ‘전쟁과 평화’에서 전투의 속성을 ‘자유인’이라는 새로운 화두로 규정한다.

    “모든 전투는 이를 계획했던 사람의 예상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수한 자유로운 힘이 싸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사문제가 달린 전투기간만큼 인간이 자유로운 때는 없기 때문이다. 이 방향은 절대 미리 알 수 없으며 어떤 하나의 힘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향으로 향하는 많은 힘들이 어떤 물체에 동시에 작용한다면 그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은 이 많은 힘 중의 어느 것과도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축구선수는 경기할 때 전투에서만큼 자유로워야 한다. 통일운동가 백기완씨가 말하는 ‘춤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창조적이고 부드럽게 공을 찰 수 있다. 순간순간 자기 의지에 따라 공을 다뤄야 지단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선수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축구경기는 수많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천하의 지단도 똥볼을 찰 수 있다. 우리의 막내 차두리에게 한순간에 제껴질 수 있다. 상대와의 끊임없는 마찰은 예상치 않았던 수많은 ‘우연’을 만든다. 따라서 맨처음 계획했던 전술 전략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벤치에 있는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결정해야 한다. 흔히 외국감독들은 “한국축구는 순진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한국선수들은 감독이 경기 시작 전에 지시한 것만을 고집스럽게 계속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상대가 그 전술을 알고 있어 번번히 막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이나 남미의 프로선수들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연습 때 끊임없이 토론한다. “감독의 작전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막상 뛰어보면 이런 면에서 잘 안될 때가 많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혹은 “난 감독의 작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내 생각엔 이렇게 하는 게 낫다”는 식이다.

    결국 운동장에서 뛰는 것은 선수들이다. 선수들은 감독이 모르는 것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아무리 감독의 작전이나 전술이 좋아도 선수들이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도 문제다. 선수들은 감독에게 즉각 그같은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개성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그들은 훈련 스케줄부터 트레이닝 방법, 실전에서의 조직력 등 모든 것을 감독과 의견을 나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은 “감독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로봇 같은 선수는 발전이 없다. 난 훈련시간에 선수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인 감독은 불리하다. 에메 자케 감독은 “감독과 선수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외국대표팀 감독을 안 맡으려 하는 것도 그 나라 말을 못하면서 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히딩크도 예외가 아니다. 히딩크는 틈만 나면 “큰소리로 말하라. 고함쳐라.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물어보라. 왜 한국선수들은 이렇게 숫기가 없나. 왜 감독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가. 실전에서는 감독과 선수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게 축구다. 그래서 훈련할 때 느낀 점을 바로 토론해야 효과가 가장 크다”고 선수들에게 외친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 선수들에게 히딩크식 교육은 한계가 있다. 어릴 때부터 토론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게 갑자기 잘될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안양LG 조광래 감독의 말은 뼈아프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선수들이 네덜란드대표팀이나 스페인 프로선수들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풀라고 하면 그게 과연 풀릴까?”

    그러나 조감독의 말이 백번 맞다고 하더라도 맨날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만 풀어서는 죽어도 대학에 갈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수능(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어느 세월에 초등학교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고 앉아 있겠는가? 이것을 히딩크인들 모를까. 히딩크도 자신이 ‘족집게 강사’로 불려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뻔하다. 개인 기량이 떨어지니 우선 팀워크를 끈적끈적하게 다지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두번째는 끊임없는 실전과 경쟁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결국 히딩크가 주장하는 대로 ‘깨지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강한 팀들과 맞붙어 대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모의고사 때 시험 좀 못보면 어떤가. 일단 비슷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게 최선의 방책이지…. 히딩크는 딱 한 번뿐인 본고사에서 잘보면 된다는 전형적인 ‘족집게 강사’의 시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어차피 한국은 포르투갈 폴란드 미국에게 ‘입에 잘 맞는 16강 먹이’임에 틀림없다. 그들에게 한국전은 일단 1승을 따고 들어가는 게임인 것이다. 한국으로선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더 놓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팀의 골드컵 부진 이후 이들 감독들 말에 미묘한 변화가 있음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 엥겔 감독은 “도대체 한국팀의 주목할 만한 공격수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추첨 뒤 “홈 이점이 있는 한국과 첫판 대결이 부담스럽다”며 “한국을 이긴다고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히딩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잘된 일이다.

    상대팀들은 자원이 풍부하다. 수많은 선수 중에서 이런저런 선수를 뽑아 수없이 테스트하며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또한 경쟁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킨다. 세계적인 감독들은 대개 그런 수법을 쓴다. 이와 관련 어느 중국기자의 말이 재미있다.

    “히딩크는 어쩌면 그렇게 중국의 밀루티노비치 감독과 똑같을까. 중국 프로리그 경기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선수를 뽑아 끊임없이 테스트만 하는 것이나 아무말도 듣지 않는 똥고집이며 사생활을 이유로 문화적 특수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 등이 그렇다.”

    밀루티노비치도 중국이 모셔온 ‘족집게 강사’다. 선수선발은 전력의 80%를 결정한다. 밀루티노비치도 중국이 축구선진국을 이기기 위해 어떤 유형의 선수가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축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 23명을 뽑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중국감독들이 아무리 잘한다고 인정한 선수일지라도 밀루티노비치가 생각하는 팀의 유형에 맞지 않으면 빠질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이나 한국이 축구를 잘하는 나라도 아니며 지단이나 피구 같은 세계적인 선수를 보유한 것도 아니다.

    차범근 감독의 아들 차두리가 국내에서는 ‘아직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히딩크는 그를 눈도 한번 깜짝하지 않고 뽑았다. 그리고 골드컵에서 외국감독들은 차두리를 아주 ‘위협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내감독들이 그들보다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럴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차두리의 스피드와 체력을 무섭게 본 것이다.

    한국축구는 선수층이 얕아도 너무 얕다. 어떤 감독이 맡아도 한두 명의 예외를 빼면 거의 똑같은 선수가 뽑힌다. 손으로 꼽아봐도 그 수가 스무 명이 넘어가면 언뜻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당연히 이중에서 핵심 몇 명만 빠져도 전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황선홍 유상철 설기현 안정환 등 주전들이 대거 빠진 골드컵 대회에서 한국팀은 속수무책이었다. 히딩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빨리 베스트11을 정해 반복훈련을 하려’해도 해외에 나가 있는 선수들을 불러모을 수가 없다. 더구나 상대팀들에게 굳이 정보를 유출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히딩크는 월드컵 무대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똑같은 카드’를 가지고 배팅에 나선 셈이다. 이것은 여태까지의 ‘카드 조합’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자 그럼, 히딩크는 무슨 생각으로 한국팀의 팀워크를 다져나가고 있을까.

    우선 캔 블랜차드와 셀든 보울즈가 함께 쓴 경영학 서적 ‘하이 파이브’를 보자. ‘하이 파이브’는 모래알조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단단한 조직으로 변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프로농구 SK나이츠의 코칭스태프가 서장훈 등 선수들에게 읽도록 해 팀워크가 단단해지는 효과를 봤다는 책이기도 하다. 내용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히딩크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 내용을 보자.

    회사원 앨런은 어느날 새로운 사장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는다. 앨런은 가슴속에서 천불이 난다. 앨런은 늘 최고의 성과를 냈다. 목표를 부여받으면 언제나 그 목표를 달성했다. 보고서도 항상 정확하게 제출했다. 예산을 초과하는 일도 없었고 모든 정책과 절차를 완벽하게 맞췄다. 독불장군으로서 혼자 살아오긴 했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했다. 소속팀의 상황이 최악이어도 앨런만은 늘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그런데 해고당한 것이다. 신임사장은 그에게 말했다. “앨런 당신은 혼자서는 그 누구보다도 일을 잘합니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그다지 일을 잘하지 못해요. 당신은 퍽(PUCK·아이스하키 공)을 혼자서만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1인 아이스하키팀이고 그건 오늘날에는 맞지 않아요. 난 우리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자면 당신은 평소보다 점수를 적게 내겠지만 팀은 훨씬 더 많은 점수를 낼 거예요. 난 사장으로서 모든 사람의 기여도를 최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들게 합니다, 행운을 빌어요. 앨런.”

    백수가 된 앨런은 우연하게도 팀워크가 엉망이어서 꼴찌권에서 헤매고 있는 초등학교 아이스하키팀의 코치를 맡는다. 운동팀 운영에 대해 아무것도 알 리 없는 앨런은 우선 20년 전 그의 초등학교 시절 학교농구팀을 맡아 우승시켰던 팔순의 은사를 찾아 자문을 구한다. 은사는 말한다.

    “목적의식과 가치와 목표의 공유, 이게 팀 성공의 첫번째 열쇠야. 가치와 목표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만들어줄 명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훌륭한 팀이 될 수 없어. 우선 경기에서 이기려면 이 팀에서 제일 잘하는 제드를 잠시 빼. 제드가 저 자리에 있는 한 다른 아이들은 모든 것을 그에게 양보해 버리지.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서로 패스해서 골을 넣는 것보다 제드가 혼자서 퍽을 다룰 때 골을 성공시키는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거든.

    연습 때 아이들한테 아무리 기술을 가르쳐줘도 실제 경기에선 제드가 도맡아 뛰게 되니까 배운 것을 시도해보려 하지 않아. 물론 제드를 영원히 뺄 필요는 없어. 다른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기간만큼만 빼면 돼. 제드가 돌아올 때쯤이면 다른 아이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고, 제드도 다른 아이들이 뛰는 새로운 방식에 적응할 수 있을 거야.”

    결국 앨런은 제드를 ‘학교성적이 나쁘다’는 핑계를 대고 출전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부상으로 병원에 있는 동료 티모시를 위해 우승하자고 아이들과 굳게 약속한다. 경기 중간에 선수들끼리 외치는 응원구호도 “티모시에게 약속하자, 우승은 우리의 것”으로 한다. 아이들과 앨런은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팀워크가 단단해져 간다.

    일단 여기에서 히딩크의 취임 초기를 생각해보자. 히딩크는 오자마자 16강을 자신했다. 선수들과 한국국민들에게 “내가 한국축구의 해답은 아니지만 16강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팀워크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 식사할 때나 잠자리에 들 때라도 복장 통일을 강조했다. 그리고 얼마후 한국축구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홍명보를 “몸이 안돼 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목표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선수단의 리더라 할 수 있는 홍명보를 대표팀에서 뺀 것이다. ‘하이 파이브’의 시나리오와 흡사하다. 하이파이브에서 글쓴이들은 주인공의 입을 통해 말한다.

    “공동의 조화는 개인적 기술을 팀기술로 바꿔준다. 훈련된 사람들은 팀을 새로운 수준으로 이끌고 그 새로운 수준이 표준이 된다. 유능한 선수가 떠나면 팀은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지만 곧 정상을 되찾을 뿐더러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이 된다.”

    홍명보가 빠진 이후 한국팀은 승패를 떠나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젊은 피’들이 펄펄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송종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만약 홍명보가 있었다면 어쩌면 송종국은 후보로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홍명보가 없는 사이 송종국은 홍명보를 능가할 정도로 컸다. 이천수 최태욱 등도 마찬가지다. 또한 팀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골드컵 부진으로 여론의 눈총을 받고 있긴 하지만 예전보다 한 단계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아프신 고트비 한국대표팀 비디오분석관은 “지난해 한국이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할 당시와 최근의 경기 비디오를 분석해보면 전술이나 경기운영면에서 한국팀이 전혀 다른 팀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미드필드에서 선수들은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밀리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를 지배한다고 말하는데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한국사람들은 자기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 같다. 한국팀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경기와 선수들의 플레이를 분석하는 입장에서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얘기가 맞는다면 이젠 홍명보가 한결 높아진 팀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히딩크는 최근 홍명보의 역할에 대해 “홍명보도 그저 팀원의 일부일 뿐이다. 그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며 잘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물론 홍명보를 재발탁한 뒤엔 히딩크의 말도 달라졌다. 히딩크는 3월1일 “홍명보가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주전을 꿰차겠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부상을 딛고 빠르게 정상 컨디션을 되찾은 데 이어 강한 정신력까지 보이고 있어 흐뭇하다”고 말하며 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김태영을 임시 주장으로 지명했다. 마치 ‘하이 파이브’에서 홍명보와 비슷한 처지의 제드가 다시 돌아오자 “넌 다시 팀원으로 태어나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말과 흡사하다.

    다시 ‘하이 파이브’로 돌아가자. 앨런이 두번째로 한 것은 뭘까? 그것은 아이들한테 고난도 기술을 가르친 것이다. 은사는 앨런에게 “마음의 끈이 묶어지면 그 다음엔 고난도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본기술만 가지고는 승리할 수 없다. 그럴려면 자유롭게 풀어줘라. 선수들이 마음껏 뛰도록 격려하지 않으면 훌륭한 기술 습득을 기대할 수 없다. 좀더 과감해져라. 기술은 기초가 되지만 뛰는 방법을 모르는 팀은 제대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기술에 자신이 붙자 스스로 자신의 연습목표와 경기목표를 정하기 시작한다. “세 골 이내에서 막겠다. 난 내게 오는 퍽의 80%는 패스하겠다” 등이 그것이다.

    히딩크가 가르친 기술은 뭘까. 그것은 겁내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한번 마음껏 해보라는 것이다. 똥볼을 차도 좋으니 소심하게 슈팅을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좀더 과감하고 좀더 생각하고 창조적인 축구를 펼치라는 것이다.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감독과도 따질 것은 따지는 ‘논쟁’을 요구했다. 그러나 너무 선수들이 순종적이고 말을 잘 들어 불만(?)이다. 세상에 이렇게 성실한 선수들이 이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러나 바로 이것이 창조축구의 큰 걸림돌이라는 게 히딩크의 생각인 것 같다. 식사할 때도 선후배가 같이 앉아 먹으며 대화를 하도록 한다든가 좀 튀는 이천수나 고종수를 격의 없이 대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바로 이것이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은 어린애처럼 순진하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한국팀의 실수는 100% 골로 연결되는 반면 한국은 상대방의 실수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다. 물론 한국선수들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성실하고 강한 훈련에 잘 따라준다. 그러나 경기경험이 부족한 탓에 노련하지 못한 게 결정적 단점이다. 한국선수들은 기술적으로 절대 유럽선수들에 뒤지지 않지만 창조적이지 못하다. 특히 젊은 선수들은 선배들이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란다. 스스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해야 될 나이에 위를 바라보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안타까워했다.

    히딩크는 3월 유럽전지 훈련에서 한국팀의 수준을 각 부문별로 점수로 표시한 적이 있다. 프랑스나 아르헨티나 등 선진축구팀을 100점으로 했을 때 한국팀에 가장 부족한 것은 선수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히딩크는 이 부분에 20점으로 최하위 점수를 줬다. 대신 내적 동기부여(100점), 헌신도(99점), 기술(85점), 스피드(80점) 부분엔 후한 점수를 줬다.

    왜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인가. 히딩크는 3-4-3포메이션을 그린 뒤 각 위치별로 한국선수들의 나이를 써 넣었다. 그리고 경기할 때 의사전달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했다. “자 봐라. 최전방 공격수 세 명의 나이가 왼쪽 공격수부터 19-32-24세로 이뤄져 있다면 이들의 의사전달 방향은 32세 공격수가 왼쪽 19세 선수와 오른쪽 24세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뿐이다. 더구나 후방 미드필더진에 24-18-27-22세의 후배들이 포진해 있다면 32세 공격수는 이들에게 지시만 하지 듣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선 미드필더의 지시에 따라 공격수가 움직여야 할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선배를 예우하는 한국문화를 이해한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경기중에 선수들간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다. 선배가 후배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식은 정말 곤란하다.”

    앨런이 세번째로 강조한 것은 아이들을 어떻게 실로 꿰어 그 힘을 하나로 극대화하냐는 것이다. 앨런은 아이들이 기본기를 익히고 약속한 전술을 사용해 자기 위치에서 경기할 수 있게 되자 공격수와 수비수를 조금씩 순환시키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히딩크의 ‘멀티플레이어’ 개념과 비슷하다.

    앨런의 은사는 “성공적인 팀을 만들려면 유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위치를 바꿔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일하다보면 좋은 생각을 얻게 된다. 위치를 바꿔보는 것은 기술 습득에도 도움이 되고 팀원들에게 넓은 시야와 변화에 대한 안정감을 준다. 똑같은 것만 지루하게 반복하면 기술개발도 하지 않게 된다. 주장의 역할도 번갈아가며 해야 한다. 그래야 팀원간에 리더십을 공유할 능력과 자발성이 커지고 팀의 유연성이 극대화된다. 그렇다고 골키퍼까지 필드플레이어와 바꿔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골키퍼는 전문가다. 비행기에서 승무원과 조종사를 서로 순환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히딩크는 같은 전문가들인 김병지와 이운재가 끊임없이 경쟁을 펼치도록 한다.

    한국축구팀이 몰라보게 달라진 데는 바로 이 멀티플레이어 시스템이 한몫을 했다. 선수들의 시야가 넓어졌고 옛날보다 유기적인 플레이가 좋아졌다. 대표팀의 젊은피 이영표와 최태욱은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실제 우리는 몸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골드컵 부진은 월드컵을 향한 과정일 뿐이다. 분명 우리는 새롭게 변하고 있으며 선진축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히딩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색깔이 한국축구의 지향점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골드컵 부진은 전력강화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봐줬으면 한다. 혹독한 체력훈련을 소화함에 따라 눈앞의 결과는 골드컵 부진으로 나타났지만 월드컵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번 골드컵에서도 골결정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골 기회는 전보다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송종국도 “골결정력에 문제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라운드를 장악하지 못한 경기는 없었다. 내용면에서 옛날보다 크게 발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털사커를 추구하는 현대축구에서 멀티플레이어 개념은 하나의 흐름이다. 이웃 일본의 투루시에 감독도 선수선발 기준을 ‘얼마나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느냐’에 둔다. 현실적으로도 많은 포지션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팀 전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는 말도 많다.

    박종환 감독은 “유럽선수와 한국선수는 다르다. 유럽선수들은 대회 한달 전에만 모여도 충분히 전술이나 조직을 소화해낸다. 그러나 한국선수들은 그게 안된다. 빨리 위치에 따라 두배수를 뽑아 끊임없이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히딩크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교체하고 있지만, 한국선수는 모두 거기서 거기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모습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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